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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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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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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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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마지막 원로를 처리한 아슬론은 잠시 몸을 돌렸다. 그의 눈길이 향한 곳은 노약자들이 도망쳤을 법한 곳이었다. 주먹을 꽉 쥐었던 그는 이내 고개를 털어내며 숲의 밖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결정을 속으로 칭찬하며 마지막 원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과연 아슬론의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옛 기억을 되짚어보던 나는 돌연 잊고있던 사실을 발견했다.


"... 아슬론, 예전에 애버론님이 했던 말 기억나? 너희 어머니께서 왜 숲으로 돌아갔는지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었잖아."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걸 왜..."


"혹시 그게 어머님의 행동과 관련이 있는거 아닐까?"


"으음?"


일단 확고한 사실만을 정렬시켜보자. 아슬론의 어머니, 아실란은 친우들과 함께 악신을 섬기던 마룡을 퇴치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재기불능의 상처를 입고 마을로 돌아가서 아슬론을 낳은 뒤, 마을의 동족들에게 배척 받다가 죽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왜 굳이 마을로 돌아갔냐'는 것이다. 애버론은 현재 자유 교역 도시의 수장이고, 동료들 중에서는 사랑했던 이들도 있었던 것 같다. 큰 상처를 입었다곤 해도 그들의 호의를 받으면 충분히 호의호식 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 영감님 성격상 상처입은 동료를 가만히 놔둘리가 없어.'


물론 애버론과 동료들이 침묵의 맹세를 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지. 두 사건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이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변변찮은 두뇌를 풀가동 시켜서 나름의 추측을 전개했다.


아슬론의 어머니는 왜 굳이 친우들에게 침묵의 맹세를 시켰을까. 단순히 자신의 마을에 대해서 발설하지 말라고 그랬다기엔 말이 안 된다. 그들은 함께 마룡까지 잡아낸 전우들. 그 정도야 기본적으로 지켜줄 것이다.


게다가 애버론은 아슬론에게도 침묵의 맹세를 지켰다. 그 말은 즉, 그건 아슬론조차 모르는 정보라고 봐도 되겠지.


마을로 돌아온 그녀는 그 정보를 동족들에게 알렸다. 이것으로 보아, 그 정보는 용인족과 관련됐을 확률이 높아졌다. 나는 일련의 추리를 일렬로 정렬시켜봤다.


"아슬론. 네 어머님과 동료들은 마룡과의 싸움 끝에 어떤 정보를 얻은 것 같아. 그 정보는 용인족과 관련된 것이었고, 또 굉장히 위험한 종류였을거야."


"어떤 정보요?"


"그래. 아니면 굳이 마룡과 싸우고 나서 동료들에게 맹세를 시켰을리가 없어."


"일리있는 말씀이십니다. 그 정보에 관한건..."


"이제부터 알아봐야겠지."


아슬론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간 정보다. 그만한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나는 일단 애버론 파티의 행적을 쫓아보기로 했다. 이미 은폐됐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뭔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면 역시 카엘과 레니아다. 내가 먼저 레니아에게 조사를 지시하려는데, 자초지총을 들은 그녀가 손뼉을 쳤다.


"애버론님의 모험에 관해서요? 그건 유명하죠."


"어... 그래?"


"무려 마룡을 쓰러뜨린 모험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지요. 메이저한 영웅담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조금만 찾아봐도 정보가 많이 나올거에요. 그 모험을 목격한 이들의 생존자들도 아직 남아있을테니까."


레니아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알고있는 것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악신을 섬기던 마룡이 최후를 맞이한 곳은 북부의 얼음협곡이에요. 어떤 대마법사의 유적지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유적인지는 들은 바가 없네요. 그 부분은 좀 이상할 정도로 대충 넘어갔던 것 같기도 하고..."


"그, 그거야!"


대마법사의 유적이라. 그 말만 들어봐도 어떤 정보가 잠들어있을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여기서 그곳까지 단숨에 달려가볼 수는 없다. 북부의 얼음협곡이라면 정찰용 신수를 날려보내도 한참이 걸릴만큼 멀다.


마법사와 용인족. 둘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보던 나는 순간 손뼉을 쳤다. 그러고보니 아슬론을 선택할 때 마법사에 대한 대목이 나왔었다. 다름이 아니라, 용인족 자체가 어떤 마법사에 의해서 창조된 종족이 아니던가.


어떤 마법사에 의해, 용족을 본따서 만들어진 종족, 용인족. 그 세 가지 요소가 한 자리에 모여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레니아에게 내 추측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그 유적의 주인이 용인족의 창조주가 아닐까?"


비약이 심한 이야기 같지만 가능성은 있다. 마룡을 때려잡았다고 난데없이 용인족에 대한 정보가 튀어나왔을리는 없으니까. 내 이야기를 곰곰히 검토해보던 레니아는 즉석에서 확인할 방법을 알려줬다.


"그럼 그 이야기를 애버론님께 물어보지요. 마침 자유 교역 도시에 카엘양이 가있으니..."


"애버론님은 침묵의 맹세를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물어본다는거야?"


"침묵의 맹세에도 허점은 있습니다. 잘 이야기를 하다가 말을 끊으면 그게 바로 비밀에 관한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레니아의 말이 그럴싸하긴 했으나, 나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됐다.


"잠깐. 만약 맹세를 회피하는게 그렇게 쉬웠으면 왜 이제껏 아무런 언질을 안 주신거지?"


"저희가 어설프게 물어봤다면 대충 얼버무리거나 거짓말을 해서 빠져나갈 수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퇴로를 차단할 수 있지요."


"... 아슬론, 이렇게 해봐도 될까?"


지금 이 자리에 그 비밀에 관해서 알 권리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아슬론이다. 그는 흔쾌히 레니아의 의견에 동조했다.


"좋은 생각 같습니다. 저도 도대체 무엇이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갔는지 꼭 알고싶어요."


"대주교님께서 용인족 원로를 죽이지 않으셨으면 일이 훨씬 쉬워졌을텐데..."


레니아가 한탄하듯 내뱉자 아슬론이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 놈을 한시도 더 살려두고 싶지 않았다."


"카엘, 거기 있어?"


나는 카엘에게 우리의 계획을 알렸다. 내 명령을 접한 그녀는 즉시 통상 업무를 멈추고 도시 시청의 서고로 달려갔다. 길드 멤버들에게만 열람이 허락된 그곳에는 상당히 희귀한 정보들도 잔뜩 잠들어있었다. 서고의 사서를 부른 카엘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먼저 용인족의 창조주에 대한 조사를 해봐야겠습니다. 애버론님 급의 마법사를 묶고있는 맹세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거에요."


"고마워 카엘."


본인이 알아서 수고를 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카엘은 내게 고개를 숙여보이곤 그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 넓은 서고 어딘가엔 용인족의 창조주에 대한 정보가 숨어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조사는 단번에 난관에 부딪혔다.


카엘이 사서를 시켜서 키메라 제작자들에 대한 서적을 모을 때였다. 그녀가 주문한 책들은 어림잡아 열 권이 넘었건만, 정작 사서가 가져온건 네 권 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가 그것을 지적하자 사서는 난색을 표했다.


"그, 그게... 장서 목록에는 있는데 책장에는 없습니다."


"이 서고는 대여를 허락하지 않는걸로 알고있습니다만..."


이 세계의 책은 비싸고 귀중하다. 마법 기술 덕분에 지구의 중세시대만큼 귀하진 않지만, 그래도 쉽사리 대여해줄만한 물건은 아니다.


사서는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카엘이 불쌍한 사서를 몰아붙이듯 채근한다.


"그럼 도대체 왜 물건이 없다는건가요? 관리 미숙으로 인해서 유실된건 아니겠지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목록에는 있는데 실물이 없다면... 아마 폐기 처분됐을 확률이 높습니다."


"폐기 처분이요?"


"상태가 너무 좋지 않거나, 해당 정보가 허위로 밝혀지거나, 더 좋은 책이 나온 경우에는 책을 폐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게 없네요."


"그럼 당연히 폐기 처분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겠죠?"


"물론입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제가 기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서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는 듯,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카엘은 그대로 그를 따라간다. 그가 보여준 목록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카엘은 가장 최근의 기록들부터 살핀다. 해답은 오래지 않아 나왔다.


"여기 있네요. 키메라 제작의 역사와 키메라학 개론 등등. 폐기일자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이 날짜는 신성제국과의 전쟁 직전이네요. 폐기자는... 애버론 룬브레이커."


"우리가 제대로 짚었네."


이 기록을 보니 추측이 확신으로 바뀐다. 애버론이 왜 가만히 있던 책들을 갑작스레 폐기했겠는가? 신성제국과의 전쟁 직전이면 아슬론이 그의 맹세에 대해 알게됐을 때다. 게다가 폐기된 것들은 키메라 제작에 관련된 서적들. 이보다 확실한 증거도 드물 것이다.


어찌됐든, 책들이 모두 폐기된 이상 우리끼리 조사를 진행하는건 불가능하다. 카엘은 그것을 잘 아는지라 애버론이 머물고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미리 방문 요청도 넣지 않았건만, 애버론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맞이했다. 나와 카엘은 조심스레 그의 기색을 살폈다.


작가의말

업로드가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따로 수입이 없는 처지인지라, 군주의 정오는 연재가 조금 드물어질 것 같네요. 아마 2일에 1번의 페이스나 그것보다 좀 더 느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전에 지적해주신 용머리 뼈 투구의 눈구멍 관련 오류 및 오타를 검토해본 결과, 해당 파트는 조금 수정을 가했습니다. 사실 저도 쓰면서 좀 오버같다고 느끼긴 했는데, 역시 좀 과했나보네요.


그리고 저번회에서 용인족 원로의 행동에 대한 의견들도 잘 읽어봤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제가 의도한거에요.


용인족의 원로들은 시덥잖은 이유로 아슬론을 몰아세우던 악역들입니다. 때문에 졸렬하고 속 좁은 성격으로 묘사되길 원했어요. 자기가 죽을 때가 되니 아슬론에게 악담을 퍼부은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애써 의연한 척 해봤자 결국은 자기의 기분을 푸는걸 생존자들의 안전보다 우선시했다... 라고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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