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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빨원툴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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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글
작품등록일 :
2023.05.10 10:51
최근연재일 :
2023.05.20 07:13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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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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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글자수 :
70,800

작성
23.05.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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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재난의 시작 (2)

DUMMY

*


위층에도 괴물이 나타났지만, 다행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발 빠른 대처로 더 이상의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은 팀을 이뤄 움직이면서 각자의 집에서 생필품을 챙기고 나왔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시체와 마주쳤다. 그땐 경황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껏 오며 가며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마주쳤던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아무리 이웃과 가까이 지내는 시대는 아니라지만, 최근까지 얼굴을 봐 왔던 사람의 주검은 보는 건 조금 더 어둡고 무거운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짐을 밖으로 옮긴 후, 그 둘의 시신도 운반하기 위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해서 마견이 나타나는 아파트 안에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502호 아줌마가 죽고... 너희 엄마도 다쳤었다면서?! 괜찮아, 정운이 엄마?”


재혁이 어머니가 내 손을 꽉 붙잡고 나와 엄마를 번갈아 가며 물었다. 재혁이와 재희가 상황을 간단히 전달하고 다시 아파트로 들어간 탓에 걱정과 궁금증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난 괜찮아, 재혁 엄마. 재희가 나도 그 신기한 마술로 치료해주더라고.”

“네. 개 같이 생긴 괴물들이 나타나서 저희 엄마를 공격했고... 저 두 분도 그 괴물에게 목숨을 잃으셨어요. 아주머니랑 아저씨도 조심하셔야 해요. 근데 밖은 멀쩡했어요?”


“여긴 아무 일 없었다, 재혁아. 그렇지만 뭔 일이 일어나긴 하는 모양이야. 지금 다시 인터넷도 난리가 났어. 곧 전기도 끊긴다는 말이 있고... 주요 시설들이 괴물들의 공격으로 난리가 났다는구나.”


“그렇군요... 짐을 미리 빼 온 게 다행이에요. 괴물들이 계속해서 아파트에 나타나는 걸 보면...”


세상이 난장판이 된 것처럼, 아파트 밖에서도 조금씩 성화가 번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혼란과 공포에 빠져들었다.


*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재혁이가 생각에 잠겨 있던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문채영이 먼저 나섰다.


“아파트 안에 머무는 건 역시 무리일 것 같아요. 시도 때도 없이 괴물이 나타나니 도저히 안전을 확보할 수가 없어요. 살다 살다 이런 식으로 집을 뺏기게 되네요.”


짐과 시신을 옮긴 재혁이와 재희, 문채영은 자연스럽게 뒷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 판타지적인 이변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전기와 수도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동안.


그나마 웬만한 공격 한 방에 처치할 수 있는 고블린 때는 소수의 몇 명이 나서는 것만으로 큰 피해 없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새로이 아파트를 점거한 마견은 보통 사람들의 공격 한두 번으로 죽어주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의 목숨을 손쉽게 앗아갈 만큼 강력했다. 유일한 예외라면...


“하지만 내 화염구는 여전히 놈들을 즉사시킬 수 있잖아. 채영 씨도 봤죠? 제가 어떻게 잘 싸워 보면...”

“그래도 무리야. 오빠가 24시간 깨어 있을 것도 아니고, 그래 봤자 오빠가 지킬 수 있는 영역도 한정적이잖아.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케어할 수는 없어.”


조금 전 마견을 화염구 한 방으로 처리한 재혁이는 꽤나 자신감이 오른 모양이었다. 재혁이의 실력은 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만큼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재희의 지적이 정확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것도 그렇고... 애초에 집 자체가 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어. 아까 아저씨들 말 들어보니까 전기도 곧 끊긴다고 하고... 그러면 수도나 가스도 끊길 테니까. 정부에서도 뭐라 뭐라 말은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나 봐.”


“그나저나 재혁 씨는 어떻게 그것들을 일격에 죽일 수 있던 거죠? 저희는 서너 명이 있었는데도 한 마리 상대로 좀 고생했는데.”

“아마 오빠 무기가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오빠네는 튜토리얼 끝나고 보상으로 A급 아이템이 쏟아졌다더라고요. 애초에 그쪽은 튜토리얼에서 죽을 뻔할 만큼 보스가 강했다고는 하지만...”


재희는 괜히 부러운 눈으로 재혁이를 흘겨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 말에서 힌트를 얻은 듯 재혁이가 손뼉을 쳤다.


“아,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지! 나한테는 저놈들이나 고블린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까 아파트를 내 사냥터로 쓰는 게 어때?”

“사냥터라니?”

“왜, 그런 거 있잖아. 게임에서 골드 같은 거 벌려고 노가다하는 장소. 지금이 딱 그러기 좋은 상황이잖아. 안 그래?”


정운이는 내 어깨를 찰싹 때리며 눈을 빛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긴 했다. 골드란 개념이 도입된 이상, 가만히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이득이다. 게다가 재혁이라면 확실히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도 같이 가. 혹시 오빠가 다치면 치료해 줄 수도 있고, 나도 골드는 벌어 둬야 할 것 같으니까. 채영 언니랑 정운 오빠는요? 같이 갈래요?”


“좋아요! 저도 갈래요! 좀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사실 민폐일 것 같기도 하네요, 하하... 어차피 걔네들 죽이는 건 다 재혁 씨 몫일 테니까요.”


“으음...”


선뜻 대답한 문채영과 달리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그녀처럼 일격에 마견을 죽일 수 없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내 공격은 언제나 최대의 효과로 적중할 것이다. 그런데도 마견에게 적중한 곳은 눈이었다. 즉 마견의 눈을 멀게 해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금의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반대로 마견에게 기습을 당했을 때의 리스크는 채영에 비해 내 쪽이 훨씬 컸다. 내 몸은 그녀와 달리 조금도 발전하지 않은 일반인의 몸뚱이 그 자체였으니까.


“왜? 같이 가자. 무서워서 그러냐? 크큭.”

“어, 무섭다. 흐흐. 그리고 이 나침반도...”


자존심을 긁으려 드는 재혁의 말에도 난 순순히 수긍했다. 슬쩍 확인한 나침반의 지침은 그저 빙빙 돌기만 할 뿐이었다.


“저러면 지금 당장 뭘 해도 차이가 없다는 의미인 것 같네요. 정 그러면 정운 오빠는 여기 남아 계세요. 어차피 저도 엄마 아빠를 그냥 여기 두기도 좀 마음에 걸렸으니까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안심이죠.”

“그것도 그렇네요. 밖에는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기는 해도... 혹시 모르니까요.”

“아, 그래. 생각해 보면 고블린도 밖에 멀쩡히 돌아다녔는데 여기라고 안 그러라는 법은 없지.”


“그렇지? 어쩌면 아까 우리가 본 고블린도 어딘가에서 소환되었다가 거기까지 나온 걸지도 모르니까. 최소한 괴물이 나타나면 나도 무력화 정도는 시킬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난 밖에 남아있을게. 그러면 만약의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대처할 수 있겠지.”


내 논리에 설득된 세 명은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를 상정하고 내린 결론이긴 했지만, 결국 괴물은 한참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혼자 아줌마 아저씨들의 수다와 푸념을 상대하는 건 괴물을 잡는 것 이상으로 힘든 기분이었다.


“정운아!”

“오빠!”


그때 재혁이와 재희가 구세주처럼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뒤쪽에 있는 채영까지 예상대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라 안심했다. 하지만 채영은 호기심 많은 아저씨들한테 붙잡혀 버렸다. 채영은 내버려 두고 난 먼저 온 둘에게 물었다.


“어, 그래. 어땠어?”

“별거 없었지, 뭐. 어디 생겼나 찾아다니는 게 더 일이었다.”

“엘리베이터 타기는 불안해서 계속 계단으로만 다녔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오빠 안 오길 잘한 거 같아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 이쪽도 별일 없었어. 문제는 다른 거지. 전기는 아무래도 확실히 끊길 모양이야. 발전소니 변전소니 다 난리가 났다니까... 인터넷도 몇 시간 안에 끊어질 거라더라.”


“진짜 큰일이잖아, 그건... 그건 그렇고. 자, 여기! 선물이다!”

“어? 이건...”


재혁이는 등 뒤에 숨겨두고 있던 작은 약병들을 꺼내 보였다. 히죽거리는 재혁이 옆에서 재희는 왠지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나 포션이야. 괴물들 쉽게 잡을 수 있게 된 건 어떻게 보면 니 덕이 크니까. 정확히 따지면 거기서 살아나온 것부터긴 하지만, 크흐흐. 근데 나만 사기는 억울해서 재희 골드도 좀 뜯어냈다.”

“뭐, 저도 궁금한 게 있었으니까요. 아무튼 정운 오빠. 지금은 그 ‘행운의 상자’라는 스킬 쓸 수 있겠어요? 한번 확인해 봐요.”


입술을 삐죽이던 재희는 잽싸게 말을 돌렸다. 다섯 병의 포션을 받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그래. 고맙다, 둘 다. 뭘 이런 걸 다... 하하. 마나 포션은 더 비싸지 않았어? 골드는 얼마나 있는데?”

“아, 그렇지. 대충 그 괴물... 넌 마견이라 부른댔나? 마견 하나가 5골드 정도는 줬던 거 같은데.”

“저도 근처에 있으니까 골드가 생기긴 하더라고요. 이런 걸 게임에서 파티 플레이라 하던가? 아무튼 전 3골드 정도? 그건 기여도가 달라서 그런 거 같아요.”

“어, 맞아, 맞아. 아무튼 100골드 넘게 있어. 어차피 골드야 또 벌 수 있는 거니까.”


재혁이나 재희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투였다. 옛날부터 날 많이 챙겨줬던 두 사람에게 이렇게 색다른 도움을 받게 되는 건 또 기분이 묘했다. 참 고마운 녀석들이었다.


“그래... 진짜 고마워. 그러면 한 번 스킬부터 써볼까? 뭐가 나올지 궁금한데, 나도.”


그 말을 꺼내자마자 난 스킬을 발동시켰다. 재희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날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이건... 포션?”


조금 전 재혁이가 나한테 건네준 것과 비슷하게 생긴 약병이었다. 하지만 색깔은 조금 달랐다. 재혁이가 내가 준 건 푸른색. 그리고 지금 나타난 이것은 짙은 보라색.


“잠깐만요, 오빠. 제가 감정해 볼게요.”


재희는 잽싸게 손을 내밀어 약병을 붙잡고 두 눈을 감았다.


“음... 이건 해독제예요.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겠는데요?”

“그렇지?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긴 아까 상점 창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가격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런 게 나왔다는 건...”

“어, 맞아. 100골드는 넘었을걸? 마나 포션도 제일 싼 거긴 했지만 20골드짜리였는데...”


아직 사용처를 알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갖고 있으면 유용한 물건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와 동시에 이런 물품이 필요해질 거라는 생각에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재희가 궁금해하는 건 거기서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제 마나 포션 마시고 한 번 더 써 봐요. 이번엔 스킬을 발동할 때 그 나침반을 의식하면서요. 제가 힐할 때 특정 상처에 정신을 집중하듯이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아. 일단 물약을 마시고...”


푸른 물약의 맛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나침반은 손에 쥔 채 스킬을 발동시켜 보았다.


이번엔 성공이었다. 조금 전과 달리 연달아 ‘행운의 상자’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어때요? 성공이에요?”

“응. 근데... 뭐가 달라진 건가?”


분명히 스킬은 발동했다. 하지만 겉보기에 나침반은 딱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직도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이었다.


“음... 제 예상대로라면 분명히 그 나침반이 3시간을 기준으로 제일 유용한 길을 제시해줄 텐데. 아니었나? 헤헤...”


재희는 민망한 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황당하긴 해도, 어차피 재희가 사 준 물약을 써서 시도한 것이니 뭐라 할 수도 없다.


*


전기와 수도가 끊어지기 직전이란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재혁이와 채영을 비롯해 전투를 꺼리지 않는 사람들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미리 물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의 사람들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멀찍이 보이는 다른 동의 주민들도 우리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고블린에 비하면 마견이 강하긴 해도, 싸움에 능한 소수의 사람들이 이겨내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나침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죠?”

“응, 조금 전부터 갑자기...”


재희와 나는 아파트 단지 밖으로 향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빙빙 돌기만 하던 지침이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주위에 있던 재희도 호기심이 동했는지 곧장 날 따라나섰다.


길거리는 조용했다. 고블린도, 마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밖으로 나서 몇 걸음을 걷자마자 우리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세상에! 괜찮니?!”


재희가 달려 나갔다. 나 역시 재희의 뒤를 따라갔다.

그곳에는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교복 차림의 학생과, 그 아이의 몸을 흔들며 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학생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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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급 검사장 (1) 23.05.20 21 1 17쪽
10 재난의 시작 (4) 23.05.17 25 3 14쪽
9 재난의 시작 (3) 23.05.17 31 1 13쪽
» 재난의 시작 (2) 23.05.14 50 6 13쪽
7 재난의 시작 (1) +1 23.05.13 61 9 14쪽
6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 (3) 23.05.12 80 10 14쪽
5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 (2) 23.05.11 110 11 14쪽
4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 (1) +2 23.05.11 186 14 16쪽
3 확률이 0이 아니라면 (3) +3 23.05.10 474 18 14쪽
2 확률이 0이 아니라면 (2) 23.05.10 509 12 14쪽
1 확률이 0이 아니라면 (1) +2 23.05.10 704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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