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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감자님의 서재입니다.

1등 기수가 경마장을 씹어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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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심심한감자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0
최근연재일 :
2024.05.27 23:1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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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3
추천수 :
9
글자수 :
155,878

작성
24.05.0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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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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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기수가 될 준비(5)

DUMMY

벌써 이틀 째. 훈련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이제는 익힌 것에 조금의 조언이 붙는 정도일 뿐, 달라지는 게 없다.

그 말은 곧, 배울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코치님, 이건 저번에 했던 게 아닌가요?“


"그랬던가. 그럼 다른 걸 해보지.“


다른 훈련으로 바꾸었지만, 이것 또한 전에 받았던 훈련에서 약간의 과정만 바뀌었을 뿐, 다를 게 없다.


"코치님, 이것도 전에 했던 거예요.“


"아, 그렇구나.“


안강철이 미간을 짚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오늘은 몸이 안 좋으니 훈련은 내일 이어서 하지.“


안강철은 인사도 없이 집으로 들어왔다. 현성이라는 별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빛바랜 메달과 먼지 쌓인 경마용품과 상장들. 그것들이 퇴물이 된 자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울적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차에 몸을 실은 안강철은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했다.


-강철이, 너 임마...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냐? 아니, 지금 뭐하고 살고 있냐?


"그냥 이래저래 살고 있다. 오늘 만날 수 있나? 안 되면 말고.“


-네가 얼마만에 연락하는 건데. 당연히 되지. 바로는 안 되고 일 끝나면 같이 밥이라도 하자. 어디로 와야 하는지는 알지?


"그래, 있다 보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러 간 장소 또한 안강철에게는 오랜만에 가보는 장소였다.


[서울 경마장]


은퇴 이후에는 경마장과 연을 끊다시피 했으니 몇십 년 만에 찾아오는 것이다.

몇십 년이 지났더라도 구조는 바뀌지 않았기에 안강철은 익숙하게 걸어 친구에게로 갔다.


”강철이 왔냐?“


마사 안으로 들어가니 안강철의 친구이자, 서울경마장의 조교사로 있는 김만영이 그를 반겼다.


”오랜만이다.“


”30분 정도면 끝나니 경마장 바뀐 거나 구경하고 있어라.“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반. 경마장의 하루는 새벽 일찍 시작해, 오후 일찍 끝난다.

친구가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김만영은 할 일을 모두 끝내놓고 퇴근했다.


”안강철이, 오랜만에 보는 건데 반가워 하는 기색이 없다?“


”너는 여전하구나.“


”여전하긴 뭘. 이렇게 늙었는데.“


김만영은 안강철이 현역에 있을 때, 같은 경주에 나가면 1등을 놓고 경쟁을 하던 관계였다.

비록 안강철처럼 삼관왕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안강철이 은퇴를 한 이후에는 1등을 밥 먹듯이 하던 능력있는 기수였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안강철은 정상을 찍고 은퇴를 했다는 것이고, 김만영은 조교사의 길로 갔다는 것이다.


”조교사 일은 할 만하냐?“


”그냥 경주를 안 뛰는 것뿐이지, 기수일 때랑 다른 게 뭐 있겠냐. 아, 그래도 체중 조절은 덜 해서 괜찮네.“


”그래봤자, 별 차이도 없을 것 아니냐.“


조교사는 경주를 달릴 말들의 먹이와 훈련 등 모든 걸 관리하고, 기수가 나갈 시합을 결정하고, 시합 운용 방식까지 정해준다. 그만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더 이상 경주는 나가지 않는다.

경주에 나가지 않기 때문에 기수일 때보다는 체중 조절을 덜 해도 괜찮다. 하지만 말의 무리가 가거나, 기수와 체중 차이가 크면 훈련에 지장이 생기기에 적당한 체중 조절은 필수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기에 몇 년간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연락을 하셨어?“


”그냥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러 온 거다.“


”그걸 믿으라고? 허허, 아무래도 술이 필요하겠구만. 거기로 가자고.“


어디인지 말하지도 않았건만, 안강철은 악셀을 밟았다.

도착한 곳은 적당히 낡은 막걸리 집이었다.


”아직 기억하고 있구만.“


”한, 두 번 와봤어야 말이지.“


기수는 경주가 끝난 다음 날, 즉, 월요일이 휴일이다. 그 날은 경주로 인해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을 먹고싶은 대로 먹는 날이기도 하다.

안강철과 김만영이 현역에서 뛰던 때, 이 가게는 일요일 저녁이면 늘 한잔하던 곳이었다.

둘이 가게로 들어서니 주인이 안강철을 알아봤다.


”어머, 안 기수 아닌가요?“


”오랜만입니다.“


”아이고, 안 기수 맞구나. 이게 얼마만이야, 은퇴 이후로 어떻게 한번을 안 찾아와요?“


은퇴 이후 처음으로 경마장에 온 것이다. 이 가게 또한 그동안 방문할 일이 없었다.


”일단 자리 가서 앉아요. 예전에 늘 먹던 걸로 주면 돼죠?“


”예, 부탁드립니다.“


안강철과 김만영이 자리에 가서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건 김만영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야?“


”그냥 승마장 하나 열어서 평범하게 지냈다.“


”그동안 연락도 전부 끊고, 경마장에는 왜 발도 안 들인 건데?“


안강철은 은퇴 당시 자신이 겪었던 슬럼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김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한국에서는 네가 최고였으니 매번 1등만 하는 경기를 더 하고 싶지 않기도 했겠네.“


김만영 또한 안강철과 비슷한 슬럼프를 겪었지만, 그는 조교사의 길로 빠지며 새로운 시작을 했기에 안강철과는 결과가 달랐다.


”그럼 이제 와서 연락한 건 뭐 때문인데?“


다른 누군가에게 얘기하면 비웃을 지도 모르지만, 김만영은 안강철이 가장 신뢰하는 친구였다.

안강철은 가감없이 겪은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품고 있는 질투까지 모두 다.


”크하하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김만영이 가게가 떠나가라 호탕하게 웃었다.


”천하의 안강철이가 질투라니 그때 당시에 같이 경주 뛰던 놈들이 들었으면 침을 뱉어줬을 거다.“


안강철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음식이 나왔다. 뭔가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인지라 가게 주인은 오랜만에 만난 것도 있어 막걸리 한 사발만 마신 뒤,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쩔 작정이야? 계속 가르쳤던 것만 다시 가르칠 순 없을 거 아냐.“


"나도 그게 고민이다.“


김만영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한다.


"그럼 그냥 같이 달려보는 게 어때?“


"나도 그러고야 싶지만, 지금 내 나이를 생각해라. 환갑을 바라보는데 그 어리고 잘난 애한테서 멀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놈이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나는 지는 달이란 말이다.“


안강철은 자신이 없었다. 말을 안 탄지도 벌써 20년이 넘어가는데 신체까지 낡아버렸으니 나란히 달리는 건 꿈도 꾸지 못할 것만 같았다.

다만 김만영의 생각은 달랐다.


"강철아,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재고 뛰었냐?“

내가 아는 안강철이라는 기수는 모두가 반대하는 말을 타고서도 삼관왕을 달성했다.

그런 기수가 고작 고등학생 하나한테 겁 먹은 거냐?“


"그때의 안강철은 이미 죽었으니까...“


"그럼 다시 살려.“


"뭐?“


"다시 살리면 되잖아. 잃었던 감은 다시 찾으면 될 것이고, 몸이야 경주를 뛸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관리만 하면 되는 거니까.“


죽은 사람은 다시 되살릴 수 없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을 불러오는 건 가능하다.


"네가 은퇴한 이후로 나도 1등을 많이 해봤다. 너만 없었어도 경마장 최다 우승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겠지.

그런 김만영이가 말해준다. 안강철, 너는 말 타는 데 있어 누구한테 딸릴 사람이 아니야.

고등학생 하나? 그 정도한테 밀릴 거면 애초에 안강철이라는 기수도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았을 거다.“


김만영은 안강철이 절대 지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상대가 고등학생에 경주도 뛰어보지 않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안강철이라는 사람을 믿는 것도 있었다.


"이제 와서 감을 되찾기에는 늦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 당장 같이 뛸 순 없겠지. 적어도 몇 년은 필요할 텐데 그 놈은 학생이라며? 학교 졸업할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그 기간 동안 실력을 되찾으면 되지.“


"몇 년...“


안강철이 잠시 눈을 감고 최고의 기수로 불리며 살았던 그때를 추억했다.

벌써 20년 이상 되었지만, 추억 속의 자신은 늘 결승지점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 당시에는 더 이상 상대가 없어 싫증이 나 그만뒀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래, 나 안강철이다.“


"그러치!!!“


"고등학생 하나한테 겁먹기에는 내 경력이 말이 안되잖냐.“


"어이쿠, 안강철 기수님. 그럼 당연하죠.“


김만영은 친구가 자신감을 되찾은 것 같아 기뻤다. 기쁜 건 기쁜 거고,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럼 안강철 기수님, 다시 훈련을 시작하셔야겠네요?“


"그렇겠지.“


"그런데 승마장에서는 경주 연습을 하기에 제한이 있을 거고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경마장과는 시설 자체가 다르니까.“


"그럼 우리 쪽에서 훈련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


"내가 다시 경마장에서?“


"그래, 네가 온다면 좋아할 사람도 많을 거다.“


안강철은 경마계에 살아있는 전설이다. 비록 은퇴 후 20년 이상 지났지만, 삼관왕은 아직까지 등장하지 못했으니 안강철의 업적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겸사겸사 후배들한테 조언도 해주면 좋고.“


"그게 목적이었구만.“


"겸사겸사지.“


안강철이 후배 기수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경마장에는 도움 될 일이다.

또한...


"사실, 이제 슬슬 말협회에 자리 하나 들어가고픈데 그 안강철 기수가 후배들을 위해 조언해주러 온다, 거기다 내가 도움을 줬다면 아무래도 도움이 좀 되지 않겠어?“


"그렇다면 너는 내 훈련을 도와주고, 나는 후배들에게 훈련을 해준다는 건가?“


"괜찮지 않나? 강철이, 너는 그냥 경마장에 와서 훈련만 하면 되는 거고, 가끔씩 조언 정도만 해주면 되는 거야.“


김만영이 막걸리 사발을 내밀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뭐가 또 필요한가? 뭐든 말만하게나.“


"내가 가르치는 녀석도 경마장에서 훈련을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성이 경마장에서 훈련할 수 있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성의 미래에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 안 좋은 일이 아니다.


"안강철 기수님, 그러다 제자한테 질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질 것 같나?“


이제 자신감은 완전히 돌아왔다. 비록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지만, 감만 되찾는다면 안강철은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세부적인 내용은 더 이야기해봐야겠지만, 그 정도 조건은 들어줄 수 있지. 다른 사람이 반대하면 내 개인 권한으로라도 훈련에 도움을 주지.“


"고맙다.“


안강철이 자신의 막걸리 사발을 들어 건배했다.

한 사발을 쭉 들이킨 김만영이 미소를 띄며 말한다.


"사실 나도 보고싶었거든.“


"뭐가?“


"우리 안 기수님이 질투 날 정도로 잘난 제자가 궁금하잖아. 현역 때는 우리가 강철이, 너를 질투했는데 정작 은퇴 후에는 네가 다른 사람을 증오하는 상황이 웃기네.“


"나도 이럴 줄은 몰랐으니까.“


"그 친구가 기수 데뷔하면 바로 우리쪽으로 데려와야지.“


"내가 허락 안하겠다면?“


"그럼 승부를 봐야겠지. 승부는 당연히?“


"먼저 뻗는 쪽이 지는 걸로.“


기수일 때의 둘은 이런 식으로 술값을 계산하고는 했다. 당시에는 다음날까지 마시고 갈 정도로 두 사람의 체력은 상당했다.

해가 저물기도 전에 두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쓰러졌다.

마음만은 20대 청년이었지만, 세월은 속이지 못하나 보다.


* * *


사흘간 이렇다 할 훈련을 받지 못했다. 오늘마저 별다른 훈련이 없다면 안강철에게 말할 생각이다.


"코치님, 안녕하세요.“


"어...그래...“


안강철의 얼굴이 다 죽어간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가까이 가보니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밤새 술이라도 마시고 온 것만 같다.


"코치님, 몸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그래,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으니 가볍게만 타고 가거라.“


최근 도움이 되지 않던 훈련 때문에 안강철이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안강철은 어디서 술이나 퍼먹고 왔는데다가 훈련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나는 이런 사람에게 훈련을 받으러 온 게 아니다. 아무래도 더 이상 안강철에게는 훈련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안강철이 없더라도 전생에 이미 합격한 기수 시험은 합격할 수 있을 테니 혼자 준비해도 된다.


"코치님, 더 이상은...“


"아, 다음주부터는 경마장으로 연습하러 갈 테니 그리 알고 있어라.“


"예? 정말이요?“


"그래, 그동안 말 열심히 타 두고. 나는 우웁...!“


안강철이 다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말을 타러 갔다.


"역시 코치님이셔.“


안강철은 나를 위해 술접대를 하고 온 게 분명하다.


"술을 마시며 긴장을 풀고 부탁을 하셨겠지.“


역시 나는 안강철이 없으면 안 된다.


"코치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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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기수가 경마장을 씹어 먹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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