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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 게임으로 보는 대중문화의 트렌드.

제 나이가 서른여섯인데, 그중 게임에 빠져 산게 20년은 되는 것 같습니다. 

80년대에 슈퍼 패미콤(열혈시리즈 꿀잼! 전설의 오우거배틀, 택틱스 오우거 다시 하고 싶다..)이나 재믹스, xt컴퓨터에서 돌리던 스네이크 게임에서부터 ega, vga시대의 남북전쟁, 금광을 찾아서, 90년대 초반에 오락실을 강타했던 스트리트 파이터, 그 이후로 캐딜락이며 닌자거북이며 퍼니셔며 던전앤드래곤스 같은 오락실 게임들, 98년도 내 고3을 통째로 바쳤던 스타크래프트, 수능 전날에도 pc방을 가게 만들었던 망할 스타크래프트! 친구의 백일휴가 4박5일을 통째로 집어삼켰던 디아블로2, 미친 카우방 ㅋㅋ, 아마존 80렙 찍고 휴가복귀한 친구, 충격적이었던 머신 플레이스테이션에는 릿지레이서, 천주, 철권, 검호, 세가새턴, 드림캐스트로 이어지는 콘솔게임들, 울티마온라인, 에버퀘스트, 다크에이지오브카멜롯, 그리고 내 청춘을 불살랐던 와우! 늑대 등위에서 아라시 언덕을 내달리는 오크 한마리로 살아왔던 내 청춘아! 내 커다란 어깨뽕, 오크는 어깨지!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스팀의 연쇄할인행각에 늘 당하고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제 인생을 반추하게 되었네요 ^^;


어쨌든 저는 이렇게 게임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점이 자랑스러워요. 

너무 게임이 좋아서 대학도 관련학과를 진학했습니다. 게임판에서 구른 경력도 짧지만 오륙년쯤 되네요. 아직도 제 친구들은 대부분 게임판에 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는 다들 경력도 인정받고 꽤 높은 자리에 오른 친구들도 있네요. 이름만 대면 아는 게임의 개발팀에 있는 놈들도 많고. 


그러다보니 친구들끼리 모이면 늘 게임에 관한 얘기만 하게 됩니다. 신기술이 뭔지 어떤 원리인지 유명한 개발자가 어디로 옮겼는지 어느 팀에서는 뭘 개발하고 있는지 이런걸 가지고 몇시간씩 떠들죠. 


하루는 친구들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드래곤 플라이트 라는 게임 때문이었죠. 

우리의 관점에서는 이건 게임도 아니었어요. 손가락 하나만 대충 까딱거리는게 무슨 게임이야? 비행슈팅이라면 자고로 민첩한 스틱질과 미칠듯한 연타가 기본이지! 하지만 드래곤 플라이트를 만든 1인 개발자는 떼돈을 벌었죠. 

바로 이점이 우리들을 미치게 만들었어요. 우리는 골수 게이머인데, 적어도 어떤 게임이 잘만든 게임인지, 재미있는 게임인지는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우리가 만드는 게임들은 만드는 족족 망하는 우리나라의 게임 시장에서, 엄지손가락 하나 까딱거리는 별 시답잖은 게임이나 만드는 놈이 대박을 쳐? 말도 안 돼! 인정할 수 없어! 이런 분위기였죠. (뭔가 익숙한 멘트죠? ㅎㅎ)

하지만 이런 추세는 계속되더군요. 오토사냥이라고 하면 원래는 핵이나 매크로를 돌리는, 말하자면 불량이용자나 할 법한 것들이었는데, 요즘 모바일게임에는 기본으로 적용되죠. 

기존의 게임들은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하루 종일 뛰어다니곤 했는데, 요즘은 이동을 누르면 알아서 달려가거나, 아니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완료하고 다른 퀘스트를 수락할수도 있더군요. 


얼마전에 레이븐이라는 게임을 접했습니다. 삼시세끼의 차줌마가 선전하길래 믿고 다운받아봤죠. ㅎㅎ

저는 일단 이 게임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킬은 있는데 마나가 없어요! 너무 충격적이지 않나요? ^^; 

이 게임에는 마나나 엠피라는 개념이 없어요. 쿨타임만 돌아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죠. 

몇판정도 게임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어요. 

“엠피를 없애자는 아이디어는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

엠피, 마나는 스킬이 존재하는 게임에서는 거의 필수라고도 할 수 있을만큼 따라다니는 요소죠.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에서 컨트롤의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짜증나는 요소이기도 하죠. 마나가 오링나면 스킬을 못쓰잖아요? 그러다보면 마나를 아껴야하고, 그러다보면 전투가 자칫 지루해질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과감하게 마나를 없애버려! 만약 대부분의 기획회의에서 이런 말을 꺼내면 백이면 백 면박을 당할거에요.  도대체 상식이 있는 놈이냐면서 말이죠. 

그런데 레이븐은 그걸 실제로 했어요. 상식에 반하는 일이죠. 하지만 결과는 깜짝놀랄만큼 좋아요. 엠피 관리에 대한 부담감을 벗어던지니까 스킬 버튼을 누르는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쿨만 돌아오면 언제든지 쓸 수 있으니까요. 

레이븐에는 이런 사소한 혁신이 많아요. 자동사냥모드에서도 방향키 조종이 가능하다든가, 뭐 그런.


저는 레이븐을 보면서 대중매체가 진화해 나간다는 것을 느꼈어요. 

드래곤 플라이트는 제 관점에서는 아직도 게임이라고 부르기 어려울정도로 단순한 것이지만, 요즘 나오는 모바일 게임들은 그런 단순함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죠. 


우리 장르문학도 그렇지 않을까요? 단지 게임의 변화보다 조금 더 늦을뿐이지 않을까요?

어쩌면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장르문학의 질적 저하, 소위 양판소, 트렌드만을 쫓는 현재의 행태는 대중성을 띄는 매체의 어쩔수 없는 변화 공식의 초반부에 해당할지도 몰라요.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시간이 흐르며 자정작용을 거치고, 나름의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도태될 것은 도태되고 살아남을 것들은 살아남으며 서서히 진화해나가는 걸지도 몰라요. 


아래에 일본 문학시장과 우리의 문학시장을 비교하는 글이 있었죠. 

경제의 경우 우리는 일본보다 10년 늦다고들 하죠. 어쩌면 문학도 그럴지도 몰라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진화의 프로그레스가 말이죠. 밑에 어떤분의 댓글처럼 지금 여기에서 활동하는 어떤 분이 나중에 이름난 소설가가 되실지도 모르죠. 바람의 마도사의 작가님이 세계문학상을 수상하신 것도 그런 변화의 하나라고 저는 보고 있어요. 


순문학과 장르문학. 활자라는 한 씨에서 태어난 배다른 두 형제는 서로를 배척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들의 사이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봅니다. 천명관님의 고래도 그렇고 정유정님의 7년의 밤도 그렇죠. 순문학에서 이쪽으로 한두걸음 더 걸어온 곳에 위치하는 작품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공모전에 다양하고 독특한 글을 올리시는 여러분들은 자랑스러워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몇걸음 더 걸어나간 분들이시니까요. 이런 움직임들이 조금씩 모여 마침내 두 형제가 하나가 되었을때 비로소 진정한 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요. 


집중력은 깨졌고 잠은 안오고 사랑꾼의 실패는 남일같지 않고...

그러다보니 급 센치해져서 주저리가 길었네요. 술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 


어쨌든 요지는 이렇습니다.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우리의 노력이 모여 흐름이 됩니다. 될겁니다. 된다고 믿읍시다. ^^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댓글 2

  • 001. Personacon 二月

    15.12.29 20:30

    자정작용 없는거 같아요...;;;;
    요새 문피아에 BL 장르까지 생긴거 보니;;;

  • 002. Personacon 휘동揮動

    16.01.01 08:57

    ^^; 조금 더 장기적 시야로 봐야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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