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무복. 피와 땀으로 젖은 칠흑 같은 머리카락.
사향내 대신 혈 향을 풍기는 미친 꽃, 광화.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이령을 칭하는 말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 지독한 피 냄새를 씻겨 줄 것처럼
푸른 비 내음을 지닌 사내가 나타난다.
“오랜만이다. 이령.”
10년 전, 황실 사냥터의 늑대에게서 그녀가 구해 줬던 소년.
한없이 순수했던 그, 사빈은 어느새 전장의 신이 되어 있었다.
“너를 갖고 싶어. 내 것으로.”
목숨값을 갚겠다며 밀어낼 틈도 없이 다가오는 사빈 때문에
모두가 천대하는 자신을 누구보다 귀히 여기는 그 때문에
“내가 너를 데리고 갈 것이다. 세상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미치도록 살고 싶어졌다.
■ 저자
■ 목차
1. 령아?
2. 기억의 저편, 그리고 지금
3. 내가 너를 지키게 해 줘
4. 심장이 하는 말
5. 욕망의 시작
6. 사랑아, 내 사랑아
7. 지켜야 하는 시간
8. 아픈 선택, 그리고 대가
9. 마지막 싸움
10. 청유
그 후의 이야기
■ 본문 중에서
“새벽이면 네 부하들이 우릴 찾으러 오겠지, 아마?”
사빈이 큭, 웃음을 토해 내다 미간을 좁혔다. 가슴의 상처가 칼로 저미듯 아파 왔기 때문이다.
“하아, 후.”
“많이…… 아픈 거야?”
장난스럽게 말하던 이령이 미간을 좁히며 사빈의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녀의 투명한 눈에 가득 걱정이 담겨 있었다. 따스한 물기가 가슴을 적시듯 사빈이 빙그레 웃었다.
“죽을 것 같다.”
“그러게 왜 앞은 막아서서는.”
퉁명스럽게 말하는 이령을 보며 사빈이 푸른 기가 가득 밴 입술을 열었다.
“널 지키고 싶으니까.”
“…….”
두 사람의 눈동자가 일렁이는 불그림자를 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답을 하지 못한 이령이 가만히 사빈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붉어진 눈이 일렁이는 것이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내어 보이는 마음 때문인지 가늠할 수 없는 그녀였다. 따스함과 단단함을 한가득 담고 있는 그의 눈빛에 저 깊은 마음속 어딘가가 자꾸만 간질거렸다.
“10년 전 그때처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니까. 그때처럼 네 뒤에 숨는 짓 따위 죽어도, 죽어도 다신 하지 않을 거거든.”
“…….”
“전장에 설 때마다, 누군가를 지켜야 할 때마다 그때를 떠올렸다. 그래서 다신 무엇에도 물러서지 않아, 난.”
거칠게 흔들리는 이령의 눈동자가 불빛에 드러나 보였다. 그 흔들림마저 너무도 고와서 사빈이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 뒤에 서면 안 될까?”
“뭐?”
“내 뒤에 숨고, 내 뒤에서 숨 쉬고, 그렇게 내가 널 지키면 안 될까?”
“이봐, 꼬…….”
“꼬마는 이런 거 하지 않는다.”
그 순간 사빈의 손이 그녀의 뒷목을 감아 왔다. 그리고 그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작은 입술을 삼켜 버렸다.
지독한 뜨거움이 닿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도 뜨거워 참을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녀가 입술을 연 것은. 자신도 모르게 열린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과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 이령은 질끈 눈을 감았다.
심장이 데일 것처럼 뜨거웠다. 이 뜨거움이 어쩌면 심장을 지나 온몸을 터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 만큼 그에게서 쏟아져 들어오는 뜨거움은 지독했다. 그리고 그 뜨거움은 그녀의 머릿속까지 익혀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그의 숨결이 자신의 안으로 스며들 때마다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는 듯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는 이령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의 숨결에 매달려 숨을 참는 것조차 한계에 다다랐을 때, 자신 앞에 있는 사내가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이 느껴져 왔다.
쏟아지던 뜨거운 숨결이 멀어지고 온몸을 조이듯 감겨 오던 그의 손이 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가 그대로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7월 4일 출간됩니다.
지역에 따라 배본에 차이가 있을 수 있사오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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