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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드래곤 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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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태권
작품등록일 :
2022.12.03 17:47
최근연재일 :
2022.12.09 22:45
연재수 :
2 회
조회수 :
63
추천수 :
0
글자수 :
9,124

작성
22.12.07 21:48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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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0쪽

드래곤 루즈

DUMMY

“드래곤... 아름다운 생물이지.”


커튼처럼 드리워진 노을 속에서 근무시간이 끝났다. 산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정면에


귀족을 포함한 모든 민간인의 야간 이동통행을 금지함


이라는 푯말을 내걸고 있던 산림감시원 차보주하가 데어티스를 돌아봤다.


“예? 뭐가요 형?”


무심결에 튀어나온 형이라는 호칭에 흠칫 놀란 데어티스는 주변에 누구 들은 사람이 없는지 살피려고 두리번거렸다.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도 데어티스는 완전 정 떨어졌다는 표정으로 차보주하를 노려봤다.


그 싸늘한(?) 눈길을 마주한 차보주하는 그 고지식함에 기가 막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시발. 근무도 다 끝났는데 저러고 앉았네. 그까짓 것도 벼슬이라 이거냐. 아 내가 남이냐고?’


그렇지만 어쨌든 데어티스는 분명 차보주하의 상관이었다. 차보주하는


“아 방금 하신 말씀을 제가 잘 못 들어서 여쭤봤습지요, 십부장 나리.”


라고 빈정거렸다. 그 비꼬는 억양에 또다시 데어티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차보주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시발 어쩌라고. 존댓말 해줘도 저 지랄이네?’


데어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혼잣말한 거야.”


노을은 소리도 없이 능글맞고 고즈넉하게 다가와 있었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기름지고 붉었다. 온 세상에 단풍이 든 것 같은 마법적인 풍경이 둘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가을은 이미 완연했다. 이제 와서 그 누구도 뒤집을 수 없을 것처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을 때는 잡담도 좀 하고 그래도 되는 거 아닌가?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삭막한 놈이 돼버린 거냐고? 어릴 때는 안 그러더니만...’


차보주하는 진입방지장치를 마저 끌어내려 쇠사슬로 단단히 잠그고는 다시 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데어티스에게는 휑하니 등을 돌린 채 사실상 창고와 대기실과 초소를 겸하고 있는 벽과 지붕을 향해 앞서 걸어갔다. 데어티스는 여전 눈썹을 찌푸린 채 그대로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갑옷 쩔그럭 거리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에 낙엽 밟는 소리가 섞였다. 전혀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소리가 그날만은 어쩐지 성가시지 않고 가지런한 음악 같이 들렸다.


“교대할 놈들이 아직도 안 오네... 하아...”

“뭐야. 또 늦어? 아 이 새끼들 존나 빠져가지고...”

“으이그...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요 형. 이 돈 받아가면서 여기 붙어있는 것만도 신기하지 뭐. 늦었다고 갈구면 또 어디로 도망갈지 어떻게 알아? 그럼 충원 어떻게 하려고?”

“흥.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데어티스가 답잖게 말꼬리를 흐리는 건 반박을 못하겠다는 걸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평생 동안 그 꼬락서니를 지켜봐온 차보주하는 속으로 픽 웃었다.


“슬슬 날씨가 추워질 것 같던데. 올겨울에는 긴장 안 하고 살아도 되겠지...?”


말발이 딸리면 날씨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것도 여전하군.


“눈 내리면 제설이 또 문제잖아.”

“제설이야 뭐 사람들 다 하는 거고. 눈 오면 통행도 줄어들 테니까, 미친놈들도 이쪽으론 안 오지 않을까 싶어서.”

“미친놈들한테는 계절이 없어요 형. 정해놓은 철이 없는 새끼들이잖아. 그리고 내가 드래곤 슬레이어라면, 제설하는 틈을 노려서 한 번 둥지에 잠입해 보겠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때서야 초소 안으로 들어온 창병 둘이 경례를 했다. 두 놈 다 들떠 있었다.


흥. 아무리 쥐꼬리만 한 월급이어도 월급날은 월급날인 모양이지.


“야. 뭐하다가 이제야 기어들어와?”


데어티스가 못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으면 차보주하가 후임들을 갈구고 으르는 루틴이 다시금 반복됐다.


“산림감시임무가 장난 같애? 여기가 이 마을에서 제일 위험한 데야 새끼들아. 정신 똑바로 차려. 알았어?”


실실거리며 쪼개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월급날이니 얼차려는 생략하고 넘어가주기로 할까.


어쨌든 데어티스는 녀석들이 초소 안으로 다 들어온 뒤에야 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차보주하는 그 꼴을 보고 또 한숨을 내쉬었다.


-제4검문소 이상 없음. 산림감시원 교대 완료.


서명을 마친 둘이 나란히 퇴근길에 올랐다.


“형. 월급날인데 술이나 한 잔 하러 갈까? 오랜만에.”

“아니. 집에 가봐야 돼.”

“아 오늘은 내가 쏠게요. 형도 너무 돈 걱정만 하지 말고...”


데어티스는 대답도 없이 고개만 저었다.


“아니 집에 좀 늦게 간다고 뭔 일 생기나? 내가 뭐 비싼 거 사준다는 것도 아닌데.”


데어티스는 또 말없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차보주하는 지금 데어티스가


‘하급자한테 식품 또는 주류의 접대를 받는 것은 부당이득이며, 군율 위반에 해당’


한다고 잔소리를 하려다 그만둔 것을 알아차리고 또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알았어요. 알았다고...”


아 이걸 그냥 팍 씨... 아니다. 창으로 찔러봤자 피 한 방울도 안 날 텐데.


*


밤은 노을 뒷면을 가물가물하게 만들면서 찾아왔다.


데어티스는 월급날이 즐거웠던 때가 언제쯤이었는지 돌이켜보려 했지만 기억은 이미 어둠처럼 막막해져 있었다.


대출이 문제였다. 아니 대출과 소출과 지출이 다 문제였다.


“...그나마 집세는 안 나가니 다행이지...”


퇴근길은 어두웠다. 외롭고 쓸쓸한 길이었다.


마을에는 빈집들이 즐비했다. 간혹 불이 켜져 있는 집이 보이면 반가운 느낌까지 들 지경이었다.


‘저 집이 누구 집이었더라...?’


저녁 시간에도 사람들이 복작거리던 거리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먼 옛날의 일인 것만 같았다.


지옥이라는 곳이 있다면... 이곳처럼 조용하지 않을까.


문을 따고 정원을 가로질렀다. 저녁 짓는 냄새가 났다.


“다녀왔어요 아버지.”


인사를 대신하려는 듯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잦아드는 데 드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노을처럼 능글맞고 고즈넉하게, 아버지는 어둠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고생 많았구나.”


그런 소릴 하면 기침이 잦아들어봤자 나아지는 게 없잖아요.


라고 말하려던 데어티스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부엌에서 저녁을 하다가 거실로 나온 여동생에게 슬쩍 물었다.


“오늘 안 좋았어?”

“응 오빠. 환절기라 그런가봐.”


가는귀를 먹어 낮은 목소리는 못 들을 줄 알고 했던 말이었는데 꼭 그 말을 들은 것처럼 아버지가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내쉬는 숨에 안타까움이 들어있지 않아서 아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아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왜 그래 또?”

“오빠. 저녁은?”

“먹고 들어왔어 차리지 마.”


거실의 아버지를 의자와 함께 들고 침실로 들어갔다. 가벼웠다.


“창문을 닫아라.”

“예? 아직 날이 아주 차갑지는 않던데. 의사도 신선한 공기가 좋다고 했잖아요.”

“전쟁 나갔다가 죽은 놈들이 자꾸 그리로 들어와. 머리맡을 얼씬거리고 있어.”

“여기를요?”


그 ‘죽은 놈들’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아버지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 창을 닫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미안하다. 신분제가 있었을 때랑 똑같구나. 모든 명분이 다 거짓말이었어. 그저 압제가 더 교묘해지기만 했던 것뿐인데... 남은 거라곤 망령들뿐이다. 도대체 뭘 위해서 싸웠던 건지... 쿨럭!”

“차라도 끓여 올게 오빠.”


그러나 아버지는 차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날따라 답잖게 말이 많았다.


“혁명이라는 건 다 거짓말이다. 모든 게, 뱀의 독 같은...”


데어티스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 퇴근을 했고, 방금 자신의 손으로 창문을 닫아 놓고도.


어쨌든 창문은 닫혀 있었다.


휴우... 다행이네.


“큰일 날 소리 하지 말아요 아버지.”


아버지는 대답 없이 손가락을 뻗어 벽을 가리켰다.


“내가 죽으면 저것들은 다 내다 버려라. 불살라버려. 쿨럭!”


벽에는 혁명원로 휘장과 참전자 표창장이 걸려 있었다. 그렇지만 훈장은 없었다. 그건 작전에 참가하지도 않았던 귀족 놈들에게 줘야 했으니까.


데어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것들을 치워버리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버지한테는,


이라고 말하려다 그냥 듣고만 있기로 했다.


“우리 손을 빌려 제 상전을 죽이고 그 자리를 훔친 것뿐이야. 뒤에 숨어서 간악한 말들을 지어내 증오를 만들어내고 싸움을 붙였던 놈들이 권력을 가로챘다. 폭군이 설치던 때보다 학정이 더 간교해졌을 뿐... 나아진 건 아무것도. 쿨럭! 쿨럭!”


아 그렇지. 병. 그렇다.


다시 생각하니 휘장과 표창장 말고도 아버지가 얻은 게 있기는 했다.


“사자 한 마리가 나서서 설치고 죽이는 빼앗고 것보다 쥐 삼백 마리가 숨어서 창고를 털어먹는 게 더 위험했던 거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지. 이제 무슨 수로 막겠느냐. 삼백 마리나 되는 쥐새끼들을...”


어쩌면 이 얘기를 하려고 일부러 창문을 닫으라고 한 걸지도 몰라.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해 미안하구나... 하지만 다 속아서 한 일이었다.”

“괜찮아요. 원망 같은 거 한 적 없으니까.”

“너를... 대학에 보냈어야 했는데. 이 죽일 놈들이... 전쟁 끝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제 놈들이 싸지른 새끼들만 시험도 없이 대학에 쳐 넣을 줄은 몰랐구나. 바보처럼. 시험으로는 절대로 출세할 수 없는 놈들이 관료가 되고 의사가 되고 ... 쿨럭 쿨럭!”

“그런 얘기 해봐야 이제 늦었지 뭐. 누가 들으면 어쩌게요? 일찍 주무세요. 흥분하면 몸에 안 좋댔어요.”


턱!


침대 옆을 돌아 방을 나가던 아들의 손을 아버지가 잡아챘다. 흔치 않은 일이어서 아들은 다시 놀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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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RAGON LOSE 22.12.09 25 0 10쪽
» 드래곤 루즈 22.12.07 3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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