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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이아빠의 서재

노래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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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이아빠
그림/삽화
내복이아빠
작품등록일 :
2011.05.26 12:44
최근연재일 :
2019.01.29 07:06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9,195
추천수 :
90
글자수 :
250,466

작성
17.11.28 14:50
조회
139
추천
1
글자
10쪽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7

DUMMY

처음이었다, 이리가 미소를 거부한 것은.

이리가 그의 옛 스승을 찾아뵌 날 밤, 미소는 약속대로 이리를 찾아왔다. 평소에 모톨아치의 옷을 입거나 몸에 딱 맞고 활동하기 편한 옷만을 입는 미소가 하늘거리고 화려한 여자들의 옷을 입은 채 이리가 사용하고 있는 별채로 들어섰다.

미소는 당당했다. 이리를 만나기 위해 몰래 야행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리는 미소의 정혼자였고, 간밤에 만나 사랑을 나눈다고 해서 뭐라고 떠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혼자라면 부부나 다름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혼이라는 것은 깨어지지 않는 것이고, 이리는 어차피 곧 가람가야의 주인이 될 여자의 것이다.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따라나서는 이들을 모두 물리고, 미소 홀로 이리의 별채 안으로 들어섰다. 달아오르는 마음에 급한 걸음을 옮겨 이리의 방으로 들어섰지만 그곳에 이리는 없었다. 예민한 그의 귓가로 물소리가 들렸다. 목욕을 좋아하는 이리였기에 별채의 한편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이라 짐작한 미소는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목욕탕의 앞에는 이리의 옷가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리의 목욕을 도와주기 위해 서있는 아랫사람인 듯 했다.

젊은 여자였다.

미소는 갑자기 치솟는 짜증과 질투로 자신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하는 여자의 따귀를 갈겼다. 미소의 따귀는 여자를 바닥에 메다꽂을 만큼 매서웠다. 바닥에 엎어져버린 여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이마를 바닥에 찧고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이리는 나만의 것이다.

어떤 사람도, 여자든 남자든 내 소유물을 가까이 해선 안 된다.


"당장 꺼져."


미소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하지만 안에 있는 이리를 의식한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서늘한 말에 여자는 바닥에 떨어져버린 이리의 옷가지조차 추스르지 못한 채 네 발로 기듯 도망쳤다.

벌레처럼 기어 도망치는 여자의 뒷모습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던 미소는, 등 뒤에서 느껴진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이리야."


그곳에는 이리가 서 있었다. 달빛에 눈부시게 빛나는, 미소만의 아름다운 남자가. 길게 자란, 비단결 같은 머리를 뒤로 넘긴 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 매끈하고 탄탄해 아름다운 근육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들이 달빛에 반짝였다.

어깨도, 가슴도, 허리도. 미소의 눈에는 모두가 완벽해 보이는 남자.

이리는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미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 감기 걸리겠다. 들어가, 마저 씻겨줄게."


"예."


이리는 미소의 어떤 말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이리는 달랐다. 미소가 하는 말을 모두 들어주고, 미소가 하는 행동을 모두 받아주었다.

이리는 몸을 돌려 목욕탕의 안으로 들어갔고, 미소 역시 하늘거리는 치마를 걷어 올린 채 그의 뒤를 따랐다.

목욕탕 안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가운데의 커다란 욕조 속에는 뜨거운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돌벽의 한편에 걸린 자그마한 은거울에는 김이 서려 있었다. 이리는 김이 오르는 욕조 속에 발을 담갔다.

미소는 목욕탕 안으로 들어서며 신을 벗었다. 예쁜 색감의 저고리를 벗고, 겉치마도 끌러 내렸다. 드러난 어깨와 허리는 군살이 없고, 알맞은 근육을 덮은 탄탄한 살결은 새하얬다. 속치마마저 벗어낸 미소는 벗은 옷을 던져두고, 알몸인 채로 이리가 몸을 담근 욕조로 향했다.

이리는 욕조로 걸어오는 미소의 나신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 들어갈게."


"예."


이리는 몸을 조금 움직여 미소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세 사람이 들어가도 넉넉할 크기의 욕조였기에, 미소는 별 무리 없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미소는 욕조에 무릎을 꿇은 채 돌아앉은 이리의 등을 씻어주었다. 탄탄한 등, 매끈한 살결. 언제 만져도 기분 좋은 몸이었다. 이리가 자신의 것이라는 게 즐거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이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것이 기뻤다.

미소는 이리의 등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키며 말했다.


"영원히 나의 것이어야 해. 나만의 아름다운 조각."


"......."


이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원채 말이 없는 남자여서, 미소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더욱 더, 두 팔과 다리로 얽매듯 그를 안았을 뿐.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이리의 몸이 약하게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미소의 단 하나뿐인 조각상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두려울 것이 없어야 할, 모든 것을 가질 미소를 가져서, 곧 그가 두려워하는 것만을 두려워해야 할 남자가 떨고 있었다.

미소는 이리의 어깨를 움켜쥐고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이리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하지만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둔 두 주먹이, 너무 꽉 쥐어 피가 빠져버린 듯 새하얗게 변해버린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미소는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리에게 말했다.


"왜 그래, 이리야. 추워?"


"......아닙니다."


이리는 시선을 내리깐 채, 스며들어온 달빛에 반짝이는 수면을 볼 뿐이었다.

미소는 두 손을 들어 이리의 두 뺨을 감싸 쥐어 고개를 들게 했다. 미소는 이리를 향해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재차 물었다.


“말 해봐. 다 들어줄게.”

눈동자를 내리깐 채 미소의 눈을 피하던 이리가 이윽고 두 눈을 들어 미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흔들리는 눈에 힘을 주어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미소의 눈을 드려다 보았다.


"스승님...... 꼭 죽이셔야 합니까."


미소로서는 처음 듣는 물음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어서, 미소는 약간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러니, 이리야. 그런 건 왜 물어봐."


이리는 새빨개진 두 눈으로 미소를 바라보았다.


“다 쓰고 나면, 저도 그렇게 죽이실 겁니까.”


“무슨 말이야.”


“반대하면, 거절하면! 그렇게 죽여 버릴 겁니까!"


이리가 화를 내고 있었다. 미소의 남자인 이리가, 그에게 분명히 화를 내고 있었다.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 미소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리야. 나한테-, 화내는 거니?"


"-스승님은 와 죽이실라는 겁니까. 미소님의 스승이기도 한데."


단 한 번도 미소에게 질문한 적 없는 이리가 처음으로 질문을 했는데, 고작 '그딴 것' 때문이라니.

미소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이었니. 안 그래도 오늘 만나고 왔다더니. 특별한 대화라도 나눈 거니? 죽일 거라고 말이라도 하고 온 거야? 아니면-......."


"......."


“아니면 미다 그 년이 너에게 무슨 말이라도 한 거니?”


미소의 말에 이리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미소는 한 손으로 이리의 두 뺨을 강하게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미소가 들여다 본 이리의 눈빛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두려움, 후회, 그리고...... 걱정.


미다 때문이야.

그 가증스러운 년이 바람을 넣은 거야.


미소의 두 눈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치밀어 오르는 역정에 이리의 턱을 움켜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미소는 화내지 않았다. 차분히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천천히 말했다.


"너 그 사람 싫어했잖아, 이리야. 우리 어렸을 때, 그 사람한테 그렇게 많이 맞고 혼나고 미움 받았잖아. 이유가 뭐가 중요해, 그런 사람을 죽이는 건데. 꼴 보기 싫은 사람 치워버리는 것뿐이야. 기분 좋은 일이잖아? 이리야, 이때까지 우리 잘 해왔잖아. 둘이서 잘 해왔잖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그러니 미다 그 녀...... 그 애가 뭐라고 했든 무시해. 그 아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그 따위 년 말은 무시하고 넌 내 옆에서 내 말만 잘 들으면......."


이리는 미소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그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리의 거친 몸짓에 욕조의 물이 사방을 튀었고, 미소의 몸이 뒤로 밀리며 욕조 한편이 들썩였다.


"사람의 목 줄기를 뜯는 게!"


미소의 어깨를 움켜쥔 이리가 소리쳤다. 이리는 눈동자를 부릅뜬 채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손가락은 미소의 어깨를 부술 듯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세는 오래 가지 않았다. 결국 고개를 떨어뜨리고 미소의 어깨를 놓아버린 이리가 힘없이 말했다.


"기분 좋을 리....... 없다 아이가......."


미소는 그대로 얼어버린 것 같았다. 놀란 듯 치켜 뜬 두 눈으로 고개를 숙인 이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소는 이내 표정을 풀었다.

어찌되었든 이리는 자신의 것이다. 미다 년이 무슨 꿍꿍이든 간에. 이리도 가끔씩은 화도 낼 수 있고 슬퍼할 수도 있다. 집에서 키우는 개, 고양이도 가끔 그러는데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겠는가. 미소는 그리 생각했다.

미소는 손을 들어 붉게 상기된 이리의 뺨을 쓰다듬고 팔을 뻗어 그의 가슴을 안았다.


"괜찮아, 이리야. 별 일 아니잖아. 응. 네가 하기 힘들면 내가 할게. 그래, 힘들 수도 있지. 내가 직접 하든지 할 테니까, 기분 풀어."


미소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별 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이리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리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손이 이리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이리는 굳어버린 동상처럼, 얼어버린 시체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의 끝은, 수증기 때문인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이리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고마 해라!"


이리는 미소를 거칠게 때어내었다. 그리고 욕조를 나갔다.


“이리! 돌아와. 당장!


미소가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리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리는 바닥에 팽개쳐져 있는 그의 옷을 거칠게 집어 들어 대충 꿰어 입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미소만을 남겨 둔 채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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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4 17.12.16 116 1 9쪽
56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3 17.12.11 86 1 11쪽
55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2 17.12.08 110 1 9쪽
54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1 17.12.06 117 1 9쪽
53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0 17.12.03 103 1 13쪽
52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9 17.12.01 124 1 12쪽
51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8 17.11.30 123 1 11쪽
»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7 17.11.28 140 1 10쪽
49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6 17.11.27 107 1 9쪽
48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5 17.11.24 101 1 8쪽
47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4 17.11.22 119 1 9쪽
46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3 17.11.22 110 1 11쪽
45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2 17.11.21 129 1 11쪽
44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 17.11.21 160 1 7쪽
43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10 17.11.02 140 1 9쪽
42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9 17.10.20 117 1 12쪽
41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8 17.10.18 127 1 13쪽
40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7 17.10.18 132 1 8쪽
39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6 17.10.17 141 1 8쪽
38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5 17.10.17 121 1 12쪽
37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4 17.10.15 196 1 13쪽
36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3 17.10.15 240 1 8쪽
35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2 17.10.14 121 1 9쪽
34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1 17.10.14 112 1 10쪽
33 제3장 도망 - 9 17.10.14 135 1 8쪽
32 제3장 도망 - 8 17.10.13 15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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