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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캐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을 끝내겠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도캐
작품등록일 :
2023.12.04 23:48
최근연재일 :
2023.12.06 06:00
연재수 :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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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8,616

작성
23.12.0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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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

DUMMY

내가 아르달에 전생한 지 18년이 지났을 무렵.

지구인들은 시스템이라는 능력을 갖고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되어 아르달에 전이했다.

처음에는 반갑기만 했다. 같은 고향에서 온 동지라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전생’한 나와 ‘전이’한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아르달인이자 지구인인 나와 달리, 플레이어들은 아르달에 어떤 애착도 없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달인과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갈등이 일어났다. 당연한 일이다.

가치관도 사상도 다른데 다툼없이 사이좋게 지낼 수가 있겠는가.


나는 그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한 채 방관하기만 했다. 시간만이 갈등을 해결해 주길 바라면서.

그 멍청한 방관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푸헉.”


입에서 피가 한움큼 쏟아졌다. 의식이 아득해지며 전신의 감각이 멀어져갔다.


‘아, 여기서 죽겠구나.’


내 무덤이 여기가 되겠다는 확신이 든다.

여지껏 죽을 고비는 수없이 넘겨왔는데도, 이 정도로 확실하게 죽겠다는 예감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후우, 겨우 뒤졌네. 플레이어도 아닌 새끼가 대체 왜 이렇게 쎈 거야? 야, 몇이나 죽었어?”

“오십은 죽은 것 같습니다. 정신 오락가락 하는 놈들까지 합하면 백은 되고요. 그 외에 사지 하나가 잘려서 불구된 놈들도 수두룩 합니다.”

“쯧, 조금 있으면 제국 놈들이랑 전쟁인데 우리 길드 전력 손실이 너무 큰 걸. 씨발, 이런 원주민 새끼한테!”


퍽!


놈은 제 화를 참지 못하고, 피 웅덩이에 쓰러져 있는 내 배에 발길질을 했다.

통각조차 마비된 나는 신음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했다.


“후우, 됐으니까, 상황 정리한 다음에 당장 전령 보내. 이 지긋지긋한 새끼 뒤졌다는 거 알면 연합 간부님들도 기뻐할 거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그 유명한 에든벨의 망령도 다굴에는 장사가 없네요.”

“그놈의 에든벨. 빌어 처먹을 에든벨 얘기는 꺼내지도 마.”

“아, 죄송합니다.”

“진짜 미친 놈이라니까. 복수하고 싶으면 에든벨 관련자만 죽이면 됐지. 왜 상관없는 우리한테까지 지랄이냐고.”

“아르달인이 다 그렇죠 뭐. 플레이어들을 싸잡아서 증오하는 거 아니겠어요?”


······복수. 복수라.


그래, 나는 여전히 복수에 미쳐있다.


하지만 나는 에든벨과 관련없는 다른 플레이어들까지 증오하진 않는다.

아르달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도, 결국 내 본질은 지구인이니까.


다만 나는 지구인이자 아르달인으로서, 두 집단이 서로 죽여대는 꼴을 멈추고 싶었을 뿐이었다. 설령 내 손에 수많은 피를 묻히게 되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나는 플레이어만 죽이지 않았다. 방해된다면 아르달인도 죽였다.


싸움을 멈추겠다면서 폭력을 쓰는 게 모순적인가?

웃기는 소리.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결과가 에든벨이었다.


에든벨, 우리 가문의 영지. 풍요로운 땅은 아니었으나 평화로웠던.


그 모든 게 불타던 날, 나는 맹세했다.

반드시 이 무의미한 살육을 막겠다고.


‘······하지만, 너무 늦은 맹세였지.’


갈 때까지 간 갈등은 대화로 풀지 못할 만큼 극심했고, 무력으로 분쟁을 끝내기엔 플레이어들은 너무 강해져 있었다.

늦게 움직이기 시작한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으으으.”


그래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지금의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남아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할 일을 만들고 죽을 수는 없다.

나는 전신에 힘을 쥐어짜며 일어났다.


“어! 대장! 저 새끼 일어났어요!”

“뭐? 이 미친놈,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안 뒤졌단 말이야? 제발 좀 뒤져라 이 새끼야!”


내가 일어선 걸 본 놈은 기겁하더니 검에서 무형의 기운을 생성했다. 무엇인지는 단박에 알았다.


플레이어가 레어 등급 이상의 검사 계열 직업을 가졌다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검기.


‘하.’


저절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볼 때마다 어이가 없다. 고작 레어 주제에, 검기의 경지라니.

어려서 영재 소리를 듣고 자란 나도 검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5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놈은 플레이어란 이유로 마수 몇 마리 잡고 검기를 만들 수 있는 거냐고!’


레어도 저 정돈데 더 상위의 에픽과 유니크 등급이 얼마나 강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나는 상위 등급 플레이어에게 대적하지 못했다.


내가 에든벨의 망령이니 뭐니 불려도 결국 약한 놈들이나 두려워하는 별명이었던 거다.

진짜 강한 놈들은 나를 그냥 귀찮은 존재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우습군.’


나도 내가 우스운데 연합 간부들은 얼마나 우스웠을까.

미개한 원주민의 무의미한 발악쯤으로 여겼으려나?


“으랴아!!”


한동안 날 노려보던 놈은 기습적으로 검기를 내려찍었다.

일어선 것만으로 다리가 후들거리는 나는 간신히 몸만 비트는 게 고작이었다.


서걱!


머리가 쪼개지는 건 피했지만, 검의 궤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비켜나간 검은 내 왼쪽 어깨 위로 떨어졌다. 어깨죽지 밑으로 잘려나간 왼팔은 절단면에서 피를 쏟으며 저 멀리 날아갔다.


“하! 뭐야, 제대로 피할 힘도 없는 거냐?”


놈은 내 얼굴을 보며 비웃었다.

딱히 배알이 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죽을 놈한테 화를 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딸깍.


‘잘 가라.’


나는 마음 속으로 놈을 비웃어주며, 남아있는 오른팔로 품속의 트리거를 작동했다.


“뭐?”


내가 무슨 발악을 하나 지켜보던 놈의 눈이 단숨에 커졌다.


예상 외로 눈치가 빠른 놈이었다. 갑옷에서 새어 나오는 빛만 보고 상황을 이해하다니.


“페어링 길드의 마나폭탄이잖아! 이걸 둘러메고 쳐들어왔었다고?”

“네에엑?! 뭐라고요?!”

“이런 씨바아아아알!!!!”


놈은 검까지 내팽개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놈의 부하도 그 뒤를 따라 도망쳤다.

괜찮은 판단이었다. 꽁무니 빠져라 도망치는게 지금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긴 했다.


‘뭐, 그래봤자 무의미한 발악이지만.’


내가 메고 온 건 평범한 마나폭탄이 아닌 고농축 마나폭탄.


페어링 길드에서는 제로밤이라 부르는 물건이다. 시제품으로 만들어 놓고 위험하다며 창고에 봉인해 놓은 걸 통째로 훔쳐왔다.


나는 여기까지 오며 제로밤 수십개를 곳곳에 설치해두었다.

하나라도 터지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모든 폭탄이 터지게 되는 설계다.


‘아마 이 일대 반경 1km는 날아가겠지······.’


물론 저기 달아나는 떨거지들과는 달리, 상위 등급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폭발에 휘말려도 죽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내 목표는 상위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회색 산맥의 협곡.

제국과 연합이 마주하고 있는 전선의 중앙이며 서로의 진영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목이다.

여기서 제로밤이 터지면 협곡이 무너지며 길이 막힐 테고, 연합의 전력에 큰 손실이 나게 된다.

그러면 이번 전투는 무산될 것이다. 잘하면 전쟁 자체가 소강상태에 들어갈 수도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뿌리는 똥물이다. 부디 기뻐했으면 좋겠군.’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점점 밝아져간다. 폭탄의 시동이 서서히 끝나간다는 의미였다.


이로써 목적은 달성했다.

페어링 길드를 털고, 폭탄을 설치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터뜨려 이번 전투를 막는다는, 지난 3개월 간의 계획이 성공한 거다.


‘내 목숨과 맞바꾸게 됐지만 말이지.’


죽음이 두렵진 않았다. 도주 계획을 세워두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다만 자괴감이 몰려올 뿐이었다.


이런 자살 특공을 하고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전쟁의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게 전부라니.


‘······씨발.’


마지막 순간이라서 그런 걸까. 쓸데없이 감상적이게 된다. 상상하지 않으려 했던 만약이 계속 떠올랐다.


만약 내가 플레이어였더라면, 에든벨을 구할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플레이어였더라면, 이 미쳐버린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내게 조금 더 힘이 있었더라면······.


아니, 하다못해 기회가 한번 더 주어지기라도 한다면······.


‘······마지막까지 한심하구나. 이런 웃기지도 않는 상상이나 하고.’


······의식이 점점 멀어진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더는 서있을 수 없었다.

나는 몸이 점점 허물어지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제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번쩍!


갑옷 밑에서 새어 나오던 빛이 한순간에 밝아지며 세상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멀어져가던 내 의식은 완전한 암흑 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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