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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괴물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게임 기획자와 환생한 게임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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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괴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0
최근연재일 :
2020.11.13 23:00
연재수 :
1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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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07,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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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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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89화.

DUMMY

현대 격투기에서 백 마운트 포지션에서 목조르기란?


일단 정확한 명칭은 리어 네이키드 초크(Rear naked choke).


지금 수호가 하고 있는 것도 상대방의 경동맥을 졸라 뇌 쪽으로 전해지는 피를 차단시키는 기술이었다. 스킬 아닌 기술. 그렇지만 어지간한 스킬처럼 혈류 차단으로 몇 초 내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기술이다. 안 그래도 까다로운 백 마운트 포지션에서 이루어지는 기술이므로 기술이 제대로 먹힌 경우에는 상대방은 빠져나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만...


‘큭. 젠장... 아니, 이 새끼 왜 이렇게 힘이 세지?’


현재 오크 로드는 그런 무시무시한 목 조르기를 몇 분을 훌쩍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추정 레벨 12~13이라면 기껏해야 [근력] 6~70대. 물론 종족값과 직업이 다르니만큼 오크 로드에게 근력으로 비빌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뒤에서 조르면 커버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수호였다.


‘미친, 창기사 그 자식도 이렇진 않았는데...’


그런데 생각보다 오크 로드의 저항이 너무 거셌다.


“미 쥐새끼가... 크뫄마마막...! 분노!”


하필 [분노]에는 ‘ㅇ’이 없었다.

강력한 멈뭄미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자가 버프 스킬인 [분노]를 사용한 라크는 끝내 수호의 팔을 잡아 풀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큭, 이걸 푸네. 젠장, 수리야!”


수호는 황급히 지원 핑을 찍었다.

수하는 엘프에게 명을 했다.

엘프 정령사는 가녀린 팔이지만 힘껏 창을 던졌고, 그녀의 바람 정령이 그 운반을 도왔다.


‘하나, 둘, 셋!’


으차! 수호는 재주 좋게 날아온 창을 잡고, 오크 로드와 맞선 채로 눈싸움을 했다.


“큭, 진짜 드라큘람미로군... 쥐새끼... 도대체 머떻게 며기 던전메 밌는 거지? 그리고 지금 내게 무슨 수작질믈 한 거냐?”

“뭐 이 돼지 새끼야. 쫑알쫑알 말도 많네. 덤벼.”

“큭... 밀단 죽도로 쳐맞고 나면 대화가 되려나? 너 새끼는 반 죽며 놓고, 저 서큐범스랑 귀잼미 참녀 같믄 년들믄... 큭!”


힘이 아닌 라크의 얕은 수작질은 통하지 않았다. 구성요소 및 공간 내 모든 객체에 대한 파악을 도와주는 [설계] 스탯도 빛을 발했지만, 애초부터 수호가 이런 전장에서 눈앞의 상대에게만 집중하는 애송이는 아니지 않았던가. 수호는 도리어 슬금슬금 다가오던 고블린을 방심한 척 연기를 하다가 한 순간에 창대의 뒤쪽 끝으로 머리를 날려버렸다.


“키에엑!”


일단 가볍게 1킬.


“마스... 켁?”


그리고 옆에서 다가오다가 움찔 놀란 다른 고블린 역시 오크 로드의 글레이브를 피하면서 후려치기로 리타이어를 시켜버렸다.


부웅.


소환수들이 희생당하는 사이에 라크도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다만 창의 거리가 여기서도 장점을 발휘했다. 사실 2미터가 넘는 오크 로드가 휘두른 커다란 대도의 사정거리도 만만치 않았지만, 창의 사정거리는 그보다는 넓으니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큭, 멱시 쥐새끼답군.”

“응. 그러는 너는 돼지새끼답네.”

“미 노모모몸!”


부웅.


“부르지 마 새꺄!”


오크 로드와 드라큘랑은 글레이브와 창으로 서로 공수를 주고받았다.


“...그 무기가 제법미구나. 문 좋믄 줄 말마라.”


방랑기사 스웨인의 유품인 창은 던전 상인에게 팔았다면 9,632G를 받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무기. 듣기로는 벼락의 기운이 담긴 특별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창이라고 했다.


“찌릿찌릿 하냐?”

“크흐흐흐. 저 계집미 내 밑메 깔려서 맘맘거릴 걸 생각하니 짜릿하구나!”


수호는 울컥했다.


“지랄 노!”


수호의 창이 오크 로드의 글레이브와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물론 오크 로드의 글레이브 역시 날카로운 창날과 여러 번 부딪히고, 땅바닥이나 벽면을 여러 번 강하게 내려찍고도 흠집 하나 가지 않으니 좋은 무기인 건 마찬가지. 그러므로 무기로 승부를 낼 수는 없었다.


“큭큭큭, 먼제까지 피할 수 밌는지 두고 보자!”


일단 오크 로드와의 싸움은 유리하지는 않더라도 당장 위험하지는 않았다.


“너 죽을 때까진 피할 수 있거든? 젠장...”


다만 문제라면 다른 쪽 전황이 좋지 않다는 것. 원래라면 자신이 후방에서 고블린들과 오크 로드를 처치하고 싸움에 합류하는 것이 베스트였고, 그것이 안 되면 붙잡고 있는 동안에 전방에서 승리를 해줘야 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도 실패하고 전방의 전황도 불리한 워스트가 나올 줄이야.


“크하하하! 미 매솜미... 꼴메 구르는 재주가 밌구나!”


땅 바닥을 구르며 피한 드라큘랑을 보며 오크 로드 라크는 크게 웃었다. 귀공자라고 잘난 척하는 드라큘랑의 나뒹구는 모습이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을까.


“뭐래? 이 말도 제대로 못하는 돼지 새끼가. 드루와. 헛소리하지 말고 덤벼.”


오크 로드 라크는 분노한 상태.

그렇지만 아예 피아식별도 안 되는 광전사가 된 건 아니었다. 비록 지금 수호에게는 무시당하고 놀림 받는 처지라고 해도 7년 동안 큰 던전을 만들어낸 존재. 그러므로 결코 만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지금도 수호와 수하의 던전이 상식 밖의 공간이었을 뿐 라크가 크게 실수한 건 없지 않은가.


‘이 쥐새끼가... 다른 쪽은 우리가 이기고 있군. 그럼 이 쥐새끼만 붙잡고 있어도... 최소한 지지는 않는 싸움이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라크는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부하들에게 서큐벙스를 잡으라고 명령을 내리고, 수호와 일기토에 집중하기로 했다.


“제발 죽며 달라고 매뭔하게 만들머주마. 크하하하하!”


그리고 이렇게 비웃으면서도 라크는 좀처럼 허점을 드러내진 않았다.


‘젠장, 뚱땡이 새끼...’


멍청하고 폭급하리라는 편견에 무색하게 라크는 성질은 더러워도 안전제일주의형 오크 로드. 그리고 수호도 10년 넘는 전쟁의 베테랑이지만, 오크 로드 라크는 던전 마스터가 되기 전 소환수로 20년 넘게 전장을 떠돌던 영혼이었다. 그런 라크가 자신의 오크 가죽보다 훨씬 두꺼운 가죽 갑옷을 입고 수호와 적당한 사거리를 유지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에만 집중했다.


“흐앗!”


좋은 무기라도 맞혀야 효과가 있는 법.


“뫠? 미제 좀 급해지는가? 큭큭. 무습군.”

“악! 젠장!”

“큭큭큭. 매솜마. 미것미 너뫄 나믜 격차다. 크하하하하!”


수호가 오크 로드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또 다른 던전 마스터 수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전장을 누비고 다니는 중이었다.


원래 서큐버스는 CC기 캐릭터.


그에 걸맞게 처음에는 [도발], [천마군림보], [수면], [매혹], [화격], [수격] 등 모든 기술을 쏟아 부으며 트롤 쇠뇌병 둘을 무력화시키고, 오크 로드의 시선을 잡아놓으며 트롤 방패병을 보조하는 것만으로 이미 수하는 자신의 몫은 충분히 다한 상황이었다. 1인분이 아니라 3~4인분은 족히 했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사망한 고블린 저격수의 쇠뇌를 주워 화살을 날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었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전황이 불리하다는 점이었다.


“야 엘프! 어떻게 좀 해봐!”

“죄, 죄송합니다. 하악.”


며칠 전 수호의 하수인이 되었던 엘프 정령사도 리타이어. 그 후에 10레벨로 올리고 새로 뽑았던 소환수들 모두 거의 궤멸 상황이었다. 특히나 인간 모험가들을 상대할 때처럼 원거리 위주로 병력을 구성한 터라 날뛰는 오크 대전사들을 막기가 힘들었다.


‘...안 되겠다.’


수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차피 [마력]과 [매력] 능력치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 수하는 [수인화] 스킬을 사용하여 고양이 소녀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 진심을 다하게 만들었으니, 각오해라!’


보스만 2페이즈가 있는 것이 아니고, 마법소녀만 변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정수하의 진심 모드. 수치심을 버리고 고양이 소녀로 변한 수하는 수인족 특유의 가벼운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전장에 합류하였다.


“오빠! 내가 왔다냥!”

“야! 조심해!”

“큭! 미건 또 무슨 혼좀미냐!!!”


하프 트롤에 서큐벙스와 고양이 수인의 끔찍한 혼종이 오크 로드를 노리고 전투에 참전하였다.


“혼, 혼종? 야 이 돼지 같은 자식이 누구보고 혼종이래냥?! 내가 얼마나 고귀한 핏줄인데냥! 오빠, 내 말이 맞지냥?”


갸르릉. 이건 자부심의 문제. 수하가 분노했다.


“어? ...혼종은 맞잖아?”

“이익! 오빠는 빠져라냥!!!”


수호의 창이 오크 로드의 목을 노리고, 그가 글레이브로 창을 쳐낸 사이에 어느새 옆을 점한 수하의 화살이 오크 로드의 머리를 노렸다.


“큭! 미 쥐새끼들미...!”

“오빠! 쟤들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냥! 그리고 엘프 걔도 거의 아웃이야!”


그리고 때마침 엘프 정령사 이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아웃됐네. 아무튼 우리끼리 얘 잡아야 한다냥!

“어. 오케이.”


우리끼리. 입감완료. 급박한 와중에 눈빛이 휙휙 오고 갔다.


“오케이. 그런데 수리 냥체 그만.”


급박한 순간에도 힘이 빠지니까 제발 그만.


“지금 그게 중요하다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다냥!”


쓸 데 없이 강력한 강제력을 자랑하는 시스템의 힘이었다.


“미 것들미 내 맢메서 무슨 짓들미냐!!!”


그리고 두 던전 마스터의 태연한 대화가 오크 로드의 심기를 건드렸다. 던전 마스터가 되고난 후에는 외로운 솔로 부대 라크는 글레이브를 휘둘렀고, 수호는 그를 견제하는 의미로 창으로 마주 찔렀다.


챙강!


글레이브와 창대가 다시 한 번 부딪치며 큰 소음이 났고.


“머딜 도맘가느냐! 미 쥐새끼먀!!!”


수호는 그 충격량을 이용하며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날렸고, 자신의 로드를 돕기 위해 달려오는 가장 충실한 오크 대전사의 앞을 막았다.


“잠깐 스탑.”

“......?”

“너는 나랑 잠시 검문.”


정확히는 검문이 아니라 [흡혈]로 종속시키려는 행위였고, 그 시간을 수하는 훌륭히 벌고 있었다.


“돼지. 너는 내 상대다냥.”


굳이 [도발]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지금의 수하는 걸어 다니는 매력 폭격기. 안 그래도 높은 [매력]에 보정 아이템으로 떡칠했고, 안 그래도 매혹의 종족 서큐벙스에 고양이 귀를 달아버렸다. 불과 물의 오드 아이는 덤. 능력으로 손톱을 강화한 수하는 갸르릉 거렸고, 라크는 자신의 부하를 덮치려는 드라큘랑에게서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큭... 혼좀. 너는 저 드라큘람하고 무슨 사미냐?”

“네가 알아서 뭐 한다냥?”

“그리고 도대체 머떻게 던전 마스터가 둘밀 수가 밌지?”

“비밀이다냥. 알고 싶으면 무릎을 꿇으라냥.”

“......”

“꼬우냥?”


예쁘고 귀엽다고 얄밉지 않은 건 아니지 않는가. 어차피 던전 마스터가 10레벨이면 한두 대 맞는다고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라크는 눈앞의 서큐벙스에게 무자비하게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네 미년!”

“뭐 인마? 패드립인거시냥!”

“나중메 내 밑메 깔리고도 그런 소리를 할 수 밌는지 보겠다! 크하하하!”

“헐! 진짜 개드럽다냥.”

“......”

“어쩔? 우리 오라버니 발톱 때만도 못한 것이 쳐다보면 어쩔 거다냥?”


나 발톱 깨끗한데...

멀리서 들려오는 오크 로드의 괴성에 수호는 순간 움찔했지만, 그래도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수리야, 오빠 믿는다.’


드라큘랑은 암살자 및 소환계군 직업.

그리고 그 드라큘랑은 사실 회복계 기획자였기에 비록 같은 던전 마스터인 오크 로드를 상대로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렇다고 동레벨 소환수를 상대로 지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가. 수호는 무식하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오크 대전사의 공격을 살짝 흘리고 그대로 몸을 날려 목을 제압한 후에 [흡혈]에 성공했다.


“크으윽.”

“...시끄러 인마.”

“...마스터, 명령을.”


그제야 수호는 수하를 흘끔 바라보았다.

하프트롤 고양이 수인 서큐버스 혼종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잘 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이쿠... 수리도 무력이 붙으니 꽤 하네? 진작에 변신하지. 역시 무력이 국력이긴 해.’


그렇지만 그에 맞서고 있는 오크 로드의 강인함을 알기에 수호는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오크 대전사 하나를 더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수하가 여기로 왔을 때는 전황의 불리함에 변수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젠장, 흡혈도 쿨타임이 아니면 진짜 좋았을 텐데...’


10레벨이면 세 명의 부하까지 둘 수 있을 테지만, 스웨인과의 싸움에서 모두를 잃고 그나마 겨우 목숨을 부지시켰던 엘프 정령사까지 방금 잃은 상황.


‘...반대로 다른 변수를 지워야겠지?’


그리고 그것이 방금 수하가 눈빛으로 날린 작전 지시이기도 했다.


우리끼리라는 말.


그건 바로 우리를 제외하고 모두 없애라는 신호였다.


‘...똑똑한 수리니까 알아서 하겠지.’


그럼에도 자신이 약해서 수하가 위험에 처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수호는 이를 꽉 깨물고 하수인이 된 오크 대전사 하나와 트롤 쇠뇌병을 향해 달렸다.


“내 앞으로 달려.”


살아있는 방패막이라는 잔인한 명령도 수하의 위기 앞에서는 망설임이 없는 수호였다.


“쏴, 쏴라!”

“크으윽.”

“팀킬이 제일 나빠! 이 나쁜 새끼들아!”


사실 고기방패라는 가장 나쁜 명령을 했던 수호는 적반하장식으로 외치며 화살받이가 된 오크 대전사의 등 뒤에서 껑충 뛰어나왔다.


‘빨리, 빨리, 빨리...’


단순한 피륙의 상처는 감수하며 수호가 종횡무진 잡몹들과 싸우는 동안에 비명소리가 들렸다.


“꺅!”

“수리야!”

“크하하하하! 미 쥐새끼. 미제는 머떻게 할 거냐?”


오크 로드 라크의 거만한 웃음을 마주한 수호는 뿌드득 이를 갈았고, 그의 손이 수하를 잡으려는 순간에 바로 포기를 외쳤다.


“포기! 임시 중단 아니고 포기한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포기였다.


“뭐? 크하하하. 그래. 잘 생각...”


그렇게 라크가 거만하게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수호와 수하는 지구로 돌아왔다.


“...미안.”


어쩐지 화난 수호의 모습에 수하는 사과부터 했다.


“네가 왜 미안해. 그건 내 실수니까 내가 미안하지.”

“......”

“괜찮아. 일단 이거 루트부터 정리해보자. 아직 우리 여유 많으니까. 천천히 루트부터 다시 정리해보자. 고생했다. 정수리...”


물론 던전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긴 했지만, 지구 시간으로는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수호는 수하의 입술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오빠가 잘 할게. 다음에는... 나만 믿어.”


그렇지만 오늘의 수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수하를 보며 말했다.


“헤헤헤.”

“멍청하게... 웃긴 왜 웃어?”

“헤헤. 그냥 웃기네. 헤.”


지구 시간으로 3일.

두 사람이 던전에서만 고생한 시간은 30일.

도합 33일이 헛되이 된 순간.


“아니, 왜 웃냐고... 하~ 참... 큭. 아 웃지 말라고!”

“헤헤헤.”

“아 진짜 왜 이래? 흐흐, 그래도 웃으니 좋네.”


수호와 수하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웃다가 다음을 다짐하였다.


“그래도 그마보다는 그 오크가 쉽겠지?”

“그건 당연하지.”


마스터급도 소환수들이 전멸하고 두 사람이 겨우 이겨낸 상황이었다. 거기에 고작 1레벨을 더한다고 그랜드 마스터급을 상대할 수 있을까? 물론 오크 로드 하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긴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급은 구성원 전부가 그 오크 로드 수준일 수도 있었다.


“일단 그 오크 상대하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아니. 그 자식들! 그래. 걔들 먼저!”


수호는 깨달았다.

9회차 마스터급 모험가들.


“거기서 최소 둘을 부하로 만들고 넘어가야 해. 맞지? 잘 묶어두면 10레벨 올리고 부하 셋으로 갈 수도 있겠다. 그래! 그럼 되겠다.”


수호는 이것이 이번 세상의 Key라고 생각했다.


“야 이번 세상은 그래도 빨리 답이 나왔네.”

“......”

“내 말 맞지?”

“어... 글쎄... 일단 오빠 말대로 해보자. 헤헤.”


물론 걸리는 것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수하는 오랜만에 적극적인 수호의 의견에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시간이 많다고 여유를 부리는 것은 아니었고, 예능 핑계로 입술 박치기를 했으니 여유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고, 던전에서의 동거 생활이 재미있어서 여유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하악. 우리 오빠 멋있어. 어쩜 좋아. 짜릿해.’


수하는 오랜만에 보는 수호의 자책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희열을 느끼는 변태 서큐버스일 뿐이었다.



* * *



다행히도 두 번째 도전에도 첫 번째와 패턴은 같았다.


수호는 드라큘랑, 수하는 서큐벙스.

던전 상인은 에리나.

1일차에는 가출한 마을 청년 4명이 찾아왔고, 3일차에는 브론즈 모험가 5명, 6일차에는 실버 모험가 6명, 11일차에는 라크의 정찰대 7명, 12일차에는 골드급 모험가 8명, 16일차에는 라크의 정예부대 9명, 18일차에는 플래티넘 모험가 10명, 21일차에는 다이아몬드 모험가 10명, 25일차에는 창기사 스웨인이 똑같은 병력 구성으로 던전을 찾아왔다.


“남사제 아웃.”


앞서 경험이 있기에 좀 더 함정과 병력 구성에 세련미를 더했고, 그랬기에 1트 때와는 달리 오크 주술사를 살린 채로 엘프 정령사를 종속시킬 수가 있었다. 비록 창기사 스웨인은 자결을 시도했지만, 그 대신 빙결계 마법사를 포로로 확보한 뒤 10레벨을 올리고 종속시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흘 간 훈련과 전장을 꾸몄고.


30일 차에 오크 로드 라크가 똑같이 고블린 함정 전문가 둘과 트롤 쇠뇌병 셋, 오크 대전사 다섯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젠장!”


그리고 이번에도 홀로 남은 오크 로드 라크를 수호와 수하가 상대하지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팔 하나를 묶어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걸 위해서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부은 상태였으므로 공략은 무리였다.


...

...

...


세 번째 도전에서는 반대로 함정에 치중한 메타를 시도해봤다.


밑에 뾰족한 창들이 박힌 구덩이 함정.


9회차 모험가들 중에 빙결계가 아닌 대지계 마법사를 살리고, 녀석을 구덩이에 넣고 생매장 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씨벌... 바퀴벌레세요?”


그렇지만 흙더미 속에서도 오크 로드 라크는 생환.


“크하하하하! 미 쥐새끼들! 10레벨 함점미 뻔하지. 쥐새끼뫄 참녀 주제메 뭄쳐봤자지! 크하하하하함!”

“...미친.”


고블린 함정 전문가를 동반한 건 부하들의 손실을 막기 위함이었을 뿐. 보신주의자인 오크 로드 라크를 막을 수 있는 함정은 10레벨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크흐흐. 매솜미들... 반갑지?”

“미친! 꿈에 볼까 무섭네. 반갑겠냐? 아... 젠장, 저 새끼는 왜 저렇게 딴딴한 거야?”


원래 태생부터 오크 로드는 물리 공격에 강하기도 했고, 10레벨 특성으로 마법 저항력을 올린 라크는 마법이나 정령 공격에도 강했다.


아무튼 세 번째 도전도 실패로 돌아갔다.


...

...

...


네 번째는 보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수리야, 이거 파괴 불가니까.”


여러 가지 보물 중에서 수호가 선택한 것은 파괴 불가 능력을 가진 [부르마]와 [암살자 전신 타이즈].


“미안하다. 이번에 잘 쓰고 돌려줄게.”


지구에서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기 전에 세탁기에서 각자 세 번씩 빨아왔기에 수하의 향기는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민감한 부위가 오랫동안 닿았던 것들. 특히나 [부르마]는 각선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은근히 편해서 수하는 속바지 대용으로 오랫동안 착용해온 애정템이었다.


“오빠만 믿어. 이번에는 감이 좋으니까.”


수호는 [부르마]를 질끈 쥐며 말했고, 수하는 오랜만에 부끄러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감 좋다는 말도 네 번째야!”

“어... 미안.”

“......”

“그, 그래도 이번에는 진짜 좋다니까. 확실해.”


어쩐지 도박 중독자인 남편과 아내의 대화 같지만, 어쨌든 수호와 수하는 알뜰살뜰하게 아끼고 아끼고, 운 좋게 스웨인과 빙결계 마법사를 종속시킨 상태에서 10회차 라크와의 만남을 만들어내었다.


“도발!”


[부르마] 주인의 첫 [도발]에 라크가 정신이 팔린 사이에 수호는 [부르마]를 라크의 얼굴에 씌어버렸고, [암살자 전신 타이즈]를 얇고 튼튼하게 꼬아 만든 밧줄로 라크의 목에 걸었다.


“컥?!”


자고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


“그리고 게이머는 아이템을 활용해야 하는 법이지!”


의복으로 만든 밧줄에 창기사 스웨인이 9천 골드가 넘는 비싼 벼락 창을 끼워 넣었고, 수호와 함께 창을 잡은 채로 돌리며 밧줄을 꼬아 졸랐다.


“이번에는 다르다!”


킹능성이 보인다 이 말이야!

최상급을 목전에 둔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와 함께 2 대 1 싸움을 만들어낸 수호였다.


“크흐믁... 분, 분노!”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눈까지 시뻘개진 오크 로드 라크의 광폭 분노에 드라큘앙과 창기사 둘이 허공을 날았다.


“미친! 왜 저자식만 저렇게 센 데!!!”


...

...

...


한 번만 더를 시전한 다섯 번째 트라이는 수호와 창기사 스웨인과 하프트롤 고양이 수인족 서큐벙스 혼종 수하의 레이드는 아슬아슬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

...

...


6번 째 트라이는 혹여 침입 일자를 조정할 수 있나 모험가를 종속시킨 후에 마을로 보내려는 시도를 해봤지만 그건 시스템의 제약으로 막혀 있었고, 어설프게 대응을 해서 모르는 척 한두 놈을 놓아주려는 것도 통하지는 않았다.


“으아아아악!”


이번에는 괜히 그런 식으로 꼼수만을 노리다가 9회차 마스터급에서 둘밖에 살리지 못했고, 어떻게든 오크 로드 라크만 남기고 재차 레이드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

...


6번의 연이은 도전을 실패한 다음 날.


현실에서는 18일 남짓 지난 것이지만, 게임 속 세상까지 합치면 근 200일 가량의 시간이 헛되이 지나간 것이었다. 물론 전투 감각은 극대화되었고 「던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도도 쌓았으니 아주 헛된 것 아니지만, 큰 문제가 생겨버렸다.


“미, 미안하다. 내가 생각을 못 했네...”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상대가 알고, 사흘을 쉬면 모두가 안다는 어쩌고저쩌고 시리즈. 수호와 수하는 현실에서 진행하던 BOL, 일렉트릭 기타와 피아노, 노래 연습 등 많은 프로젝트들에서 퇴보가 확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괜찮아.”


물론 수하는 알고 있었다.

오크 로드에 눈이 확 돌아가 계속 도전을 외쳤던 수호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뿐, 사실 수하는 던전 안에서 계속 이미지 트레닝을 하고 있었다. 챔피언들의 스킬이나 아이템트리 같은 것들을 외우고 정글 동선의 시간이나 CS 타임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상상했었다.


‘아니, 우리 오빠는 어쩜 이렇게 쭈글쭈글한 모습도 귀엽지? 흐헤헤. 울리고 싶어.’


물론 그렇다고 직접 게임을 하는 때보다 많이 퇴보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수하는 또 다른 미션을 위해서 그러한 손해를 감수한 것이었다.


‘이거 핑계로 커플 화보 찍자고 해야겠다.’


그러니까 이건 모두 수하의 큰 그림인지 몰랐던 수호는 얌전히 수하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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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임 기획자와 환생한 게임 캐릭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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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화. 20.09.09 66 4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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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화. 20.09.01 62 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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