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문의가 있는 주제와 지켜보시는 독자분들 중에서 이상하다 여길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 다소 길 수도 있지만, 글을 올립니다.
1. 무애광검
5권에서 그친 것은 '돈' 문제였습니다.
디지털 유료연재라는 것이 없던, 종이책 출간배포 시절에, 1,2권이 출판되고 배포를 이틀 앞뒀을 때, 이미 3권 원고가 마감됐으며, 4권 원고 마감 기간도 한 달이 안 걸렸습니다.
문제는, 1,2권 인세를 두 달 뒤에, 3권 인세도 석 달 뒤에, 4권 인세도 그랬습니다.
모두 제가 출판사에 애걸복걸해서 인세를 받아야 했고 일시불도 아닌 할부하듯 나눠서 받아야 했습니다.
그해 출판 시장을 석권했단 소릴 들으며 주변에서 축하도 받았지만, 현실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만뒀습니다. 5권을 끝으로.
비유하자면, 월급이 나오긴 하지만 자꾸 몇 달씩 밀려서 나오는데 계속 그 회사를 다닐 순 없었습니다.
이걸 12권까지 쓰면서 돈을 받을 수 있을까란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일은 하는데 자꾸 생계에 쫓기게 되는 현실의 회의감에 그만뒀습니다.
종이책으로만 출판하고 읽을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남의 출판사에서 낸 책을 다른 출판사가 이어서 출판해 주는 경우도 없었고요.
방법이 없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2. 종천지애는 5권까지 책으로 나왔습니다. 무애광검의 선례가 있어서 신중하게 선택한 출판사였습니다.
무애광검처럼 빠르게 마감하진 못해도 꾸준히 4권까지 출판됐고 인세도 문제없이 지급됐습니다.
하지만, 5권부터 책이 잘 출간배포 되지 않았습니다.
원고를 마감하고 최종편집본을 전달받아 탈고해서 전달해도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답답해서 몇 번 독촉 했더니 5권이 나왔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단 말로 포장하기엔, 극악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인쇄 순간부터 적자일 거라고 예감했습니다.
그때는 장르문학 전반적으로 곤궁해지고 불행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만 특별히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은 것은 아니었단 뜻이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다음, 6권을 마감해 전달해도 출판사가 메일을 확인 안 했습니다. 전화 연결도 잘 안 돼서.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유무선으로도, 대면에서도 담당자가 자릴 비웠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이때 연결권 출판은 안 되겠구나 라고 생각보다 사람 구실에 대한 고민이 들만큼 심각한 현실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다른 일을 해야 했습니다.
글은 더 쓸 수 없었습니다.
연이은 조기 종결로 인해서 불신을 받았고 작가로서의 상품 가치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내용증명을 쓰고, 이메일과 우편발송으로 여러 차례 반복한 끝에 종천지애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3.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내용도 잊고 세계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지난 몇 년이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직장을 다니던 중에, 지인이 출판사에 일하게 되면서 무애광검을 다시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조건도 과분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윗선의 결재를 받지 못해 무산됐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지인이 다시 종천지애를 제안해 줬습니다.
이 일은 오로지 저의 잘못입니다.
이미 빛을 못 본 묵혀둔 원고가 있기에 여유로운 스케줄 아래, 다시 원고를 처음부터 읽고 후속 회차를 써갔습니다.
묵혀뒀던 원고가 소진되고 나서, 몇 년 만에 새로 쓰기 시작한 구간은 잘 써지질 않더군요.
독자분들께도 죄송하고, 출판사 지인에게도 미안했습니다.
그냥 과거에서 스톱 된 건 그게 끝이란 걸 알았어야 했는데 욕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오픈하지 못한 후속 회차가 있긴 하지만, 출판사에서 두 번 다시 연중 안 한단 자신 없으면 완결까지 재오픈은 안 된단 말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죄송하며 사죄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
무애광검은 한으로 남았지만, 종천지애는 버려진 수치스러움과 괴로움이 공존했습니다.
종천지애는 캐릭터의 재미를 위해 쓴 글이 아니었습니다.
열정이 넘치는 시절에는 작가라면 한 번씩 꾸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내가 창조한 주인공들을 모아보는 것.
종천지애가 그랬습니다.
제가 쓴 무협 중에 하나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것이 몇 개 있었습니다.
[연혼벽] – 소요비승 - [종천지애] – [벽력암전] – 종혼벽 – 몽환포영
이 중에서 앞의 괄호 친 작품들은 독자분들께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만, 종천지애가 아직 결말을 짓지 못했습니다. 선보이지 못 한 작품들은 아직 시나리오와 플롯만 존재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젊었을 적에 저게 무협소설 작가로서의 가장 큰 포부였습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꼭 완수하고 싶었습니다.
종천지애 이후, 전업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취업해서 바쁜 직장인의 삶을 보내는 중입니다.
몇 번 유료연재로 전자책을 냈지만, 개인적 창작 목적이 아니라 몸담은 회사의 목적에 기반한 출간이었고, [금강동인] 이훈영 작가와 공저도 있었습니다.
어떤 건 웹툰 출판을 위한 기획, 혹은 홍보가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4. 용어와 수정에 대해서.
오타나 문맥의 오류 지적에 대해선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수정하는 편입니다.
선협 용어의 차용 : 오래도록 문피아를 출입하지 않아, 유행한다는 선협 소재가 뭔지 모릅니다. 읽어본 적도 없구요. 기환무협 같은 건 걸까요?
제가 쓰는 용어는 꼬맹이 독서 시절부터 무협에서 관행적으로 쓰던 용어이며, 작가가 되고 나서 선배 작가로부터 습득한 것들입니다.
원래 무협에서 쓰던 용어인데 선협을 모방하냔 뉘앙스가 간혹 억울합니다.
5. 격랑을 누르는 검은 처음 쓰기도 전, 구상 단계에서부터 모든 계층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목표나 욕심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금의 주 독자층들과 공감대는 단절인 것 같으며, 나이도 많이 먹었으니까요.
특정 층이라도 알아봐 주시고 즐거울 만한 스토리와 어휘를 구사해 제가 알고 좋아하는 무협의 분위기를 그리는 게 작은 소망이자 목표였습니다.
간혹, 가치의 기준과 상황에 대한 인물들의 심리, 대처. 등에 대해서 불편하게 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옳습니다. 타당하고 논리적인 지적이십니다.
다만, 그 부분을 제가 받아들여 수정하진 않습니다.
지적하신 부분들은, 격랑을 누르는 검을 떠나 제가 '무협'을 쓰는 이유이며 작가로서의 기조이자 '무협 작가'로서의 즐거움과 자부심이 관련된 핵심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상 자세히 논하면 괜한 불쾌감을 일으킬 것 같아 여기까지만 이유를 설명드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6. 향후 계획.
올해는 연말 전까진 격랑을 누르는 검을 열심히 써야겠죠^^
새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격랑을 누르는 검 완결 후, 종천지애를 완결 짓도록 하겠습니다.
써놓은 분량을 제외하고 앞으로 써야 할 분량을 대략 예측해보면 1권, 요즘으로 치면 대략 25화 내외의 분량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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