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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의 고독한 서재

창백한 핏빛 달이 떠오르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HhHhHhHhHh
작품등록일 :
2019.05.16 20:52
최근연재일 :
2019.06.05 16:15
연재수 :
5 회
조회수 :
613
추천수 :
1
글자수 :
23,134

작성
19.05.16 21:00
조회
272
추천
1
글자
6쪽

프롤로그

DUMMY

은빛을 품은 달이 드리우는 창백한 밤, 오늘도 예외 없이 사냥의 시간이 도래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늘 그렇듯 평소대로 문을 걸어 잠그고 집안에서 고이 잠들어있었다.


곧, 도시 가운데에 높이 서 있는 시계탑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도시 전체로 울려 퍼지고, 야수들의 포효와 그들이 내뿜는 입김으로 가득 차 있는 도시를 몇 안 되는 사냥꾼들이 비밀리에 나서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에 든 횃불과 수은과 성수의 힘이 깃든 무기를 휘두르자 야수들은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맥없이 피를 흘리며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심연처럼 어두침침한 골목과 건물 외벽은 점차 야수들의 끈적거리는 피와 살점, 그리고 서로 뒤엉킨 털로 낭자해져 갔다.


야수, 그들도 본래는 사람이었을 터.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들도 따듯한 가족, 벗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사냥꾼들은 죄책감, 망설임 없이 능숙한 솜씨로 그들의 숨통을 끊어버린다.


이들을 내가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자신의 가족과 동료가 위험해진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어느 한 사냥꾼은 주장했다.


우리는 야수를 단순히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영원한 안식을 선사해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그들은 사명감을 띄운 채 야수를 꾸준히 사냥해나갔고, 도시 전체에는 비릿한 살육의 냄새만 진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위험한 사냥의 시간, 어느 한 소년이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뭐에 쫓기듯 야수 사체로 가득한 골목 사이사이로 도망가고 있다.


“으, 으! 안 돼! 저리 가!”


소년 뒤로 야수의 모습이 보였다. 야수는 침을 흘리며 광적으로 소년을 뒤쫓아오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도망치던 소년은 가까스로 어느 한 쓰레기로 가득한, 냄새나는 골목에 숨어들어서 비어있는 상자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골목 입구에 멈춘 야수는 그르렁거리며 소년을 찾기 위해 골목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댔다.


소년이 숨은 상자 위로 야수의 농도 짙은 침이 뚝뚝 떨어졌고, 소년은 식은땀을 흘리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숨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했다.


잠시 후, 소년은 찾던 야수는 골목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 탓인지 결국 소년의 냄새를 맡지 못한 채 뒤로 돌아서 왔던 길 너머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야수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인지한 소년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상자 뚜껑을 열어 밖으로 조심스레 나왔다.


“으으······.”


소년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야수가 사라진 방향을 경계하며 골목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골목을 빠져나온 소년은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앞에 왠지 익숙한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페드로 아저씨!”


그 사람은 소년과 밀접하게 지내던 페드로라는 이름의 중년 아저씨였다. 안심한 소년은 밝아진 표정으로 페드로에게 다가갔다.


“도, 도와주세요, 아저씨. 야수가 절······.”


도움을 청하러 페드로 옆으로 소년은 순간 이상한 낌새에 하던 말을 멈추었다.


기이하게도 페드로는 손은 사람의 손이 아닌 야수처럼 털로 무성히 뒤덮인 손을 가지고 있었다.


양쪽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고, 입에서는 입김과 함께 찐득한 침이 턱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르르······.”


페드로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심연에 잠식된 동공과 짙은 붉은색으로 충혈된 흰자위를 부릅뜨고 소년을 노려보았다.


이미 페드로는 야수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아, 아저씨······.”


지금 이 순간,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줄 줄 알았던 옆집 이웃인 페드로마저 끔찍한 야수로 변한 걸 본 소년은 충격에 휩싸여 경직된 몸을 이끌고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인간의 이성이 아닌 야수의 본성만 남은 페드로는 손을 뻗으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뒷걸음질 치다 튀어나온 바닥에 걸려 넘어진 소년은 소리도 못 지르고 절망한 채 눈물을 흘리며 계속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야수, 페드로를 보았다.


코앞까지 다다른 페드로는 커다란 입을 벌려 소년에게 달려들었고, 모든 걸 포기한 소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이때, 살점이 관통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얼굴에 몸에 피가 튀었다.


순간적으로 고요해진 분위기에 소년은 조심스레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눈앞에는 페드로의 심장과 명치를 관통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는 대검이 있었다.


대검은 쇳소리를 내며 서서히 페드로의 몸 뒤로 빠져나갔고, 비명도 못 지른 채 숨만 겨우 헐떡이던 페드로는 결국 힘없이 구름 그림자가 드리운 바닥에 얼굴을 대고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페드로 뒤로 곳곳에 피가 묻어 있는 흰색 의복을 두른 금발 머리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내는 페드로 몸을 꿰뚫은 대검을 한 손으로 어깨에 걸친 뒤 소년에게 걸어왔다. 소년 앞에 다다른 사내는 손을 뻗었다.


“이제 걱정하지 마라, 꼬마야. 야수는 쓰러졌어.”


대검에서 나오는 푸르른 빛으로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사내는 두건으로 입과 코를 가려 푸른색의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소년을 안심시키기 위함인지 따뜻한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소년은 대검을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대검은 어떤 힘이 깃들어있는지 피 한 방울 안 묻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후, 구름 사이로 달빛이 새어 나와 사내를 비추었고, 사내 어깨에 걸친 대검에서 푸르른 빛이 발산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전부터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연재하게 되어 너무 기쁘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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