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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괴물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게임 기획자와 환생한 게임 캐릭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게임

밀괴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0
최근연재일 :
2020.11.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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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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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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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110화.

DUMMY

수호는 아까 전 벌려놓은 나이글의 상처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으차.’


그리고 선객인 붉은 꽃나무의 줄기 옆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인벤토리에서 보물들을 꺼내 착용했다.


‘좀비의 위장은 여기 수납하고...’


[드라큘랑의 송곳니]는 정식으로 보물칸에 착용을 하였다.


‘...아우 씨.’


날카로운 [전신 아레트의 무한한 투쟁의 창]을 왼손으로 꽉 쥐었다. 창대가 아닌 창날. 정확히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스스로 손바닥을 꿰뚫은 후에 끈으로 묶어 고정해버렸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차례.


‘...후우. 슬라임도 먹었는데, 이걸 못 하겠냐?’


수호는 나이글의 등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붉은 꽃나무를 보호하는 형태로 자리를 잡고는 그 줄기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으... (꿀꺽) 음? 먹을 만한데?’


수호가 빨아 마시기 시작한 건 붉은 꽃나무의 수액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혈화목의 체액.

가이아 대륙에서만 나는 특별한 꽃나무인 혈화목은 땅이든 생물이든 어느 곳에서나 액체와 영양분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빨아먹으며 성장하는 무시무시한 기생목의 일종이었다.


꿀꺽꿀꺽.


참고로 혈화목의 뿌리는 액체와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것에도 최적화되어 있지만, 그 후에 빨아들인 외부요소를 줄기로 보내기 전에 유해물질을 걸러주는 필터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다만 빨아들인 것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체액을 생성하는 것과 엄청난 생존력과 꽃을 피워낸 후에는 주변을 공격하는 위험성 때문에 대륙의 금지 식물이 되었지만, 몇몇 연금술 단체나 의료 길드에서는 피를 정화해주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는 놈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체력이고 피라는 거지? 흐흐흐.’


그런 위험 식물이 악룡 나이글 공략을 위해 준비하는 수호와 수하에게 딱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악룡 나이글의 피 → 흡혈목.

흡혈목의 체액 → 수호 with 좀비의 위장.

수호의 피 → 투쟁의 창.


이렇게 하면 흡혈목이 나이글의 몸에서 제거되거나 수호가 체액을 마시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계속 해서 [전신 아레트의 무한한 투쟁의 창 ★★★★]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단 말이었다.


‘크으. 힘이 난다 힘이 나.’


축복이 지속되는 동안 무한한 체력과 엄청난 재생력과 강한 근력에 물러서지 않는 투쟁심을 부여하는 전설창의 특수 스킬.


꿀꺽꿀꺽.


이 축복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목이 완전히 잘려나가거나 심장이 한 번에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면 대륙의 어떠한 기술로도 수호를 해할 수는 없었다.


휙- 퍼억!


꼬리로 내려치는 공격도.


‘안마 꺼억.’


마법 공격도.


‘마법 저항 풀세팅이다. 이 멍청아.’


몸을 뒤집거나 흔들어서 떨어트리는 몸부림도.


‘...멀미약을 안 먹었네.’


물론 수호가 멀미를 앓을 일은 없으니 전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수호가 선택한 공간은 드래곤 하트와 가까운 쪽의 등. 드래곤의 신체구조 상 손이 직접적으로 닿는 곳도 아니거니와 드래곤 하트와 가까운 곳이라 나이글로서도 강력한 마법 공격을 할 수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아아아아악!!!”


때문에 나이글은 정신 나갈 것 같을 수밖에 없었다.

생살이 패인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피를 빨아먹고 있는 것이 흡혈목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체내에 피가 없이는 살 수가 없지 않는가. 차라리 팔이나 다리 도는 꼬리 부위였으면 잘라내기라도 했을 테지만, 심장이 있는 주변에 있기에 정밀한 마법 공격조차도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꺼져! 꺼지라고!!!”


물론 나이글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 건 팔카의 스킬 [도굴꾼의 비밀 은신처] 효과 때문에 타겟팅 마법사용이 불가능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크윽!”


나이글의 입에서 검붉은 화염이 넘실거렸지만, 애석하게도 분노를 표할 곳이 없었다. 최종병기 브레스를 자신의 심장 위에 쏠 수는 없지 않는가. 당장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아도 아직 나이글은 드래곤이었다.


“크윽!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그렇지만 드래곤도 한계는 있지 않을까? 고통과 분노에 나이글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수호는 툭툭 나이글의 생살을 건드리며 자극을 해주었다.


“크아아아악!!!”


그야말로 나이글을 피 말려 죽이는 사냥법이었다.


‘...이거 이래도 되나? 하여튼 정수리 이 기집애도 은근히 독한 구석이 있다니까... 어휴. 어쨌든 또 수리 말대로 되긴 했는데...’


갈수록 미약해져가는 나이글의 저항에 수호는 이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 보상이 진짜 뭘까? (꿀꺽).’


체액을 넘기는 건지 침을 넘기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수호는 성실히 목 넘김으로 나이글을 말려 죽이는 중이었다.



* * *



토끼굴에서 옹기종기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던 수하와 나머지 일행들은 외부의 소리가 잠잠해지자 쫑긋 귀를 치켜세웠다. 수인족이 셋에 나무 요정족 역시 긴 귀를 가지고 있으니 누가 봐도 쫑긋이라는 표현이 적당했다.


“...헐?!”


수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수하 님?!”


깜짝 놀란 엘리나가 혹여 일이 잘못된 건가 싶어서 수하를 불렀고,


“아... 일단 잡았다는데... 확인 사살 해본데요. 잠시만 기다려보라네요. 흐흐흐.”


음흉하게 웃으며 말하는 수하의 말에 엘리나를 비롯한 일행들의 눈은 휘둥그레 커졌다.


‘정말!’

‘드래곤을!’

‘잡은 거야?!’


아무리 봉인으로 약화되었다고 하나 드래곤.

지구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가이아 대륙에는 헤츨링도 드래곤이라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그 사냥을 위해서 오랫동안 연습하고 준비했다고 하나 고작 다섯 명에 소지할 수 있는 장비 숫자도 제한이 있었다.


그런데 드래곤을 잡았다고?


물론 그 드래곤이 대륙의 위기이며 그 위기를 막기 위해서 온 이들이라지만, 그랬기에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후욱. 후욱.”


확인사살 중이니 잠시만 더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후 수하는 괴상한 호흡을 시작했다. 이미 머릿속에는 수호와 결혼 후 이렇고 저런 상상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름 십 몇 년간의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인 상황에 아무리 수하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힘든 노릇이었다.


‘...무, 무서워.’

‘헐헐. 꼭 발정난 것 같구만.’

‘...드래곤의 피를 마신 혈과 맛은 어떨까?’


그렇지만 유리한 게임도 항상 마지막 방지턱 하나쯤은 있는 법.


“...?!”


조금 전까지만 싱글벙글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수하의 얼굴이 한 순간에 흙빛이 되어버렸다.



* * *



악룡 나이글은 너무 비통하고 원통하여 곱게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실제로 복수의 여신의 힘이 개입되어 봉인에서 풀려난 나이글의 복수심은 맥스 상태. 죽어서라도 봉인을 풀고 대륙에 엿을 먹이려고 했던 테카이 주교처럼 나이글 역시 곱게 죽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끄억. 이 버러지가 정말!’


거기에 수호 역시 만만찮게 밉살스럽게 나이글을 자극하긴 했다. 물론 그래야 나이글의 주의력을 흐트러트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나이글이 괜히 수하가 숨은 땅굴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수호는 수하가 BOL 게임 하듯이 나이글을 툭툭 건드린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게임 잘 한다는 극찬처럼 수호는 참 X 같이 나이글을 괴롭혔다.


으드득.


강인한 드래곤의 치아가 부스러질 정도로 이를 갈던 나이글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공격을 하기도 했다.


“...끄어어억!”


물론 그래봤자 딜탱힐 다 되는데다가 전설급 무구의 가호를 받고 있는 수호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냐. 네 놈은 끌고 간다.’


결국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나이글은 수호 하나만은 잡고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고, 수호가 자신을 공격하는 메커니즘을 파악했다.


‘...피?’


물론 흡혈목에 빨려가는 피를 막기 위해 이미 혈류 차단을 시도했었기에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지만,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창이 피를 매개체로 힘을 발한다는 것을 나이글은 알게 되었다.


‘......’


그리고 내린 결론은 자신의 피가 모두 사라질 때 마지막으로 녀석에게 저주를 거는 것이었다.


“흐흐흐.”


얄미운 모기 같은 놈이 경박스럽게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서 몇 번이나 울화통이 터져 화병으로 죽을 것 같은 위기를 꾹 참아 넘긴 나이글은 마침내 생의 끝에서 마지막 저주를 날렸다.


“...용의 이름으로 명한다. 죽어라. 이 버러지야.”


중2병 같지만 용언인 파워 워드 킬.

긴 봉인 끝에 간신히 깨워나자마자 다시금 죽음을 맞이하게 된 고룡의 원념에 복수의 여신의 가호로 강력해진 용언 마법이 수호에게 작렬하기 전. 아니, 정확히는 특정할 수 없기에 도굴꾼의 비밀 은신처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대상으로 사용되기 전에 수호는 황급히 스킬을 사용하였다.


“우왓! 네모네모 멈뭄미의 저주!”


제한적이긴 하지만 주문계열 하드 카운터. 그래도 지금껏 수많은 시련들은 땅따먹기로 극복한 것이 아닌 수호는 순간적으로 대처에 성공할 수 있었다.


“파뭐... 뭐?! 파뭐... 크믁!”


다만 악룡 나이글도 자신의 등을 긁을 수 없는 멍청이 근육룡만은 아니었다.


‘...주문 체계 자체를 건드린 건 아니군. 내가 이대로 물러설 줄 아느냐!’


악룡 나이글은 순간적으로 무언無言 주문으로 바꾸었다. 그래도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답게 대처한 것이었다. 물론 무언 주문이니만큼 정식으로 주문을 사용한 것에 비하면 약하다는 설정이 따라붙긴 해야 하겠지만...


“...므하하하하하!!!”


어쨌든 나이글은 복수의 칼을 날릴 수가 있었다.


“...컥! 으억?!”


피, 아니, 흡혈목의 체액을 토해내는 것을 시작으로 수호와 흡혈목은 함께 시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 * *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수하는 수호에게서 정말 끝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 시스템의 알림을 확인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악룡 나이글이 사망하였습니다.]


“꺅! 됐다! 으흐흐흐흐. 해냈다! 해냈어!”


경 to 사망 the 축.

평소에 도도하다 못해 베일 것 같았던 고양이 수인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하는 방방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꺅? 정말요?”

“헐! 정말이신가?!”

“와! 그거 리얼 팩트인가요?”


사도들 간에는 특별한 대화 방법이 있단 걸 아는 이들이 물었지만, 이미 미션을 달성한 기쁨에 심취한 수하는 대답해줄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 이 기쁨을 수호와 나누어야지 여기 사람들하고 나누고 싶지 않은 수하였다.


‘한수호! 한수호! 한수호!’


수하는 BOL식 극찬으로 이름을 세 번 연호하며 수호를 불렀다. BOL에서 우리 팀 정글러가 상대가 다 잡아놓은 엘더 드래곤을 뺏어올 때보다 5조 5억 배는 기쁜 상황. 그리고 이건 게임에 유리한 버프를 얻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을 끝내는 알림이었으니 승리의 축배를 터트려도 무방했다.


‘흐흐흐! 오빠 짱! 역시 우리 오빠 믿고 있었다구~!’


여기 다른 일행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수하는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흐흐... 응? 오빠? 왜 대답이 없어?’


그런데 수호의 대답이 없음에 수하는 어깨춤을 멈추었다.


‘...설마?’


[호출]로 대답이 없는 건 늦은 밤 술자리에 간 연인의 코톡이 대답 없는 것보다 훨씬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일.


“오빠아아아!!!”


수하가 후다닥 땅굴을 나간 후에 잠시 서로 마주보며 멀뚱멀뚱하던 일행도 그 뒤를 따라나갔다.


“...히익!”

“...헐헐. 정말이군.”

“...드, 드, 드래곤이 정말로...”


어쩐지 창백하다 못해 거죽만 남은 것 같은 드래곤의 사체에 일행들이 감탄을 터트리는 동안 수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수호를 찾아 달렸다.


“...수, 수하님?”


팀에 합류한 이후로 줄곧 수하의 눈치를 살폈던 불쌍한 초식 동물 엘리나가 가장 먼저 수하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겼다.


“팔, 팔카님?!”

“만세! 만... 어? 왜?”

“수, 수호님이 잘못 되신 거 같아요!”


그제야 다른 일행들도 부랴부랴 나이글의 사체 앞으로 달릴 수가 있었다.



* * *



4성 전설급 창의 축복이 아니었다면, 수호가 신성력을 가진 이가 아니었다면, 또는 마법 저항 풀세팅이 아니었다면, 봉인의 후유증으로 약화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순간적인 [네모네모 멈뭄미의 저주]로 타이밍을 뺏고 무언 주문으로 약화된 것이 아니었다면, 또한 [도굴꾼의 비밀 은신처] 덕분에 [파워 워드 킬]의 직접 타겟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었다면...


“...끄으.”


수호는 이미 즉사를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고룡의 마지막 저주였다.

그것도 네메스 여신의 가호로 더욱 강력해진 저주였기에 위의 조건 중 하나라도 삐끗했더라면 수호는 정말로 즉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오빠?!”


놀라서 달려온 수하는 수호의 상태를 보고 굳어버렸다. 물론 몸은 누구보다 빠르게 수호에게 다가와 괜찮은지 확인을 했지만...


“어, 어떻게 된 거야? 어? 어떻게 된 거야?! 고, 고양! 정신 차리고! 빨리 회복 좀 해봐!”


수하는 금방이지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놀란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버프 스킬 [고양]을 사용하고 수하는 수호를 다그쳤다. 빨리 일어나라고. 다만 수호는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통스런 신음만 계속 울릴 뿐이었다.


‘독? 뭐지? 오빠가 이렇게... 아? 파워 워드 킬? 그거 타겟팅 아니었어? 아...! 그게 걸리는 거 맞냐고!’


수하의 명민한 머리는 수호가 쓰러져 당황하여 하얗게 되어버린 상태에서도 답을 찾아내었고, 서둘러 주변을 살피며 수호를 살릴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칫.’


아직도 수호의 손을 꿰뚫고 있는 창의 모습에 수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상처를 낼 거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할 거란 건 생각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원래 책임감 가득한 수호라면 더한 일도 할 거라고 생각했어야 했지만, 특별 보상에 눈이 먼 수하가 간과했던 것이었다.


‘...나 때문에... 아니야. 지금은 그딴 생각보다는... 빨리 오빠를 살릴...’


자책보다는 먼저 대책부터 강구하기로 한 수하는 서둘러 다른 것을 확인했다.


‘흡혈목은... 젠장, 벌써 죽었네.’


사실 데미지 기여도로만 따지자면 드래곤을 잡은 1등 공신인 흡혈목은 파워 워드 킬에 즉사한 상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포션을 하나라도 챙기는 건데...’


어차피 이번 파티는 수호가 무너지면 모두 끝나는 것. 그랬기에 힐러인 수호를 믿고 포션 하나 챙겨오지 않았었다. 고로 아이템으로 수호를 치료할 수는 없었다.


‘...아! 미션?’


수하는 순간적으로 여러 방안을 떠올렸고, 특별 보상으로 수호를 치료할 것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의문점을 떠올렸다.


‘...왜 안 끝나?’


분명 악룡 나이글 사냥이라는 성공 조건을 완수했는데 지구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의아했던 수하는 그제야 자신이 기쁨에 확인하지 않았던 알림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악룡 나이글이 사망하였습니다.]

[악룡 나이글의 마지막 저주에는 네메스의 가호를 받은 나이글의 원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저주가 걸린 이가 사망하거나 그 저주가 완전히 해소되어야만 악룡 나이글 사냥이 완수됩니다.]

[악룡 나이글의 원혼이 깃든 저주: 1/1]


먼 옛날 「판타지 삼국지」에서는 마신의 작은 편린 때문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듯이 여기서도 나이글이 죽은 것만으로 문제의 끝이 아니었다.


“말, 말도 안 돼.”


수하는 또 한 번 입술을 질끈 깨물어야만 했다.


“...망할 게임의 신.”


그리고 고민하지 않고 수하는 창날에 박힌 수호의 손을 마주 잡았다.


푹.


아니, 정확히는 창날에 일부러 손을 베였다. 아찔한 고통이 손바닥에서부터 온몸을 울렸지만, 수하는 꾹 참고 창날에 피를 먹였다.


[전신 아레트의 무한한 투쟁의 창 ★★★★]


[전투와 투쟁과 혼돈의 신 아레트의 축복이 깃든 창. 피를 머금을수록 소유자에게 아레트의 축복을 부여한다. 피의 양과 피의 격에 따라 축복의 강도가 달라진다. 아레트가 인정한 사도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같은 신성을 품은 무구가 아니면 파괴되지 않는다. 만약 손상되더라도 아레트의 신전에서 수리 및 강화를 받을 수가 있다.]


[현재 피 보유량: 1%]

[머금은 피의 격: 15랭크]


잠시 후 엘리나를 비롯한 일행들이 도착했고, 그녀들은 얄짤 없이 창날에 헌혈을 해야만 했다.


...

...

...


모두가 피를 짜내어 창날에 먹였음에도 수호는 깨어나지 않았고, 5층의 봉인진 역시 아직 나이글의 원혼으로 인해서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플레이어로써 포기도 할 수 없었다. 포기는 각자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천하의 수하도 아예 포기를 외칠 수도 없는 상황이 오게 될 줄은 몰랐었다.


그래도 다행히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있어요! 아직 덜 여물었지만 씨앗이 있긴 해요!”


나이글은 죽어 원혼 깃든 저주를 남겼고, 흡혈목은 죽어 조그마한 씨앗을 남겼다.


“...으으으.”

“조금만 더! 더! 더!”

“...미, 미안해요. 헤엑 헤엑. 여, 여기까지가 한계에요. 헥.”


마치 지구에서 링거를 맞듯이 전설창을 흡혈목의 줄기에 꽂아 넣은 채로 수하와 일행들은 봉인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 * *



바짝 마른 레드 드래곤은 훌륭한 땔감이었다.


타닥타닥.


물론 드래곤의 살점 역시 훌륭한 식량이었고.


원래라면 수호가 [자동 사료 급여기]에서 사료를 꺼낼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수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황에서 보물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기에 사용이 불가능했다. 나무요정 드레알라무의 [생명의 열매]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단백질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는가. 비록 수천 년 묵은 고기라 찝찝하긴 하더라도 불에 잘 구우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으.”


다만 맛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긴 했다.


‘오빠가 없으니까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네.’


회복, 정화, 요리부터 식량 보급에 방어력 버프까지. 수호가 없으니 모든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수호가 없으니 나이글을 잡은 후에도 마음이 불편한 일행들이었다.


“...수하 님, 좀 쉬세요.”


기계적으로 질긴 드래곤 고기를 잘게 씹어 수호의 입에 넘겨주고 있던 수하에게 엘리나가 다가와 휴식을 권했다.


“......”


초췌해진 수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수하님, 보름 넘게 제대로 주무시지도 않았잖아요. 수하님도 휴식을 취하셔야죠. 네?”


수호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시달리는 중인 수하는 벌써 2주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수호를 간호 중이었다.


“...에휴.”


수호도 쉽게 이기지 못하는 고집불통을 어찌 엘리나가 이길까. 엘리나가 한숨을 쉬고 물러난 후에 수하는 수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보 같이 잠들어 있는 모습이 수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빨리 일어나 오빠. 내가 잘못했어... 응?”


수하는 자신이 몹시도 미워졌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고집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욕심을 억누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수호를 이대로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수하는 몹시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우물우물.


때문에 수하는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음식물을 씹어 수호에게 먹이고, [수격+]을 다뤄 흡혈목에 물을 주고, 수호의 몸을 닦아주고, [좀비의 위장]으로 맛없는 드래곤 고기로 영양을 채우며 피를 짜내 창날에 먹이고, 수호의 대소변을 받아주고, 드라큘랑의 송곳니로 수호의 [회복+]이 나올 때까지 가챠를 돌리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평소 영특한 수하로서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고 그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멍청한 행동이었다. 최선의 간호는 간병인이 스스로를 혹사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휴식을 취하며 오래오래 옆을 지킬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니까.


“...오빠, 미안해. 오빠... 빨리 일어나. 응? 나 진짜 무서워...”


그렇지만 수호를 잃는 건 수하에게는 이성도 놓치게 만드는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이성도 두려움도 모두 체력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것. 수하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수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기절하듯 잠이 들어버렸다.


“...흐으으.”


그리고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때 수호가 눈을 떴다.



* * *



수호는 엘리나에게 그 동안의 일에 대해 전해 들었다.


‘아오 젠장.’


수하가 한 고생들에 이어서 수하가 자신의 대소변까지 받아주었다는 말에 수호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컥. 쪽팔려서 앞으로 어떻게 사냐... 하아.’


그리고 시스템의 알림들도 확인했다.


‘...저주?’


저주라고 하면 [정화]를 사용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정화?”


이미 수호가 깨어났다는 말은 저주가 약해졌다는 말이었고, 그 약해진 저주는 [정화] 한 번에도 손쉽게 깨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파사삭.


마치 얇은 유리가 깨지듯 [정화] 한 번에 수호를 의식불명으로 만들었던 저주는 사라지고 말았다.


[악룡 나이글 사냥을 완수하였습니다.]


“어? 어!”


[도전을 완료합니다.]


시스템 알림음에 수호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화]를 좀 천천히 할 걸. 수호에게 제일 소중한 건 수하였지만, 여기 세상에서 만난 동료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은 필요하지 않는가.


“아잇 젠장. 엘리나 고생했어. 잘 있어. 잘 먹고. 잘 살고. 좋은 남자 만나고. 행복하게 잘 살아!”

“네에?”

“우리는 사라질 거니까! 잘 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부 전해! 우리는 잘 먹고 잘 살 테니까! 모두 잘 살아!”


보름 만에 깨어난 수호가 갑자기 다다다 쏟아내는 말에 엘리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지만, 수호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할 시간도 없이 우다다 달려가 지쳐 잠든 수하의 손을 잡았다.


[도전 성공!]


그리고 수하의 손을 잡자마자 수호는 보상의 공간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앗... 아... 아... 두, 두 분도 행복하게 잘 사세요... 부디... 감사합니다.”


엘리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팔카와 드레알라무에게 알렸고, 두 사람의 부재不在 상황에 대비한 훈련들을 반복했던 적이 있었기에 나머지 동료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아! 통로가 열렸어요!”


다행히도 외부로 빠져나가는 통로가 열렸고, 세 사람은 막 동굴로 들어오려던 연합군 일원들과 만날 수가 있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후우. 다행히 악룡은 물리쳤습니다.”

“그렇군요. 엇?! 사도님들은요?”

“아! 그 분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여기 엘리나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렇습니까? 혹시 그분들이 마지막으로 전한 말씀이 있습니까?”

“...잘 먹고 잘 살라고... 잘 살라고 하셨어요.”


연합군의 모두는 두 사도에게 감사인사를 올리며, 두 사도 역시 잘 먹고 잘 살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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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임 기획자와 환생한 게임 캐릭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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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14화. (끝.) +3 20.11.13 120 6 28쪽
113 113화. 20.11.13 47 2 25쪽
112 112화. 20.11.13 40 2 23쪽
111 111화. +1 20.11.10 54 4 22쪽
» 110화. 20.11.09 58 3 23쪽
109 109화. 20.11.04 57 4 24쪽
108 108화. 20.11.01 50 4 22쪽
107 107화. 20.10.29 48 3 22쪽
106 106화. 20.10.28 52 3 22쪽
105 105화. 20.10.27 52 3 23쪽
104 104화. +1 20.10.16 63 4 19쪽
103 103화. 20.10.11 58 4 22쪽
102 102화. 20.10.08 59 4 25쪽
101 101화. +1 20.10.05 53 5 27쪽
100 100화. 20.10.03 80 3 25쪽
99 99화. +1 20.09.30 56 5 22쪽
98 98화. 20.09.27 57 4 23쪽
97 97화. 20.09.25 51 4 23쪽
96 96화. 20.09.23 55 3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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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91화. 20.09.13 58 3 21쪽
90 90화. 20.09.11 58 4 23쪽
89 89화. 20.09.09 66 4 23쪽
88 88화. 20.09.07 66 4 23쪽
87 87화. 20.09.05 60 4 21쪽
86 86화. 20.09.03 57 4 23쪽
85 85화. 20.09.01 62 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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