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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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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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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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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1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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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이야기 147 - 흑야 2

DUMMY

창해력 989년 5월 5일 토요일이 되자 제국은 온통 축제에 휩싸였다. 건국기념일이 되면 벌이던 축제를 제국으로 거듭난 5월 5일 제국선포일에 열었다. 백성들은 금요일 밤부터 축제의 열기에 휩싸여 마냥 즐거워했지만 두 부류는 축제와 무관하게 긴장감 속에 아침을 맞이했다.


한 달 사이에 제국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동시에 전군 동원령을 내렸다. 책사원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제국의 힘으로 상징되는 모든 기사단과 병력이 국경선으로 떠나거나 요충지로 향했다. 기사단은 물론이고 제국에 속한 군인과 제후의 병사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움직였다. 황제 직속의 33인 자문단에 의해 제국의 방어 계획과 체계는 구축되었다. 그에 따라 심지어 완공되지 않은 몇몇 성벽과 요새에도 병력이 속속 도착했다. 제국 전체가 움직일수록 문제가 된 건 제국 차원의 명령 체계였다. 제후와 대제후들이 황제에게 직접적인 명령을 받는 걸 거부했다. 황제에게 너무 강력한 힘이 실리는 걸 경계했다. 그동안 의견이 분분했던 제국 차원의 명령 체계를 대신들이 모이는 오늘 결정했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제후와 대제후들이 중경에 도착하자마자 원로의사당으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아침부터 남부 밀림에서 천사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엽마군이었다.


``정확히 어디서 천사가 나타난 거야?"


흥분한 장동수가 소리쳤다. 소꿉친구와 함께 원로의사당으로 가려고 왔다가 남부 밀림에 천사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용인족이 살아가는 드라고니안국입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너무 믿기지 않았다. 조맹서에게서 보다 자세한 사실을 듣고 싶었다. 천계에서 살던 용인족이라면 천사를 소환할 법했다.


``별부에 소속된 용왕 하무르님입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 위험해서 투천대 삼십 명과 동행했었습니다. 고향을 방문한 와중에 소환된 마자르의 천사를 몸소 확인했습니다. 대천사 람포스의 권속이 되기 싫어 혈족을 거느린 채 고향을 떠나 방금 전에 국경선에 당도했습니다."


조맹서는 철장패에게 시선을 돌렸다.


``데리고 온 용인족이 만이천 명 가량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머물 장소가 필요합니다."


``슬라탄 신전 왼편에 위치한 우타라 지역이라면 황궁과 마찬가지로 찬성한다. 지원하게 될 규모는 특급으로 한다. 곧 흑야이니 빠른 안착을 부탁한다."


조맹서는 서둘러 통신마법사에게 달려갔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용왕 하무르에게 소식을 전했다.


이른 아침부터 모인 제후와 대신들이 명령 체계를 놓고 중경의 원로의사당에서 고성이 오가며 줄다리기했다. 건국 이래로 전군 동원령은 서른다섯 번이었다. 과거의 수도였던 남경이 야만인에 의해 불타자 국왕이 죽었다. 귀족원의 청원으로 후일 오대 수호가문이라고 불리게 된 다섯 대제후가 뭉쳐 위기를 돌파했었다. 그때가 전군 동원령이라는 공식 명칭이 생긴 시초였다. 또한 제후와 국왕 간의 관계가 정립된 시기였다. 그 이후부터 제후와 국왕은 서로 간접적인 영향력은 행사하여도 직접적인 명령이나 간섭은 삼가하는 관습이 생겼다.


책사원에서 내놓은 체계는 황제를 중심으로 명령을 통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와 달리 제후들의 주장은 과거의 전례에 따라 황제의 감독 아래에 다섯 명의 집정관을 내세웠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제후들은 황제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걸 경계했다.


늦게나마 원로의사당에 도착한 철장패와 장동수는 주어진 자리에 앉았다. 크게 소리치며 격론이 오가자 철장패와 장동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난감한 얼굴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소한 하량의 뜻에 따라 한 손이라도 거든 후에라야 의사당을 떠날 수 있었다.


오후 1시, 한 번의 정회 끝에 제국에서 원로라고 인정한 대신과 대귀족 그리고 제후들이 원로의사당에 다시 모였다. 황제의 발언을 시작으로 표결에 붙일 명령 체계를 놓고 2차 토론이 벌어졌다. 뜨거운 열기가 너무 치솟자 두 번의 정회 끝에 결정을 내린 게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명령 체계는 제후들의 제안에 따르게 되었다. 봉신령에 속한 원로들이 제후들의 뜻에 상당수 동조했다. 명령 체계는 결정났지만 집정관 선출 지역과 방식을 놓고 한 번의 정회가 벌어졌다. 그리고 얻은 결론에 대부분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집정관을 희망한 지역은 남부지역, 서부지역, 용방지역이었다. 옛날부터 야만족, 언데드, 드래곤 침략이 빈번한 탓에 지역 안에서 긴밀하게 자율적인 조치가 필요했었다.


나머지 일곱 개 지역은 황제의 명령에 순응하겠다는 태도였다. 오히려 자신의 지역에서 집정관이 나오는 걸 애써 피했다. 제국 차원에서의 지원과 협력이 부족해질까 걱정되어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집정관은 엽마군 총사령관과 책사원주 하량을 시작으로 용방집정관 팽후군 공작, 남방집정관 벽태수 공작, 서방집정관 을지종무 대공으로 뜻을 모았다. 이로써 제국은 분할되었던 병력을 흑야가 끝나기 전까지 하나로 모으는 것에 합의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원로의사당에 모였던 세력가들은 황궁으로 자리를 옮겨 제국선포일의 축제를 즐겼다. 그러나 철장패는 남부 밀림의 육야족 앞마당에 대규모 천사들이 나타났다는 전언에 놀라 엽마군으로 돌아가야 했다. 막상 도착하자, 예상하지 못한 흉한 소식이 하나 더 접수되었다.


``신야국에서 마족들이 쏟아진다고? 소환문을 몇 개나 열었기에 쏟아지는 거야? 청야세가와 북천세가를 공격한다는 마족의 정확한 숫자는?"


집계된 숫자는 마흔다섯이었다. 별부에서 파견된 팀은 북야독각팀이었다. 한 팀에 불과했지만 절대지존 네 명이었다. 네 절대지존이 거느린 마족은 다섯에서 스무 마리까지 다양했다.


``소환문이 일곱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열리는 소환문의 숫자도 다섯 배로 늘어났습니다. 자체적인 방어벽이 없다면 쏟아지는 마족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이번에 등장한 마족이 뱀파이어 출신의 상위마족입니다. 혈귀들의 나라인 탓에 엄청난 숫자의 뱀파이어를 부하로 거느려서 발칵 뒤집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외치는 총사령관에게 초문정 후작이 나서서 자세히 설명했다. 철장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냥 심각하게 들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대책을 고심하던 초문정 후작은 위급 사태가 발생했다는 박민 중사령의 전언에 황급히 인사하며 자신의 사무실로 움직였다.


``천사들이 나타난 육야족에 어디를 파견했어?"


``별부 무사대 전원을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터질 분위기입니다. 신장 소중명이 이끄는 골드러쉬에게도 출동을 명령했습니다."


부총령 주대정 공작의 설명을 들으며 철장패는 생각에 잠겼다. 철장패의 시선이 향한 장소는 남부 밀림의 육야족 터전이 아니었다. 무사대 전원을 출동시킬 정도로 천사가 나타나 육야족을 위협했지만 철장패의 시선이 멈춘 곳은 드래곤 산맥을 끼고 있는 신야국의 사태였다. 동맹국이라 다소 안심한 부분이 있었다. 정작 상위마족 뱀파이어가 이상한 동선을 그리며 활동하자 간단한 사태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뱀파이어의 나라인 신야국과 적야국을 청야세가와 검각세가라는 듬직한 곳에서 지켰지만 철장패의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상위마족이 움직인 경로를 재차 눈으로 훑었다. 마침내 결단을 내리자 무겁게 입을 열렸다.


``출동한 인원을 제외한 별부 전원을 대기시켜. 그리고 중경에 머문 드래곤의 숫자는 정확하게 몇이지?"


심상치 않은 총사령관의 기세에 부총령 주대정은 바짝 긴장했다.


``제국에 협조하는 드래곤을 말씀하신 거라면 이백오십 명이 중경과 근처 위성도시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중에 마흔일곱이 현장으로 출동한 상태입니다.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숫자는 백오십삼 명입니다. 나머지는 내일 저녁 정도가 되어야 소집이 가능합니다."


철장패는 천천히 제국모형도의 백야산맥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백야산맥과 가장 가까운 곳은 대동군, 도봉군, 호목군, 해송군, 원주군이다. 이곳은 태수들이 다스리는 곳이다. 마족을 대비해서 어느 정도로 방비가 되었을까. 상위마족 뱀파이어가 청야세가와 북천세가를 지나지 않고 백야산맥으로 우회하여 무리를 이끌고 나타날 경우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까?"


하나의 군(郡)을 다스리는 태수들은 부패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목숨 걸고 성벽을 올리지 않았다. 나라에서 주는 녹봉과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양반들이 대부분이었다. 제후들이 죽을 각오로 자신의 집을 지키려는 것과 비교가 되었다.


순간적으로 주대정 공작은 백성들의 비명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제7 중앙군과 삼 개 기사단이 상주하는 지역이었지만 상위마족 뱀파이어가 마흔다섯의 마족을 이끌고 도착한다면 한순간에 파괴되었다.


신야국과 적야국은 동맹국이기에 자유롭게 제국을 오갈 수 있었다. 그 길목은 청야세가와 검각세가였다. 굳이 일부러 고생하며 백야산맥을 넘을 필요가 없었다. 오랫동안 유지된 일이었기에 일상적인 일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일상적인 관념이 무서웠다. 그 관념이 깨질 때 무서운 피해가 기다렸다. 단순히 네다섯 마리는 막을 수 있었지만 대규모의 마족에게 취약한 지대였다.


``상위마족 뱀파이어가 백야산맥을 넘지 못하게 막아라. 움직인 경로를 유심히 살피면 우리 제국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청야세가와 북천세가에서 막힌다면 백야산맥을 넘어서라도 올 것이다."


서둘러 업무를 보조하는 대사령들에게 지시를 끝마친 주대정 공작은 다시 자리에 돌아오자 의문이 생겼다. 마흔다섯 마족이라도 별부 전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고심하는 사이 총사령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검각세가에 잠망경으로 파견되는 인원을 늘려. 그리고 백야산맥 근처의 제국군과 기사단에게 비상 대기시켜. 분명히 내일 중으로 터질 테니 마족 백 마리를 상대할 준비를 마쳐. 막상 터져야 알겠지만 최소 백 마리 마족이 들고 일어설 거야."


총사령관이 청야세가의 앞마당에서 펼쳐지는 영상화면을 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곳에 상위마족 뱀파이어가 성벽을 넘지 못하자 부하 마족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한밤이었기에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달빛에 의해 종종 구분은 되었다. 그 뒤를 통신마법사를 책임진 어느 정찰병이 조심스럽게 멀리서 뒤쫓았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주군."


가까이 다가온 건 황궁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조맹서였다. 힐끔 뒤를 돌아본 총사령관이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성벽을 공격하는 방식을 보면 제대로 된 놈이야. 그런데도 멍청하다는 듯이 무너지지 않는 성벽만 공격하잖아. 뭐, 보다 쉽게 말하면 저놈은 주동자가 아니야. 무리를 이끄는 뱀파이어는 다른 놈의 부하야. 대장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부하에 불과해."


주대정 공작은 영상화면 속에 잠깐씩 보이는 상위마족 뱀파이어를 노려보았다. 너무 어두워 실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 무엇을 보고 다른 마족의 부하인지 알 수 없었다.


시선을 들자 서류철을 넘기며 육야족 사태를 확인하는 조맹서였다. 영상화면까지 세심히 확인하는 조맹서가 총사령관에게 다가서자 주대정 공작은 괜히 침을 꿀꺽 삼켰다.


``당장 급한 것은 육야족에 나타난 천사 이백이 아닌가 싶습니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주변의 마족까지 쏟아져 위험하지 않을까요?"


``천사를 이끄는 대천사는 겁쟁이야. 살짝 찔러 보고 도망칠 놈이야, 신경 꺼도 돼."


잠시 입을 다물고 서류철을 뒤적이던 조맹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적당히 처리하겠습니다."


눈구멍이 동그랗게 변한 주대정 공작은 어이없었다. 이어서 조맹서가 입을 열자 귓구멍은 한없이 커졌다.


``모든 드래곤을 대기시키고, 별부 전체도 대기시키셨군요. 흠, 새벽이 되자마자 백야산맥을 드래곤까지 동원해서 뒤질 생각이시군요. 그곳에 무리를 형성한 마족이 있으면 별부에 남은 인원으로 재빨리 수습할 작정이었군요. 제국에 들어와서 설칠수록 피해가 커지니 불이 붙기 전에 빨리 끄는 게 좋긴 하죠."


이건 분명히 신야국 뱀파이어 사태를 놓고 말하는 것이었다. 주대정 공작은 총사령관과 그의 지낭을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자신은 하나도 총사령관의 뜻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몇 번 서류철을 뒤지더니 총사령관의 심중을 짚어내고 있었다.


작전사령실 실장의 말이 끝나자 총사령관은 천천히 몸을 돌려 종합사령실을 벗어나려 했다.


``집정관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 조맹서에게 총사령관은 왈칵 얼굴을 찌푸렸다.


``귀찮게 됐어, 귀찮아 됐어... 일거리만 늘어나서 죽겠다. 자러 갈 테니 뒷일을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쉬고 싶어 미치겠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혼자만 쉬는 건 가신을 홀대하는 짓입니다."


문고리를 잡고 총사령관은 몸을 돌렸다.


``괜찮은 책사를 두어 명 챙겼으면 좋겠는데 어디 없나 모르겠다. 챙기면 나의 지낭이 편해질 텐데 말이야. 그때까지 힘들겠지만 참아라."


총사령관이 사라졌다. 정말 자리를 떠났다. 주대정 공작은 회의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자신은 젊은 사람에 비해 너무 늙은 게 아닌가 싶었다. 아직도 마법사의 의해 영상화면은 돌아가고 있었다. 어두운 밤임에도 천사들이 날개를 펼치고 육야족을 공격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위급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괴인족이 탄 마갑기를 피해 대천사가 허둥거리며 도망치는 것부터 눈에 잡혔다. 조금씩 뒤로 몸을 빼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다른 천사들이 대천사를 보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담력이 약한 대천사라면 도망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는 왜 큰 재앙이라도 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을까.


고개를 숙인 채 무력감에 휩싸였다. 잠시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천천히 고개를 드니 작전 1처를 책임진 초문정 후작이었다.


``그는 당대 철패왕입니다. 목숨을 건 결투와 전쟁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그에 비해 평범합니다. 하지만 그런 철패왕이라도 공작님처럼 한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합니다. 상임귀족 모용방산의 느글느글한 얼굴을 보면서 편안하게 대화하는 건 공작님에게 많이 배워야 합니다. 저도 가끔 총사령관에게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전투에 관해서라면 저와 조실장은 전적으로 당대 철패왕의 뜻에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후부터 가슴은 편하더군요."


작게 속삭이며 사라지는 초후작이 평소와 달리 오늘따라 예쁘게 보였다. 고마운 마음에 뭐라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엽마군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주대정 공작은 구겨진 옷의 주름을 손으로 정성스럽게 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도 단정하게 정돈했다. 거울 앞에 서서 위엄 있는 자세를 갖추며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종합사령실이 쩡쩡 울리도록 부하들을 채근하며 지휘하기 시작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오늘은 일요일이야, 쉴 테니 알아서 해!"


엽마군은 갑자기 터진 백야산맥 마족 무리 때문에 난리법석이었다. 그런데 혼자만 쉬겠다고 총사령관은 열렬히 통신마법구를 향해 외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뚝 끊었다.


``바쁘면 가야 하지 않나요?"


다정하게 속삭이는 펠리시아의 목소리에 철장패는 구겼던 안면을 활짝 폈다.


``가봤자 내가 할 일은 없어. 15층 집무실에 갇혀서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오는 게 전부야. 몸과 마음이 불편해. 그럴 바에야 편안하게 휴식하고 굵직한 사안이 터질 때만 나서서 짜릿하게 일하는 게 좋아."


수학성 별장에서 편안하게 흔들의자에 앉아 낚시를 즐기는 철장패였다. 그 옆으로 책 한 권을 들고 조용히 읽는 펠리시아였다. 어린 딸은 깊은 잠에 빠져 꼼지락거리는 중이었다. 가끔씩 은집사가 다가와 마셨던 음료수 잔을 치우는 한가한 날이었다.


``언뜻 듣기로 큰 사건이 터진 거 같던데 괜찮겠어요?"


``내가 없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 굳이 걱정이 되는 게 있다면 곧 흑야라는 점이지. 이제 29일 남았네. 흑야가 시작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몰라. 지금보다 더 많은 숫자의 마족이 나오는 선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뭔가 섬칫한 예감이 들어서 걱정돼. 그래서 최악의 상태까지 가정하고 고민하는 중이야."


무겁게 안색이 굳은 남편의 표정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불안한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펠리시아는 일부러 행복한 생각을 했다.


``이번에 자메크가 선물을 줬어요. 소미랑 비슷한 체격인 페어리드래곤이에요. 작은 몸집인데도 엄청 빨라서 놀랐어요."


철장패는 빙그레 웃음을 짓다가 손에 걸리는 느낌에 낚싯대를 잡아챘다. 물고기가 물살을 박차고 튀어올랐다. 가족과 함께 일요일을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이 작은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희망했다.


사흘 후, 불길한 소식을 접했다.


``용인족을 이끈 대천사 람포스가 우리 제국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영역을 넓히는 과정을 살핀 결과 분명히 우리 제국을 노리는 행동입니다."


아직 제국에서 멀었고 작은 규모였지만 위협적이었다. 정작 불길한 소식을 갖고 온 건 황금갈기데몬으로서 위엄을 드러낸 우쿠바였다. 장시간 동안 사라졌던 그가 다수의 마족을 거느리고 엽마군으로 돌아왔다.


``인간 친구, 내 말을 들어라! 천삼백 마리를 거느린 상위마족이 내 둥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총사령부 2층 종합사령실에 들어오자마자 하는 소리에 사방에서 경악성을 내질렀다. 대천사 람포스의 위험에 대해 설명하는 조맹서조차 할 말을 잃고 멍멍했다.


총사령관을 상징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철장패는 덤덤했다.


``데리고 있는 마족의 숫자를 떠나서 우쿠바가 생각하기에 그놈은 어느 정도로 무서운 녀석이야?"


잠깐 침묵에 잠겼던 우쿠바는 한순간 눈을 치켜뜨고 매섭게 철장패를 쏘아보았다. 그곳에 서린 눈동자에 두려움, 자괴감, 다시 만나기 싫다는 욕망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놈을 보자마자 인간 친구를 떠올렸다. 정확하게 설명은 못하겠지만 너만큼 무서운 놈이다. 내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네놈에게 당한 경험 덕분이었다. 아니었다면 그놈에게 잡혀서 나는 죽었을 것이다."


순간 철장패는 생각보다 위험한 녀석이 나타났다는 걸 느꼈다. 직접 눈으로 봐야 할 상대였다. 단순히 수만 마디 떠드는 건 의미가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망토를 걸쳤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었다.


``가자! 어떻게 생긴 놈인지 눈으로 봐야겠다."


``이대로 못 간다. 최소한 친구 셋이 필요하다. 아니면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흑경산맥에서 이틀은 새를 타고 날아가야 한다."


우쿠바가 말하는 친구 셋은 장동수와 듀마까지 포함된 숫자를 말했다. 겁에 질려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얼굴은 안 그런 척 데몬으로서 표정을 유지했지만 영혼 깊숙이 공포가 박힌 상태였다.


``알겠다... 오늘은 푹 쉬어라! 괜찮다 싶으면 그때 출발하자."


종합사령실에서 총사령관과 황금갈기데몬 우쿠바가 사라지자 작전사령실의 책사들 중에 몇몇은 겁먹고 발광까지 벌였다. 마족 천삼백이었다. 도저히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 사색으로 변한 종합사령실에 유일하게 자신의 업무를 계속하는 존재가 있었다. 작전사령실 실장 조맹서였다. 괜히 큰 소란을 피우기 싫어 조용히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사실이었다. 언제라도 한 번쯤 경험해야 할 공포였고 암담함이었다. 제국은 그보다 많은 마족과 상대해야 했다. 고대인류가 지배했던 땅마저 사라지게 한 존재들이었다. 이빨을 앙다물며 서류의 빈칸을 채웠다. 그나마 자신의 주군은 이천삼백의 마족을 거느린 존재였다. 암담한 미래였지만 헤쳐나갈 방법이 아예 없지 않았다. 지금은 암담한 미래보다 현실 속에 등장한 마족부터 하루하루 견디며 죽여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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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사냥이야기 157 - 흑야 end - c +12 11.07.03 4,993 83 25쪽
278 사냥이야기 156 - 흑야 end - b +18 11.06.30 5,343 94 26쪽
277 사냥이야기 155 - 흑야 end - a +28 11.06.30 5,457 90 21쪽
276 사냥이야기 154 - 흑야 넷 +27 11.06.26 5,539 95 25쪽
275 사냥이야기 153 - 흑야 셋 +18 11.06.24 5,220 85 28쪽
274 사냥이야기 152 - 흑야 둘 +16 11.06.22 5,002 90 20쪽
273 사냥이야기 151 - 흑야 하나 +8 11.06.22 5,057 85 24쪽
272 사냥이야기 150 - 흑야 5 +19 11.06.21 5,034 86 17쪽
271 사냥이야기 149 - 흑야 4 +7 11.06.21 5,505 85 20쪽
270 사냥이야기 148 - 흑야 3 +28 11.06.17 5,346 90 23쪽
» 사냥이야기 147 - 흑야 2 +26 11.06.16 5,463 97 20쪽
268 사냥이야기 146 - 흑야 +30 11.06.15 5,840 9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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