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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님의 서재입니다.

이도의 검, 꽃잎에 지는 눈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술뫼도사
그림/삽화
조성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6
최근연재일 :
2022.08.04 10:22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7,604
추천수 :
244
글자수 :
534,364

작성
22.07.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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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88화. 지옥문이 열리다!

DUMMY

88화. 지옥문이 열리다!


신숙주가 모련위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귀환하였다. 추장급과 일반 여진족 500여 명을 죽이거나 포로로 끌고 왔고, 9백여 채의 여진 가옥을 불태웠다.

무엇보다도 여진족들의 세력 규합을 막았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귀성군 이준과 의산군 남이, 서얼 출신의 유자광이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며 역사의 전면에 나섰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이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오! 귀성군! 이번에 활약을 들었다. 아직 모련위의 추장이 살아있으니 조만간 다시 가서 저들을 쓸어버리고 오라!”

“네. 전하! 그리하겠나이다.”


귀성군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흡족해진 왕은 다시 남이를 돌아보았다.


“이번에 아우의 활로 쓰러트린 여진족의 추장이 수십은 된다지? 이 모습을 태조대왕께서 보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꼬? 조선 최고의 궁사는 이제 남이니라 하시며 크게 기뻐하셨을 게야. 하하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왕은 들떠 말이 길어졌다. 다시 왕이 시선이 유자광으로 향하였다,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소인 유자광이라 하옵니다!”

“그래. 유자광! 네가 이번 싸움에서 으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들었다. 그래 지금 네 직책이 무엇이냐?”

“소인 경춘문 문지기를 맏고 있사옵니다!”

“뭐라, 경춘문 문지기? 푸하하하하!”


왕은 유자광의 말을 듣고 박장대소를 하였다.


“이번 여진 정벌에 최선봉에서 가장 많은 적을 베었다고 들었다. 그런 네가 겨우 성문지기나 해서야 되겠느냐?”

좌중의 모든 사람이 긴장하고 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넌 오늘부터 과인을 지키는 겸사복이 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유자광은 파격적인 어명에 놀라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좌중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였다. 서얼 출신의 일개 갑사를 하루아침에 임금을 곁에서 호위하는 겸사복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하!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천한 자에게 겸사복이라뇨?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남이와 이준이 극구 반대하였다. 유자광으로서는 배신감을 느꼈다. 전장에서 같이 피를 흘렸음에도 오히려 자신의 출신 성분을 빌미로 왕명에 반대하는 남이와 이준이 죽이도록 싫었다.


‘이놈들! 내 언제고 네놈들을 씹어 삼키고야 말겠다!’


유자광은 이를 악물었다.


“남이와 이준은 들으라! 과거에도 무예가 뛰어난 자는 천민이든 여진족이든 겸사복에 임명한 적이 종종 있었다. 하니, 더 이상 짐의 명에 반대하지 말라!”

“네. 전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왕의 확고한 의지에 결국 의산군 남이와 귀성군 이준은 고개를 숙였다.


“어험!”


옷이 날개라던가? 겸사복 옷으로 갈아입고 어깨에는 환도를 찬 채 오른손에 언월도를 든 유자광은 더 이상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아니었다. 왕을 지키는 최고의 무사였다.


“어험! 잘들 계시었소?”

“아니, 이게 누군가? 유자광이 아닌가?”

“이번 야인정벌에 크게 활약을 했다고 하더니, 이젠 딴사람이 되었네 그려.”


건춘문을 지키고 섰던 문지기들은 유자광이 나타나자 놀라워했다.


“유자광이 뭔가? 이젠 겸사복 나리일세.”

“그렇지. 이젠 겸사복 나리시지. 나리! 경하드립니다!”

“고맙소! 그럼 수고들 하시오! 어험!”


건춘문의 갑사들은 유자광에게 고개를 숙였다.

얼마 후 왕은 야인정벌에 공을 세운 장수들을 거느리고 함길도 일대를 순행하였다,


“장수들은 이곳을 확고히 지켜 더 이상 야인들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하라!”

“네. 전하!”

“특히 모련위의 잔당과 건주위가 연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날이 풀리면 건주위를 정벌할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기하라!”


왕은 삼수갑산의 고원 위에서 백두산을 바라보았다.

함길도의 가을바람은 차가웠다.


휘이이이이잉.


*****


“와! 아버님! 너무 예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나무이옵니까?”


세자빈 한씨는 한명회가 가노를 시켜 갖고 들어온 나무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잎이 대나무를 닮았다 하여 남천죽이라고도 하는 남천나무입니다. 추위에 약해 집안에만 두었는데, 이렇게 예쁘게 열매가 달렸네요. 허허허!”

“이런 나무가 있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잎과 열매가 너무 예쁘옵니다.”


빨갛게 단풍이 든 남천나무의 잎과 탐스럽게 열려있는 열매를 보며 세자와 빈궁이 좋아하였다. 점점 수척해져가는 딸이 걱정이 된 상당부원군 한명회는 남천나무를 동궁의 침전에 들여놓았다.


“그나저나 모든 관직을 내려놓으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네. 저하! 당분간은 쉬면서 빈궁마마가 무탈하게 원자 아기시를 생산하시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옵니다.”


한명회는 열 한 살 어린 세자의 말에 빙긋이 웃었다.

빈궁에게 수시로 불경을 읽게 하고 악귀를 쫓는다는 남천나무를 동궁에 들인 것은 혹시 모를 재앙을 막기 위한 한명회의 고육지책이었다.


가을이 깊어지자 아람의 배도 점점 부풀어 올랐다.


“생각시들에게 훈민정음도 가르쳐야 하고 서방님과 문자검 교본도 만들어야 하는데, 배가 불러 못하니 답답합니다.”

“어허! 그런 말씀 마시오. 무엇보다도 건강한 아기시를 낳으시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겠지요.”


아람은 두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수줍게 웃었다.


*****


“장인! 아무래도 다시 한양으로 가야 할 것 같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현민의 갑작스러운 말에 화롯불을 뒤척이던 조준희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보시다시피 산달이 다가오는데, 이곳은 너무 춥습니다. 더구나 여진족들이 언제 또 쳐들어올지도 모르고요.”

“흠. 나도 그 생각을 했네만, 절제사가 쉽게 보내주겠나?”


사위의 말에 조준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경흥진 절제사 이시애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는 입장에서 이곳을 떠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안 봐도 뻔한 상황이었다.


“방법이 있어요.”

“뭐?”

“토끼요.”

“뜬금없이 토끼라니?”


홍랑의 말에 조준희와 현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토끼의 간이요.”

“토끼의 간이라니? 점점 모를 소리를 하는구나.”

“아하! 저는 알 것 같습니다. 하하하!”


홍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껌뻑거리는 조준희와 달리 현민은 아내의 말을 이해하고 박수를 쳤다.

다음날, 경흥진 절제사 이시애로부터 흔쾌히 허락을 받은 조준희 일가는 남쪽으로 말을 달렸다.


이랴! 이랴!


말발굽이 지나간 자리에 나풀나풀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첫눈이었다.


*****


궁궐 전각 위에도 함박눈이 쌓였다.


“내 오늘 같은 날 경들과 한 잔 하지 않으면 누구와 하겠소? 하하하!”


왕은 신임 우의정인 구치관과 마침내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영의정에 오른 신숙주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하! 미리 경하드리옵니다. 빈궁마마와 공주마마의 해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요?”

“소신도 미리 감축드리옵니다. 두 분 모두 건강한 아기시를 순산하실 것이옵니다.”

“하하하! 이거 또 손자들이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자, 그런 의미에서 미리 축하주를 듭시다!”


왕은 두 정승의 축하 인사에 한껏 고무되었다.


“자, 이제 과인이 경들에게 질문을 할 테니, 경들은 바른 대답을 해야 하오. 만약 잘못 답하면 벌주를 마셔야 하오. 하하하!”

“하문하시옵소서!”


구치관과 신숙주가 흔쾌히 대답을 하자 왕은 빙긋이 웃더니 나지막이 누군가를 불렀다.


“신 정승!”

“네. 전하!”


신씨 성의 신숙주가 대답하였다.


“하하하! 틀렸소! 틀렸어! 나는 새로 정승이 된 신(新) 정승을 부른 것이지, 신(申) 정승을 부른 게 아니오. 틀렸으니 영상은 벌주를 드시오.”

“네. 전하!”


신숙주(申叔舟)가 벌주를 마셨다.


“구 정승!”

“네. 전하!”


미소를 지으며 왕이 구 정승을 불렀다.

이에 구씨 성의 구치관이 대답하였다.


“하하하! 또 틀렸소! 과인은 옛 정승인 구(舊) 정승을 부른 것이지, 구(具) 정승을 부

른게 아니오. 틀렸으니 우상은 벌주를 드시오.”

“그런 것이옵니까? 또 꼼짝없이 속았사옵니다. 하하하!“


이번에는 우의정 구치관(具致寬) 벌주를 마셨다.


”신 정승!“

”네. 전하!“

“네. 전하!”


왕의 질문에 신임 정승 구치관과 신씨 성의 신숙주가 동시에 대답하였다.


“하하하하! 이번에는 신(申) 정승을 부른 것이니, 구 정승이 벌주를 마시시오!”

“네. 전하!”


원래 격식을 좋아하지 않던 파탈의 왕은 새벽닭이 울 때까지 신하들과 술을 마셨다.


*****


흑흑흑!

흑흑흑흑흑!


“거기 누구요?”


궁을 순찰하던 내금위 갑사는 커다란 나무에서 누군가 곡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창을 앞으로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울음소리는 회화나무에서 나고 있었다.


“으아악!”

“헉! 나무가 울다니, 이게 무슨 변고람?”


나무에서 나오는 곡소리에 놀란 내금위 갑사들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컹컹컹!

컹컹컹컹!


“엥? 웬 개가 궁에 들어왔지?”


동궁전 주변을 순찰하던 익위사 갑사들은 커다란 개가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짖어대자 횃불을 치켜들고 앞으로 다가갔다.


“이놈! 썩 나가거라!”


익위사 군사의 외침에 커다란 개가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뭐야? 개야? 사슴이야?”


며칠 동안 궁궐 안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하자 궁인들은 심란하였다.


“마마님! 마마님! 저기 보세요!”

“아니, 저건?”


아람은 별궁 나인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백여우였다. 하얀 은백색의 여우 한 마리가 아홉 개의 꼬리를 휘날리며 유유히 창덕궁 후원을 거닐고 있었다.


“놀라지 마시오. 저 여우는 공주와 아기시를 지키기 위해 온 거니까요.”

“네에? 그게 무슨······.”


아람은 김민의 말에 까만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궁궐 안의 회화나무가 곡을 하고 사슴을 닮은 개가 나타났다? 그도 모자라 백여우가 후원을 활보하였다?”


국사당 신녀는 동궁을 지키고 아침에 신당으로 돌아온 일섭스님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을 해하기 위해 나타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조화인가?”

“흰여우와 사슴을 닮은 개가 궁궐에 나타나고 회화나무가 곡을 했다는 기록이 있긴 합니다.

그 동물들은 모두 백제 궁에 나타났었는데,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백제는 당나라와 신라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지요.”

“뭐야? 그럼 이 나라 조선이 망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사천왕을 닮은 일섭스님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


“서방님. 지옥문이 열렸다는 언니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네요. 북쪽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뒤섞여 전쟁을 벌인다고 했는데, 이미 여진족의 준동으로 증명이 되었지요.”

“음··· 그러니까 남쪽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조만간 무슨 일이 일어날 겁니다.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올 것입니다.”


김민은 사람으로 변한 백여우의 말에 온몸이 경직되었다.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시간 나실 때 건춘문 밖 청사초롱에 오셔서 황진이를 찾아주세요.”


기녀 한우는 밝게 웃더니 어느 순간 숲사이로 사라졌다.


“지옥문이 열렸다고? 지옥문이?”


얼마 후면 아이 아빠가 될 생각에 들떠 있던 김민은 여우의 말에 온몸에 찬물을 끼얹은 듯 소름이 돋았다.


* 백여우, 곡(哭)하는 회화나무, 사슴을 닮은 개 등의 자료는

곽재식의 옛날이야기 밭: 괴물백과 http://oldstory.postype.com에서 발췌하였음.

* 자료협조- 사단법인 대한한글검협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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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97화. 궁에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22.08.04 90 0 12쪽
96 96화. 두억시니 22.07.25 84 0 12쪽
95 95화. 업보 22.07.23 64 0 13쪽
94 94화. 이매망량(魑魅魍魎) 22.07.19 58 0 13쪽
93 93화. 라불의 아이 22.07.19 92 0 12쪽
92 92화. 아람의 위기 22.07.18 64 0 12쪽
91 91화. 대장장이 딸의 소망 22.07.17 56 0 13쪽
90 90화. 한명회의 절규(2) +2 22.07.16 82 1 12쪽
89 89화. 한명회의 절규(1) 22.07.15 71 0 12쪽
» 88화. 지옥문이 열리다! 22.07.13 65 0 12쪽
87 87화. 라불의 분노 22.07.12 82 0 12쪽
86 86화. 경진북정(庚辰北征) 22.07.11 66 0 12쪽
85 85화. 남이와 유자광 22.07.10 70 1 12쪽
84 84화. 야인정벌 +2 22.07.09 67 1 12쪽
83 83화. 수호령 22.07.08 62 1 12쪽
82 82화. 고군분투(孤軍奮鬪) 22.07.07 67 1 12쪽
81 81화. 두각(頭角)을 드러내다! 22.07.06 48 1 12쪽
80 80화. 국경의 메아리 22.07.05 73 1 12쪽
79 79화. 피어오르는 봉화 22.07.04 72 1 12쪽
78 78화. 감도는 전운(2) 22.07.03 70 1 12쪽
77 77화. 감도는 전운(1) 22.07.01 66 1 12쪽
76 76. 괴짜 천재 김시습 22.06.30 65 1 12쪽
75 75화. 구미호와 자작나무 +2 22.06.28 64 2 12쪽
74 74화. 지박령(地縛靈) 22.06.27 71 1 12쪽
73 73화. 만월대도 추초로다! 22.06.26 77 1 12쪽
72 72화. 어둑시니 22.06.25 75 1 12쪽
71 71화. 남이 +2 22.06.24 74 2 12쪽
70 70화. 발톱을 드러내다! +2 22.06.23 64 2 12쪽
69 69화. 야단법석(野壇法席) 22.06.22 5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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