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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하사담 님의 서재입니다.

The Pe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7.06.26 15:34
최근연재일 :
2017.08.1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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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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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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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2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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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6. 두 개의 태양은 없다(4)

DUMMY

33


오후 내내, 원장의 주변에는 그를 보호하려는 듯 건장한 남자 두 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래서 그를 응징하는 것은 좀 더 미루어야했다.


그날 밤, 원장의 집 주변.


"총수야, 어쩌려고?"

"넌 집에 가 있으라니까. 왜 자꾸 성가시게 따라다녀?"

내가 투덜대며 말했다.


"야. 그래도 같이 있어야지. 의리 없게 어떻게 먼저 가냐?"

"넌 있어 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괜히 짐만 되지."

"어, 이걸 보고도?"

무라가 주먹을 쥐어 보였다.


"치. 그까짓 걸 가지고 뭘."

내가 비웃었다.


"그럼, 내게 능력을 좀 더 주던가."

무라가 입을 삐죽였다.


"···그래. 그게 좋겠네."

내가 수첩을 꺼냈다.


"일단, 몇 가지만, 응? 그리고 너, 앞으로 나랑 같이 일하는 거다?"

내가 무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 그럼. 그래야지. 으허허허."

무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먼저 담을 넘어갈 테니까. 넌, 나를 따라와."

"어, 담을···? 어떻게?"

무라가 당황하며 물었다.


"나만 따라 해."

내가 급히 말하고는 공중으로 날아 담을 사뿐히 넘었다.


"초, 총수야."

무라가 들릴 듯 말 듯 나를 불렀다.


"야, 뭐해? 빨리 안 오고."

내가 나지막하게 담 너머로 말했다.


"어, 어···. 어."

무라가 담을 넘어 땅바닥에 어설프게 착지했다. 그의 표정은 잠시 넋이 나간 듯했다.


"야, 정신 차려!"

내가 속삭이듯 말하고는 현관 쪽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 주변은 보안 장치가 설치되었다. 물론 경고음이 울린다고 해서 내가 놀랄 일은 아니지만,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먼저 현관 입구와 창가 주변에 달려있는 보안 장치를 무력화해야 했다. 나는 손을 뻗어 보안 장비를 쥐고는 뜨거운 열로 녹여버렸다. 무라도 나를 따라 팔을 길게 늘였다. 무라는 신기한 듯 함박웃음을 머금고 보안 장비들을 녹이고 있었다.


"야, 다 됐지?"

내가 물었다.


"응. 히히히."

"그럼, 들어간다?"

내가 현관문을 잡으며 말했다.


불이 꺼진 거실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안방으로 향했다. 방문이 잠겨있지는 않았다. 방 안으로 들어선 나는 스위치를 켜고 불을 밝혔다.


침대에는 원장 부부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내가 침대 곁에 다가가 남자를 툭 건드렸다. 반응이 없다.


“어이!”

나는 또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여자가 먼저 눈을 떴다.


"어머!"

여자가 기겁을 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제야 남자가 눈을 떴다.


"···으으, 뭔데?"

"나야 나."

내가 웃으며 말했다.


"헉! 다, 당신!"

원장이 나를 알아보고 놀라는 눈치다.


"여, 여보. 누구예요?"

그의 아내가 물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원장이 애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싫어. 내가 기회를 줬는데도, 네가 네 발로 찼잖아? 근데, 이제 와서 또 그러는 건···"

내가 흐릿한 미소를 머금고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가 뭘 모르고···"

원장은 흐느끼며 말했다.


"뭔지 모르지만, 살려주세요. 네?"

원장의 아내가 간곡하게 말했다.


"걱정 마요. 당신은 죽을 이유가 없으니까."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이들은···?"

내가 그의 아내를 보며 말했다.


"이···층에."

그의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어서 데리고 나가요. 더러운 꼴 보여주기 싫으면."

내가 방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아내가 잠시 머뭇거린다. 내가 고갯짓으로 그녀를 재촉했다. 그러자 원장을 힐끔 쳐다보고는 이층으로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울리더니 조금 후에 아이들이 보채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다시 쿵쾅거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잠시 후, 대문이 다급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원망해도 상관은 없지만, 이렇게 만든 건··· 결국 너야. 안 그래?"

내가 냉랭하게 말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네?"

"싫다고 했잖아. 사람이 좋게 대하면, 고마워할 줄 알아야지. 왜 깔아뭉개려고 해? 왜!"

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원장의 몸속에 있던 수분이 천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가 점점 말이 없어졌다. 나는 그를 끝까지 응시했다.


"인. 과. 응. 보."

나는 계속 중얼거리며 양심의 가책을 떨쳐 버리려 했다.


그의 몸이 온전히 얼어붙었다.

"뭐해?"

내가 무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응?"

무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부수지 않고."

"···어? 응."

무라가 주먹 쥔 손으로 그의 몸을 가격했다.


원장의 몸은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며 부스러졌다. 바닥에 나뒹구는 조각들을 발로 문지르며 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나쁜 게 아니잖아? 이 자식이 그렇게 만든 거지."

"···그, 그럼. 잘했어."

무라가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지? 후후···. 그래, 맞아. 착하고 나쁜 기준이 뭔데. 결국은··· 상대적인 거야.”

“어···으, 맞아.”

무라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지를 발견한 나는 발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의 기억을 지워야 했다. 그래도 한 집안의 가장이 아닌가. 가장의 처참한 최후를 기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듯했다. 단순한 사고로 기억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이제 가."

펜을 품속에 넣으며 내가 말했다.


"응? 어, 그래."

무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층으로 가서··· 나가자."

내가 턱짓을 하며 말했다.


"응, 그래."

무라가 먼저 안방을 나갔다.


파이어!


나는 손바닥을 펴고 안방을 향해 불을 뿜었다. 안방 커튼에 붙은 불이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조각난 얼음 덩어리가 서서히 녹으며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방을 가득 채운 화염이 내 얼굴에 적나라하게 전달되었다.



34


며칠 후.


나니는 무혐의로 경찰서에서 풀려났다. 유 형사가 손을 쓴 것이다. 무라와 나는 나니를 만나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우리와 같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냐고.


억울한 일을 당해봐서 그런지 그녀가 흔쾌히 승낙했다. 설지, 설대, 유지, 나니, 무라, 유 형사, 그리고 나 모두 일곱 명이다. 이제 얼추 사람이 모여진 듯하다.


그날 저녁. 여섯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설지 집이었다. 유 형사는 어차피 내 수족이나 마찬가지여서 굳이 참여가 필요 없을 듯했다.


"설대 형. 이제··· 뭘 하죠?"

내가 물었다.


"사람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고···. 그럼 이젠 땅을 마련해야지. 새로운 왕국을 만들 땅. 어디가 좋을까?"

설대가 주변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제주도?"

나니가 자신 없게 말했다.


모두가 수긍한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래. 좋네. 제주도. 어차피 땅은 차츰차츰 넓혀 가면 되는 거니까."

설대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제주도를 우리 땅으로? 어떻···게요? 땅따먹기 하는 것도 아니고."

무라가 궁금한 듯 물었다.


“머, 그건···, 총수가 알아서 하겠지? 히히히. 안 그래?”

입장이 난처했던지 설대가 화살을 내게 돌렸다.


일을 벌여놓기만 하고, 수수방관하는 사람이 있다. 설대는 전형적인 그런 인물이었다. 흔히 입만 살았다고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 말이다. 젠장, 내가 저런 사람 말을 듣고 행동으로 옮겼다니, 자괴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새로운 왕국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 시선을 의식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어렵지 않지. 우선, 그곳에 있는 군, 경 간부들을 내 사람으로 포섭하면 되고. 그러고 나서···”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을 이어갔다.


“그곳 주민들이 깜짝 놀랄만한 복지 정책을 내세운다면··· 우리 편이 되지 않을까···요? 정 안되면 많은 돈을 준다고 하지 머.”

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모두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펜이 있는데. 가서, 닥치는 대로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지 머.”

내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가만 내버려 둘까? 괜히 그러다··· 저쪽에서 공격이라도 해 오면?"

무라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까짓것, 그러면 전쟁이지.”

설대가 당연한 듯 말했다.


“누군가 우리 왕국을 침략해 온다면··· 해야 하지 않겠어? 안 그럼, 순순히 내어 줄 거야?”

내가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려면···, 군대가 있어야 하는데.”

설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당연히 총수가 만들겠지, 군대."

설대가 나를 보며 말했다.


"굳이 만들 것까지야. 이 펜으로··· 그곳에 있는 군대를 우리 것으로 하면···"

내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먼저 제주도로 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유지가 흥분하며 말했다.


"그렇지. 우리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그다음에 하나 씩 진행해 가야지."

설대가 호응하며 말했다.


"자기야, 언제?"

유지가 들뜬 얼굴로 말했다.


"뭐··· 언제든지."

설대가 주변 눈치를 살폈다.


"제주도를···, 새로운 우리 왕국으로···"

내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될까?"

무라가 나를 보며 말했다.


"······"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오므렸다.


"그럼, 당장 가. 응?"

유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당장···요? 비행기 표도 구해야 하고, 당장 어떻게···?"

나니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날아서 가면 되죠?"

유지가 당연한 듯 말했다.


"아, 맞다. 우린 날 수가 있지. 호호홍."

나니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야간 비행은 모두에게 생소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왕국을 찾아 떠나는 그들의 표정만큼은 들떠 있었다. 내가 선두에 섰고 나머지 사람들은 기러기 떼처럼 브이자로 늘어서 뒤를 따랐다.


내가 첫 목적지로 삼은 곳은 서귀포에 있는 강정마을 해군기지였다. 제일 시급한 것은 군대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군인을 펜만으로 포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휘 라인만 우선 포섭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한참을 날아가다 보니 부대 주변을 밝히는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고도를 좀 더 낮추니 경비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내가 먼저 방문하기로 한 곳은 해병대였다. 해병 여단장의 프로필을 확인 나는 그가 우리를 환대하도록 펜으로 적어두었던 것이다. 해병대 훈련소 근처에서 내린 우리는 부대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 소총수라고 합니다. 여단장님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내가 말하자 경비병이 정색하며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우리를 인도해 줄 장교가 나타났다. 우리는 지프차를 타고 어두운 부대 안을 빠르게 이동했다.


그 장교는 여단장의 집무실까지 우리를 안내했다. 군대의 중압감에 압도된 우리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여단장이 피곤한 기색으로 우리를 맞았다. 별로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단장은 우리를 잘 알지는 못할 테니까.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나요?”

여단장이 물었다.


“아뇨. 초면입니다.”

내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집무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라는 창밖을 살며시 내다보고 있었다. 설대는 방문에 귀를 대고 밖의 동태를 살폈다.


“마스터. 제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여단장이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여길 접수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지?”

내가 말했다.


“물론입니다만, 여기라 하면···?”

“제주도.”

“아, 네···. 물론 가능하지요. 제가 있는 곳이 무적 해병 아닙니까. 으허허허.”

“여기 근무하는 장교들, 인사기록 좀 가져오고. 그리고 내일, 간부 회의를 소집할 수 있겠나?”

내가 말했다.


여단장뿐만 아니라 모든 지휘 계통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35



제주도로 넘어온 지도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모든 준비가 끝난 듯하다. 언론과 경찰, 군대까지 장악하였으니 겁날 것이 없다.


중문 근처에 있는 고급 주택을 우리의 아지트로 장만까지 했다. 집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에메랄드 빛 고운 바다가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였다. 물론 야외 수영장까지 갖추어진 집이었다.


현금도 수시 때때로 끌어 모았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금괴도 집 창고에 쌓여갔다. 어디선가에서 여기 창고로 이동해 온 것이겠지만.


이제 제주 해군기지는 나의 통제 하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경찰청장과 해양경찰청 수뇌부도 우리 사람으로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주 시민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제주도는 이미 나의 새로운 왕국이 된 것이나 진배없었다.


설대의 바람처럼 왕국을 다스릴 왕족들의 역할이 대충 나누어졌다. 설대는 군대를, 무라는 경찰을, 나니는 언론사를, 유지는 행정부를 통제했다. 그리고 설지는 금융기관을 맡기로 했다. 물론 총괄적인 컨트롤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앞으로 일주일 후인, 8월 15일. 그날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알리는 D-day였다.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시민들이 과연 우리를 지지할까? 내게 문득 드는 의문이었다.


"형,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만약에···"

나는 설대의 생각이 궁금했다.


"만약에 뭐?"

설대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시민들이 우릴 지지하지 않는다던가, 정부에서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땐 어쩔 건데요?"

"뭘 어째. 그냥 붙는 거지. 승자 독식."

설대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피를 보자고요?"

내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했다.


"필요하면··· 어쩔 수 없잖아?"

설대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자기야. 이 옷 어때?"

유지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녀 뒤로 설지도 보였다.


"어, 이쁜데. 어디서 났어?"

설대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유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개량 한복을 리폼한 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궁궐 복장처럼 보였다.


"응, 시장에서. 설지랑 같이 샀는데, 괜찮지?"

"응. 어울려. 허허허."

"자기도 하나 해. 우린 좀··· 뭔가 달라 보여야 되잖아, 안 그래?"

"그렇지. 그래야지. 언제 갈까?"

'지금 가. 며칠 안 남았잖아? 서둘러야지."


"총수야, 같이 안 갈래?"

설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생각 없어요."

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는 설지를 밀치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무라와 나니가 다정하게 소파에 누워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나니가 몸을 일으켰다.


"어, 왔냐?"

무라가 텁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뭐해?"

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뭐하긴, 그냥 있지.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무라가 투덜대듯 말했다.


"···아니, 그냥. 다들 너무 태평해서."

내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하하하. 제주도는 이미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는데. 넌 참, 걱정도 많아요."

무라가 비아냥대듯 말했다.


"왜요, 뭐··· 걸리는 거라도···?"

나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막상 일이 커지니까···, 겁이 나서요."

내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펜이 있는데···, 너무 걱정 마요. 잘 될 거예요."

나니가 싱긋이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마침내 D-day가 되었다.


나는 설지와 함께 방송국으로 향했다. 설대는 해군기지에, 무라는 경찰청에 비상경계를 지시한 상태였다.


저녁 9시. 나는 뉴스를 통해 제주도가 새로운 왕국으로 탄생했음을 만천하에 선포할 생각이었다. 국호를 '탐라왕국'이라 칭하기로 했다.


데스크에 나와 설지가 나란히 앉았다. 큐 사인이 들어오고, 나는 준비해 간 원고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시간부로 제주도는 별도의 국가인, 탐라왕국인 될 것이며 모든 통치는 본인이 하게 될 것이다. 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탐라왕국을 떠나도 좋다. 단 다시 탐라왕국으로 들어올 경우에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할 것이다.


탐라왕국의 시민에게는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될 것이며, 노후도 왕국이 책임지고 보장해 줄 것이다. 또한 기혼자에게는 주택을 무상 제공하고, 최저임금이 월 500만 원이 되도록 할 것이다. 양육비도 취학 전까지 1인당 월 백만 원을 지급할 것이다. 물론, 이 금액도 매년 상향 조정될 것이다············.


탐라왕국의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며 지금 당장 제주 시민에게 우체국 계좌로 1인당 이천만 원이 지급될 것이다. 우체국 계좌가 없는 사람은 내일 직접 우체국을 방문하여 돈을 찾아가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탐라왕국을 떠나도 좋다. 이주비용도 탐라왕국이 부담할 것이며, 단 기한은 보름이다······. 남은 자들에게 새로운 왕국 시민권이 부여될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우리가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증명해 줄 영상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슛 사인이 나면서 기나긴 나의 연설은 끝이 났다. 이제 반응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방송사고, 내지는 장난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방송국으로 시민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왔다.


나는 설대와 무라에게 연락하여 주변 분위기를 파악했다. 별다른 반감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더러는 장난이라도 기분은 좋네, 라고 말했다며 웃기까지 했다.


"설지야. 어떻게 됐어?"

내가 물었다.


"네. 거의 작업이 끝나······"

설지가 모니터를 확인하며 말을 이어갔다.


"방금 끝났어요."

"그래?"

나는 현장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설대 형, 어때?"

"뭐···, 다들 좋아라 하지. 커커커. 돈 싫다는 사람 있냐?"


"무라야. 거긴 어때?"

"소리 안 들려? 환호성 치고 난리 났어."


시민들은 자신들의 계좌에 이천만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는 장난이 아님을 인식한 듯했다. 내일 해가 뜨고 나면 시민들의 의중을 좀 더 명확히 알 것 같았다.


나는 설지와 함께 방송국을 나섰다. 시민들이 우리를 알아보는 눈치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환호성이 공기 중에 널리 울려 퍼진다. 나는 그 환호성을 즐기며 한참을 비행했다. 해병대 연대장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더 오래 날았을지도 모른다.


"그래, 왜?"

"마스터. 국방부 장관의 연락입니다. 지금 거기 무슨 일이 벌여지고 있는지 보고하라고."

'하하하. 머, 예상했던 일이잖아? 일단 시간을 좀 끌어 봐."

나는 흐릿한 미소를 머금고 전화를 끊었다.


무엇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지지였다. 내일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초조하다. 입에 침이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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