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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783,144
추천수 :
25,201
글자수 :
786,849

작성
17.06.24 13:11
조회
3,003
추천
93
글자
10쪽

85회

DUMMY

어둡고 긴 통로는 지하 저장고로 연결되어 있었다.


신중함을 발휘하여 조금씩 문을 열어내던 아슬론은 비밀통로의 맞은편이 무언가로 가로막혀 있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힐데의 도움을 받아 소음이 새어나가는 것을 차단하곤 통로를 힘껏 박차고 나갔다.


언제든 대검을 휘두를 수 있도록 치켜든 보람도 없이, 비밀통로의 출구쪽은 마냥 잠잠했다. 거미줄과 먼지가 잔뜩 있는 꼴을 보니 지금은 쓰이지 않는 저장고인 모양. 하기사 이곳을 개축하거나 했다면 통로의 존재가 들켜서 봉인당했으리라.


원정대원들은 베테랑답게 소리없이 저장고로 속속 들어왔다. 통로를 가로막고 있던 것은 큼지막한 찬장이었는데, 아슬론의 일격에 산산조각나버렸다.


애버론은 다시금 탐색 주문을 운용하며 신중히 저장고의 문을 열었다. 성벽을 건축하는데에는 많은 돈과 노동력이 드는지라, 이러한 성채는 지하공간까지 최대한 활용하곤한다. 덕분에 우리가 도착한 지하공간은 상당히 넓었다.


탐색 주문을 사용해본 애버론이 작게 신음했다.


"건너편에 생명 반응이 너무 많은데... 지하공간에서 참새를 날려보낼 수도 없고, 독수리의 눈도 지하에선 효과가 떨어져."


"다른 방법이 없으면 그냥 가보죠."


"그럴까? 하긴, 움직임도 안 보이고. 어쩌면 자고 있을수도 있겠다."


힐데가 다시금 소음 억제 주문을 걸어주자 정찰병들이 앞장서서 문을 통과했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뒤쪽의 사람들에게 나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들을 뒤따라나간 일행들은 이내 놀라서 목소리를 잊어버렸다.


드넓은 공간에는 신성제국 수도의 지하에서 봤던것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좁다란 유리관에 액체가 채워져있고, 그 속에 아까 봤던 여성이 들어있었다. 공간이 그리 좁은 것도 아니건만. 유리관들은 통행이 곤란할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진짜 똑같이 생겼네요."


힐데가 가장 먼저 목소리를 되찾고 감탄했다. 엘리자베스는 유리관의 안쪽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애버론에게 몇 가지 주문을 요청했다. 짧은 실험을 거친 그녀는 무거운 표정을 한 채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한 방에는 관리인조차 보이지 않았다. 바깥을 그토록 엄중히 경계하고 있는만큼, 안쪽에서는 안심하고 있는것이리라. 애버론은 다시금 주변 지역의 생명 반응을 살폈다.


"저쪽에서 비슷한 반응이 보이고... 건너편에는 그리 없네. 넘어가볼까?"


"그러지요.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


이 시설에서 복제인간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 의도가 불분명하다. 복제인간으로 신앙점수를 얻으려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왜 굳이 사람을 복제했을까?


신도에게서 신앙점수를 얻는 것은 임프 정도의 지적능력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쪽이 사람을 복제하는 것 보다 저렴하게 먹히겠지. 유리관 속에는 한창 성장중인 개체도 있었는데, 보아하니 장기며 골격까지 실제 인간들과 똑같은 듯 했다.


'그렇다고 전투원으로 사용하려는 것 같지도 않고...'


복제인간들의 체구는 제법 가녀렸다. 나이는 많이 쳐줘봤자 20대 초반 정도. 지상에서 봤던 개체들도 작업이나 잡일을 처리하고 있었지, 성벽 주변의 경계는 전문적인 용병들이 맡고있었다.


아직은 좀 더 정보가 필요하다. 아린도 내 의견에 동의한 듯 추가적인 탐색을 허락해줬다. 정찰병이 조심스레 다음 문을 열자, 이번에는 살아 움직이는 복제인간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문이 열리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각자의 일을 수행했다. 아슬론과 애버론 일행은 뻘쭘한 표정으로 조용히 줄지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똑같은 얼굴의 여인들은 한창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온몸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땅 위의 일꾼들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지라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성표를 향해 기도하는 그들은 외계신에게 신앙을 바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애버론이 신음하듯 물었다.


"저 성표는 누구거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글쎄요... 아무래도 신입인 것 같습니다."


"신입 치곤 세력이 너무 커. 게다가 아까 보니까 특성스킬로 인간들을 복제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애버론은 아까전의 방에서 유리관에 달린 장치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그 장치가 마법으로 작동된다고 확신했다. 우리가 복제인간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찰나, 성표의 옆에 있던 촛불이 꺼졌다. 그러자 그녀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어디론가 이동했다.


원정대원들은 그녀들의 돌발행동에 잠시 움찔하다가 서둘러 그녀들을 뒤쫓아갔다. 이어진 방은 작고 어두운 처형실이었다. 복제인간들은 형틀에 목을 대고 가만히 누웠는데, 다른 복제인간들이 그들의 목을 치는 구조인 듯 했다.


아슬론은 그 괴악한 광경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검을 뽑아들었다. 그가 마악 동족의 목을 베려던 처형인의 검을 쳐내자, 처형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일정대로 일을 진행했다. 그녀는 참수당할 예정이었던 여인의 몸을 안아들고 옆자리의 수레에 실어넣었다.


일전에 봤던 노예들보다 더욱 더 참혹한 광경.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애버론조차 황당한 목소리를 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 재활용 하려는거에요."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아채곤 내뱉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형인은 수레가 가득차자 그것을 이끌고 예전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 시설의 주인은 시체들을 재활용하여 다시금 복제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설의 유지비용을 제외한다면, 이건 거의 무한동력이나 다름없다. 시설의 주인은 이 과정을 통하여 끊임없이 신앙점수를 벌어들이고 있겠지. 처형인의 행동에 기겁한 애버론이 그녀에게 수면주문을 걸어서 제압시켰다.


"뭐 이런게 다 있지? 이번 놈은 노예상들보다도 악질적이야."


"이 사람들은 왜 순순히 죽어주는거랍니까?"


아슬론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묻자 그들을 살피던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이들은 거의 인형이나 다름없어요. 인조물이라 그런지 영성이 옅어서 자아가 보잘것 없고, 그래서 그냥 시키는대로 하는겁니다."


"영성이요?"


"무척 간단히 말해서 영혼의 농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무튼간에 정말 끔찍하네요. 외계신들은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서 이런 짓을 벌이는겁니까?"


그녀가 한탄하듯 내뱉자 애버론이 궁색하게 변명한다.


"악신들 중에서도 천인공노할만한 짓을 저지르는 놈들이 많잖아."


"그들 중 가장 악질적인 축에 속하는 이들이나 이런 짓을 하겠지요. 애버론님, 이곳을 가만히 둬서는 안됩니다."


애버론은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방을 탐색했다. 이 시설은 아린의 입장에서도 방치할 수 없다. 만약 이곳을 방치하면 이 시설의 주인은 괴물이 될 것이다. 지금도 이런 짓을 하는 놈이 더 큰 힘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일행이 다음으로 도착한 방은 그나마 생활감이 있는 공간이었다. 이미 시설의 주인에게 관측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가능한한 빠르게 일을 끝내야한다. 그렇게 생각한 대원들은 곧장 방을 훑었다.


이곳은 누군가가 실제로 거주하는 듯, 침구와 식량 등이 갖춰져 있었다. 아마 이 시설의 관리자들이겠지. 그런데 지하공간의 위쪽으로 통하는 계단을 살피던 대원이 애버론을 불렀다.


"잠깐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뭔가 이상합니다."


"뭔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한 애버론은 곧장 걸음을 멈췄다. 계단으로 향하는 통로에는 굵고 튼튼한 쇠사슬이 쳐져있었다. 언뜻보면 보안을 위해서 달아놓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니까 이쪽에서도 열쇠를 써야만 통과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보통 이런 장치가 되어있는 곳은...


"무슨 감옥 같아. 복제인간들의 탈출을 막아놓기 위해서인가?"


"그건 아닐겁니다. 아까 보니까 그 여자들은 양들보다도 순하던데요."


아슬론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자 애버론도 지체없이 납득했다. 복제인간들을 가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관리자들을 가두기 위한 것이리라.


"아무래도 기밀유지를 위한 것 같네. 좀 더 안쪽을 살피자."


"거기서 꼼짝 마라!"


애버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의 건너편에서 무서운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측 대원의 경고였다. 애버론과 아슬론이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가자 완전히 얼어붙어있는 사람 둘이 보였다.


새로이 발견된 사람들 중 한 명은 중년의 사내였는데, 누가 봐도 마법사 같은 차림새를 하고있었다. 단순한 연구원 치고는 연륜이 있어보이니 짐작컨대 이 시설의 관리자겠지.


반면 다른 한 명은 요 근래 많이 익숙해진 얼굴이다. 복제인간들과 똑같이 생긴 여인이 그럭저럭 괜찮은 옷을 입고있다. 아슬론은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금방이라도 대검을 휘두를 듯한 기세를 보였다.


"네가 이 시설의 관리자냐? 영혼도 없는 여자를 끼고 잘도 즐기고 계셨구만."


마법사와 여인은 마치 부녀지간처럼 서로를 얼싸안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돌연 아슬론을 나무란다.


"기다리십시오. 이분은 아까 본 것들의 원본 같은데요."


"뭐라고요?"


여인의 반응은 복제인간들이 보여주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격하게 불안감을 표하며 온몸을 덜덜 떠는 것이 아닌가. 마법사는 그런 그녀의 옆에서 양 손을 들고 제발 죽이지만 말라고 사정하고있다. 한심스러울 정도의 모습이지만 그가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무리도 아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그의 멱살을 쥐고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물었다. 신성력 하나 없는 여인이건만, 그 박력은 아슬론 못지 않았다.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있는겁니까? 목숨이 아깝거든 성실히 대답하십시오."


앞선 광경을 봤던 대원들은 마법사에게 그리 호의적인 시선을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자신에게 몰린 시선들을 두려워하며 곧장 입을 열었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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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3 브라키언
    작성일
    17.06.24 13:57
    No. 1

    잘보고갑니당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3 자와라
    작성일
    17.06.24 20:23
    No. 2

    이 무슨 멋진 영구기관
    기껏 만든 클론들을 목을 쳐버리는게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아마 산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신앙을 모으는 일까요) 외도적으론 최고인 수급방식이네요.

    찬성: 0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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