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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우 (劍雨)님의 서재입니다.

타란산맥에 묻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검우
작품등록일 :
2021.05.13 12:24
최근연재일 :
2021.07.04 09:00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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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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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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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제1화 강제전역

DUMMY

“으아아악!”

타란산맥 기슭에 위치한 테라왕국 북부군 특수임무대대 대대장실안에서 몬스터 울부짖음 같은 괴성이 터져나왔다.

콰아앙!

빠지지직.

둔탁한 물체가 부딪치더니 박살나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

순간, 30평 넓이 대대장 부속실에 정적이 몰려왔다.

근무하던 예닐곱 명이 깜짝 놀라 일손을 멈추고 대대장실쪽을 쳐다보았다. 붉은 전갈 마크를 좌측 가슴에 단 위장복을 입고 바스타드 소드를 허리에 찬 채 대대장실로 들어가는 문 좌우에 근무 중이던 호위기사 두명은 몸을 움찟 떨더니 부동자세를 취했다.

소리 지른 사람보다 계급이 높은 대대참모와 다른 이들도 일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러다 약속이나 한 듯 한사람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 차를 가지고 대대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당번병이었다. ‘너는 들어가 보았으니 무슨 일인지 아느냐?’고 묻는 것.

당번병은 자신도 모른다는 의미로 고개를 좌우로 두 번 살짝 흔들었다.

이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딱 하나.

목소리 주인공이 특임대에서만 7년하고 하루째 근무중인 최고참 제4중대 제4소대원 칼리드이기 때문.


칼리드.

그에게는 두 가지 별명이 있다.

하나는 상급자나 귀족들이 부르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잘 보이려 하지도 않고 마주치는 것도 싫어해 피하기만 하면서 작전은 가장 많이 나가 월급과 수당을 한도까지 꼬박꼬박 챙겨가는 것을 폄훼한 ‘국방비도둑’

다른 하나는 대원들이 부르는 ‘찐 대장’ 줄여서 ‘대장’이라는 애칭으로 부속실 사람들이 계급에 관계없이 긴장하는 이유와 관련 있다.

칼리드는 동료 포상과 누명에 관련된 일은 지금처럼 대대장에게 물불안가리고 덤볐고 그럴 때마다 대대장은 명분에서 질 수 밖에 없다보니 그가 돌아간 후 죄없는 자신들에게 화를 대신 풀었던 것이다.


“야, 탁자는 왜 부수고 지랄이야. 니가 물어낼래?”

이번에는 대대장 아덴 자작 고함소리가 벽을 뚫고 들려왔다.

부서진 것이 탁자였나 보다.

부속실에 있던 군수장교는 그나마 대대장이 아끼는 것이 아니고 곧 교체예정 목록 앞순위에 올라있었던 것을 생각하고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까짓 탁자가 문젭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니까요?”

“옷 벗는다는 말 몰라? 너 전역이라고!”

“내가 그 말뜻을 몰라서 묻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왜 전역이냐고요 신청도 안했는데.”

부속실 사람들은 다시 서로를 쳐다보며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놀랐다.

하나는 처음으로 칼리드가 동료가 아닌 자신의 일로 화를 낸 것이다.

그리고 더 놀란 또 하나는 바로 전역이라는 말.

그들이 알기에 칼리드는 분명 오늘이 장기복무 첫날, 그런데 제대라니?

이번에도 ‘혹시 누가 상황을 아나?’하고 눈짓으로 서로에게 물었지만 역시 모두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럼 너 평생 영창에서 썩을래?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래?”

“그건 또 무슨 얘기예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요?”

“그러게 왜 건드려. 빅토르 후작가 핏줄인거 몰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후작가 핏줄이라니? 그것도 빅토르 후작가!

칼리드보다 계급이 높은 참모들이 왕고참 칼리드 근무가 자신들에게 여러모로 유리한 것을 알기에 대대장 설득을 위해 들어가려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자칫했다가는 불똥이 자신뿐 아니라 가문까지 튈 큰 문제, 이런 일에는 모른 체 넘어가는 것이 생명유지의 유일한 길임을 너무 잘 알았다.

왕국은 혼자 지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모함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후작 영식과 같이 있던 기사들도 진술했어!”

“내 말을 안 믿고 걔들 말은 믿어요?”

“믿어. 아니 믿을 수밖에. 너 같으면 별 볼일 없는 국방비 도둑하고 중대장에 후작가 영식 말중 누구 말을 믿냐. 응?”

“으아아악!”

칼리드는 미칠 지경이었다.

대대장 말을 듣자 상황이 조금씩 이해가기 시작했다.

마무리가 잘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전혀 아닌 모양이었다.


한 달 전.

현 테라왕국 군부와 권좌를 장악한 정점은 왕국 유일 소드마스터로 군부대신이자 근위기사단장인 알폰 빅토르 후작.

그런 후작의 귀하디귀한 아들이 웬일인지 달랑 호위기사 셋만 데리고 특임대 제1중대장으로 발령 받아왔다.

놀랄 일은 아니다.

귀족 사내들은 ‘외로운 길’을 걷는 다는 명분으로 의무적으로 군 생활을 해야했고, 특임대 근무는 빡쎈 군생활했다는 자랑거리를 제공하고 가문 명예를 높일 수 있기에 계급도 실력도 나이도 무시하고 낙하산타고 내려와 작전은 나가지 않고 놀고먹고 적당히 서너달 쉬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는 성욕을 해소할 여자 노예까지 데리고 오는 자들도 있을 정도.

그러니 누가 오던 대원들은 일체 무관심.

특히 칼리드는 상관이나 귀족은 먼저 피해 도망 다닐 정도인데다가 빅토르 후작가와 아버지가 악연이 있었기에 존재 자체를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자원해 장기 작전을 나가버린 것이다.

하지만 군이란 조직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명령을 받고 귀대하자 후작 아들이 은밀히 사람을 보내 타란산맥에 대해 물어보고 깜짝 놀랄 댓가를 약속하며 길 안내를 부탁했다.

당연히 단칼에 거절, 가까이해야 좋을 것 없는 빅토르 후작가다.

그것으로 다시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다 10일전쯤 작전을 나갔다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처음으로 후작 아들과 얼굴이 마주쳤다.

다시 길 안내를 부탁했지만 당연히 거절, 명령받은 작전을 수행했다.

맹세코 이것이 전부다.

그런데 후작 아들은 그날 눈퉁이가 밤퉁이가 되어가지고 귀대해 “칼리드가 상관인 자신을 폭행했다”고 대대장에게 보고, 즉시 소환되어 귀대해 죄 없이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사건이 종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이런 젠장!”

20여 평 대대장실은 이미 전쟁터.

마나 실은 칼리드 군홧발에 탁자와 소파 화분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편이 되어 지저분하게 너부러졌다.

유일하게 성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대장 업무용 책상뿐.

대대장은 책상 의자에 팔짱을 끼고 앉아있고, 칼리드는 앞에 선 채 손으로 책상 양쪽 모서리 끝을 집고 허리를 살짝 숙여 대대장을 째려보고 있다.

“그러게 그냥 조용히 따라가서 좀 도와주지!”

“나는 작전 중이었다고요. 작전대 대장이었고요.”

특임대는 작전마다 별도 작전대를 구성하고 대장도 임명한다. 칼리드는 왕고참에 간부들이 작전을 나가지 않아 대부분 대장을 맡아야만 했다.

“중대장에 후작가 영식이면 도와줄 수 도 있잖아!”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따라갔으면 작전 실패나 탈영죄로 영창이나 군기교육대 보내거나 감봉에 근무연장시켰을꺼 아닙니까?”

그때였다.

소리 지르던 칼리드 입에서 무언가 튀어 나와 대대장 얼굴로 날아간 것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대대장이 왼손으로 얼굴을 쓰윽 한번 문질러 닦더니 손바닥을 눈앞으로 가져와 한번 쳐다보고는, 벌떡 일어서며 손가락으로 칼리드를 가리켰다.

“야! 침 튀었잖아.”

“그까짓 침 좀 튀면 어때요.”

“더럽잖아. 그리고 솔직히, 너 그런거 한두 번도 아니잖아!”

두 사람의 팽팽한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대대장 말을 들은 칼리드는 기분이 묘하게 더 나빠졌다.

말이 맞기는 하다. 가끔 영창과 군기교육대도 갔고 몸은 힘들지언정 목숨은 안전하니 위험한 작전 나가는 것보다 더 좋다는 생각도 하기는 했다.

하지만 곰보고 곰이라고 하면 기분 좋을 곰은 대륙에 단 한 마리도 없다.

“그래도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이젠 사실을 이야기해도 뭐라고 하냐?”

키도 덩치도 비슷한 두 사람은 둘 다 굽힐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먼저 칼리드가 작전을 바꾼 듯 했다.

연금생활자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꿈과 자신, 아니 자신 월급만 쳐다보고 사는 가족이 생각났기 때문.

“휴우······. 대대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저 20년 근무해 군인연금 받는 게 꿈인 사람이예요. 대대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네?”

연금생활자 칼리드.

그 꿈을 모르는 대대원은 없고 대대장 역시 너무 잘 알고 있다.

칼리드가 마음을 가라앉혀 대대장을 애잔한 눈으로 쳐다보자 선 채로 울그락 붉그락거리던 대대장도 마음이 동했는지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러더니 조용히 칼리드를 올려다보았다.

“칼리드······,”

칼리드에게 들리는 대대장 목소리가 따스한 봄 햇살처럼 부드러웠다.

“야!”도 아니고 “칼리드”하고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칼리드는 읍소 전략이 통한 것 같아 기뻤다.

그래서 몸을 바로 세우고, 언제 화내고 집기 박살냈냐는 듯이 따듯하고 다정한 군기 잡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대대장님.”

열망을 가득 담은 눈으로는 대대장을 직시했다.

“난 진실은 몰라. 궁금하지도 않고. 중요한건 현실이야. 후작가에서 명예가 실추되었다고 은밀히 연락이 왔어. 무슨 소린 줄 알지? 내가 말리고 말려서 겨우 옷 벗는 거로 합의본거야. 내가 고생한 거는 왜 몰라?”

곱고 낮게 시작된 대대장 말은 뒤로 갈수록 음색이 날카로워졌고 높이는 올라갔다.

잔뜩 기대했던 칼리드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3년을 같이 근무했는데도 자신 편을 들기는커녕 딴소리만 지껄이는 대대장.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

더구나 자신은 박살낸 소파와 화분을 변상해줄 생각까지 하지 않았던가!

미움은 분노와 울분으로 변했고 분노와 울분은 말과 행동으로 이어졌다.

“으아악! 젠장!”

우당탕.

쾅! 쾅!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었다.

마나를 실은 발길질에 마지막 남아있던 업무용 책상마저 박살났다.

“으아아악 우라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죽을 것만 같았다.

어느새 몸을 피한 대대장도 마나를 온 몸에 둘러 파편조각을 막아내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막말을 해댔다.

“너 이 새끼.”

대대장이 욕까지 퍼 부었지만 이판사판.

칼리드는 오히려 화풀이 할 대상이 생기자 핏대를 더 치켜세우고 소리소리 질러댔다.

“욕하지 마요. 뭐 잘한 게 있다고 욕이예요. 승진도 아닌 전출요청도 거부하고 부려만 먹다 강제 전역하라는데 열 안받게 생겼어요? 더구나 난 오늘 장기복무 첫날이라고요.”

쾅! 쾅!

화가 풀리지 않았다.

칼리드는 더 부술 것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며 찾았지만 오늘 따라 비밀문서를 보관하는 캐비닛이나 대대장 애장품 등 값나가는 것들은 웬일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될 줄 알고 대대장 지시로 미리 모두 다 치운 것을 칼리드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대대장이 일격을 가해왔다.

“야 칼리드, 우리 조용히 마무리 짓자 응? 이미 사령관님 전역명령 내려 왔어. 내가 오늘로 날짜 맞추느냐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

이건 무슨 소리인가?

이틀 전 전역 명령이면 기사칼리지 수료 후 의무복무기간인 7년을 채우지 못한 불명예제대가 되어 3년전에 받은 기사 자격증도 왕국에 반납하여야하는데 그것을 막아주고, 3월 1일자로 전역 명령을 내려 한 달 치 급여와 퇴직금도 조금 더 받게 해주었다는 대대장 이야기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특임대가 사령관 직할이기는 하지만 대원 일은 대대장선에서 대부분 끝.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 북부군 사령관이 왜 튀어나오나 하는 말이다. 더구나 북북군 사령관이 빅토르 후작 사람인 것은 대륙 전체가 다 아는 사실.

그렇다면?

후작가에서 군사령관에게도 이야기 했고 그가 전역명령을 내려 대대장에게 조용히 마무리 하라고 지시하였다는 뜻.

그럼······, 정말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대대장에게 대들고 읍소하였던 것은 대대장 차원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살갗을 따끔따끔 자극하기 시작했다.

대대장은 다시 그런 칼리드 숨통을 찔렀다.

“선택해! 제대할래, 평생 영창갈래, 아니면 죽을래?”

상황은 끝났다.

그럼 미련 가질 필요 없다.

“에이 시팔! 내가 더러워서 옷 벗고 만다.”

쾅!

뿌지지직!

칼리드는 대대장실 문을 발로 차 박살내고는 나와 버렸다. 문밖에 부동자세로 서 있던 두 호위기사가 놀라 자신도 모르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충성!”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사라져가는 칼리드 뒤로 대대장 악다구니가 들렸다.

“야! 누군 이러고 싶어 이러는 줄 알아? 그럼 힘이 없는 걸 어떻게 해? 그렇다고 죽냐? 인간은 적응하며 사는 거야. 너나 나 같은 초식동물은 죄가 없어도 잡아먹히게 되어 있어.”

대대장 얼굴은 입과 달리 잘 마무리 되었다는 듯 웃고 있었고 심지어는 자랑스러운 표정까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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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13화 암사자와 오우거 -1 21.07.04 77 1 13쪽
13 제12화 파혼 21.07.03 79 2 12쪽
12 제11화 사상누각 21.07.02 77 1 13쪽
11 제10화 배상금 21.07.01 93 1 13쪽
10 제9화 제이드 해협 21.06.30 98 3 13쪽
9 제8화. 대정령사 꿈과 제자의 꿈 -5 21.06.29 110 4 12쪽
8 제7화 대정령사 꿈과 제자의 꿈 -4 21.06.28 113 4 12쪽
7 제6화 대정령사 꿈과 제자의 꿈 -3 21.06.27 125 2 12쪽
6 제5화 대정령사 꿈과 제자의 꿈 -2 21.05.17 141 4 13쪽
5 제4화 대정령사 꿈과 제자의 꿈 -1 +1 21.05.14 146 4 11쪽
4 제3화 빠져나올 수 없는 그물 -2 21.05.13 144 6 12쪽
3 제2화 빠져나올 수 없는 그물 -1 21.05.13 166 7 12쪽
» 제1화 강제전역 21.05.13 187 8 13쪽
1 서장 21.05.13 227 1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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