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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의 행정보급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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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yHeaven
작품등록일 :
2019.04.0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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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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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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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장-종전의 불씨]

DUMMY

[48]


알펜의 명령에 따라 르토바군에 즉각 사자를 파견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기수가 말을 몰아 그들에게 서신을 전해주러 간지 4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답변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릴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빨리 돌아온 답변은 긴장하고 있었던 제국군을 더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돌아온 대답은 분명 이리나의 의도대로는 되었지만, 전체적인 결과론적으로는 그럴 뿐, 세세한 부분에서는 오히려 상황이 점차 불안하게 흘러갔다.

적어도 내일, 또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쿠르트는 지금 당장 레이번과 마주하기를 요구했다.

심지어 거기에 협상 장소를 두 진영의 사이가 아닌 자신들의 진영에서 실시할 것을 요구조건으로 내세웠고, 4시간 안에 사자를 보내지 않는다면 거부한 것으로 판단하겠다는 통보를 내려왔다.

이 사실을 접하자마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레이번은 자신이 뽑은 5명의 병사를 이끌고 협상을 위해 르토바의 진형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르토바의 진형.


"다들 눈빛이 장난 아니군요."


"자신들의 위세를 보이려는 수작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마."


지휘 막사로 향하는 길 곳곳에 서 있는 병사들의 모습은 사뭇 근엄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매로 자신들의 사령관에게로 향하는 사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르토바의 군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주듯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막사들을 지나며 한참 뒤에서야 지휘막사로 추정되는 거대한 천막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병사의 길이 끊어졌음에도 지휘 막사의 한참 뒤로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막사의 모습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정말로 이번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레이번은 그들의 위세를 개의치 않았다.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그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상태로 묵묵히 지휘막사 안으로 들어설 뿐이었다.

에이커를 제외한 남은 병력은 지휘막사 밖에서 대기하였고, 2명이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넓은 공간 속 끄트머리에 놓인 흡사 '옥좌'를 떠올릴 법한 자리에 앉은 검은 깃털 옷의 한 남자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지휘소에 서있는 그의 친위대들...한 눈에 보더라도 일반 병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백과 모습을 하고 있어서 잠깐이지만 레이번도 흠칫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 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검은 깃털 옷을 입은 남자였다.

중년과 노년의 사이에 걸친 듯한 외모, 그 속에 자리 잡은 강렬한 카리스마가 레이번과 에이커에게로 향해지자 두 사람은 순간 머릿속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결코 같은 '인간'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기운...처음으로 레이번에게 '공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려오고 눈동자가 흔들린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 보았지만, 본능은 결코 이성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포식자를 눈앞에 둔 먹잇감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대가 레이번 스페이드인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근엄함과 고고함이 섞인 목소리는 레이번을 부르고 있었고 곧 레이번은 그에게 예우를 갖추었다.


"르토바 왕국을 통합한 영웅이자, 정복왕이라 불리는 쿠르트 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레이번 스페이드, 운이 좋게도 위대한 칸의 책략을 꿰뚫어본 한낱 제국의 장교입니다."


레이번은 예우를 갖추면서도 동시에 애매한 위치로서 자신을 표현했다.

그에게 존경심을 가진 듯하면서도 그런 영웅조차 꿰뚫어 봤다는 듯 자신을 치켜세우지며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낮은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 이상한 대답...무엇하나 중점을 두지 않은 애매모호한 소개였다.

당연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그냥 막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최대한 예우를 갖추면서도 그의 심기와 자존심을 조금씩 긁어 내리기 위해 내뱉은 인사말이었다. 곧바로 그를 도발하며 산을 깎아내리듯 파내는 것이 아닌, 암벽의 돌을 깎아내리듯 세심하면서도 천천히 파고드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쿠르트 칸은 그런 레이번의 자기소개에 잠시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윽고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폭소한다.


"크하하하하 재밌는 친구로군. 벌써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야...두 사람은 이리 가까이 오라."


만족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하며 문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에게 다가오라며 손짓한다.

이윽고,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고 두 사람의 앞에는 테이블과 1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의자에 앉은 레이번, 에이커는 그를 보좌하듯 좌측 대각선에 서서 뒷짐을 진 채 상황을 지켜보듯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칸은 자신의 탁상 위에 놓인 찻잔을 들며 한 모금 들이켰고 동시에 그에게 권하듯 찻잔을 살짝 들어 보인다.

레이번의 눈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정체 모를 차가 담긴 잔이 놓여져 있었다.

이곳은 적진, 차 안에 독이 타져 있을 수도 있었지만, 레이번은 쿠르트를 그토록 비열한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거침없이 찻잔을 들어 들이켰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건가?"


"설마 르토바의 대 영웅께서 고작 제국의 장교 한 명을 죽이기 위해 그런 짓을 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자네는 장교인가 아첨꾼인가?"


"설마 이런 상황에서 당장 죽여달라는 것처럼 독설을 할 어리석은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근데 그런 것치고는 자네도 생각보다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군그래?"


"기분 탓이십니다."


언행에 신경을 쓰는 듯 하면서도 동시에 쓰지 않는 그의 언행에 쿠르트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다.


"단순히 우연으로 내 책략을 파악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이 맞았군, 자네에게서는 다른 녀석들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한 뭔가가 있어...내가 여태껏 수많은 사람을 보아왔지만, 자네와 같은 사람은 또 처음이군 그래."


"칭찬으로 여기면 되겠습니까?"


"칭찬? 암, 그렇고말고! 무려 르토바의 칸이 이렇게까지 말해준 건 흔치 않은 일이야. 자신을 좀 더 높게 평가해도 좋을 것이네!"


생각보다 칸의 성격은 화끈하면서도 시원시원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기백과 카리스마, 그리고 남을 찍어누르는 듯한 고고함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레이번은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칸의 속내를 아직 파악하지 못한 지금, 안심이라는 단어는 조금도 꺼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쿠르트 칸은 어디까지나 '적'임과 동시에 '유리한 위치'에 서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이곳이 그들의 진형이기에 저토록 호쾌할 수 있다는 것이 레이번의 생각이었다.

만약 저자 또한 요새에서 협상을 진행했다면 저토록 여유로울 수 있었을까? 그의 생각은 아니라고 봤다.


"솔직히 조금 놀랐네, 이토록 젊은 장교가 내 책략을 꿰뚫어보고 정면에서 막아선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렇게 내 눈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대체 무슨 생각과 계책을 가지고 있는 건가?"


역시나 쿠르트는 곧이어 언제 그랬냐는 듯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턱을 괸 채 레이번을 바라봤다.


"괜히 갑자기 내게 협상을 요청할만한 이유가 너희에게는 별로 없지.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아직 대군을 거느리고 있고 너희의 요새가 가진 최대의 장점은 이제 완전히 없어졌다는 점, 우리는 준비가 되었지만, 너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레이번은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지만 쿠르트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너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거다...자, 그럼 어디 한 번 들어볼까?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이번에는 나를 어떻게 놀라게 해주려고 하는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자네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자네들이 뭘 준비하려고 하는지 궁금해한다는 걸 말이야."


마치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말에 레이번은 잠시 입을 다문 채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섵불리 말을 꺼내봤자 좋은 것은 없었지만 동시에 침묵은 그에게 '긍정'의 의사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레이번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쿠르트는 재밌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생각에 잠긴 레이번을 바라봤다.

아무리 자신의 책략을 간파한 장교라고는 하지만 그는 새파랗게 젊은 장교였고 자신보다 실전 경험이 많을 턱도, 수많은 각양각색의 특징을 가진 사람을 마주해본 경험조차 적을 것이 분명했다.

레이번에게는 '경험'이 모자랐고 쿠르트는 그것을 재빠르게 파악해내어 오히려 레이번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실수였다.

상대는 다시 없을 르토바의 통일을 이끌어낸 당사자였는데 대비가 완벽하지 못했다.

고작 몇 번의 상황을 자신에게 맞춰서 끌어냈다고는 하지만 그도 모르게 조금씩 기고만장하고 있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상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이려 했던 상황은 순식간에 쿠르트의 페이스로 넘어가 있었고 이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그에게서 빈틈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냥 무리하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게 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소를 띈 그의 모습을 보면 그것도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내야만 했다...


"말문이 갑자기 막혔군, 생각할 시간 정도는 여유롭게 주도록 하겠..."


"이거...솔직히 긴장돼서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군요. 너무 정확히 꿰뚫어보고 계신데다가 솔직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뭐라 반박해야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르토바의 대영웅 답다고나 할까요?"


"말문이 막히니 다시 아첨인가?"


"그럴 리가요. 단지 그런 대영웅께서 제가 뭘 준비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시다는 점은 조금은 안도가 되는군요."


"뭐...?"


레이번은 방금까지 머릿속을 복잡하게 얽혀오던 그의 말을 빠르게 정리하며 비워버렸다.

잠깐동안 잊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테스트해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려 드는 것이 뻔한 일이었다.

잠깐동안 잊고 있었다...자신은 이곳에 협상 아닌 협상을 하러 온 것이지 그의 테스트에 응해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그의 페이스에 굳이 넘어가 줄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말이다.

쿠르트와 레이번은 분명 실전 경험 자체가 두 사람 사이에 큰 벽을 만들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쿠르트는 레이번 따위가 감히 비빌 수도 없는 남자였지만 오히려 그 벽 덕분에 레이번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패배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할 정도의 완벽함...그것이 지금은 쿠르트에게 크나큰 독이 되어서 돌아갈 것이다.


"분명 칸께서는 대단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계시니까요. 그런데 참 궁금하군요...그걸 아시는 분이 굳이 왜 저의 협상에 응하셨는지요."


"재밌군...지금 당장 총공격을 내려주기라도 바라는가?"


"그럴리가요. 그렇게 되면 승패가 누구에게 갈리는지 정도는 칸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말투는 흡사 너희가 당연히 승리를 쟁취할 것처럼 들리는군."


"맞습니다."


순간 쿠르트의 눈살이 움찔거린다.

이를 놓칠 레이번이 아니었다.


"저는 그 위대하신 칸의 책략을 꿰뚫어본 남자입니다. 당연히 총공격이 올 것이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당연히 시체로 막힌 수로는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국군이 겨우 성벽 따위에 의존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까?"


"그럼 또 다른 방비를 해뒀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개소리."


쿠르트는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레이번에게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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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4장-종전과 영웅의 탄생] +2 19.05.09 513 12 10쪽
55 [4장-종전과 영웅의 탄생] +1 19.05.08 516 12 10쪽
54 [4장-종전과 영웅의 탄생] 19.05.08 544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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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3장-종전의 불씨] 19.05.07 53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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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3장-종전의 불씨] 19.05.06 546 13 11쪽
» [3장-종전의 불씨] 19.05.05 572 11 12쪽
48 [3장-종전의 불씨] +2 19.05.05 591 13 12쪽
47 [3장-종전의 불씨] 19.05.04 621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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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3장-종전의 불씨] 19.05.03 668 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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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3장-종전의 불씨] 19.05.02 658 14 7쪽
41 [3장-종전의 불씨] +1 19.05.01 707 14 7쪽
40 [3장-종전의 불씨] 19.05.01 660 14 7쪽
39 [3장-종전의 불씨] 19.04.30 676 17 7쪽
38 [3장-종전의 불씨] 19.04.30 671 16 7쪽
37 [3장-종전의 불씨] +2 19.04.29 699 15 7쪽
36 [3장-종전의 불씨] 19.04.29 717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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