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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인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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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10 11:44
최근연재일 :
2024.02.20 12:33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437
추천수 :
0
글자수 :
161,628

작성
24.02.14 16:45
조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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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0쪽

이상하게 엮여

DUMMY

역시 학교에는 가보는 게 낫겠어. 머리 아픈 건... 아스피린 사먹으면 괜찮아지겠지.


*


점심시간.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정강준을 민다혜가 흔들어 깨운다.


“너 왜 이렇게 졸아? 밥 먹으러 가야지.”


오전수업 내내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정강준이 좀비처럼 일어난다. 웬일로 순순히 식당으로 간다.


어째서 맞은 적도 없는 뒤통수가 아픈 것인가 라는, 수학과 물리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의문을 짊어진 채 터덜터덜 걷는다.


교사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간다. 날이 맑고 약간 덥다.


식당주변에는 다른 학생들이 많다. 점심밥을 빨리 먹기 위해 기를 쓰고 레이스를 벌이는 부류가 아니라면, 그 시간은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니까.


남녀공학의 특권이다.


아 저놈의 커플새끼들... 싹 다 총살시켜버려야 되는데.


찬란한 봄날. 그 햇빛보다 더 달착지근한 청춘의 행간을, 오직 울분을 지팡이 삼아 걷고 있던 정강준이 문득 이상을 감지한다.


어... 이거 뭐지?


예전과는 달라진 느낌인데, 주위를 둘러봐도 그게 뭔지 알아낼 수가 없다. 그게 꼭 기침이 나오려고 코가 간질간질하는 순간 같아서 슬슬 잠기운도 걷힌다.


가만 살펴보니 정강준을 중심점으로 해서 반경 2미터 정도 되는 큰 원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 원 안으로 들어오는 학생은 없다. 민다혜가 옆을 나란히 걷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무슨 왕따를 당하는 건가 싶었는데, 잘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다. 다들 정강준의 눈을 피한다. 슬금슬금 물러나고 피한다.


시험 삼아 부러 가까이 다가가 본다.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기만 해도 마치 자석이 같은 극의 자석을 밀어내는 것처럼 빈 공간이 생긴다.


어허?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닌데.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괜히 어깨가 으쓱 치켜 올라간다.


흐음. 일진 없는 골에서는 정신병자가 왕이라 이건가?


그런데 이상한 점은 하나 더 있다. 다들 혼자서 돌아다니는 곳을 민다혜와 짝을 지어 걷고 있으려니 왠지 귀밑이 달아오르는 기분.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이쪽을 흘금거릴 때마다 뭔가 변명하고 싶어진다.


그거 아니야 이 새끼들아. 아 나 이 그림 마음에 안 드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는 애매하다. 정강준은 걸음을 늦춰 살그머니 거리를 두는 쪽을 선택한다.


정강준이 뒤쳐지자 민다혜는 바로 뒤를 돌아본다.


“왜?”

“아니야. 먼저 가.”


그런데 앞서 걸어 나가는 민다혜에게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본의 아니게 민다혜 역시 백수의 왕 사자처럼 홀로 밀림을 누비게 된다. 씩씩하게.


식당에 들어가 줄을 서니 눈치를 보다가 순서를 양보하는 애들까지 있다. 정강준의 앞에 줄을 서 있다가는 먼저 먹으란 말도 없이 슬쩍 비켜난다.


뭐가 어떻게 소문이 잘못 난 건지는 몰라도 밥 빨리 먹는 건 좋은 일이지 라는 생각에 성큼 다가서는데, 민다혜가 그런 정강준의 귀를 잡아당긴다.


“줄 서서 먹어! 새치기 하지 말고.”


안 그래도 두통이 있던 판에 귀를 잡히니 뇌가 녹아버리는 기분이다. 화가 나지만 괜히 말싸움이라도 했다간 정말 이상하게 엮일 것 같아 그냥 참기로 한다.


체면을 구긴 것을 만회하기 위해 괜히 눈을 부릅뜬다. 인상을 쓰며 사방팔방을 노려본다.


나한테 걸리면 다 죽는 거야! 알았냐?


*



밥을 먹고 나오던 정강준이 우뚝 멈춰 선다.


“어? 저 새끼 뭐야?”


정강준이 보는 쪽을 돌아본 민다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저 새끼 분명히 거기 있었어, 체육관 뒤에서 싸울 때! 뭐야 다 잡혀갔다며? 그런데 저게 왜 남아 있어?”

“아니... 그게...”


민다혜가 정강준의 소매를 잡아끈다.


“그냥 가. 나중에 설명해줄게.”

“뭘 나중까지 기다려? 지금 가서 물어보면 되지, 왜 안 잡혀가고 여기 있냐고.”


손을 뿌리치려는 정강준을 어렵게 붙잡아 세운 민다혜가 소리 죽여 속삭인다.


“쟤 국회의원 아들이야. 몰랐어? 그냥 가자. 응?”

“손 치워.”


살기까지 피워가며 민다혜를 떼어낸 정강준이 놈의 뒤를 밟는다.


뛰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마치 사냥 직전의 맹수들이 그러하듯 조용히.


이성연은 정강준이 뒤를 밟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혼자 걷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일없이 바닥의 흙을 찬다.


이제 아무도 이성연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생긴 불만이다.



시발! 이게 뭐냐고?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어.


혼자가 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불과 한 달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이성연은 김명진의 바로 뒤에 서서 걸었다.


내가 전교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개돼지들은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쫄아서 얼어붙곤 했다. 셔틀들이 밥을 타주고 간식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제는 평민이다.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한다. 더럽다. 저 덜떨어지고 약한 것들과 같은 고도까지 떨어져버리다니.


물론 그보다 더러운 것은, 이제 더는 반반한 년들을 건드릴 수가 없게 됐다는 거다.


음주. 구타. 학대. 감금. 강간. 협박.


즐거운 일들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김명진에게 주면 살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한테는 큰돈도 아니었는데.


말을 안 듣거나 도망치려는 년들을 잡아다 착한 장난감으로 만들고 길들이던 시간. 그 날들은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영광이 된 것 같았다.


후우... 내가 이 천것들에게 따돌림이나 당하고 있다니. 나는 포식자야. 지배하기 위해 태어났어. 잠깐 편의상 옷을 바꿔 입고 있을 뿐이라고!


갑자기 터진 더러운 사건 때문에 아버지가 낙선해 의석을 잃었다. 이성을 잃은 아버지에게 온종일 얻어터지던 기억이 아직도 오싹하다.


그래도 이성연은, 그동안 아버지가 만들어두었던 인맥 덕분에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던 걸로 처리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그동안 같이 나쁜 짓을 했던 동료들이 의리를 지켜준 덕분이기도 하다.


다행이야. 입이 무거운 놈들이어서.


갑작스럽게 지옥이 펼쳐졌었다. 모두 놈이 입원해 있던 동안 벌어진 일들이었다.


족 같네 진짜! 도대체 뭐였지? 그 낮도깨비 같은 새끼... 그놈만 아니었어도 지금 이러고 다니지는 않을 텐데.


대행스럽게도, 굴욕은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11월까지만 버티면 이런 지저분한 학교도 졸업이라고.


지금까지 돈 들여 쌓아놓은 스펙만 가지고도 수능성적 없이 명문대에 갈 수 있다. 권력자의 자제 분들은 음서제도로 명문대에 갈 수 있게 돼있으니까. 정 머리가 안 따라줘서 대학생활에 적응을 못하면 유학을 가서 학위를 사오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저것들이랑은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 개돼지들이 아무리 박박 기어도 뒤집을 수 없는 격차가 생기는 거야.


그리고 당장이야 아버지가 의석을 잃고 나자빠져 있지만, 4년 뒤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아니 아버지는 다음에 꼭 당선될 거야. 민주주의라는 체제에서는 결국 돈 있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 의석을 가져가게 돼 있다고. 법으로 정해놓은 휴가를 써가면서도 쩔쩔매며 눈치나 보는 천것들이 정치를 할 시간이 있을 리가 있나?


지난번 선거자금으로 많은 돈을 날리기는 했어도, 그보다 많은 것들이 남아 있으니까. 그게 다 저 천민들로부터 긁어모은 돈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 따라서 등원을 하게 될 귀한 몸인데 이런 꼴이라니. 이 미친 것들이 감히. 내가 네놈들을 그냥 놔둘 줄 알아?


그래. 그 개 같은 년을 어떻게든 해야 해. 정강준이란 놈 여친인 것 같던데.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그년이 꼰지른 게 분명하다고! 숨어서 우리 쪽을 찍고 있었던 걸 내가 봤으니까.


가만 놔둘 줄 알아? 잡혀 들어가 있는 놈들이 출소를 하면...


아니 설령 그놈들이 평생 빵에서 썩게 된다고 해도, 아버지 재산을 내가 물려받게 되면 누구든 일 한 두 가지 해줄 놈들은 생기게 마련이지.


나는 돈이 아주 많아야 돼. 그래야만 해.


이성연은 흉악한 상상력을 총동원해 당면한 치욕을 무마하기 시작한다. 현재의 모욕이 찍혀 있는 보도블록 위에, 보랏빛 미래의 융단을 걸음걸음 용접해본다.


가만 있자. 그년 얼굴이 꽤 반반한 편이었지? 키가 작아서 좀 아쉽기는 해도 비율은 괜찮았고. 흐흐흐. 좋아. 여자들은 벗겨놓으면 다 똑같아지니까. 내 앞에 무릎 꿇려서 살려달라고 빌게 만들...!


그때 이성연의 눈앞에 갑자기 정강준이 나타난다. 물을 끼얹듯 한 순간에.


자판기가 늘어서 있는 매점 뒷벽으로 우회해 이성연의 앞을 콱 가로막고 들어온 것. 한창 딴생각 중이었던 이성연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끄악!”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고는 엉덩방아까지 찧으며 나가떨어진다.


김명진만큼은 아니어도 정강준 역시 체구가 큰 편이다. 갑자기 나타나면 놀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내심으로야 죽이느니 어쩌느니 해도 이성연은 정강준을 죽을 만큼 겁내고 있던 처지.


정강준이 김명진과 싸우던 날, 이성연은 만일 김명진이 밀리면 집단구타를 놓기 위해 일진들과 같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서 악귀 같은 얼굴로 싸우던 정강준의 모습에 기가 꺾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놀란 건 정강준도 마찬가지. 아직 손을 대기는커녕 그냥 눈앞에 나타난 것뿐인데 펄쩍 나가떨어져서 벌레처럼 버둥거리는 이성연의 모습에 정강준은 말을 잃는다.


으잉? 뭐야. 멱살이라도 잡았으면 쳐울었겠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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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2.15 11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2.15 8 0 20쪽
24 수상한 회복 24.02.15 8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2.15 9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2.14 9 0 10쪽
» 이상하게 엮여 24.02.14 9 0 10쪽
20 피가 붉다 24.02.14 8 0 11쪽
19 첫 다운 24.02.14 13 0 10쪽
18 첫 스파링 24.02.14 13 0 10쪽
17 스파링 세션 24.02.14 13 0 10쪽
16 낙관주의자 24.02.13 6 0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2.13 10 0 10쪽
14 무미건조한 24.02.13 14 0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2.13 22 0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2.11 14 0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2.11 19 0 10쪽
10 똘마니들 24.02.11 12 0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2.11 18 0 10쪽
8 살인연습 24.02.11 12 0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2.11 11 0 10쪽
6 아리가또오 24.02.11 11 0 10쪽
5 실험성공 24.02.11 17 0 10쪽
4 책과 사진과 아버지 24.02.11 16 0 10쪽
3 뭐가 들어있는지 24.02.11 15 0 10쪽
2 유산은 백억 24.02.11 18 0 10쪽
1 사라진 아버지 24.02.11 4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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