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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유

작곡 천재의 힐링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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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유
작품등록일 :
2024.09.10 13:46
최근연재일 :
2024.09.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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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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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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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진짜 내 음악

DUMMY

곡을 들으면 사람이 보인다.


곡에 빗대 자신을 표현하려는 사람, 곡에 본심을 숨기려는 사람.


내가 본 한유진은 후자였다.


나와는 다르다.

내가 S면 그녀는 N.


나는 곡으로 욕망을 표현한다.

내 리믹스는 늘 화려하고 자신있다.


곡에 본모습을 숨긴다. 실제로는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성향이니까.


‘정 반대란 말이지······.’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의 나열이 아니다.


곡 뒤에 숨긴 의도를 찾아내는 것.

곡에 숨은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


이게 내가 음악 듣고 뜯는 진짜 이유였다.


그리고 이제는······,


‘재밌겠다.’


진짜 내 음악이 하고 싶어졌다.


낡은 헤드폰을 귀집어 썼다.

피씨에 연결하자 삐이- 하는 고주파음이 귀를 긁었다.


오랜만에 88건반을 꺼냈다.


한유진을 보며 떠올린 반주와 멜로디를 차곡차곡 담았다.


담담하게 시작하는 도입부.

차분한 피아노 선율이 곡의 시작을 알린다.


F – Bb – Am7 – Dm7로 시작해 Gm7 – C7 – F – C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흐름.


멜로디가 돋보이도록 최대한 절제해 구성했다.


핵심은 조화.


‘키는 이 정도면 되겠고······.’


한유진은 복잡한 사람이었다.


주입된 발랄을 연기하나 내면은 차분했다.

적어도 내가 볼땐 그랬다.


그래서 만들었다.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고······ 환자도 벌떡 일어나게 만들 정도로 힘을 주는 곡.


내게 처음으로 찾아온 영감이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담아야지.


그런데,


‘왜지?’


이상했다.


분명 한유진을 보고 떠오른 멜로디를 정직하게 담았음에도.


머리는 이게 맞다는데 가슴은 아니란다.


의자를 뒤로 젖혔다.


이게 아닌가? 대체 왜?

역시 아직 창작은 무리인가. 내가 너무 작곡을 얕봤나?


어지럽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


‘어?’


눈 앞에 토끼 한 마리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낯이 익다. 한유진의 그림 속 그 녀석이었다. 녀석이 방방 뛴다. 마냥 웃기만 하면서.


나는 그냥 가만히 녀석을 살폈다.


혼자 춤을 춘다. 열심히.


화려한 점프를 하고 착지하는 순간 잠시 비틀거리던 것도 잠시. 세상 천진한 얼굴로 나를 본다.


눈이 마주쳤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빠르게 깜빡인다.


“아······?”


머리에 전구가 켜졌다.


허리를 바로 했다.

눈을 번쩍 뜨고 마우스를 잡았다.


한유진이 출연한 예능, 음악프로, 시상식 무대, 디렉팅 비하인드··· 볼 수 있는 건 다 들여다 보고서야 깨달았다.


본모습.

이 키워드를 표현하기 급급해 제일 중요한 걸 놓쳤다.


누군가 꽁꽁 감추고 싶은 내 본심을 까뒤집어 내어놓곤 소리친다. “여기 이 사람 우울하답니다! 발랄한 척 하는 거 다 가짜라니까요? 제가 딱 안다니까요? 보세요, 이게 진짜 모습입니다.”라고 외치면서.


심지어 확성기를 내게 준다. “이젠 네가 외칠 차례야. 네 걱정과 고민을 만천하게 공개하렴.”이라는 잔인한 말을 덧붙이며.


아니다, 이건 진짜 아니다.


급히 새 트랙을 열었다.


아까 본 뉴튜브 속 언뜻 들린 한유진의 말이 진심이길 바라며.


급히 새 트랙을 열었다.


‘오히려 이게 더 자신있지. 다 죽었어.’


차곡차곡 다시 트랙을 쌓았다.


자신감 넘치는 멜로디에서 한유진이 보였다.


그러다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예술병이란 얘기는 하지 말 걸 그랬나.’


새벽 세 시를 막 지나던 참이었다.


***


번쩍이는 트로피가 병풍처럼 놓인 투미 엔터테인먼트 대표실.


뚜벅뚜벅 들어온 한유진이 대뜸 말했다.


“나보고 예술병이래요.”

“푸크헠.”


무슨무슨 미술가가 만든 고오급 테이블 위로 아메리카노가 분수처럼 흩날렸다.


이 곳의 대표이자 메인 프로듀서.


곽영호가 언제그랬냐는 포켓 치프를 꺼내 입가를 닦으며, “어떤 새끼가?” 라고 물었다.


와중에도 품위 있는 미소는 잃지 않았다.


“친구가요.”

“너 친구 없잖아?”


곽 대표가 코를 벌름대며 한유진을 바라봤다. 멋쩍은 듯 다시 물었다.


“너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진짜 그래요?”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야?”


다음 앨범 얘기 하러 왔다가 갑자기 이게 웬 뜬금포?


더욱이,


‘틀린 말이 아니긴 해.’


마음으로만 품고 있던 생각을 당사자의 입에서 듣고 있자니 상당히 곤란했다.


그렇다고 하자니 삐칠 것 같고.

아니라고 하자니 계속 중증 환자일 것 같고.


이걸 어쩐담.

곰곰이 궁리한 끝에 묘수를 생각해냈다.


이름하야 되묻기 공격.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잠시 시간을 벌었다.


삐뚜름하게 앉아있던 한유진이 몸을 일으켰다. 한켠에 놓인 티슈를 뽑아 테이블을 닦으며 대답했다.


“좀 씁쓸하네요.”

“기분 나빠서?”

“아뇨.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요?”

“크흠······.”


앨범을 말아먹은 가수에게 일침을 날릴 간 큰 이는 없다.


대표는 그래도 되지 않냐고?

천만에. 대표 할애비가 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안 그래도 예민한데 괜스레 도발할 필요는 없다.


갑자기 뺑 돌아 ‘나 못하겠소.’ 배째며 동굴로 꽁꽁 숨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저 우쭈쭈, 하며 으쌰으쌰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게 최선이다. 여태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다.


그런데, 누가 감히 예술병이니 나발이니 그런 고얀 소리를 지껄였단 말인가.


내 이놈을 잡아다가 콱······.


“아니, 잠깐만. 유진아.”

“네?”

“Jeden이 너라는 거 아는 사람······ 몇 없잖아. 누구야. 찬민 대리? 승윤이?”

“회사 사람 아닌데요?”

“그걸 네 입으로 얘기 했어?”

“아뇨.”

“그럼?”

“알던데요?”

“에이, 술김에 얘기 했겠지.”

“좋은 얘기도 아닌데 그걸 왜 떠벌리고 다니겠어요.”


곽영호가 손을 휘휘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유명 프로 작곡가라면? 그럴 수 있다.

저마다의 특징이 지문처럼 묻어있을테니까.


자주 쓰는 악기라든지. 멜로디 흐름이라던지. 괜히 자가 복제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한유진은 아니다.

여태 쌓은 커리어가 없는데, 그걸 누가 어떻게 알아본다고.


첫 솔로 앨범이기에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애초에 불안했다.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잘 안 될거란 짐작은 어느정도 했다.


그럼에도 승낙했다.


그게 투미 엔터가 고집 센 가수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작곡이 애들 장난인가.

간혹 이리 싱어송라이터 나부랭이를 하겠다며 고집피우는 가수가 있다.


다른 게 예술병이 아니다.

쓸데 없는 창작물 들이밀면서 되도 않는 전문가 놀이 하는 거. 그게 바로 예술병이다.


‘설마 또 그러려고.’


조율이 되지 않는다면 아티스트의 손을 들어주는 척 판을 짠다.


잘 되면? 개이득.

안 되면? 이제 그 가수는 고집은커녕 작은 의견도 쉽게 내지 못한다.


완벽히 회사 체계에 자신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아이돌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2집은 스타일 바꾸는 게 좋겠지?”

“그러려고요.”


한 고비 넘겼고,


“너 기타좀 치지 않나?”

“좀 치죠.”


두 고비도 넘겼나 싶었던 찰나,


“근데 그런 건 좀 뻔하지 않아요?”


곽영호는 불안해졌다!


이거, 이거. 많이 듣던 레파토린데.


“그럼 뭐가 안 뻔한데. 어······ 너 뭐냐. 갑자기 왜 그래. 사람 불안하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유진이 들고 온 노트북을 쫘악 펼쳤다.


“설마 유진이가 또?”

“제가 써온 곡은 아니고요. 다행이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뭔데.”

“친구가 준 곡이요.”

“뭐? 친구?”


너 아직도 정신 못차렸니?

나 죽은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친구고 나발이고 이제 회사 말 들어야지.


단전 깊은 곳에서 본심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막아내고 다시 물었다.


“우리 유진이. 작곡가 친구도 있었구나. 제법 훌륭한 걸? 근데 말이야. 우리는 프로잖니? 의리, 우정, 친구. 뭐 한창 그런 거 좋아 할 나이지. 네 심정 알겠는데. 지금 중요한 시기잖아. 너도 알잖아. 이번에는······.”

“잠깐만요. 대표님. 말 끊어서 죄송한데요. 이거 하겠다는 거 아니고요. 잘 봐달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

“그냥 한 번, 딱 한 번만 들어봐주세요.”

“너······ 뭔가 있구나?”


열 두 살 때부터 봤다. 원하는 게 있으면 애원하며 사람 마음 약하게 만들던 녀석인데. 눈으로 애원하는 게 특기였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총기가 생겼다.


대체 어떤 곡이길래 한유진을 이리 결연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그럼에도 단호하게 대답했다.


“들어는 줄게.”


두 번은 없다.

그게 곽영호의 철칙이었다.


“지금 이 곡 들어주신 거, 후회 안 하게 해드릴게요.”


후회? 후회는 네가 작곡 배운다는 거 못 뜯어말린 게 천추의 후회지.


곽영호가 준비 됐다는 듯 턱짓하자 한유진이 바로 곡을 재생하고,


“······.”


도입부 첫 마디가 시작되자마자,


“······응?”


거만하게 앉아있던 곽영호가 허리를 벌떡 세웠다.


골똘히 곡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3분 20초가 흘러있었다.


이게······ 맞나?

한유진한테 이런 친구가 있었다고? 대체 누구?


“어때요?”


가사는 없었지만 느낌이 왔다.


능숙하게 곡을 끌고가는 몽환적인 리프는 절대 아마추어의 솜씨가 아니다.


긴 말은 필요없다.

곽영호가 답했다.


“야마 있네.”


극찬이었다.


***


무작정 곡을 보내고 사흘이 지났다.


분명 메일 수신 확인은 떴는데.

한유진은 연락이 없었다.


바쁜 일 있나? 까먹었나? 하고 태연히 넘기려 해도.


별론가? 초보의 냄새가 나나? 하고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딸깍딸깍-

애꿎은 트랙만 만지작거렸다.


‘어쩔 수 없이. 기회는 또 올테니까.’


운이 좋다 했다.

만화도 아니고.

우연히 만난 내 팬이 가수였고 곡을 준다.

이건 너무 희망 가득찬 판타지니까.


그러면서도.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빌고 싶었다.


이 곡을 부르는 한유진의 모습이 꼭 보고싶었거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머리만 쥐어뜯는데,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형이었다.


얼른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아, 깜짝이야. 뭐야, 기척좀 하지.”


어느새 내 방에 들어온 형이 내 모니터를 골똘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너 곡 쓰냐?”


황급히 알트탭을 눌러 화면을 전환하고 태연히 말했다.


“비싼 돈 주고 산 건데 시늉이라도 해야지.”

“트랙 복잡하던데. 누구꺼야?”


음······, 뭐라 둘러대면 좋을까.

아직은 형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진짜, 설마.

한유진이 내 곡을 멋지게 불러주면 짠! 하고 자랑할 요량이었다. 아직은 아니다.


“그냥 인터넷에서 받은 거. 일찍 왔네?”

“너도 요즘 일찍 온다. 알바 그만 뒀어?”

“내부 공사한다고 잠깐 쉬어.”


형이 내 머리를 흐트러트리더니 책상에 무언가를 던지듯 올려왔다.


“어?”


헤드폰이었다.

무려 백만원이 넘는 모니터링 헤드폰.


“오다 주웠다.”

“샀어? 에이, 나도 돈 많아.”

“돈 많아 좋겠다.”

“진짠데.”

“산 거 아냐. 회사에서 주더라.”

“이런 비싼 걸?”

“카르 알지?”

“카르 모르는 사람도 있나.”


카르. 힙합 씬에서 제일 잘나가는 힙합 가수다. 지금은 형 회사 소속이고.


“카르 그 브랜드 모델 됐더라. 기념으로 싹 돌리던데.”

“이야······, 형 덕분에 이런 것도 써보네?”

“그거 이제 좀 버려라. 까만 가루 떨어진 거 봐라. 어휴.”


신나게 헤드폰을 뜯으며 물었다.


“통장 혹시 못 봤어?”

“아니, 왜.”

“봐봐.”


무심하게 폰을 보던 형이 잔고를 확인하곤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서태윤!”

“뭐.”

“백만원? 이거 뭐야.”

“알바 퇴직금 중간 정산 받았어. 대표님 바뀌었다고.”

“알바도 그런 게 있냐?”

“내가 좀 잘 하니까?”

“태윤아, 너 진짜 이상한 거 하는 거 아니지?”


걱정 될만 했다.

동생놈이 갑자기 100만원이나 보냈으니.


차분이 얘기했다.


“맹세하고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하지 말고. 형, 나 얘기할 거 있는데.”

“뭔데.”

“나 음악 해보고 싶은데······.”


한유진이니 DJ이니 이런 얘기는 쏙 빼고 적당히 얘기했다.


어차피 장비도 사야하고.

제대로 해보려면 형의 도움도 필요할테니.


“그래. 뭐든 하는 건 좋은거지. 열심히 해 봐. 아, 피칭 청탁은 사절이다. 골 아파 죽겠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렇게들 난리를 치는지. 데모가 하루에 수백 개씩 오는데······.”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징징-

형이 일장연설을 하는 사이 휴대폰이 울렸다. 한유진이었다.


[ 선생님, 저희 대표님이 뵙고싶다는데요. 괜찮으실까요? 아, DJ란 말은 안 했어요! (토끼 이모티콘) ]


“아무튼, 딱 기억해. 혈연이라도 청탁은 사절!”


음······ 그 말 후회할텐데?


휴대폰을 내려놓은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글쎄. 곧 형이 나한테 곡 달라고 애원하지 않을까 싶은데?”


작가의말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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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시에라 영업 재개 +1 24.09.13 226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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