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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명의 글방

철혈의선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진필명
작품등록일 :
2010.07.22 14:05
최근연재일 :
2009.12.03 07:0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04,074
추천수 :
642
글자수 :
30,706

작성
09.11.26 08:44
조회
71,042
추천
99
글자
7쪽

철혈의선 1장 안문관의 봄1

DUMMY

鐵血醫仙


1 안문관의 봄


산서성의 북방 안문雁門.

기러기도 넘기 힘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안문이었으니 안문은 험준한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험지였다.

안문에는 만리장성을 따라 우뚝 솟아 있는 안문관雁門關이 있었다.

안문관은 산서에 있는 만리장성의 관문 중 가장 견고한 곳으로 한대에는 흉노의 침입을 막았고 송대에는 거란의 침입을 막아냈다.

지금은 중원을 백년가까이 지배하다가 북으로 쫓겨 간 몽골의 남하를 막는 전략상의 요충지다.

이곳이 무너지면 바로 북경의 숨통이 막힌다.


그 안문관의 성루 위에는 불어오는 북풍을 맞으며 도도히 서 있는 청년이 있었다.

질끈 묶은 머리에 영웅건을 두르고 허리춤에 검을 비껴 찬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청년.

육척 장신에 호리호리한 몸매라 얼핏 보면 문약한 서생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꼿꼿한 모습을 보자면 절도 있게 살아 온 무인의 기상이 엿보였다.

길게 뻗은 검미는 청년의 기개를 말해 주는 듯했고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매는 굳건한 의지와 지혜가 가득 담겨 있으니 봉목鳳目이라 할 만 했다.

우뚝 솟은 콧날에 한 일자로 꽉 다물어진 입술은 감히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위엄이 서려있었다.

싸늘한 월광에 비친 청년은 일견 비정해 보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오욕칠정을 초월한 고승처럼도 보였다.

청년의 눈은 안문관을 따라 꼬불꼬불 나 있는 소로를 훑는 것 같기도 했고 그저 멍하니 상념에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청년의 뒤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용린갑龍鱗甲을 입은 장수가 서 있었는데 그는 뭔가 청년에게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신색이었다.

그는 안문관을 책임지고 있는 이곳 위지휘사사의 영반 지휘사 노창해의 아들 노윤이었고 정오품 정천호의 무관직에 있었다.

그는 나태한 부친을 대신해 안문관의 군영을 총지휘했으니 그의 말은 이곳에서 곧 법이라 해도 좋았다.

노윤은 청년을 한참 노려보더니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혈랑대교血狼隊校, 사행곡에서 화광탄이 솟아 오른 지 한참이 되었다. 가지 않을 건가?”

노윤의 음성은 서릿발 같이 차가웠고 위압적이었지만, 청년은 마치 한가한 상춘객賞春客이 봄날의 야경이라도 즐기는 듯 둥근 달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슬쩍 고개를 돌렸다.

청년의 눈빛은 바람이 일지 않는 날,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도 같이 고요하기만 했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노윤은 청년의 그런 모습에 울화가 치미는지 버럭 고성을 내질렀다.

“명령이야, 어서 가라고. 이러다간 수색대가 전멸을 해.”

하지만 청년은 노윤의 절친한 친구라도 되는 듯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 와 노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조용히 속삭였다.

“네가 가라 사행곡. 이제 혈랑대도 쉬고 피 먹은 칼도 쉴 시간이야.”

“뭐, 뭐라고?”

노윤은 몸을 떨며 분해했지만 청년은 그의 뺨까지 토닥거리며 나직이 말했다.

“까불다 맞지 말고 그런 분노는 접어 놨다가 전장에서나 토해.”

멀리서 본다면 친한 친구의 다정한 격려로 보일 법한 광경이었다.

노윤은 이를 갈며 분해했지만 청년은 휘파람까지 불며 당당한 걸음으로 성루의 계단을 내려갔다.

안문관의 북방 관외 수백 리 또한 명나라의 영토이긴 했지만 수시로 몽골군이 침입하니 명군은 정병을 관외에 두지 못하고 관문 안에 주둔시켰다.

기마술에 능한 몽골군의 기습을 평지에서는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그러고는 일이 생길 때마다 병력을 파견했다.

관외에 있는 사행곡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지만 청년은 근무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노윤의 출동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내성에는 십 수 명의 병사들이 등갑藤鉀을 입고 무기를 든 채 정렬해 있었다.

등갑은 등나무로 만든 갑옷으로 가볍고도 효과가 좋아 일반 병사들이 착용하는 갑옷이다.

이마에 혈랑이라 써진 띠를 두르고 있는 걸로 봐서는 이들이 바로 청년이 맡고 있는 혈랑대가 분명했다.

청년이 그들을 스쳐지나가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혈랑대, 해산! 푹 쉬고 사흘 뒤에 보자.”

혈랑대는 사흘을 근무하면 사흘을 쉰다.

사흘을 쉬는 것은 특혜였지만 전공에 비하면 과분한 포상도 아니었고 또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었다.

몽골의 정예군이라 할지라도 혈랑대를 만나면 먼저 퇴로부터 찾아 헤매는 지경이니 그들에게 혈랑대는 지옥의 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청년의 명령이 떨어지자 질서정연하게 줄 지어 있던 병사들이 등갑을 벗고 무기를 내 던지며 소란을 떨었다.

“대장! 잘했어. 혈랑대가 호구야? 어서 가서 술이나 한잔 빨아야지.”

“에고, 오늘도 피로 목욕을 했네. 이게 사람이야 악귀야?”

“정말 힘들어 못해먹겠다.”

혈랑대가 소란을 피울 때 청년은 이미 내성 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서북 변방의 최북방.

사십 리를 남하해야 사람이 살 만한 곳이다 싶은 대동이 나오고 안문관의 주위에는 민가가 없다.

집이 있다면 그것은 병사들의 군막이자 숙소였다.

농기구를 들고 밭을 갈면 농부가 되고 창을 들고 나서면 병사가 된다.

변방에서 번을 쓰는 병사들에겐 전장이 곧 집이고 집이 곧 전장인 것이다.

사방 삼십 리가 군영이지만 그렇다 해서 이곳의 삶이 그리 적막하고 살벌한 것만은 아니다.

장신구와 각종 잡동사니를 파는 잡화점이 있고 도박장이 있다.

또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 주는 고리채업자, 말과 사람을 사고파는 중개인까지 있고 술청이 즐비하다.

말이 좋아 술청이지 웃돈을 주면 연어처럼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영계까지 품을 수 있는 색주가이기도 하다.

물론 합법은 아니다.

하지만 공공연히 행해지는 일이다.

이런 맛까지 없다면 누가 척박한 변방에 붙어 있겠는가?

군령이니 대명률이니 하며 시시콜콜 따지는 놈이 몇 명 있긴 했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그 일을 관해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 일을 문제 삼았던 놈들은 다 죽었기 때문이다.

밤에 오줌을 싸다가 등에 칼이 꽂혀 죽기도 했고, 자다가 목이 잘려 황천길로 빠지기도 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만인이 좋은 일에 토를 달면 안 된다.

그럼 대략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그런 일에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질 필요도 없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면 된다.

선친이 말했다.

‘세상을 바꾸려 말고 그저 순종해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선친의 그 말만은 진리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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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철혈의선 3장 강남의 달1 +19 09.12.03 35,318 65 7쪽
9 철혈의선 2장 혈풍혈우4 +24 09.12.02 33,597 56 7쪽
8 철혈의선 2장 혈풍혈우3 +14 09.12.01 33,440 68 7쪽
7 철혈의선 2장 혈풍혈우2 +16 09.11.30 34,372 51 7쪽
6 철혈의선 2장 혈풍혈우1 +17 09.11.29 36,224 93 7쪽
5 철혈의선 1장 안문관의 봄5 +18 09.11.28 35,406 55 7쪽
4 철혈의선 1장 안문관의 봄4 +17 09.11.27 35,681 49 7쪽
3 철혈의선 1장 안문관의 봄3 +16 09.11.26 36,782 50 7쪽
2 철혈의선 1장 안문관의 봄2 +15 09.11.26 42,877 55 7쪽
» 철혈의선 1장 안문관의 봄1 +28 09.11.26 71,043 9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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