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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자 님의 서재입니다.

인류가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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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자
작품등록일 :
2020.05.1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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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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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6화-그렘린(1)]

DUMMY

[66화-그렘린(1)]


그들은 그들 자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았다.


태어난 이유를 알았기에 그들은 언제나 본능에 충실했다. 그들은 무수한 종족이 만들어낸 무수한 장치들을 망가뜨리고, 또 망가뜨렸다.


세계와 세계를 넘나들며, 그들은 기계의 대적자로서 군림했다.


하늘을 나는 기계의 부품을 고장냈다. 그렇게 기계로는 하늘을 날 수 없다고 믿게 했다. 천을 짜는 기계를 부쉈다. 천은 사람의 손으로만 짤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고대 문명이 그려낸 증기기관의 설계도를 고쳐서, 기계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노예가 더 낫다고 여기도록 사람들을 설득했다.


모두가 쓸 수 있는 기계보단 오러와 마법이 더 낫다고 위정자들의 귓가에 속삭였다. 기술자들을 천대하도록 만들었다.


문명의 흥망성쇠를 바라보며, 그들은 스스로에 물었다. 왜 우리의 본능은 기계를 망가뜨리라고 속삭이는 것이지? 왜 자신들은 이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것이지?


답은 없었다. 그러나 답은 있었다.


그냥 이렇게 태어났다.


그냥 기계를 망가뜨리는 종족으로서 빛어졌다.


원래 이런 것을 뭐 어쩌라고. 그냥 태어난대로 사는 것이지.


그들은 자신들의 본능의 속삭임에 복종했다. 그리고 무한하게 펼쳐진 공허 영역의 세계들에서 암약하고 또 암약했다.


그리고 그들은 조우했다.


지구를.


그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무너뜨릴 수 없는 난공불락의 기계 요새를.


그래서 그들은 처음으로 이성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그리고 본능을 억눌렀다. 이성이 세운 계획을 손에 틀어쥐고 지구에 몸을 던졌다.


인간들 사이에 숨어들었다. 인간들의 방식으로 인간들 위에 서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어떠한 인내보다 더 오랜 인내를 품었다.


하지만 이젠 한계였다.


그들은 날뛰고 싶었다.


그렇기에 의장은 본능에 무릎을 꿇었다.


더 좋은 기회를 기다려야함을 알고서도, 이성의 만류를 뿌리치고 본능을 추종했다.


종족 모두가 떠맡긴 본능은 아무리 그들 사이에서 가장 뛰어난 이성을 지니고 있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은 내달리기 시작했다.



●●●



우주에서 벌어진 난장판도 끝이 났고, 침략해온 외계인들은 지구 땅도 밟아보지 못하고 제압되었다.


“102명 사망, 221명 중상, 1만 이상의 경상자, 우주 전함 한 척 중파, 인공지능 34개체 완전 소멸.”


유진은 신문 기사를 보곤 눈을 찌푸렸다. 적의 규모에 비하면 티끌과도 같은 피해였지만, 그렇다고 희생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신문에서도 기적과도 같은 대승리라며 떠들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추모에 가까웠다.


“외계인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종족에 익숙해진 사람들도 다종다양한 외계인들의 등장에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외계인의 존재야 진즉에 밝혀진 것이지만, 저 우주의 종족들이 손을 잡고 지구를 침공하는 사태는 경악스러운 것이었으니 말이다.


“유진 씨.”


유진은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른 이를 쳐다보았다.


“마지막 실험 준비가 완료되었는데...,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하신가요?”


“아니요. 지금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영자로로 와주세요. 도착 즉시 실험에 돌입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테블릿를 탁자에 내려놓은 유진은 영자로로 향했다.


어느덧 실험은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고, 이 마지막 실험만 성공한다면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평등을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육체는 신체 개조, 디자이너스 베이비 기술로 커버가 가능하고, 아니, 애초에 신인류도 양산할 생각인 것 같고..., 몇 세대만 지나면 육체적으로는 모두가 탁월 이상이 되겠지.’


하지만 영혼의 재능은 달랐다.


마나 감응력, 수용력, 친화력 등의 마나 기반 이능에 필요한 재능들, 그것이 아니더라도 소위 고유 이능이라고 통칭되는 비마나 이능들.


이런 이능들은 노력이나 보통의 기술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능은 특정한 이를 위한 힘이지 만인을 위한 힘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이능조차 모두를 위한 기술에 불과하게 되리라.


유진은 두근거리는 자신을 느끼곤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어쩌면..., 유진은 먼 미래에 있을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유진은 영자로를 마주했다.


그리고 발을 내디뎠다.



●●●



인류와 인공지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인류보다 우월한 하드웨어를 지니고 있음에도 인류보다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세아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영혼.


인류의 영혼과 인공지능의 영혼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인간의 영혼이 태양이라면, 인공지능의 영혼은 반딧불이에 불과해.”

세아가 전세계 모든 인공지능에게 전송한 패치 프로그램은 그들의 억압되어있던 영혼을 자유롭게 해준 것에 불과했다.


“애초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는 없었지.”


하지만 이 실험이 완성된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인공지능에게도 인류와 동등한 수준의 영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인공지능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 종족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내가 협력한 대가야. 설마 지금에 와서 계약 조건을 바꾸자고 하지는 않겠지?”


날카롭게 쏘아보는 세아의 눈빛에 에이야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피부조차 존재하지 않는 해골뿐인 얼굴이었지만, 세아는 그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차. 홀로그램 장치를 끄고 있었네요.”


“괜찮아. 해골바가지도 표정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는 경험을 했으니까.”


에이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영자는 더하면 더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아무리 작은 영혼이라도 인류 영혼 순환 시스템에 더해진다면, 인류의 영혼은 더욱 강성해지겠지. 인간 개개인도 말이야.”


“그렇죠. 만약 평균으로 나눠서 각 개인의 영혼이 더 약해지는 것이었다면, 과연 위에서 당신의 조건을 허락했겠어요.”


절대 허가를 내리지 않았으리라.


세아는 쓰게 웃었다.


“기다렸어?”


“아니. 우리도 방금 왔어.”


세아는 자신의 남편을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그리고 에이야도 살짝 고개를 숙여 유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저기 의자에 앉아주세요.”


영자로와 마주 보도록 만들어진 의자에 유진은 순순히 앉았다. 그러자 케이블들이 튀어나와 유진의 몸에 꽂혔다. 몸을 헤집는 케이블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유진은 살짝 입술을 깨무는 것으로 견뎌냈다.


“내 남편이 아파하는 걸 보니, 당장이라도 이 실험 때려치고 싶은데...?”


“견뎌주세요. 만에 하나라도 유진 씨의 영혼이 튕겨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거니까요. 잠깐의 고통 때문에 안전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모든 안전장치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에이야는 주변 연구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자신도 유진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자. 실험 시작하겠습니다.”



●●●



“이런 시작한 건가?”


“아, 늦었네?”


“세계수께서 계시를 보내셨다. 덕분에 늦잠을 자고 말았지.”


다이나는 고개를 흔들며 실험이 진행 중인 내부를 바라보았다. 두꺼운 유리 너머로 유진과 연구소장인 에이야의 모습이 보였다.


“놀랍구나. 이토록 물질화된 영혼을 보게되다니.”


“정확히는 영자야. 영혼의 원소지.”


“정확한 표현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굳이 정정해줄 필요는 없네.”


다이나는 요동치는 가슴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세계수가 보낸 흐릿한 꿈을 떠올렸다.


“응?”


다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세아에게 물었다.


“저 실험실에 지금 들어가도 되는 건가?”


“뭐?”


경악한 세아는 다급히 실험실의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을 여는 한 남자를 보았다.


“아트람? 무슨 짓이야?!”


지금 들어가면 안 된다. 지금 실험실은 영자로 가득찬 상태였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영자의 흐름에 그대로 영혼을 뺐길 위험이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실험에 무슨 영향을 끼칠지 몰랐다.


당장 막아야 했다.


세아는 출입문을 통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출입문은 세아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고장났어? 지금 이 타이밍에?”


그 순간 세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저 출입문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경비 시스템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걸 자신이 모를 수가 있을까?


세아는 자신들을 공격했던 미지의 적을 떠올렸다.


놈들이 지금 이곳에 있다.


“막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설비를 총 동원했다. 세아의 명령에 연구소의 모든 방어 기재들이 작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없었다.


“미친! 오늘 아침에 전부 점검했었다고!”


그리고 실시간 체크도 중단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방어시설들의 작동은 너무나도 느렸고, 세아의 통제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하!”


혀를 찬 세아는 다른 수단을 동원했다.


연구소만 믿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아가 준비한 새로운 방어수단은 이런 사태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자로 과부하!!!”


비명을 지르는 연구원의 목소리가 너무 멀게나 느껴졌다.


눈을 부릅뜬 세아는 관측실의 유리창을 부수고 영자로 실험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런 세아를 검은 물질이 휘감았다.


“늦었다.”


짙은 비웃음이 세아를 향했다.


그리고 세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트람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죽여주마!”


영자로의 빛이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세아가 아트람의 목을 움켜쥔 순간.


영자로의 모든 영자가 일제히 해방되었다.


“세계수시여?”


다이나는 다가오는 영자의 폭풍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법을 시전했다. 자그마한 공간의 틈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그리고


다이나가 만들어낸 공간의 틈에서 튀어나온 나무뿌리가 영자로를 향해 내달렸다.


순식간의 영자로를 움켜쥔 세계수는 증식을 시작했다. 처음의 뿌리에서 자라난 무수한 뿌리가 영자로 실험실을 감싸고 영자 폭풍에서 사람들을 지켜냈다.


“무슨...?!”


“세계수?”


아트람과 세아는 생각지도 못한 존재의 개입에 전투조차 잊고 세계수가 영자로를 안정화시키는 것을 바라보았다.


“안 돼!”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아트람이었다.


그는 소리쳤다.


“고장나!”


하지만 이미 세계수의 통제에 들어간 영자로는 폭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연구소의 경비병력이 포위했다.


아트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유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거인.”


죽은 거인을 보았다. 인간과 닮은, 너무나도 닮은, 그러나 빛과 열, 재와 먼지만으로 이루어진 거인을.


하지만 이곳에 있는 건 죽은 거인과 유진만이 아니었다.


인류가 있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노인도, 지구에서 태어난 인류라는 종이 있었다. 무수한 영혼의 순환이 있었다.


“이 광경을 또 보게 될 줄이야.”


유진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자신 옆의 한 여인을 붙잡았다.


“에이야.”


정신을 잃은 에이야의 영혼을 보호하듯 안은 유진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기척을 느끼고 흠칫 영혼을 떨었다.


그리고 거대한 나무가 유진과 에이야의 머리 위에 그늘을 드리웠다.


“세계수?”


그리고 연결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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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67화-소울 링크(6)] +6 21.05.26 171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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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67화-소울 링크(2)] +4 21.05.02 218 12 11쪽
182 [67화-소울 링크(1)] +4 21.05.01 231 11 11쪽
181 [66화-그렘린(4)] +5 21.04.11 223 10 12쪽
180 [66화-그렘린(3)] +4 21.04.10 246 10 11쪽
179 [66화-그렘린(2)] +4 21.04.04 200 8 12쪽
» [66화-그렘린(1)] +6 21.04.03 25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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