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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트키 님의 서재입니다.

스피노의 전투력 측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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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트키
작품등록일 :
2022.10.31 20:44
최근연재일 :
2024.05.2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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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05.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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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0. 헤를린의 삼나무-2

DUMMY

90. 헤를린의 삼나무-2


헤를린의 삼나무.

엘프족의 대마법사 헤를린이 생애 끝에 다다라 완성한 마법.

이 마법은 끝을 알 수 없는 지독한 환영 마법이었다.


“여기는?”


익숙했다.

내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환영인 만큼 공간은 내가 기억하는 형태 그대로였다.


네 번째 삶에서 내가 만들었던 사이비 교단의 본부이자 성당이었다.

내 얼굴을 본떠 조각한 석상.

신도의 영력을 빼앗기 위해 특수 제작한 예배당 의자.

제단 의식을 치르기 위해 손수 펼쳐놓은 휘장.


“왜 나를 여기로 보낸 거냐. 헤를린.”


그는 마지막 생명력을 짜내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

마법계.

적어도 그 세계에서 헤를린 그는 죽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거부자.

거부자로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나 스스로가 만들었다는 이 프로그램의 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듯이.


과거 예배를 집전했던 단상을 손으로 훑었다.

그곳에는 익숙한 문구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세상의 모든 논쟁은 신 앞에 무의미하다. 모든 것이 그 앞에 덧없는 것이기에.


과연 그럴까.

세계의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모든 것이 덧없는 것일까.


뒤에서 나를 관조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게 멍하니 있을 여유 따위는 없다고.”


걸걸한 목소리가 성당 안을 울렸다.

고개를 돌렸을 때, 발목까지 오는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사제도, 신도도 아닌 이 세계의 천재.

고작 열다섯에 논쟁으로는 그를 이길 자가 없다는 말을 듣던 과학계의 천재.

온갖 실험의 달인이자 물리법칙의 발견자.

하지만 정작 이 세계에서 과학자로 통용되지 않는 자.

그는 이 세계의 미치광이 폭탄마였다.


“오랜만이군.”

“껄껄껄. 반가운 척은 집어치워. 나는 너를 씹어먹고 싶으니까.”

“그래그래. 물론 그날 일 때문이겠지. 이해한다. 네 평생의 소일거리가 나 때문에 망했으니까.”

“소일거리?”

“뭐. 그럼 그게 큰 일이라도 되나?”

“예술...”

“뭐?”

“그건 예술이었어. 내가 계획한 그 일은 이 세상에 유일한 예술이라고!”

“하.”


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광장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 위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게?”

“그래! 화려한 폭발! 그리고 후폭풍! 엄청나게 아름다웠을 거라고!”


폭탄마의 얼굴에 애수가 드리웠다.

실로 자신의 계획에 감복한 자의 표정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았다 축제가 벌어지는 광장에 폭탄을 설치할 계획 따위 하지 않을 테니까.


“거기다가! 미개한 인간들마저 솎아낼 수 있었을 거다. 과학의 은총으로 살아가면서 과학의 발전을 의심하는 미개한 인간들까지도! 근데 다 너 때문에 망했어. 네가 빌어먹을, 그날 그 빌어먹을! 설교만 안 했어도. 사람들은 광장에 나와 진정한 예술이 뭔지 알았을 거다!”

“웃기는군. 테러리스트.”

“뭐?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냐! 예술가라고!”

“그게 뭐가 다르지?”

“달라! 달라! 테러리스트는 본인들의 알량한 욕심 때문이고 나는 숭고한...”

“아. 본인은 숭고하시다?”

“물론! 나는 과학이 허락한 최고의 물질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아니. 너는 그저 파괴광일 뿐이야. 거기다 쫄보지. 스스로는 죽을 생각도 못 하고, 경찰한테 잡힐까 벌벌 떠는 쫄보.”

“.......이... 이.. 이!”


발작?

폭탄마가 분노 통제에 실패하기 시작했다.


“너는! 너는 결국 있지도 않은 신으로 사람이나 속였잖아!”


후욱후욱.

폭탄마의 말이 점차 빨라졌다.


“비,,비겁하게 이 비,, 빌어먹을 예배당에서 사,, 사람 피나 빨아먹는 뱀파이어 같은 자가!”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예배당 의자 아래, 영력을 빨아들이는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 세계에서 과학의 힘 말고도 내가 얻은 힘.

영력.

나는 신도의 몸에서 빨아들인 영력을 통해 기적을 일으켰다.

물을 기름으로 바꾸거나 돌을 황금으로 바꾸는 그런 기적 말고 진짜 기적.


바로 영구기관.

이 예배당 지하에는 사람의 영력을 통해 움직이는 발전장치가 있었다.


아무런 재료 없이 돌아가는 영구기관.

그것은 과학자들을 경악케 했다.

등가교환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다만, 네 번째 생에서 나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장본인이기도 했다.

영력을 흡수당하는 것은 생명력을 흡수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거..거기다! 결국 그 모든 게 자기 시..실수를 만회하려는 머.. 멍청한 시도 때문이잖아!”


멍청한 시도?

이 자식이, 감히 내 노력을 폄하하다니.

한편으로는 지난 삶들이 진정으로 가치 있었는지 고민되기도 했다.

강유도, 호가위와 여준명도, 헤를린도 내가 살아온 삶이 전부 거짓이라고 말했으니까.


“고작! 본인의...”


잠시 딴 생각에 빠진 사이 폭탄마가 열심히 떠들어댔다.

대부분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점차 귀가 피곤했다.

이 녀석. 이렇게 말이 많았던가?

전형적인 투머치토커였네.


“야. 적당히 해.”


적당한 선에서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뭐..?”

“못 들었어? 적당히 하라고.”


내 반응에 당황스러워하는 것은 오히려 폭탄마였고, 그는 흐름을 끊기지 않으려는 듯 말을 이었다.


“너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나? 사람들을...”

“아니. 그게 뭐 어쨌다고.”

“뭐?”

“너도 사람 신경 안 쓰고 일 벌렸잖아. 미개니 어쩌니 하면서.”

“아니다! 나는...”

“안 달라. 똑같다고. 너나 나나. 아 한 가지가 다르지.”


나는 허리춤에 달려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너는 졌고 나는 이겼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던 폭탄마가 차분해졌다.


“크크킄.”


이상하리만큼 기이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뭐. 본색이랄 거야. 애초에 이 세계가 나한테 요구한 게 이상한 거였다고.”


과학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사이비 종교를 만들라니.

네 번째 생애의 사명.

애초에 그것부터 이상한 것이었다.

아니, 온 생에 모든 사명이 이상한 것이었다.


주인공을 예비?

환생계의 유지?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세계의 안정을 위해 세계의 가장 불필요한 존재를 끌어들인다니.

정상이라면 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쳇. 멍청했군.”


여준명과 호가위.

그들이 나를 안타까워했던 것도 나름 이해가 갔다.

대장이라는 작자가 신중하지 못했으니까. 정보 수집에도, 해석에도 한계를 보였고, 환생할 때마다 살아남기 급급했으니까.

정보를 쥔 거부자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둘에 대한 내 이해는 딱 그 정도였다.

아픈 손가락 같은 부하들에 대한 동정심도.


그러나.


스피노.

그 말 만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내가 스피노라는 말, 내가 이 빌어먹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말은 아직까지도 믿을 만한 증거도 정보도 없었으니까.


애초에 강유, 그 자식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


헤를린.

아무리 당신이 한 말이라해도 마찬가지였다.


“폰 아스터만의 진리.”

“뭐?”

“그날, 네 예술을 망친 내 설교 제목.”


폭탄마의 테러가 예정된 날, 나는 예배당에서 폰 아스터만이라는 위인의 일대기를 조작했다.

대륙의 마지막 성자 이후, 과학의 세계를 만든 폰 아스터만.

그는 과학의 힘으로 성자와 함께 세계를 구한 자다.

성자는 아이콘.

실제적 힘은 폰 아스터만으로부터 나왔다는 게 정설이지만, 나는 그를 바꿔 폰 아스터만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성자의 이름을 더럽힌 자라고 설교했다.


-성자의 이름을 짓밟은 과학자들에게 복수해야만 합니다.


나는 교묘히 일반인들이 가진 과학자에 대한 반감을 일으켰다.


-그들이 가진 지식, 그것은 원래 그들의 이익이 아닌 시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자식이, 부모가 밥을 굶는 것은 무력한 과학자들이 신에 대항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내가, 연인이 아프고, 전쟁에 나가야 하는 것도 바로 폰 아스터만이 신을 배신해서입니다. 분노한 신이 인류를 버리고!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신에게 인류의 진심을! 과오에 대한 반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나가십쇼. 나가서 과학자들을 처단하고! 세상의 빛을 되찾아 오십쇼!


이미 내가 일으킨 기적과 힘에 감복한 사람들은 일어났고, 광장이 아닌 아카데미로 몰려갔다.


“너는 서둘러 폭발점을 바꾸려다가 경찰에 붙잡혔지. 멍청하게.”

“이 씨발 새끼가..!!”

“흥분하지 말라고.”

“흥분? 그딴 거 알게 뭐야!”


폭탄마가 가방에 들어 있던 폭약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곧바로 나를 향해 던졌다.

나는 서둘러 그가 날린 폭탄을 피했다.


‘되는군.’


앞서 싸울 때와 달리 내 힘이 통했다.

내력과 마나, 영력까지.

어찌되었건 이 성전은 내 홈그라운드.

지력을 제외하면 평균 능력치가 높지 않은 폭탄마와 싸우기에는 유리한 장소였다.


“어리석군.”

“허억허억.”

“거기다 어리석어.”

“빌어먹을 자식이.”

“헤를린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여기다 집어넣은 건지 모르겠군.”

“죽여버릴 거다.”

“그래그래. 근데 그거 아냐.”

“허억. 뭘 말이지?”

“그날 나는 폰 아스터만이 말한 진리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어.”

“설교라도 하려고?”

“뭐. 그런 건 아니고. 내용을 요약하면 그런 거야. 성자가 태어난 세상에 인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성자가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이 필요하다고.”

“그게 뭐.”

“뭐 그렇다고. 어차피 너는 변하지 않을 거 같군.”


변화. 세상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다.

정식이 그랬고, 헤를린이 그랬다.

어떤 날, 어떤 때에 변화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은 변화한다.

사람이 삶을 살며 기대하는 것도, 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도, 지켜보게 하는 것도 결국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의 모습 때문이다.


호가위와 여준명.

헤를린.

전생에 만났던 자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처럼 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내 눈앞에 폭탄마는 여전히 그 시절에 원한 맺혀있는 사람 같았다.

마치 첫 생을 막 마쳤을 때의 나처럼.


“안 변한다고?”

“그래. 하나도 안 변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군.”


흐흐흐.

폭탄마가 실실 웃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나는 진리니까. 폭발만이 지고한 예술! 예술만이 인간이 지닌 유일한 진리니까! 폰 아스터만? 개나 주라 그래! 그 자식도 결국 헛똑똑이니까!”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전생에 사람이라 갱생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보일 거라 기대했었는데.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


“하하. 그야 우리 같은 거짓은 변화하지 못하니까.”


순간 폭탄마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당신은 모를 거야. 우리의 비극적 운명을?”

“뭐라고?”

“스피노. 당신이 정해준 값 이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의 설움이 무엇인지 알기나 해?”

“너는?”

“꼬리를 문 두 마리 개의 운명이 다가온다!”


그말을 끝으로 폭탄마의 얼굴이 선명하게 되돌아왔다.


“뭐야? 방금? 내가 왜 여기 있지?”


조금 전 일에 대해 물어보려 했는데.


그는 스스로 방금 일을 자각 못하는 것 같았다.


“아. 너가 있었지?”

“쳇. 기분 나쁘군.”


마치 누군가의 손에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뭐. 결국에는 이렇게 됐네.”


더 이상 긴 말은 필요없었다.

헤를린.

그가 무엇을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검을 들었다.


“이게 진짜 예술이라고.”


폭탄마가 던지는 폭탄을 가르고 또 갈라내기 위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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