퀵바

던전

아침이 콘크리트를 비출 때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렛텐
작품등록일 :
2019.05.02 18:23
최근연재일 :
2019.07.08 23:02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5,846
추천수 :
87
글자수 :
172,380

작성
19.05.20 21:25
조회
68
추천
2
글자
7쪽

17화. 우울 (4월 6일)

DUMMY

-- Date 04.06 --


술기운에 써본다.

오늘은 하루종일 별 일 없었다. 그저 아까 그 정보도 머릿속에만 담아놓고, 그러고나서 씨앗도 마저 심고, 대형마트 쪽에 가서 필요한 장도 봤다가, 캐리어에 들어있던 음식들 가지고 저녁밥도 해먹고, 그저 그게 다였다. 오늘 하루도.

근데 지금 밤에 비도 내리고 해서 그런지 조금 기분이 영 안 좋다. 우울하고 축 쳐지고. 그래서 조금 기분전환도 좀 할 겸 남아있던 소주를 그냥 다 마셔버렸다. 솔직히 전에 소주 마실 때에는 너무 써서 별로 못 마셨는데, 지금 먹으니까 느낌이 또 다르더라.

...응? 왜 우울하냐고? 그냥..

그냥 그리워 그렇다, 사람이. 그립고, 보고싶고, 전에 몇 번이든 되뇌이고 되뇌이던 그 바람, 그냥 그 때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막 따뜻하거나 푹신하진 않았지만 밤에 언제나 나와 함께했던 침대가 그립다.

항상 잘 때 내 품안에서 악몽으로 부터 나를 지켜준 곰인형이 그립다.

엄마가 나 아침 챙겨준다고 계란 구워주시던 그 냄새와 슬리퍼와 앞치마 차림으로 현관 앞에 나와서 잘 다녀오라고 손짓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그립다.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같이 걸어가면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나눠먹던 그 등굣길이 그립다.

너무 시끄러워서 잠은 못 잤지만 그래도 분위기만큼은 너무 좋았던 그 때의 교실이 그립다.

항상 맛없는거 나온다고 투덜투덜대지만 막상 먹으면 2번은 다시 받았던 그 때의 급식이 그립다.

도서실에서 책 안 읽고 책장뒤에 몰래 숨어서 애들과 얘기나누다가 선생님한테 혼나서 벌 받던 그 때가 그립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느껴지던 그 상쾌하면서도 시원한 그 공기가 그립다.

집에 들어가면 파자마차림으로 나오셔서 잘 다녀왔냐고 하시는 엄마와, 일 끝나고 티비보면서 휴식하고 계시는 아빠의 잘 다녀왔냐는 말과 집의 따뜻한 온기가 그립다.

그리운 것이 많은 만큼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것도 많았다.

중학교 때 공부 조금만 더 열심히해서 그대로 고등학교 공부도 열심히할걸.

엄마와 아빠랑 학업에 관련해서 싸우지말고 학업 외의 이야기도 자주 나눠볼걸.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 끼어서 같이 어디 놀러가고 재밌는 추억들도 많이 만들걸.

작은 고민이라던가 정말 큰 고민이라던가 그런 사소한 것도 서로 털어놓고 얘기 하고 그런 마음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친구도 만들어볼걸.

내가 마음에 담고 있던 애한테 한 번 다가가서 말이라도 걸어볼걸...

하지만 이렇게 그리워한다고 해도,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이렇게 우울해한다고 해도,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

오늘따라 우울하고 싶어진다. 오늘따라 울고싶어진다. 그냥 그저, 울고 싶다.

울어도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걸.

울어도 아무도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걸.

울어도 아무도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없는걸.

울어도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걸.

몇번을 울어도 아무도 내 눈물 닦아주는 사람이 없는걸.

그저 혼자서, 앞으로도, 계속, 혼자서.

이렇게 우울할때면 항상 내 옆에서 왜그러냐고 물어보던 엄마가 그립다.

이렇게 우울할때면 항상 내 옆에 앉아서 나를 꼭 감싸 안아주시던 아빠가 그립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울고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너무 외로웠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나 혼자일뿐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이 곳 어디에도 없다.

나 혼자 눈물흘리고, 나 혼자 눈물닦고, 나 혼자 일어나, 나 혼자 서야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두렵게만 느껴졌다.

그냥 죽고싶다. 그래, 차라리 죽을까? 차라리 죽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죽을 때 그 어떠한 끔찍하고도 상상도 못할 고통이 있다고 해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그 냄새를 맡을 수만 있다면, 다시 그 곳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죽고싶다.

그렇다고 막상 칼의 손잡이를 잡고있자니, 또 다시 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만약에 내가 여기서 죽게되면 나는 이 곳에 홀로 남겨져서 아무도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한채, 그렇게 점점 잊혀져갈것이라는 것이 나를 벼랑 끝까지 압박해왔다.

아주 쓸쓸하게, 숨이 떨어지는 그 마지막까지 혼자서, 영원한 끝을 맞게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니까 칼을 잡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여기서 죽으면 나의 존재는 사라진다. 그게 나는 지금 너무나도 무서워.

마치 이 세상에 없던 사람처럼 되어버릴까봐, 그렇게 서서히 잊혀질까봐. 서서히 잊혀져서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너무나도 두렵다.

그래, 유서를 쓰자. 내가 죽고 숨을 거두게 된 후에 누군가가 이 곳에 오게 되었을 때 나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유서를 쓰자.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유서의 유자도 적지 못했다. 막상 쓰려니 손이 부들부들 떨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유서 쓰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게 뭘까, 과연 내가 이렇게 죽는다고해서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그저 죽음은 나에게있어서 하나의 도피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조건이 있다면 편도행으로, 다시 돌아올 수는 없는.

이렇게 도피만 해서는 되는걸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때라고 할 지라도 결국에는 나 혼자만의 길, 나 홀로 서기. 이 곳이 아니었어도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홀로 서는 것은 했었어야될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곳은 다르다. 사람도 없고, 동물도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기에, 그래서 더 외롭고 고독하다. 그래서 더 우울하기도 하고. 막상 얘기를 나눌 만한 대상도 없고.

그렇기에 현재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힘이 든다. 너무 힘들고 지치고 어려워서 정말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 다 되어가도 어디 내 마음을 놓을 만한 곳도 없고. 정말 힘들다.

모르겠다. 차라리 그냥 한숨자고 일어나는게 훨씬 더 도움이 될려나? 자고있을 때에는 괜찮을지는 몰라도, 아마 일어나고 나서가 지옥이겠지.

하지만 몇 시간동안만큼은, 내 마음이 편해지겠지. 그래, 그냥 차라리 자면서 잊어버리는게 나을지도 몰라.

그래, 오늘은 그냥 자자. 자고 일어나는 건 내일 생각하고, 오늘은 그냥 자자.


그렇게 나는 무거운 마음과 눈물에 젖은 상태로 방에 들어가 누웠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침이 콘크리트를 비출 때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23화. 도시락 (4월 9일) 19.05.28 50 0 8쪽
25 22화. 벚꽃 (4월 9일) 19.05.27 46 0 7쪽
24 21화. 약국 (4월 8일) 19.05.25 53 2 7쪽
23 20화. 감기 (4월 8일) 19.05.24 57 2 7쪽
22 외전 2. 사람 B의 기록 19.05.23 62 2 8쪽
21 19화. 악흥의 한때 (4월 7일) 19.05.22 57 2 7쪽
20 18화. 하늘 (4월 7일) 19.05.21 60 2 7쪽
» 17화. 우울 (4월 6일) 19.05.20 69 2 7쪽
18 16화. 그 날? (4월 6일) 19.05.18 72 2 7쪽
17 15화. 메모장 (4월 6일) 19.05.17 79 2 7쪽
16 14화. 푸딩 (4월 6일) 19.05.16 109 2 7쪽
15 13화. 시체 (4월 5일) 19.05.15 89 2 7쪽
14 12화. 플랫폼 (4월 5일) 19.05.14 116 2 7쪽
13 11화. 횡단 (4월 5일) 19.05.13 134 2 7쪽
12 10화. 백화점 (4월 5일) 19.05.11 145 4 7쪽
11 외전 1. 사람 A의 기록 19.05.10 152 3 7쪽
10 9화. 또 다른 땅 (4월 4일) 19.05.09 158 3 8쪽
9 8화. 지하 (4월 4일) 19.05.08 165 2 7쪽
8 7화. 농사 (4월 3일) 19.05.07 183 4 7쪽
7 6화, 또 다른 날 (4월 3일) 19.05.06 201 2 7쪽
6 5화. 희망 (4월 2일) 19.05.04 215 4 8쪽
5 4화. 학교 탐험 (4월 2일) 19.05.04 230 5 8쪽
4 3화. 첫 모험 (4월 2일) +1 19.05.03 259 10 7쪽
3 2화. 고독 (4월 1일) 19.05.02 301 9 7쪽
2 1화. 주변 (4월 1일) 19.05.02 355 8 7쪽
1 0화. 프롤로그 (3월 31일) 19.05.02 596 9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