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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의 고독한 서재

창백한 핏빛 달이 떠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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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HhHhHh
작품등록일 :
2019.05.16 20:52
최근연재일 :
2019.06.05 16:15
연재수 :
5 회
조회수 :
614
추천수 :
1
글자수 :
23,134

작성
19.05.2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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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야수병(野獸病) (3) (수정)

DUMMY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낮 내내 긴 숙면을 취했던 오스틴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날 부르지 그랬어요. 괜찮아요?”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던 소피아가 황급히 오스틴을 부축하기 위해 다가갔다.


“어, 확실히 아까보다 몸이 개운해진 거 같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는 오스틴은 힘겹게 식탁 위에 손을 얹어 컵에 있는 물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시장하죠? 마침 저녁 다 됐으니까 좀 먹어요.”


“아냐, 아냐. 별로 생각 없어. 에드워드는?”


“아까 물 마시러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던데 아무래도 많이 피곤한가 봐요.”


갈증을 해소한 오스틴은 식탁에 올린 손을 떼고 현관 옆에 있는 창문으로 걸어가 밖을 살펴보았다.


“비가 많이 오는군.”


날씨를 확인한 오스틴은 현관 옆의 벽 옷걸이에 걸린 조끼와 검은 코트를 힘겹게 입고 보울러를 쓴 뒤, 검은 우산을 챙겼다.


“잠깐 어디 좀 갔다 올게, 소피아. 밥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에드워드랑 먼저 저녁 먹고 있어.”


“세상에! 그 상태로 어딜 가려고요?”


갑자기 나갈 채비를 하는 오스틴을 보고 놀란 소피아가 오스틴을 불러세웠다.


“야남 병원으로 갈 거야. 내가 병원을 비우게 돼서 환자들 모두 임시로 야남 병원으로 이송됐어. 그들의 치료는 내 손으로 시작했으니 내가 끝을 맺어야지.”


오스틴은 문고리를 잡아당겨 문을 열었지만, 소피아가 다가와서 손으로 문을 밀쳐 닫아 오스틴 앞을 막아섰다.


“아, 안 돼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성하지 않은 몸으로 어떻게 뭘 하겠다는 거예요. 남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본인 몸부터 챙기라고요.”


오스틴은 소피아의 두 손을 포개어 잡았다.


“소피아,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들은 날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여기에서 나만큼 내 환자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 그들이 빨리 치료되어서 하루빨리 일상생활로 복귀하려면 내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해.

그런데도, 내가 여기서 그들을 등진다면 이 벌어진 상처들은 빨리 나을지 몰라도 내 마음속 상처는 한없이 벌어지고 말 거야.”


오스틴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난 정말 괜찮아.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무엇보다도 난 의사잖아? 이 정도는 활동을 격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큰 탈 없이 치료될 상처야.”


소피아는 결연한 오스틴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을 꾹 다문 뒤, 거동이 불편하여 제대로 입지 못해 흐트러진 오스틴의 옷매무새를 바로잡아주었다.


“정말이지······ 오스틴, 당신의 그 고집만큼은 첫 만남 이래로 단 한 번도 이길 수가 없네요.”


넥타이까지 손수 매어준 소피아는 현관을 열었다.


“절대 무리는 하지 말아요. 알겠죠?”


“하하하, 걱정하지 마.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날 믿어줘서 정말 고마워, 소피아. 그 신념에 꼭 보답하도록 할게.”


오스틴은 우산을 펴 밖으로 나갔다.


“비가 와서 그런지 날이 좀 쌀쌀하군. 다녀올게.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


배웅하는 소피아에게 인사한 오스틴은 곧바로 야남 병원으로 통하는 중앙 광장으로 향해 걸어갔다.




시간이 흐르고 오스틴은 광장으로 가기 전, 아침에 폐쇄된 자신의 병원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병원 앞에는 두 명의 순경이 현장 보존을 위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순경 둘은 잠시 시가를 태우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콧수염이 난 순경이 앞에 지나가던 오스틴을 발견하고 이름을 불렀다.


“어라? 오스틴 의사 선생 아니요?”


“하하, 이런 궂은 날씨에 고생 많으십니다.”


순경 둘과 눈이 마주친 오스틴은 예를 갖춰 인사했다.


“몸은 괜찮소? 오늘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괜찮습니다. 살짝 베인 정도라서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침에 잠깐 봤는데, 자네가 누운 병상이 피로 시뻘겋게 물든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네.”


콧수염 난 순경 옆에 있던 안경 쓴 순경이 입에 머금은 연기를 내뿜고 말했다.


“그나저나, 어딜 가는 거요?”


“야남 병원에 좀 들르려고 합니다.”


“야남 병원에 왜?”


“제 환자들 상태 좀 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더군요.”


오스틴의 대답을 들은 순경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역시 오스틴 선생답구려. 다른 의사들도 이런 걸 본받아야 하는데 말이야. 사람 목숨이고 뭐고 오직 돈밖에 찾질 않으니, 쯧쯧.”


안경 낀 순경은 의사들을 험담하며 혀를 끌끌 찼다.


“가던 길 붙잡아서 정말 미안하구만. 얼른 가보게. 무리하다가 쓰러지지 말게나.”


“하하하, 아닙니다.”


그렇게 오스틴은 순경들과 작별을 하고 몸을 돌려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이에 맞춰 순경들도 피우고 있던 시가를 정리하고 근무를 서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광장 맞은편에서 머리를 좌우로 내려 이마가 드러난 흑발의 사내가 나타나 오스틴의 병원 앞으로 다가왔다.


사내는 겉은 검은 망토, 속은 하얀색 교단 옷을 입은 상태로, 외관으로 보았을 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병원 앞에 다다른 사내는 순경 둘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바로 사고가 일어난 그 병원입니까?”


“맞긴 맞는데 누구십니까?”


순경의 역질문에 사내는 품 안에 있던 수은으로 된 십자가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전 비르겐워스의 학자, ‘로렌스’라고 합니다.”




도착한 오스틴은 잠시 쉬어가기 위해 분수 옆에 섰다.


오스틴은 우산을 위로 살짝 젖혀 계단 위 너머에 자리 잡은 야남 병원을 올려다보았다.


“휴, 몸이 이러니까 너무 힘들구만.”


오스틴은 욱신거리는 다리를 살펴보았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새로 다리에 감은 붕대는 어느새 상처 틈으로 새어 나온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


상처를 살펴보던 오스틴은 갑작스러운 두통과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며 한쪽 다리로 무릎을 꿇고 분수대에 손을 얹었다.


오스틴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차원이 뒤틀리듯 파도처럼 일렁였고, 속은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오스틴은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내었고, 그에 따라 두통과 어지러움은 점차 호전되어갔다.


“몸이······ 갑자기 왜 이러지?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몸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이상증세에 오스틴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오늘 피를 꽤 흘려서 이러는 걸지도 모르겠군. 병원에 가서 약 좀 먹어야겠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 오스틴은 야남 병원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순경의 허가를 받고 오스틴의 병원 내부로 진입한 로렌스는 등불을 이리저리 비추어 살펴보았다.


병원 내부의 바닥과 벽, 사물엔 혈흔과 검게 응고된 혈액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때가 밤이라 그런지 더욱 참혹해 보이는 효과를 낳고 있었다.


“그나저나, 비르겐워스의 학자 되시는 분이 도대체 여긴 무슨 일로······.”


로렌스 뒤를 따라오던 순경이 물었다.


“소문을 들었는데,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더군요.”


“소문이요? 제길, 입단속을 그리했는데······.”


순경은 혀를 찼다.


그렇게 가만히 병원 내부를 거닐며 사방을 둘러보던 로렌스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무릎을 꿇어 몸을 굽힌 뒤, 나무판자를 덧댄 바닥에 등불을 비추어 보았다.


거기엔 짐승의 것으로 보이는 털 뭉치가 혈액과 뒤엉켜 굳어 바닥에 붙어 있었다.


“설마······.”


로렌스는 떨리는 손으로 털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털을 만져본 로렌스의 표정은 급격하게 나빠졌고, 곧바로 뒤따라 들어온 순경을 쳐다보았다.


“여기에 있던 환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환자들이라면, 현재 야남 병원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


순경의 대답에 표정이 굳어버린 로렌스는 등불을 내려놓고 급하게 밖으로 나와 야남 병원을 올려다보았다.


야남 병원 위로는 비구름 사이로 보이는,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큰 보름달이 떠 있었다.


잠시 달을 바라보던 로렌스는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 뒤, 십자가를 두 손으로 감싼 채 입을 열었다.


“우리는 피에서 태어나, 피로 인간을 만들고, 피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


로렌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각을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가 야남에 널리 울려 퍼져나갔다.




새벽 2~3시경,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던 에드워드는 몸을 일으켜 침대 옆에 있는 조그만 탁자 위의 컵을 들어 물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음······ 머리야. 벌써 밤이잖아?”


창문 밖이 어두운 걸 확인한 에드워드는 시계탑을 확인했다. 시계탑은 2시 30분 근처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밤중에 깨어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던 에드워드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베개에 머리를 붙여 잠을 청했다.


전날 겪은 일 때문인지 심신이 상당히 피로한 상태였던 에드워드는 오랜 시간 숙면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금 고요해진 순간, 갑자기 창밖에서 무언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적인 신발 소리가 아니라, 마치 맨발로 걸어오는 듯한 소리였다.


곧, 그 발소리의 정체가 창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수북이 난 털, 돌출된 송곳니, 빨간 눈을 가진 그것은 다름 아닌 야수였다.


이족보행을 하고 있는 이 야수는 찢어진 옷을 걸쳐 있었고, 머리와 팔,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야수는 짐승 소리를 내며 창문 옆에 서서 코를 대고 잠시 냄새를 맡더니, 그대로 골목 안으로 걸어가 그 자취를 감추었다.


작가의말

문맥상 어색한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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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야수병(野獸病) (1) 19.05.19 137 0 12쪽
1 프롤로그 +2 19.05.16 27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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