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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소금i 님의 서재입니다.

프리스크 시프트(shift)

웹소설 > 일반연재 > 팬픽·패러디

완결

i소금i
작품등록일 :
2016.08.23 18:13
최근연재일 :
2016.09.23 22:0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2,531
추천수 :
133
글자수 :
124,286

작성
16.09.13 00:00
조회
271
추천
4
글자
9쪽

Do not shift

DUMMY

내 얼굴이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무표정해졌다.


나는 닫힌 엘리베이터 옆, 커다란 눈알이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은 장식이 올려진 문 앞에서 세이브했다. 고무로 싸인 단열재의 피복이 벗겨져 마치 소장이 꼬인 것처럼 보이는 장소였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불이 꺼진 작은 방이었다. 띠릭띠릭 소리가 들렸다.


“이런, 이런 마침내 오셨군요.”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형체가 보였다. 네모난 박스 모양인 것이 말을 했다.


“저희가 처음 만난 이후 전 뭔가 섬뜩했어요.”

“당신은 괴물들에게 위협일 뿐 아니라 인류의 위협이기도 해요.”


내가 이곳에서 몰살루트를 좀 수행하고 있기로서니 저것이 말하는 ‘당신’이 플레이어를 가리키는 ‘나’인 걸까. 게임 좀 했다고 당신은 인류의 위협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아시다시피, 관중 없이는 스타도 될 수 없답니다.”

“게다가...”

“제가 지키고 싶은 이들이 있어요.”


나는 걸음을 내딛었다. 네모난 박스 같은 것이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 하 하.”

“언제나처럼 열심이군요, 에?”


그것이 나였다.


“그 다이얼은 만지지 마요.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진짜 팬들은 알겠지만, 전 처음에 인간 청소 로봇으로 만들어졌었어요.”

“좀 더... 사진이 잘 받는 몸을 갖게 된 건 스타가 된 이후지요.”


내가 지루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박스 모양인 것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원래의 기능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답니다.”

“가까이 오기라도 한다면, 저의 진짜 모습을.”


박스 모양인 것이 숨겼었던 양 손을 꺼내 올렸다. 박스의 한쪽 손에는 작은 물건이 들려 있었다.


“보여줄 수 밖에요!”


박스의 손에 들린 물건은 여전히 마이크였다.


“좋아요, 그럼 준비 되셨나요?”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하얀색 빛이 방을 가득 채웠다. 내가 시야를 되찾았을 때는 네모난 박스 모양은 사람로봇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텅 빈 나는 이제 다 깨뜨려 꺼낼 것이 얼마 남지 않아버린 회상을 꺼내었다.


메타톤. 재미있었었다.




...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메타톤. 재미있었었다.


그리고 어, 음. 그래. 재미있었다. 퀴즈쇼도, 살인 로봇과 함께 하는 요리교실도, MTT뉴스 폭탄해제 뉴스도, 저주 연인이 나오는 오페라도.


그리고 함께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던 마지막 공연은. 공연. 공연은 화려했고 자극적이었고 불빛 아래에서 기쁨도 슬픔도 위기도 탄성도 총천연색으로 반짝였지만 이곳의 모든 것은 연극.


하지만 연극이라고 거짓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잡히지 않는 인기를 좇음을 부나방 같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가. 불빛을 향해 춤을 추는 나방의 내면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면 부나방의 죽음을 슬퍼할 일만은 아니었다.


나는 힘없이 사그러들려 하는 회상을 다시 끄집어내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지어낸 내 멋진 드라마틱한 포즈에, 그린 듯이 가리키는 내 손끝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며 환호하는 시청자들, 빛에 빛을 더하여 완전히 새하얘진 스포트라이트가 나에게 기둥처럼 작렬하며 환성과 갈채가 나를 향해 쏟아지던 때.


그 순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짜릿하게 타고 오르는, 세상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것 같은 황홀한 감각.


너의 공격을 내가 피하면 여러 대의 카메라는 푸르고 노래지며 주변을 맴돌았었다. 나는 가끔 메타톤의 공격을 하나도 맞지 않을 것이라고 허세를 부려 시청자를 긴장시켰다. 때론 내 턴에서 시청자를 조롱하여 다음 턴 메타톤에게 얻어맞고 ‘정의구현’ 시청률이 폭증하기도 했다.


내가 먼저 메타톤을 공격하여 액션씬 포인트를 받기도 했고, MTT브랜드 글램버거를 먹어 식품 PPL 덕을 보기도 했다.


위기는 진짜 위기가 아니었고 허세는 진짜 자신 있어서 부린 것이 아니었으며 정의구현도 진짜 내가 나빴기 때문은 아니었었다.


그랬기에 위기의 순간에 나는 드라마틱한 포즈를 클로즈업 시켜 시청자를 감탄시켰고, 허세를 부리면서도 속으로는 시청자와 같이 긴장했으며, 정의의 니킥을 얻어맞은 다음 턴부터는 다시 즐겁게 모두와 어울릴 수 있었었다.


공연이어도 좋았다, 연극이어도 좋았다, 이것이 실제가 아닌 방송이어도, 아니 방송이기에 더 좋았다. 그렇게 원 없이 한바탕 신나게 놀았을 땐, 나는 네가 살짝 미친 로봇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네가 없었으면 나 역시 재미있게 놀지 못했을 것임을 인정했으니.




메타톤은 메타톤 네오로 변신해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에게의 고비는 아까 남았었던 마지막 한 마리였다. 파피루스의 말을 넘은 나는 메타톤을 공격했다.


“당신은 제 팬클럽에 들어오실 생각이 없는 건가요?”


메타톤과의 전투는 한 턴 만에 끝났다. 고장나버린 로봇을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게 현실적인 결말이라고. 방탄소년단이 방탄되는 것은 아니라고.


소개한 말과 행동은 ㅡ인간 청소 로봇ㅡ 그럴싸했지만 메타톤은 전투용이 아닌 오락용이었다. 이 결과는 전투기계에게 오락프로그램을 맡겼을 때 생길 일과도 같은 참사였다. 사랑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쓸모에 맞지 않게 나를 가로막았지만 메타톤은 시간조차 많이 벌지 못하고 고철이 되어버렸다.


메타톤은 금속 육신을 가지고 있는지라 다른 괴물들처럼 먼지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쓰러지며 막은 입구가 절묘하여 나는 낑낑대며 메타톤의 잔해를 넘어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매우 오랫동안 탔다. 계속되는 높은 진공음에 익숙해지다 못해 약간 불안해질 무렵,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괴물들의 수도였다. 나는 잿빛 도시를 거닐었다. 도시는 건물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인간들의 대도시보다는 못하여 6, 7층 건물이 대다수였다. 쌍둥이처럼 서로 마주보는 건물 양식이 특히 많았다.


고적했다. 인적이 없었다. 회색, 연한 갈색의 건물들이 매우 조용했다.


나는 뉴 홈으로 들어갔다. 플라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가워, 드디어 집까지 왔구나.”

“여기서 같이 놀던 거 기억나? 히히힛.”

“신난다. 오늘은 그때처럼 재밌을 거야.”


플라위는 오늘 내가 무엇을 당할 것이라고 예상하기에 재밌다고 하는 걸까. 플라위가 나를 따라왔다. 플라위는 묻지도 않은 자기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정원에서 깨어났던 때 팔다리가 없어지고 자기 몸뚱이가 꽃이 되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엄마! 아빠! 도와주세요!”

“그렇게나 소리쳤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어.”


나는 생각했다. 이래서 순둥이는 안 된다는 거라고. 아스리엘 대신 ‘ ’가 꽃으로 깨어났더라면 이 세계는 지금과는 달랐을 거다. 이미 해피엔딩을 맞았던지, 반대로 진작 멸망했던지.


플라위는 아스고어 왕에게 자기 상태를 설명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은 아스고어의 반응을 플라위가 평가했다.


“놈은 엄청 감정적이었어.”

“눈시울을 붉히며 자, 자, 다 괜찮아질 거란다. 라고 말했지.”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어.”


나는 진짜 칼과 로켓을 장비했다.


드디어.


집을 둘러보아 두 개의 열쇠를 얻었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대화상자가 내가 아닌 자신이 체인을 풀었다고 강조해왔다.


“곧 내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더라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지.”

“내 동정심이 사라진 거야!”


플라위는 그래도 동정심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왕과 몇 주를 보냈지만 벅찬 일이었다고 했다. 나는 이해했다.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은 지독히도 힘든 일이었다. 그것을 불가능에 가까웠다.


“난 집에서 도망쳤어. 그러다가 폐허에 도착했지.”

“안에서 그 여자를 찾았어.”

“그 여자라면, 내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 줄 것 같았거든.”


토리엘은 이쪽 분야에서 독보적이었다. 플라위에게 아주 작은 감정의 실오라기라도 남아 있었다면 토리엘은 분명 성공했을 것이다.


“...”


플라위가 표정을 바꾸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실패했어.”

“하 하.”

“그 둘은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 난 낙담했어.”


나는 폐허의 집과 똑같은 구조의 지하실을 걸었다.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는데.”

“그저 누군가를 신경써주고 싶었다고.”


플라위가 사랑해주고 신경써주고 싶었다던 누군가, 그 누군가는 과연 누구였을까?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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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9 사만다
    작성일
    16.09.17 23:58
    No. 1

    알피스.... 그러게 왜 플라위를 깨워서 ㅜㅜ.... 물론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아스리엘은 차라리 그냥 잠들어있는게 나았을 것 같아요. 플라위가 되었던게 가장 큰 고통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ㅜㅜ 지금 제 모습을 본다면 감정적이라머 플라위는 질색을 하겠지만.... ㅜ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i소금i
    작성일
    16.09.18 12:09
    No. 2

    저도 진 연구소 들어갔다가 알피스 탓한 적 있어요. 이녀석 실험을 잘 하던가 관리를 잘 했어야지ㅡㅡ. 불살 마지막 때 알피스에게 저걸 좀 봐, 이게 무슨 민폐야, 융합체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어, 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당사자인 플라위도 불쌍한 일이고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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