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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칸더브이 님의 서재입니다.

남홍여중 소녀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서칸더브이
그림/삽화
Bomemade
작품등록일 :
2019.04.04 01:56
최근연재일 :
2019.07.31 23:37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11,897
추천수 :
448
글자수 :
287,562

작성
19.04.04 02:17
조회
2,206
추천
31
글자
11쪽

Chapter One-오징어잡이 (1)

DUMMY

북한산에 단풍이 들 때가 되면 남홍여중의 학생회는 오징어잡이를 위한 막바지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진다.


서울세계불꽃축제 기간에 맞춰 치뤄지는 오징어잡이 행사를 위해 학생회는 여름부터 준비를 하고 수차례 예행연습을 갖지만, 야간에 물속에서 진행되기에 항시 위험이 따랐고 생각치도 못한 변수에 불상사가 생긴 적도 있었다.


7년 전 한 3학년생이 행사 중에 익사를 했고, 3년 전에는 신입생 중 하나가 다리를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잡이는 남홍여중 학생회가 일년 중 가장 고대하는 행사이자 그들 만의 축제이고 사라질 수 없는 학교 전통이었다.



“유정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년에 바뀌는 교복?”


남홍여중은 1886년 고제신 여사(당시 16세)가 제주도 서귀포 산방산 언덕에서 재주가 좋은 다섯 명의 소녀들을 모아 수업을 개시한 것으로 시초로, 1919년 9월 지금 있는 서울 연희동으로 학교를 이전하였고 ‘남쪽의 붉은 새’라는 뜻의 남홍작(南紅雀) 여자전문학교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1948년 학교 건물을 신축하면서 남홍여자중학교로 개명하였다. 현재는 정원 348명의 사립여자중학교로 학문적인 교육은 물론 예체능도 강도높게 가르쳐 다재다능한 여성을 키워내는 명문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아무리 남홍이 앞서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남홍 하면 붉은 치마 아닙니까? 회색 정장 이라니 그것도 바지 정장?!”



남홍여중의 학생회는 40 ~ 50명 정도의 재학생들로 구성된 교내 조직으로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의 간섭을 전혀 받지않는 독립적인 단체였다. 한 명의 회장과 네 명의 부회장 그리고 다섯 명의 서기관으로 이루어진 임원들을 중심으로 학생회는 학교생활과 관련된 안건들에 대해 재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학교측에 전달하고 그 외 다채로운 교내행사들 주관했다.


교복에 관한 문제는 지난 몇 년간 논의되어왔던 뜨거운 안건이었다. 몇 년 전 한 방송국에서 “베일에 쌓인 한 여자중학교”라는 제목으로 남홍여중에 대해 방송한 적이 있었는데, 주로 입학을 거절당한 학생들과 부모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되어져 방송의 시선은 편파적이었고 부정적이었다. 학교가 비밀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방송에서 다뤄진 소문들은 자극적인 것들이 많아서, 방송이 나간 후 남홍여중은 원치 않는 관심을 받았고 당장 관심을 피해보자는 취지로 선생님 중 한 분이 눈에 띄는 교복을 바꾸는 것은 어떻겠냐는 안건을 제시했다.


우습게도 방송의 여파는 몇 개월 뒤에 잠잠해졌지만, 50년 전통의 붉은색 치마 교복을 변경하자는 논의는 학교내에서 점점 더 뜨거워져서 결국 지난해 총학생투표로 결정되었다. 그후 학생회가 새 교복 샘플들을 제작해 한번 더 투표에 부쳤고 신입생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짙은 회색정장으로 정해졌다.



“특색이 없지 말입니다. 정말이지 신입생들은 투표에서 제외시켰어야 했는데··· 입학한지 1개월도 안된 아이들에게 이런 중대한 사항에 결정권을 준다는 것이 실수였죠. 아~, 남홍여중의 자랑스러운 심볼이 사라지다니 저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전 정말이지 옛 선배들이 빨강 루비 브로치 차고 다닐 때가 그립습니다.”


학생회 제2서기관직을 맞고 있는 김윤지의 교복에 관한 푸념이 끝나자, 보트 위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보트 옆을 치는 찰박찰박 강물소리, 교각을 타고 내려오는 자동차 진동소리, 멀리서 울리는 대중의 웅성거림만이 남았다. 보이지않는 수평선너머로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노을의 기운이 남아있던 자몽 빛깔 하늘도 무채색이 되었다.



“유정 선배님, 이번 신입생들 중에 눈에 띄는 애들이 있으십니까?”


침묵이 싫은 윤지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목련반 사라, 매화반 봄, 이화반 지현이”


부회장 손남주가 불쑥 답을 했지만, 그녀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남주가 반가웠는지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맞장구 쳤다.


“역시, 보는 눈은 다 똑같네요! 저도 이사라, 윤봄, 김지현 세 명이 눈에 띄던데. 사라는 입학전부터 유명했으니까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윤봄은 어디 그런 보석이 숨어있었는지 말입니다. 지현이는 뭐··· 그 아이 몸 보셨습니까? 180cm 정도 될 것 같은데···”



‘피유우우웅~펑!’


단발의 파열음이 윤지의 말을 끊었다.


꼬리가 긴 폭죽 하나가 올챙이처럼 하늘로 솟아올랐다. 올챙이는 올려다보기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이 올라가서야 터져버렸다. 그리고는 검정바탕에 거대한 황금빛 민들레를 만들고, 다시 수양버들 가지로 변해 반짝거리며 강물 위로 떨어졌다.


신호였다.


잠시 뒤, 하늘이 더 어두워지면 불꽃쇼가 시작된다는 신호. 그리고 지금 한강 위에 4개조로 나누어 네 척의 배를 타고 각기 다른 한강 다리 밑에서 대기하고 있는 남홍여중 학생회원들에게는 오징어잡이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초대 오징어잡이는 제주의 비양도 앞바다에서 치뤄졌다고 전해졌다. 아흔 아홉 명의 여학생들이 황포돛배 다섯 척을 타고 바다로 나가 촛농을 칠한 한지등 수백 개를 물위에 띄어 놓고 밤하늘에 불화살을 쏘아 오징어를 유인했다고 한다. 이듬해는 풍랑이 심해 황포돛배로는 제주바다를 견뎌낼 수 없게 되자, 스페인 상인에게 범선을 빌려 오징어잡이를 나갔다고 한다.


그 후 기술의 발달은 한지등과 불화살을 전등과 폭죽으로 바꾸어 놓았고, 장소도 제주도에서 여수, 태안, 인천으로 점차 서울에 가까워졌다.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한강 어귀의 강화만에서 행사가 치뤄졌고, 2004년부터 남홍여중 학생회는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한강에서 오징어잡이를 했다.



몇 주간 강화도 앞바다 수중에서 섬광을 터트려 점차 오징어를 한강 어귀까지 유인하고, 축제 당일 날 화려한 불꽃에 홀린 오징어가 한강 중류까지 올라오면 보트를 타고 대기하던 아이들은 밤섬을 거점으로 양화대교와 서강대교 사이에서 잡이를 시작했다.


한강의 장점은 오징어가 얕고 좁은 수로에 갇혀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단점은 오징어를 한강 중류까지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기업이 주관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언제 취소 혹은 변경될 지도 모르기에 남홍여중 학생회도 매년 여러 변수에 대비해서 오징어잡이 준비를 했다.



제1회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개최되었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이 참가해 10월 첫째 주 토요일에 시작해 매주 토요일마다 4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2001년에는 미국 9/11 테러로 인해 취소되었고, 2002년에는 한일월드컵으로 초여름에 치뤄졌다. 2003년부터 다시 가을에 개최되었지만, 매년 축제일수가 줄어 2007년 제6회부터는 10월초 토요일 하루만 축제가 열렸다. 물론 2001년 이후에도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적 이슈로 인해 취소가 된 해도 있었다. 2006년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축제가 취소되었고 2009년에는 신종플루가 유행하여 개최되지 못했다.


오징어잡이는 같은 기간에 열리지만, 불꽃축제가 취소되었다고 같이 취소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징어잡이는 남홍여중의 100년 전통이었다. 투표로 갈아치울 수 있는 붉은 교복치마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선배님은 누구 눈여겨보신 신입생 없으십니까? ”


윤지의 질문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좀전부터 강물을 유심히 보고 있던 유정은 답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 순간 두번째 신호가 들렸다.


‘피피피융~ 피융.’


이번엔 별 다섯개가 하늘로 떠올라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팍.’


번쩍이며 소용돌이치던 별들은 각기 오묘한 색의 작은 은하계를 만들고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이내 사라졌다.



“보셨습니까? 우와, 올해 불꽃은 환상적인데요?”


유정은 보지 못했다. 불꽃이 강물을 밝혀주는 짧은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너무 고요하다.’


유정은 불길한 낌새가 들었다. 지금쯤 수십 마리의 빗살무늬 참갑오징어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있어야 했다. 그 움직임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유정이 무전기를 들어 김포대교 근처에 정박하고 있던 본선을 호출했다.


“재선아, 레이더에 몇 마리나 잡혔어?”


“좋지않아, 회장.”


“몇 마리?”


“···”


“몇 마리?!”


“한 마리도 못봤어.”


“알았어. 모니터 계속 체크하고 대기해”



유정이 타고 있던 제1 보트 위에 정적이 맴돌았다. 재선의 답변이 심각하다는 것을 아는 남주와 윤지는 말없이 유정의 표정을 살폈다. 같은 보트 위 학생들도 세 임원들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내려가본다.”


유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윤지와 남주가 수경과 작살총을 챙겼다.


“남주와 나만 내려간다. 윤지는 남아서 본선과 다른 배들 하고 통신 유지하고 대기.”


짧은 명령만을 남기고 유정과 남주는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윤지는 남홍여중의 전설 신유정이 오징어잡이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않아 같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훌륭한 보좌관이 그렇듯이 즉각 유정의 뜻을 수긍하고 명령을 따랐다.



물속의 어둠은 밤하늘의 어둠과는 비교할거리가 되지 못했다. 옻칠처럼 검고 광택이 있는 밤하늘과는 달리 물속의 암흑은 어떠한 빛도 흡수해버리는 먹물 같았다.


스텔스(stealth) 잠수복에 웨이트 벨트를 착용한 유정과 남주는 1분도 채 안돼서 강바닥에 서있었다. 유정이 특수수경에 장착된 30,000루멘(lumen) 플래쉬를 켜자 유정의 눈 앞에서 유영하고 있던 표범무늬의 쏘가리가 재빨리 자리를 내뺐다.


한강의 수질이 깨끗해지면서 한강에 사는 물고기가 많아졌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참갑오징어는 움직임이 특이해서 물체가 점으로 표시되는 레이더 화면에서 다른 어종들과 구분하기 어렵지않았다. 경험이 있는 3학년 재선이가 오징어를 탐지하지 못했다면 그랬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만약 오징어가 한강 중류까지 오지 않는다면 양화대교와 서강대교 사이에 강바닥에 설치해 놓은 그물을 포기하고 즉시 강화만으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강화만 바닥에도 그물을 설치해 두었지만, 좁고 얕은 한강과 깊고 넓은 강화만은 그 난이도가 몇배는 차이가 났다. 유정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유정이 허리벨트에서 수중 조명탄 하나를 꺼내 발화 시킨 후 작살총에 장전하고는 하류 쪽을 향해 발사하였다. 붉은 불꽃을 내뿜는 조명탄이 지나가는 길의 직경 1미터 안이 밝아졌다가 금새 어두워졌다. 잠시 뒤 남주가 발사한 두번째 조명탄이 강물속을 길게 뻗어 나갔다. 불행히도 오징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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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Chapter Ten-KRAKENZINGER (3) +2 19.04.30 95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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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hapter Ten-KRAKENZINGER (1) +1 19.04.26 114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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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hapter Eight-The Library (1) +1 19.04.17 101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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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hapter Five-서호국제남자중고등학교 아이스하키부 (1) +1 19.04.10 221 11 12쪽
9 Chapter Four-The Bird's Nest (2) +3 19.04.09 273 1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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