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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님의 서재입니다.

이도의 검, 꽃잎에 지는 눈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술뫼도사
그림/삽화
조성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6
최근연재일 :
2022.08.04 10:22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7,605
추천수 :
244
글자수 :
534,364

작성
22.07.1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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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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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90화. 한명회의 절규(2)

DUMMY

90화. 한명회의 절규(2)


“빈궁마마. 전복죽이옵니다. 어서 드시고 기운을 차리세요.”


동궁전 나인들이 아침상을 들고 들어왔다.


상당부원군 한명회와 정경부인 민씨도 세자빈과 함께 밥상을 받았다.


“빈궁마마. 어서 한 술 드세요. 그래야 이 아비도 먹을 게 아닙니까?”

“그래요. 빈궁께서 먼저 드셔야 이 어미도 먹습니다.”


부모의 채근에 세자빈 한씨는 나인들의 부축을 받아 힘들게 밥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힘겹게 숟가락을 들어 죽을 떴다.


“악!”


갑자기 뭔가에 떠밀리듯 세자빈이 뒤로 나뒹굴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놀라 말문이 막혔다.


둥실. 둥실.


이번에는 한명회의 밥상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놀란 한명회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웬 놈이냐? 귀신이든 사람이든 썩 물러가거라!”


이내 정신을 차린 한명회가 허공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미 여진족의 악령 라불을 자주 접했던 한명회는 장난을 치는 영혼을 향해 고함을 쳤다.


“네 이놈! 이분이 누구인 줄 아느냐? 어디서 감히 잡귀 주제에 함부로 장난을 치느냐?”


와당탕!


한명회의 고함에 허공에 떠 있던 밥상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꺄아악!”


놀란 나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 요망한 놈! 어서 물러나거라!”


한명회는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윽! 이, 이놈! 당장 내려오지 못할까?”


목청을 높이던 한명회는 뭔가 묵직한 것이 어깨를 짓누르자 비틀거렸다.


“요망한 것!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난 것이냐?”


갑자기 나타난 국사당 신녀가 주저앉아있는 한명회를 향해 부적을 날렸다.


퍼엉!


크아아아악!


부적이 부딪히자 불꽃이 일며 허공에서 비명이 들렸다.


“아, 아니! 신녀께서 어떻게?”

“악령의 기운을 쫓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이다.”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명회를 향해 국사당 신녀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여진족의 악령이 이곳저곳에 귀문을 열어놓았소. 방금 전에 나타난 귀신은 집에 들러붙어 저주를 내리는 놈이요. 겪어보셨다시피 온갖 해괴한 장난으로 사람을 괴롭히지요.”

“물리칠 방법은 없소?”

“저놈은 역모를 꾸미다 목이 잘려 죽은 악귀요. 나도 쫓아내기 힘드니 어서 이 집을 떠나시오!”

“아, 이런!”


한명회가 낙담하여 한숨을 내쉴 때였다.


“마마! 빈궁마마!”

“마마! 정신 차리세요!”


빈궁 한씨가 귀신의 출몰에 다시 혼절하자 놀란 나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


“아! 제발 무탈해야 할 텐데······.”


왕은 세자빈이 피접을 나간 후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의경세자가 죽은 것이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이라는 자책에 시달려 왔는데, 또다시 세자빈마저 시름시름 앓고 있으니, 이 또한 업보란 생각이 들었다.


“아바마마! 무사히 돌아올 것이니, 그만 수라를 저수시옵소서.”

“그래요. 전하께서 드셔야 세자도 들지 않습니까. 내키지 않으셔도 드셔야 합니다.”

“알겠소.”


왕은 세자와 중전의 채근에 숟가락을 들었다. 치통이 심한 왕이었기에 수라상은 주로 죽이나 묵 같은 무른 음식으로 차려졌다.


“음식이 부드러우니 좋구나.”


왕의 칭찬에 상궁 나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전하! 전하!”


급히 달려온 도승지의 창백한 모습에 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하! 빈궁마마께서··· 빈궁마마께서······ 흑흑흑!”


뎅그랑!


왕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중전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였고, 세자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끄으으으. 기어이 그리되었구나.”


새끼를 잃은 어미 개처럼 왕은 고통스럽게 신음하였다.


*****


“빈궁마마!”

“빈궁마마! 흑흑흑!”


임시로 마련한 빈청에는 정경부인 민씨와 동궁의 상궁 나인들이 엎드려 통곡을 하고 있었다.

한명회는 빈청 벽에 몸을 기대고 넋 나간 사람처럼 온몸이 늘어져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던 천하의 한명회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한낱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신라의 김춘추가 딸 고타소랑의 죽음에 온종일 성벽에 기대어 망연자실하였던 것처럼 계유정란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인 한명회가 절망의 수렁에 빠진 것이었다.


‘이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천하의 한명회가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한명회가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내겐 원자가 있다. 아직 내 딸이 남긴 원손이 있다!’


권력에 대한 집착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한명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곧추세우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시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이건 분명 라불 그 악령이 잡귀들을 조종하여 생긴 일이다! 내 이놈을 반드시 소멸시키고야 말리라!’


한때의 동지였던 한명회와 여진족의 추장 라불은 이제는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었다.


‘놈으로부터 원손과 자식들을 지켜야 한다!’


한명회는 이를 악물었다.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


“천벌을 받은 게야, 천벌을!”

“그건 그려. 의경세자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는 한명회의 딸이 죽는가?”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했으니, 제 놈들도 당해봐야 그 심정을 알지.”

“쉿! 조용히들 하시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어둑어둑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산자락의 주막에서 장돌뱅이들이 술에 취해 언성을 높이자 놀란 주모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참, 이 시간에 우리 말고 누가 있다고 그러시오?”

“거, 주모는 쓸데없이 걱정 말고 술이나 더 가져오시오.”

“아, 네!”


주모는 불안한 낯빛으로 돌아서 부엌으로 향하였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주모, 무슨 일인데 그래?”


갑작스러운 주모의 비명에 술을 마시던 사내들이 술잔을 놓고 돌아보았다.


캐애애액!


사립문 가에 묶어 놓은 당나귀가 놀라 난동을 부렸다.


“으아아악!”

“귀, 귀신이다!”


주막 입구에는 사람보다 몇 배나 되는 키의 괴물체가 삿갓을 쓰고 서 있었다.

두 눈은 횃불처럼 활활 타올랐고 주변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모, 목여거다!”


사내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정신 차려! 저놈은 똑바로 쳐다보면 해코지를 하지 않아.”

오랫동안 상단을 이끌고 다니던 나이 많은 장돌뱅이가 소리쳤다.


“이, 이놈! 썩 물럿거라!”


장돌뱅이들을 이끄는 허 생원이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그러자 목여거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서서히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휴, 경상도에서도 본 적이 있었는데, 저놈을 또 만날 줄이야.”


허 생원은 목에 건 수건을 꺼내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았다.


*****


“세자가 너무 안 됐어요.”

“그러게요. 어리신 나이에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빈궁께서 저리 가시다니······.”


김민은 눈물을 그렁거리는 아람을 가볍게 안고 등을 다독거렸다.

그러면서도 한명회의 속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를 죽이고 사촌 형제들을 노비로 만든 불구대천의 원수, 그런 그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였다.

김민이 한명회에게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람 때문이었다.

지켜야 할 소중한 가족이 생겼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명회와 계유정란에 가담했던 자들을 응징하는 것은 가능하였지만, 그렇게 되면 아람과의 관계가 파국을 맞을 것이기에 참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이제 어여쁜 딸 보니마저 태어났으니, 김민으로서는 가족을 위하여 복수의 칼날을 내려 놓은 것이었다.


“악령이 또 나타난 걸까요?”

“그런 것 같소. 피접 장소에 나타난 기이한 반딧불이나 상당군을 공격한 기이한 존재는 분명 여진족 악령이 조종해서 나타난 것일 게요.”

“그럼 또다시 궁에 나타나 아바마마와 세자를 공격하지 않을까요?”


아람이 몸을 떼며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요. 궁에는 함부로 나타나지 못할 거요. 법석 이후로 내관과 궁녀들에게 일섭스님께서 금광명경을 가르치지 않았소.”

“하긴, 대전은 물론 중궁전과 동궁전 나인들이 밤마다 금광명경을 낭독하고 있으니 함부로 범접하지는 못할 겁니다. 모든 게 다 세종 할아버님 덕분입니다.”

“그래요. 대왕께서 누구나 편히 익힐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드신 덕분이지요. 또 어려운 금광명경을 쉽게 번역한 공주의 공이기도 하지요. 하하하!”


김민과 아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람은 일섭스님이 구술하는 금광명경을 훈민정음으로 받아 적었고, 이를 예문관의 학사들이 다시 필사하여 궁궐의 내관과 상궁 나인들에게 나눠주었던 것이었다.


*****


“아아아악!”

“아아악!”


방안에서 비명이 들려올 때마다 현민과 조준희는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벌써 세 식경이 되도록 홍랑은 출산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들어가서 상투라도 잡혀야 맘이 편하겠습니다.”

“아니, 저! 저!”


권현민은 장인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객주집 안주인의 도움을 받으며 홍랑이 지친 몸으로 연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여보! 내 상투를 잡고 힘을 줘보시오.”


현민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홍랑에게 머리를 디밀었다.


“으아아악!”

“아아아아악!”


“어휴, 이놈아! 어미 고생 그만 시키고 제발 좀 나오너라!”


조준희는 딸의 비명에 안절부절하여 온 마당을 휘젓고 다녔다.


멍멍멍! 멍멍멍!


지켜보던 황구가 어지러운지 시끄럽게 짖어댔다.

그때였다.


“응애! 응애!”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털썩!


아이의 울음소리에 긴장이 풀린 조준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내예요! 사내아이에요!”


객주의 안주인이 문을 열고 나오며 환하게 웃었다.


“사, 산모는 어떻소?”

“무사합니다. 며칠 조리를 하면 괜찮아질 것이니 걱정 마세요.”

“고맙소, 봉평댁!”


조준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어요. 난 집에 가서 끓여놓은 미역국을 가져올 테니.”


봉평댁은 멀뚱히 서 있는 남편에게 불을 지필 것을 이르고는 잰걸음으로 객주를 향해 달려갔다.


“여보, 고생 많았소.”


현민은 아이를 낳느라 지쳐있는 어린 아내를 측은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홍랑은 힘없이 미소 지었다.

자신이 잡아당긴 현민의 머리카락이 산발한 여인처럼 온통 흐트러져 있었다.


“어서 기운을 차리구려. 이제 이 아이와 이곳에서 알콩달콩 잘 살아봅시다.”


현민은 강보에 싸인 아이와 홍랑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


인왕산의 산그리메가 경복궁 처마를 덮기 시작할 무렵이면 궁중 곳곳에서 불경소리가 들려왔다. 법석에서 여진족의 악령을 물리쳤던 금광명경이었다.


“이거야 원, 성리학의 나라에서 불경이라니?”

“어쩌겠나? 주상전하와 세자저하를 지키기 위한 일인 것을······.”


숙직을 서는 관리들은 들려오는 불경 소리가 탐탁지 않았다.


“아가야. 오늘도 아바마마는 널 보러 오지 않는구나.”


왕의 후궁이었다가 내관을 사랑한 죄로 나인으로 강등된 박덕중이 어린 아들 아지의 손을 잡고 일렁이는 횃불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참나, 자기가 아직도 소용인 줄 아나? 전하께서 발을 끊으신 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으면 이제 주제 파악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얘, 말조심 해!”

“왜, 내가 틀린 말 했니? 나인으로 강등되었으면 일을 해야할 거 아니니? 허구한 날 아기씨만 끼고 빈둥거리니까 우리가 할 일이 더 많잖아.”


창덕궁의 나인들이 멀찍이서 박덕중을 보며 구시렁거렸다.


“큭큭큭큭! 저 아이도 왕의 씨앗이란 말이지?”


담장 그늘에서 누군가가 박덕중의 아들 아지를 훔쳐보며 중얼거렸다.


웅웅웅웅웅.


이도의 검이 울었다.


* 자료협조- 사단법인 대한한글검협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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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97화. 궁에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22.08.04 90 0 12쪽
96 96화. 두억시니 22.07.25 84 0 12쪽
95 95화. 업보 22.07.23 64 0 13쪽
94 94화. 이매망량(魑魅魍魎) 22.07.19 58 0 13쪽
93 93화. 라불의 아이 22.07.19 92 0 12쪽
92 92화. 아람의 위기 22.07.18 64 0 12쪽
91 91화. 대장장이 딸의 소망 22.07.17 56 0 13쪽
» 90화. 한명회의 절규(2) +2 22.07.16 83 1 12쪽
89 89화. 한명회의 절규(1) 22.07.15 71 0 12쪽
88 88화. 지옥문이 열리다! 22.07.13 65 0 12쪽
87 87화. 라불의 분노 22.07.12 82 0 12쪽
86 86화. 경진북정(庚辰北征) 22.07.11 66 0 12쪽
85 85화. 남이와 유자광 22.07.10 70 1 12쪽
84 84화. 야인정벌 +2 22.07.09 67 1 12쪽
83 83화. 수호령 22.07.08 62 1 12쪽
82 82화. 고군분투(孤軍奮鬪) 22.07.07 67 1 12쪽
81 81화. 두각(頭角)을 드러내다! 22.07.06 48 1 12쪽
80 80화. 국경의 메아리 22.07.05 73 1 12쪽
79 79화. 피어오르는 봉화 22.07.04 72 1 12쪽
78 78화. 감도는 전운(2) 22.07.03 70 1 12쪽
77 77화. 감도는 전운(1) 22.07.01 66 1 12쪽
76 76. 괴짜 천재 김시습 22.06.30 65 1 12쪽
75 75화. 구미호와 자작나무 +2 22.06.28 64 2 12쪽
74 74화. 지박령(地縛靈) 22.06.27 71 1 12쪽
73 73화. 만월대도 추초로다! 22.06.26 77 1 12쪽
72 72화. 어둑시니 22.06.25 75 1 12쪽
71 71화. 남이 +2 22.06.24 74 2 12쪽
70 70화. 발톱을 드러내다! +2 22.06.23 64 2 12쪽
69 69화. 야단법석(野壇法席) 22.06.22 5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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