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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유

작곡 천재의 힐링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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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유
작품등록일 :
2024.09.10 13:46
최근연재일 :
2024.09.19 11:21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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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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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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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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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슈퍼라이드

DUMMY

난생 처음 ‘미팅’ 이라는 걸 하러 가는 날.


옷장 앞에 선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이런······.


마땅히 입을 옷이 없네?

SPA 브랜드의 무채색 티셔츠와 후드티. 그게 전부다.


‘대충 입고 갈까?’


잠시 고민했다.


사회 생활이라곤 클럽 DJ 1년이 전부였지만. 이래저래 주워 들은 정보들이 좀 있었거든.


매니저 형이 스치듯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옷을 입을 땐 티피오를 생각 해야 돼.’

‘그게 뭔데요?’

‘시간에 T, 장소에 P, 상황에 O. 뭐 간단하게 분위기를 맞추란 뜻이지.’


아, 그렇다면······.


투미 엔터면 엄청 큰 회사다.

심지어 만나는 사람은 곽영호 대표다.

존경까진 아니지만··· 나 역시 그 사람의 곡을 듣고 자란 세대다.


어쩌면 업계 선배가 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저녁 시간, 으리으리한 투미 사옥, 미팅.


오호, 이거지.

역시 사람은 배워야 돼.


자신있게 손을 뻗었다.

입대 전, 선배 결혼식 간다고 사입었던 정장이다. 무난무난한 감색 정장에 하늘색 셔츠.


······꽤 괜찮은데?

착장으로 각오와 다짐을 보여줄 요량이었다.


이때만 해도 분명히 그랬는데······.


***


투미 엔터테인먼트 대표, 곽영호.

아침 댓바람부터 직원을 급히 소환했다.


잠시 후,

텅빈 커피잔 같은 눈을 한 남자가 비척비척 대표실로 걸어들어왔다.


A&R 팀장 박민석이었다.


“밤 샜냐?”

“죽겠어요.”

“데모 많이 들어왔지?”

“칠백곡 정도?”

“고생이 많다. 어떻든?”

“뭐 그냥 그렇죠? 일단 1차 선별만 해둔 상태죠. 최종 선별 때 보고 드릴게요. 어후, 피곤하다.”


곡 한번 수집했다 하면 수백 곡은 그냥 쏟아진다.


아마추어, 프로 할 거 없다.

일단 찔러는 본다.


박 팀장이 곽영호 대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고작 이런 얘기나 하자고 밤샌 사람 부른 건 아닐텐데. 피곤함에 졸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물었다.


“근데, 뭐 중요한 일 있어요?”

“응. 있어. 엄청 중요하지.”

“뭔데요.”

“나를 잠못자게 하는 곡이 나타났다. 곧 큰 거 온다.”


사내에서 곽 대표를 부르는 별명이 있다.


곽레발.

별 일 아닌 걸로도 호들갑을 떨며 설레발을 떨어댄다.


뭐 얻어 걸리는 게 간혹 있긴 해도.

타율이 좋진 않다. 대부분 뜬공이다.


오늘도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내색은 할 수 없다.


설레발 들어주는 것도 월급 값의 일부라 생각하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우와, 그것 참 기대 되네요. 가슴이 쿵쾅쿵쾅 두근거리는걸요? 무슨 일이길래요?”

“이번엔 진짜 달라.”

“예.”

“유진이, 사고쳤다.”

“예?”


박 팀장의 눈이 땡그래졌다.


“설마 또 자작곡 들고 왔어요? 하, 작곡을 가르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럼 너 안 불렀지. 내 선에서 바로 캇트.”


곽 대표가 목에 손날을 대고 흔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는 건가?


“유진이가 글쎄.”

“네.”

“세상에.”

“네.”

“섹시 콘셉트를 한다는데?”

“네?”


이건 또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래.


아······ 그냥 바쁘다고 하고 들어가서 잠이나 잘 걸.


발랄, 쾌활, 명랑, 순수, 청량.

그 이미지 만든다고 들어간 돈이 얼만데.


섹시? 세엑시?

차라리 토끼 머리띠를 하고 동요를 하는 게 더 나을 지경이었다.


“박 팀장이 곧 심정 내 심정······이었지. 이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유명 트로트의 노랫가락이 떠올랐다.


섹시는 아무나 하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듣고만 있었다.


나오는 건 한숨 뿐이었다.

이 양반이 한유진을 유독 예뻐하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건······ 좀?


“박 팀장. 나도 고민 많이 했다. 근데 이번엔 진짜야.”

“저번에도 진짜라고 하셨잖아요?”

“그땐 유진이 고집이 진짜였고.”

“이번엔요?”

“곡이 진짜야.”

“누구 곡이길래요. 뭐 부산도깨비 정도면 인정.”

“신인인데. 아니, 신인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 프로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야. 알지? 신인이 가진 그 풋풋함이 있잖아. 그러면서도 비트 만지는 솜씨가 능숙해.”

“야마가 있다고요?”

“고로취!”


곽 대표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음, 그 정도라고요.”


누구보다 곽영호 대표를 잘 아는 박민석이었다.


신인이란 얘기에 회가 동했다.


일단 곽 대표는 신인을 믿지 않는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어찌저찌 만들어 냈다고 해도 뒤를 장담하기 힘들다.


널리고 널린게 프로인데 굳이 도박 수를 던져야 하냐며 신인을 단호히 기피했던 그다.


검증된 곡만 쏙쏙 발라내는 그가 신인 곡을 들이민다? 궁금하긴 했다.


“비트는 부산도깨비한테도 안 꿀려. 진짜.”

“에이, 설마요.”

“부산도깨비가 곡을 준대도 안 받지.”

“대표님, 거짓말도 비슷하게 해야죠. 방금 약간 사심 담겼는데요?”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외계인이랑 싸우면 내가 바로 발라버림’ 급의 허세다. 외계인이 와야 싸우지.


한 마디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란 소리.


부산도깨비.

발로 곡을 써도 도쿄돔은 프리패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세 작곡팀이다.


트렌드를 명확하게 집어낸다.


한유진한테 곡을 줄 확률? 없다.

절을 해도 모자랄판에 신인이랑 비교해? 너무 나갔다.


아, 직장생활 개힘들다······라는 말을 겨우 삼기며 말했다.


“얼른 들어나 보죠.”

“내가 너 10초만에 잠 깨게 해준다.”

“시간 더 끌면 1초만에 잠들 수도 있으니까 얼른요.”

“딱 대기 해라.”


곡이 시작됐다.


가제는 《슈퍼라이드》


“······!”


10초는 무슨.

3초면 충분했다.


도입부 두 마디를 듣자마자.


“······누구라고요?”


박 팀장이 눈을 번쩍 떴다.

각성제라도 삼킨 것처럼 잠이 확 달아났다.


이 악기는 뭐지? 차임스? 비브라폰?

드럼 없이 묵직하게 표현을 했네? 이게 되네?


음악 오타쿠 아니랄까봐.

당장이라도 창작자를 만나 묻고싶었다.

밸런스까지 완벽하다. 초보가 잡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심지어······,


“가이드 없이 작곡가가 이런 느낌 내기 쉽지 않은데.”


가사도 없다.

스캣으로 적당히 처리했다.

두바두바, 샤바다바.

의미 없는 단어를 리듬에 맞추어 부른 것 뿐.


박 팀장의 반응을 본 곽 대표가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었다.


대신 ‘어서 너의 감상을 얘기 해 봐!’를 눈빛으로 발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잠시 뜸을 들이던 박 팀장이 말했다.


“야마 있네요.”

“그치?”

“언제 온다고요?”


***


으리으리한 사옥이었다.

내가 언제 이런데를 또 와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돌아다니는 사람도 하나같이 멋있고, 잘났고······ 자신감 넘쳐 보였다.


“대표실은 20층입니다. 방문증 드리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방문증을 만지작거렸다.

방문증만 목에 걸었을 뿐인데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복도엔 음악이 흘렀다.


대표실이 있는 층이라 그런가?

예전 곽영호 대표가 만든 초기 아이돌 곡이 자랑스레 흘러나오고 있었다.


되게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거라 생각하며 복도 중앙에 섰다.


세상에······

복도에서 한강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유리에 언뜻 비치는 내 모습을 점검했다.


머리 체크 OK, 의상 체크 OK, 신발 체크OK, 얼굴 체크 OK.


‘크으. 정장이 신의 한 수네.’


안 꿀릴려면 이 정도는 입고 와야지.


만족스럽게 대표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어? 반가워요. 근데 혹시 어디 장례식이라도 다녀와요?”

“대표님. 정장 입은 작곡가, 귀한데요?”


제대로 된 인사도 하기 전부터.


어째 분위기가 좀 묘했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탓일까.


뭐냐. 나 오늘 엄청 신경 쓰고 왔는데.


‘······이 사람들은 엄청 편하게 입고있네.’


그래도 고까운 표정은 아니었다.

잠시 인사를 나눈 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 명은 대표님. 한 명은 팀장님.

익숙지 않은 자리다.

나름 인터넷에서 숙지한 ‘명함을 받은 뒤 행동 요령’을 따라하고 다소곳이 앉아 말을 기다렸다.


“우리, 악수 먼저 해요.”


팀장이라 소개한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악수를 나누었다.

대표라는 사람이 껄껄대며 말했다.


“진짜 처음 맞네요.”

“네?”


젠장.

역시 멋지게 악수 하는 방법도 보고 왔어야 하는 건가? 내 악수가 그렇게 어설펐나 싶어 다음 행동요령을 궁리하는 찰나,


“세상에. 작곡가가 정장을 입고 왔어.”


대표의 말에 팀장이 덧붙였다.


“저 보이죠? 이게 국룰.”

“아······?”


그러고 보니까······

미팅인데도 편한 차림이다.


“우리 대표님이야 원래 멋쟁이라 저렇게 쫙 빼입고 다니지.”

“되게 멋있긴 하세요.”

“음악하는 사람들. 대표가 아니라 의장이 와도 후드티 뒤집어 쓰고 와요.”

“왜요? 엄청 중요한 미팅인데.”

“전투복.”

“예?”

“군대 다녀왔죠?”

“네.”

“일종의 전투태세랄까. 언제든 밤을 샐 준비가 되어있다는 거죠.”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프로와 아마추어에 차이는 있겠지만.

트랙 붙들고 밤 새는 거야 일상이다.

그런 뜻이었구나.


“다음엔 편하게 입고 와요. 불편한데.”

“네. 그럴게요.”

“음······ 좋아. 우리 다시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알아 들어도 되겠죠? 곽 팀장.”


대표가 눈짓하자 팀장이 잽싸게 노트북을 가져왔다.


노트북에선 내 곡이 흘러나왔다.

내가 한유진을 위해 만든 진짜 내 곡, 슈퍼라이드.


이렇게 타인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놓고 내 곡을 함께 듣는 건 처음이었다.


걱정도 됐었다.

꼭 발가벗겨진 것처럼 느껴질까 겁도 났다.


그런데······

이 분위기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입이 근질거렸다.

빨리 곡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대표님, 나 먼저 얘기해도 되죠? 아, 태윤씨라고 했죠. 서 작가님이라 불러야 되나?”

“작가님이요? 저는 작곡가인데······.”

“으허헛.”


두 사람이 배라도 잡을 듯 깔깔댔다.

왜 내가 무슨 얘기만 하면 웃냐고······.


“작곡가를 작가라고 불러요.”

“아.”

“설마 했는데 진짜 신인 맞네. 그건 그렇고, 서 작가님.”

“네.”

“어떻게 만들었어요?”

“아, 저는 프로툴 사용하고요. 딱히 장비가 화려하진 않아요. 그냥 무난무난 한 거? 알려드려요?”

“그거 말고요.”


박 팀장이 마우스를 딸깍였다.

곡이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 전에, 유진이 친구라고 들었는데.”

“아닌데요.”

“아니라고요?”

“별로 안 친한데요.”

“아? 그럼 더 대단한데?”

“······?”

“유진이를 보고 어떻게 이런 곡을 떠올렸어요. 나 그게 너무 신기해서.”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보였어요.”

“보인다?”

“한유진 씨가 하고 싶어하는 음악요.”

“여태 귀염뽀짝한 것만 했잖아요.”

“귀염뽀짝한 것만 한 건 아니죠.”


내가 본 한유진을 얘기했다.

연말 무대를 본 소감, 예능에서 보여준 모습, 보이는 라디오에서 불렀던 곡······.


영상을 보고 내린 내 결론은,


“자신을 되게 드러내고싶어 하는 사람이었어요.”

“유진이 성격 알아요?”

“잘은 모르지만······ 의외로 차분한 것 같아요.”

“그런 면이 있죠. 솔로 1집 때문에 고민도 많을 거고. 복잡한 개인사도 있고. 그럼 오히려 그런 곡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 사람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내가 물었다.


“팀장님은 혹시 고민 같은 거 없으세요?”

“있죠? 결혼도 하고 싶고, 집도 사고 싶고,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싶고.”

“그런 건 다들 하는 고민이잖아요. 그런 거 말고. 아무에게도 말 하고 싶지 않은 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박 팀장이었다.


“있다고······치고. 근데 그게 왜요?”

“자신을 드러낸답시고 그 고민을 노래로 만들어서 만천하에 공개하라면 그러고 싶으세요?”

“당연히 싫죠.”

“한유진 씨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면서요.”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고 꼭 깊은 내면이나 고민을 표현해야만 하는 건 아니죠.”

“그럼?”

“욕망이요.”

“그래서 섹시 컨셉 잡은 거예요?”


뭔가 오해하고 있는데?


정정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잡은 컨셉은 섹시가 아니다.


“아니요. 그건 섹시가 아니라 페이탈이죠.”


작가의말

귀한 걸음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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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라면’ 스킬 +1 24.09.14 186 12 12쪽
2 클럽 시에라 영업 재개 +1 24.09.13 224 13 12쪽
1 매혹적인 비트 +1 24.09.12 274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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