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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드래곤 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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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작품등록일 :
2022.12.03 17:47
최근연재일 :
2022.12.09 22:45
연재수 :
2 회
조회수 :
62
추천수 :
0
글자수 :
9,124

작성
22.12.09 22:45
조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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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0쪽

DRAGON LOSE

DUMMY

“누가 와서 세상이 뒤집힐 거라고 해도 절대로 전쟁에 나가지 마라. 동생을 끝까지 돌봐야 한다.”


나이가 들어 더는 말에 오를 수 없게 된 창기병에게도 악력은 남아 있었다. 데어티스가 쉽사리 손을 빼낼 수가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두 눈으로는 파르스름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결국 데어티스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아요. 그런 데 나갈 생각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내가 바본가 뭐? 이렇게 편한 집이 있는데 가긴 어딜 간다고. 나도 여기에 뼈를 묻을 건데? 대출금만 갚으면 고생 다 끝나요. 언젠간 여기 경기도 좋아지겠지 뭐. 그러면 정원에 꽃이나 심으면서 나이 드시면 돼요.”


겨울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던 의사의 말이 부표처럼 둥실 떠오르며 아들의 가슴을 찔렀다.


“...그냥 마음 편하게 누워서 쉬세요.”


늙은 창기병이 조용해진 뒤, 데어티스는 월급이 든 주머니를 고스란히 동생에게 넘겼다.


“오빠. 이번 달 약값이 너무 많이 나와서...”

“알았어.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까. 걱정 말고.”


방으로 돌아와 창을 열었다. 달과 별이 잘 보였다. 지옥이 아닌 것처럼 생겨먹은 지옥 속에서 데어티스는


“형! 뭐해?”

“아이 시발 깜짝이야!”


창 너머에서 갑자기 차보주하가 나타나 깜짝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이 개새끼 진짜 존나 깜짝 놀랐네.


“아 왜 그렇게 놀란대? 죄졌어요?”

“미쳤냐고 새끼야? 너 지금 야밤에 상급자 사는 집 담 넘어 들어온 거야?”

“뭐래? 내가 이 집 담 넘어 다닌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었는데 뭘 또 새삼스럽게...”


차보주하는 여느 때처럼 느물거렸다.


아 저놈 새끼가 담 넘고 정원 가로지를 동안 나는 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술 취해서 담 넘다가 나자빠져서 병신 되면 어쩌게?”

“말짱해요.”

“그럼 내가 병신 만들어줘?”


차보주하는 그제야 찔끔해 입을 다물었다.


킁킁. 어? 뭐야. 술 냄새가 안 나잖아.


“...너 술 마시러 간다고 하지 않았냐?”

“아니 그냥... 심심해서 산책 나왔다가... 이거 먹으라고 가져왔어. 술도 한 잔 해요.”


구운 닭과 술병 하나가 건네졌다. 닭이 든 종이봉투가 아직 따뜻했다.


“...들어올래?”

“아니, 아니야. 형. 사실은... 말할 게 있어서 온 거거든. 저기 그... 뭐시냐... 형. 나 이거 이제 그만두고 도시 가서 도제생활 하려고 생각 중이야. 오늘 술 한 잔 하면서 얘기하려고 했었는데...”


또다시 놀란 데어티스는 잠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냐고? 그걸 이제 와서 얘기해 나한테?”

“아이 그게...”

“다른 놈들은?”

“다들 알고 있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당황한 모습을 본 차보주하가 고소해하는 표정으로 히힛, 하고 웃었다.


“미안해요. 형한테는 말하기가 어렵더라고. 이상하게.”

“그럼 오늘 술 산다던 게...”

“그렇지. 눈치 한 번 더럽게 빠르시네.”


비꼬려고 한 말이었는데 데어티스는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 진짜 이 등신은 다 안 좋은데 이 눈치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야.


“야 그래도... 갑자기 도제라니. 그거 장인 될 때까지 사람 취급 못 받는다고 그러던데. 요즘은 장인 다는 것도 다 빽이 있어야 되는 거고, 돈도 제대로 못 받아가면서 고생만 한다고들...”


익숙하지도 않은 일 하다가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라고 말하려던 데어티스는 말을 뚝 잘랐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가 말이 씨가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아니야. 아니었어. 나도 그 동안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애, 형. 걔들은 기술을 배우잖아. 당장은 돈도 잘 못 받고 등골 빼 먹혀도 기술은 남는다고. 그걸 생각을 못했던 거야 우리가.”

“야 그래도 그렇지...”

“아 나도 이렇게 고향에서 살다가 고이 늙어 죽고 싶었지. 그냥 이 일 해가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고. 그런데 여기는 전망이 없잖아.”

“...”

“이러다가 여기도 드래곤 모가지 따이면? 용화 꺼지고 빙하기 오고 황무지 되면? 우리 전부 다 바로 실업자 되는 거야. 실업자만 되나? 근무태만으로 영창 갈지도 모르는데. 여기 영주랑 귀족들이 화풀이 안 할 것 같애?”


반박을 할 수가 없어서 슬픈 순간이었다.


“죽은 땅이야, 여기는. 사람이 살려고 오는 거 봤어? 오래 전부터 끝물이었잖아.”

“그러니까 그 드래곤이 안 죽게 우리가...!”

“형. 그 새끼들은 밥 먹고 온종일 드래곤 잡아 죽일 궁리만 하는 놈들이야. 선수들이라고. 우리가 드래곤 슬레이어들이랑 경쟁이 돼? 장비가 있기를 해, 보급을 제대로 해줘? 우리가 오늘 뭘 먹었는데? 윗놈들이 횡령해 쳐 먹다가 흘린 거나 주워 먹고 왔잖아. 기억 안 나?”


차보주하는 고개를 저었다.


“잘 있어. 형. 그냥... 인사하려고 온 거야.”

“...들어왔다 가지 그러냐.”

“무슨? 아니야. 내가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고... 아저씨도 편찮으신데 뭐 굳이...”

“동생한테는? 할 말이 있을 거 아니야.”


움찔한 차보주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날 처음으로 겁먹은 기색을 얼굴에 드러냈다.


“...알고 있었어?”


데어티스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바보냐 그걸 모르게? 들어와서 인사라도 하고 가.”


차보주하는 창밖에 서서 잠시 고민을 하더니 정말 창을 넘어 들어올 것처럼 창틀에 손을 얹었다가는 이내 손을 뗐다.


“아니야. 형. 지금 얼굴 보면 못 떠날 것 같애.”

“...괜찮겠어?”

“형. 그냥 내가... 돈... 그래 그놈의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올 거라고 전해줘. 몇 년 뼈 빠지게 고생해서 장인 달면...”


차보주하는 데어티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말했다.


“꼭 돌아올 거니까. 고향으로.”


이제 저 쪼끄만 놈까지 남자흉내를 내보겠다는 건가,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데어티스는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려주었다.


“그래. 알겠다.”

“그때까지 내 칼 맡아줘. 십부장님.”

“칼?”


창병이어서 장검을 찰 수 없는 놈이 갑자기 칼이라니 뭔가 싶었지만, 차보주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칼집과 함께 뽑아서 내밀었다.


“...그거 니네 아버지 유품이잖아. 너 도시가 얼마나 험한 덴 줄 알아? 눈 두 번 연속으로 깜빡이면 코도 잘라간다던데.”


데어티스는 받지 않고 손을 밀어냈다.


“무기가 더 필요할 걸? 야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있는 거 중에서 쓸 만한 거 있으면 가져가라. 뭐하면 내 장검 가져가든지. 나는 한 자루 더 있으니까.”


차보주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실은 나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는 걸로 얘기가 됐거든. 하루 종일 칼 만들 건데 뭘.”

“방위산업체?”

“응. 요새 많이 뽑는다고 하길래, 지인 통해서 얘기 한 번 넣어봤는데, 오라더라고. 일손이 모자란대.”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러면 이 자식도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건가. 어쨌거나 나라에서 굴리고 있는 업체라면 월급 떼일 걱정은 없겠군 그래.


안심한 데어티스가 슬며시 웃었다.


“알았다. 잘 됐네. 넌 어릴 때부터 칼을 참 좋아했었지.”

“그래.”


차보주하가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면서 옛일을 입에 올렸다.


“기억나? 어릴 때 내가 형 꼬드겨서 아저씨 칼 몰래 건드렸다가 잡혀가지고...”

“아이고 시발 그때 내가 진짜... 야 말도 마라.”

“그때도 형이 뒤집어써줬었지. 고마워. 나 그 칼이 되게 갖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 형이 차고 다니는 거 보면 애초부터 그 칼 임자는 형이었던가 봐. 뭐, 나는 이제 내 칼을 내가 직접 만들게 되겠지만.”


데어티스는 조금 전 아버지가 자기 손을 잡아챌 때와 똑같이 차보주하의 손목을 턱! 소리 나게 잡아챘다.


이번에는 데어티스가 차보주하의 눈을 직시했다.


“아무리 칼 차는 게 좋아도, 전쟁에는 나가지 마라. 이용만 당하다 죽는다.”


특히 너같이 물러터진 놈은 절대 살아남지 못할 거야.


갑자기 손목이 잡히자 찔끔 놀라는 듯싶던 차보주하는 픽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알아. 동네 사람들 다 알고 있어. 형네 가문이 당했던 일.”

“...그래.”


놓아준 손을 그대로 흔들어 보인 차보주하는 다시 정원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제대기념 선물을 들고 부엌으로 가보니 나모사윤은 불도 켜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구 왔었어?”

“아... 차보주하가 왔었는데. 이거 먹으라고 가져왔더라. 먹을래?”


반색을 하면서도 대놓고 좋아하지는 못하고 오빠 눈치를 보면서 덤덤한 척을 했다.


“응... 마침 배고팠는데. 잘 됐네.”


언제 말해주는 게 나을까.


“...도시로. 간다는 것 같던데.”


데어티스의 생각에는 괜찮은 타이밍 같았는데 여동생에게는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나모사윤은 구운 닭이 담긴 봉투를 떨어뜨렸다.


그렇지만 예상했던 일이어서 데어티스는 능숙하게 봉투를 받아냈다. 나모사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아... 그렇구나... 여긴 뭐... 희망이 없으니까. 어디 가든 잘 살겠지.”


그런 여동생이 너무 안쓰러워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하려던 데어티스는 우뚝 손을 멈췄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서였다.


“나가 봐.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아차.”


군대에서 쓰는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을 다듬었다.


“이 새끼 아직 집에 안 갔어. 분명히 근처에서 서성대고 있을 테니까.”

“응.”


데어티스는 자리를 비운 여동생을 대신해 아버지의 침대를 지켰다.


잠든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며, 끝내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불운한 참전자의 얼굴 주름을 헤아려 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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