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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이 님의 서재입니다.

도장 찍고 레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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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이
그림/삽화
오후9시50분
작품등록일 :
2024.09.12 13:46
최근연재일 :
2024.09.19 21:5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460
추천수 :
26
글자수 :
41,520

작성
24.09.16 21:50
조회
65
추천
3
글자
13쪽

4화

DUMMY

아침 7시 30분.

시계 알람도 맞추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사무실 출근 시간이 8시 50분까지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무엇보다 영업도 못 하는데, 지각까지 하면 그날 하루는 참 피곤했다.

마귀 년부터 시작해서 같은 팀원들까지 이때가 기회다 싶어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거든.


그런데 어쩌나?

오늘은 출근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내일도.

모레도.

계속~ 쭈욱!


각성까지 했는데, 욕먹어가면서 보험을 팔라고?

내가 병신도 아니고 말이야.


무엇보다 나를 주군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계약자 임꺽정.

이놈 진짜 사기케다.

꺽정이의 대단함을 말하는 것 자체가 입 아픈 일이다.


딱 봐도 사이즈가 나오잖아.

임꺽정이 소주를 병나발 불 때 생각한 건데.

일단, 내 계획은 이렇다.


게이트에 들어간다.

그리고 임꺽정을 소환한다.


당연히~ 나는 뒤로 바로 빠진다.

왜?

힘, 민첩 스텟 5로 괴수에게 덤볐다가는 주먹도 날리기 전에 뒈지니까.

게다가 나는 처맞는 건 잘해도 때리는 건 잘 못했다.


임꺽정은 열심히 괴수를 사냥할 것이다.

최하급 게이트 괴수는 당연히 임꺽정의 힘을 감당 못 할 거다.

괴수들은 임꺽정이 휘두르는 공격에 쓱쓱~ 쓸려나갈 걸 거고.


그럼, 나는 뒤에서 뭐 하냐고?


당연히!

나도 뭔가 해야지.


응원.


하여튼 10%긴 하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경험치를 얻는 거다.

게다가 돈도 벌고 말이야.

제대로 꿀 빠는 거지.


비록 임꺽정과 계약하면서 뒈질 뻔은 했지만 말이야.

이게 바로 인생 역전 아니겠어.



나는 옷을 갖춰 입고, 원룸을 나섰다.

어디 가냐고?

각성했으니까, 헌터 등록하러 가야지.



종로 한복판에 있는 각성자 협회.

나는 협회 건물 앞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시간 8시 40분.


그때.

핸드폰이 몸서리를 쳤다.


“여보세요.”

-강병진 씨, 출근 안해욧!


찢어지는 목소리가 핸드폰을 뚫고 나왔다.

목소리 주인을 모를 수가 없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걸?


마귀 년, 1팀장 김말자였다.


어차피 출근할 생각이 없었지만, 아직 8시 40분이었다.

즉, 출근 시간까지 10분이나 남았다는 것.


그런데, 마귀 년은 출근 왜 안 하냐고 꼴값을 떨고 있는 것이었다.


‘아주 지랄을 해라, 지랄을···’

속에서 열불이 나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마귀 년처럼 할 순 없다.

그러는 순간 나는 마귀 년과 똑같은 인간이 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나는 어엿한 각성자 아니겠어.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오늘은 일이 있어, 출근 안 할 생각입니다만.”


보험 회사는 말이다.

일반 회사와 다르다.

보험 파는 게 중요하지, 출근이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막말로 보험만 잘 팔면, 한 달 내내 회사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해 줄걸?

나는 해당 사항은 아니지만 뭐.


어쨌든 내가 지금까지 꼬박꼬박 출근한 것은 쥐꼬리만 한 출근 수당 때문에 그런 거였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마귀 년의 답변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당장 출근하세요. 만약 출근 안 하면 코드 삭제할 거에욧!


코드 삭제라?

쉽게 말하면, 나를 자른다는 건데.


마귀 년 진짜 가지가지 한다.

내가 항상 네네~ 하니까, 진짜 병신인 줄 아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제 맘대로 나를 해고해?

팀장은 그런 권한이 없다.

마귀 년 위에 있는 지점장도 그 위에 파트장도 말이다.

무조건 본사에 승인받아야 코드 삭제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본사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내가 억울하다고 노동청에 진정서라도 제출하면?

회사 전체가 난리 나는 거지 뭐.


아무리 가방끈이 짧아도 말이야.

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죄송합니다’ 하고 사무실로 튀어갔겠지만!


“맘대로 하세요. 그러면 노동청에 불법 해고로 진정서 낼 겁니다.”


원래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귀 년 때문에 생각이 좀 변했다.

엿은 먹여줘야지 않겠어.


내가 코드 삭제도 안 한 상태에서 출근도 안 하면?

직접 보지 않아도 광경이 눈에 그려졌다.


마귀 년은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지점장한테 불려 가겠지.

그리고 완곡하면서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들을 앞세운 지점장은 마귀 년을 탈곡기처럼 탈탈~ 털어내겠지.


마귀 년은 내 유치자이자 내가 소속된 팀의 장이니까.

당연한 광경이었다.


나는 말을 끝으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오늘같이 좋은 날에 마귀 년과 입씨름하는 건 절대 사절이었다.



총 세동으로 이루어진 협회 건물.

아침부터 각성자 협회는 북적이었다.

특히, 내 발걸음이 향하는 동관에 사람들이 더 몰려있었다.


나처럼 갓 각성한 사람들.

승급 신청하러 온 최하위급인 F, E급 헌터들.

그리고 수많은 길드에서 파견한 스카우트까지.


동관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1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나는 중얼거리며, 대기표를 뽑았다.

“20분이나 일찍 왔는데도 장난 아니네.”


그리고 대기 공간인 강당으로 향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밖과 다르게 강당의 좌석은 반만 차 있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나처럼 갓 각성한 자들.

대부분에 사람들 표정은 썩은 표정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몇몇은 있었다.


몇몇 중에서.

특히, 노랗게 탈색한 머리와 아프리카 원주민도 아니고 콧구멍에 구멍을 여러 개 뚫은 쥐새끼처럼 생긴 놈.

그놈은 자기가 뭔 대단한 놈이라도 된 양.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어이··· 그래 너, 너 말이야. 등급이 뭐야?”

“E급이요.”


쥐새끼처럼 생긴 놈은 비릿한 표정을 하고 비아냥거렸다.

“E급? 큭큭! E급이래. 완전 쓰레기 등급이네.”


초면부터 반말과 비하 발언에 화가 난 E급 각성자.

E급 각성자는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그럼, 당신은 뭔데!”


그러자, 쥐새끼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 C급! 그것도 힐러인데? 이제 E급 새끼야 눈깔 깔아야지 않겠어?”

“헙.”


외마디 침음과 함께.

E급 각성자는 곧바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머리도 숙여야지 새끼야!”

곧바로 고개를 바닥으로 푹 떨구는 E급 각성자.

그는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말 잘 듣는 개처럼 움직일 뿐.

얼핏 보이는 그의 표정은 비굴함을 넘어 처량해 보였다.


쥐새끼는 그런 그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앞으로 나보면 이렇게 인사해. 알겠어?”

“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저 새끼를 보면서 다시 느꼈다.

세상에는 똘끼 충만한 놈들이 참 많다는걸.


그리고.

세상은 참 불공평했다.

어떤 놈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었고.

나처럼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기도 하고 말이다.


각성도 세상의 법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인성이 파탄 놈인데도 불구하고, 불공평하게 C급에다가.

그것도 가장 귀하디귀한 직종인 힐러로 각성하지를 않나.

반면, 그런 놈에게 분노를 삭이고 고개를 숙여야 했던 E급 각성자도 있었다.


그럼, 나는?

쥐새끼가 쳐다볼 수도 없는 EX 등급, 후후~


저 새끼 하는 꼬락서니가 지랄 같아서 정의 구현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내 인내심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았다.


밑바닥에서 하도 구르다 보니 말이야.

깨닫는 게 많더라고.

나대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걸.

잘못하면 오히려 자신에게 비수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EX 등급이라는 걸 밝힐 생각이 전혀 없다.

이목을 끌어봤자 피곤하기만 하고 말이야.

조용히 살고 싶은 내 성격과도 맞지 않았다.


더 높은 등급 게이트에 가면, 돈이야 더 벌겠지.

하지만 위험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아무리 돈이 좋지만, 하나뿐인 귀한 목숨과 바꿀 순 없잖아.


그냥 최하위급 게이트나 돌면서 살 생각이다.

원룸 월세 걱정 없이 가끔 치킨이나 족발로 플렉스만 해도 족했다.


강당에 앉은 갓 각성한 각성자들은 쥐새끼 눈길을 피하기에 바빴다.

각성 안 했다면 길에서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비리비리하게 생긴 놈인데 말이야.

C급에 ‘힐러’라는 임팩트가 세긴 센 모양이었다.


하여튼 저 새끼에게 시비 털려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괜히 힐러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헌터 생활이 참 고달파지는 게 현실이니까.


하여튼 강당 안의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이는 걸로 봐선 확실했다.

이들 전부 F, E급의 최하위급 각성자라는 것.


나는 이들처럼 고개는 숙이지 않았다.

무려 EX 등급인데 애매하잖아.

그냥 시선만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고개도 숙인 것도 아니고, 안 숙인 것도 아닌.

내 모호한 태도가 문제였던 걸까.


강당 뒷줄에서 지랄을 떨든 쥐새끼 놈이 말이야.

갑자기 앞줄에 있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몰래 힐끗하는 내 시선과 놈의 시선이 겹쳤다.


그리고.


놈은 생긴 것답게 잔망스럽게 발을 놀렸다.

쥐새끼 놈의 목적지는?


안타깝게도 바로 나였다.


“어이, 등급이 뭔데 나 째려봐?”


초면에 다짜고짜 반말이었다.

확실히 이 새끼는 예의를 밥 말아 먹었다.


나는 무려 EX 급 각성자.

비굴하게 굴었던 E급 각성자처럼 쭈그릴 수 없는 일.


나는 최대한 당당하게 대꾸했다.

“안 째려봤는데···? 그냥 힐끗 봤는데···?”


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진짜 힐끗 쳐다봤다.


내가 사실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쥐새끼는 언성을 높였다.

“뭐? 야!”


순식간에 강당 안의 시선은 나와 쥐새끼를 향했다.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애새끼도 아니고 말이야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빽~ 지르고, 지랄이야.

하여튼 예의도 매너도 없는 새끼.


그렇다고 똑같이 언성을 높일 수 없는 일.

나는 저런 놈이랑 같은 놈이 아니니까.

하여튼 불렀으니까, 대답은 해야지.


“왜 불렀어···?”

“하아··· 됐고. 너 등급 뭐냐?”


당연히 내 등급을 밝힐 생각이 없다.

밝혀도 믿어주지도 않을 거고 말이다.

그래서 대충 말했다.


“나 F급인데?”


강당 안 사람들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C급 각성자, 그것도 힐러인 쥐새끼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나.


사람들 눈에 쥐새끼보다 내가 더 미친놈처럼 보일 거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했다.

나라도 그들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하여튼 당사자인 쥐새끼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거다.

감히 F급 주제에 자신에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으니 말이다.


쥐새끼는 전략을 바꾼 모양인지 협박을 시전했다.

“너, 게이트에서 사냥하기 싫지?”


쥐새끼의 말은 아주 근거 없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C급 힐러 정도면 나 하나 정도 묻는 건 일도 아닐 게다.


저놈이 헌터 커뮤니티에 올리는 순간.

내 이름 석 자는 곧바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겠지.

그러면 나와 팀을 이뤄 괴수 사냥을 하려는 사람은 없을 거고.


그런데 말이야.

난 전혀 상관없는데?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내 각성 직업은 설계사다.

직접 괴수 잡는 스킬이 아예 없다.

꺽정이가 알아서 해줄 텐데?


그러니까 말이다.

나를 파티에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파티에 들어갈 생각도 전혀 없었다.


“이 새끼 완전 미친놈이네?”

협박도 통하지 않자, 쥐새끼는 나를 미친놈 취급했다.


정상적인 나를 미친놈 취급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한테나 시비 거는 너만큼 미쳤을 라고?”

“뭐! 이 새끼가, 이름 뭐야! 내가 너 절대 가만 안 둔다.”

“예의 없는 새끼. 형 말 잘 들어. 다른 사람 이름 묻기 전에 네 이름 먼저 말하는 거다, 알겠냐?”


쥐새끼에게 충고 좀 해줬더니.

이 새끼 바로 눈 돌아가네.


“으아악! 씨발!”

“공공장소에서 버릇없게 소리 지르지 말자.”


나는 놈이 지랄발광하든 말든 가르쳐줬다.


그러자.

쥐새끼는 분노 때문에 눈까지 시뻘게졌다.


“이름 뭐냐고! X발 새끼야!”

“다른 사람 이름 묻기 전에 네 이름 먼저 말해야지. 금방 이야기 해줬는데 벌써 잊어먹었어? 지능이 떨어지나···흠.”

“으아악!”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지 말라 했는데··· 빡대가리가 맞는 모양이군.”


내가 실적이 없어서 그렇지.

나는 엄연히 보험 회사 영업직원이다.

즉, 기본적인 말빨은 장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보조 스킬 영향으로 엄청난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딱 봐도 단순해 보이는 쥐새끼를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결국 쥐새끼는 백기를 들었다.

“내 이름은 김. 진. 상이다.”

“응, 알았어.”

“............”


나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광판에 내 번호가 찍혔기 때문이다.

즉, 강당에서 더 이상 대기할 이유가 없었다.


“야! 내 이름 말해줬잖아. 너도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내가 왜?”


나는 물음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서 온갖 쌍욕이 들려왔다.

쥐새끼 김진상이 뱉어내는 직설적인 욕에 나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워낙 많은 욕을 쳐들어 먹고 산 인생이라서 말이지.


나는 덤덤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욕을 처먹네, 나 진짜 오래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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