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64,609
추천수 :
2,936
글자수 :
2,335,429

작성
17.07.31 13:47
조회
1,061
추천
10
글자
23쪽

붉은 커튼.(여기까지 수정)

DUMMY

[후욱. 후욱.]

"단단한 녀석이군..."



상급 개체와 마주친 이향일행은 고착상태에 빠졌다.



소 커튼은 거대한 몸과 근율질의 몸답게 엄청난 파워를 자랑했지만 팔이나 다리를 휘두르거나 돌진, 아니면 발을 굴러서 지진을 일으켜 상대를 넘어뜨리는 게 공격패턴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느렸기에 이향과 현미는 가뿐히 피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들의 공격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이 어찌나 단단한지 주술을 두른 공격으로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지친 상태로 싸움이 성립되고 있는 건 이놈이 느린탓도 있지만,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게 제일 커.'



이향의 생각대로 소 커튼은 좀처럼 그녀들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수송차량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흐읍!"


그틈을 타 이향의 채찍이 녀석의 몸을 찔렀으나 튕 소리가 나며 허무하게 튕겨져버렸다.

그래도 아프긴 아팠는지 소 커튼이 눈을 붉게 물들이며 포효했다.



코에서 콧김을 뿜은 녀석이 한쪽 발로 땅을 팍팍 차기 시작했다.



"또 돌진해온다!"

"네!



준비를 하던 소커튼이 이내 땅을 박차며 돌진했다. 거대한 발이 땅에 닿을때마다 땅이 쿵쿵 울렸다.


거대한 소의 뿔이 연약한 소녀를 분쇄하려 들었다.



"하앗!'



현미는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검으로 얼굴을 베었다. 검끝엔 초승달같은 모양이 번쩍이더니 사라졌다.



[모오오오~!]



소 커튼이 얼굴을 부여잡더니 오른쪽 무릎을 쿵 꿇었다.



"허어...이 녀석 설마, 얼굴 부분은 약한건가?"

"그러고 보니 몸은 갑옷처럼 각져있는데 얼굴 부분은 그렇지 않네요."



공략의 실마리가 보인다.


희망을 본 두 여자가 무기를 다잡고 한걸음 내딛으려 했을 때였다.

갑자기 새로운 커튼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것도 엄청난 숫자였다.



"뭣?!"

"이건...!!"



설마 수송차량때 녀석들이 끝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직도 도시내로 더 침입하고 있는가?



'큭...방벽이 정말 무너졌나 보군. 그럼 방벽을 보수하기 전엔 계속해서 커튼의 군대를 상대해야 하나...'



방벽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소식을 알 리가 없는 이향은 초조한 마음에 한계이상의 주술을 쓰기로 했다.



"쳇. 설마 내가 내 수명 깎으면서까지 이 짓을 하게 될 줄이야..."



주술이 거의 바닥나 효율을 중시해 주술을 운영하던 이향의 채찍에서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강력한 빛이 생성되었다.



현미도 이향이 빨리 끝내겠다고 결심한 것을 알아채고 푸른 기운을 검에 덧씌웠다.

푸른 안개처럼 검에서 떠도는 빛은 얼음처럼 차가워보였다.




"흐읍!"



먼저 움직인 것은 이향이었다.


그녀는 채찍을 휘둘러 소의 몸에 감더니 도약하여 녀석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틈을 만들테니 공주님이 찔러!"

"네! 그리고 공주 아니에요!"



[모오오오!]



결박당한 것이 짜증났는지 신경질적으로 땅을 쿵쿵 차던 소가 온몸에 힘을 주었다.

금속같은 근육이 부풀며 주술의 빛을 흐뜨려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향이 다시 주술을 생성하여 소의 팔에 휘감았다.




[모오!]




소가 사람만한 팔을 휘두르자 공중에 떠 있던 이향은 속절없이 끌려갔다, 하지만 이향은 주술을 해제하여 팔에 묶인 줄을 풀어버리더니 또 생성하여 솜씨좋게 몸을 결박했다.



묶고 던지고 풀어버리고 다시 묶고의 반복.

소 커튼은 어지간히 짜증났는지 현미는 잊고 이향에게만 집중했다.


위험천만하고도 엄청난 곡예를 벌이는 이향은 위태로워 보이긴 했지만 모든 공격을 피하여 녀석의 주의를 돌렸다.


그 사이 현미는 정신을 집중하며 힘을 모았다.

그녀의 검은 마치 얼음처럼 냉기를 뿜었다.



"후우..."



준비를 마친 현미가 타이밍을 기다렸다.



'지금!'



소 커튼이 신경질적으로 줄을 풀어버리는 그 순간, 현미는 달려가 소 커튼의 몸을 밟고 하늘 높이 도약하여 검을 거꾸로 쥐었다.



"비기! 냉월(冷月)!"



공중에서 떨어지는 기세 그대로 안면에 칼을 꽂자 소 커튼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모...]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려던 것도 강제로 멈춰진 놈의 얼굴은 이윽고 완전히 얼어붙더니 쨍그랑 깨져버렸다.



쿠웅.



두 무릎을 꿇고 힘없이 팔을 늘어뜨린 소커튼을 내려다보면 현미가 놈의 몸에서 내려와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좋아. 잘했어. 대단한데? 역시 퇴마 김씨 가문이야."

"다 이향 언니 덕분이죠. 냉월은 재생도 못하게 하니 확실하게 끝장냈을 거에요."



기뻐하는 두 여성 뒤에서 소 커튼을 유심히 살펴보던 기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저어..."

"뭐냐?"



두 여자가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가 움찔 몸을 떨었다.



"제가 도와드릴게 있나 해서..."

"전투가 끝나니 이제서야? 하 낯짝도 두껍군."

"헤헤...그러지 마시고..."



기주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소 커튼을 흘끗거렸다. 그 반응을 이상하게 여긴 이향이 소 커튼을 바라보려는 찰나.



쿠오오오.



수송차량쪽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기운이 일어났다.

현미는 물론이고 산전수전 다 겪었던 이향조차 저절로 몸이 떨릴만큼 강대한 기운이었다.



"대체 저기서 뭐가 일어나고 있는거야?"

"...이가온..."



현미가 멍하니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 기주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어엇! 이가온?!"

"뭐?"



현미는 자신도 모르게 기주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았고, 그와 동시에 뒤에서 바람과 살기를 느꼈다.




"......"










현미가 이가온과 처음 만난것은 10년 전, 두 가문이라 불리는 퇴마 이씨가문과 김씨 가문이 몇년에 한번 화합하는 축제 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가문의 어떤 기술도 모른채 보통 아이처럼 커왔던 현미는 정원을 거닐다가 누군가가 기르는 사나운 개를 만나 쫒겼었다.



"싫어, 싫어. 무서워."



누가 좀, 쉼없이 중얼기려며 눈물콧물을 질질짜면서 도망가는 현미를 자신보다 약하다고 인식한 개는 끝까지 어렸던 현미를 쫒아갔고 결국 현미는 막다른 곳까지 몰렸다.



그리고 그 뒤의 전개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가온이 나타났다. 오른손엔 목도를 쥔 채였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등장한 가온은 개와 현미를 번갈아봤었다.

현미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하며 안심했지만 가온은 별안간 목도를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어?어? 구해주지 않는거야?"

"아마도 네가 개보단 더 세."



가온은 확신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삼촌이 그랬는데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 한대."




뭐야 그게. 망할녀석 빌어먹을 녀석, 아버지에게 일러서 혼쭐이 나게 해줄 테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던 현미는 목도를 잡았고, 그와 동시에 개가 달려들었다.




"꺄악!"

"깨갱!"



어쩐 일일까. 자신보다도 컸던 대형견이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 믿을 수 없었던 현미가 눈을 끔벅거리고 있는데 가온이 푸하하 웃었다.



"봐봐! 네가 더 세지!"

"그, 그렇네?"



얼떨떨해하면서도 에헤헤 웃으며 가온을 바라보는 현미의 머릿속에는 이미 가온에 대한 원망이 싹 사라진 뒤였다. 그때 부들거리던 개가 다시 왁 달려들었다.



"엇."



놀라는 현미의 앞에 가온이 튀어나가더니 개를 후려쳤다. 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한 듯 땅에 엎어져 부들거렸다.



"이거 개주인 누구야. 위험하게스리..."



투덜대던 가온이 멋쩍은 듯 현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데려다줄게. 우리 가문에선 본 적 없는데 넌 김씨 소속이지?"

"으, 응."



지금 생각해보면 가온은 여차하면 자신이 나서려고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어렸던 현미는 그런 사실을 몰랐음에도 자신을 구해준 가온이 왕자님처럼 보였다.



그 뒤 개주인이 문책당했다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 후로도 가온과 몇번 만났고 그때마다 둘은 신나게 놀았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놀았던 건 현미가 장난으로 가온의 볼에 뽀뽀를 한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지금의 태도를 가온은 기억에 없는 듯 했지만......


그 뒤로 갑자기 가온에게 소중했던 사람이 죽고, 신동이라 불리던 그 아이가 가문에서 쫒겨났단 이야기가 들렸고, 또 영문도 모르게 갑자기 '두 가문'의 사이가 악화되었고...고등학교가 되어서야 다시 만났던 그는 예전의 모습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현미가 왕자님처럼 생각했던 건 강하고 자신을 이끌어주는 가온이었을 텐데 지금의 그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지만......



'...어라? 왜 지금 이런 게 떠오르지?'



마치, 주마등처럼.



"이가..."



콰아아앙!





소 커튼의 뿔이 현미를 들이받았다.

약한 소녀의 육체는 저 멀리 튕겨 땅을 데구르르 구르더니 일어나질 못했다.



"뭐...!!"



이향이 입을 딱 벌리고 소 커튼을 쳐다보았다. 없어졌을 머리는 어느새 재생되어 있었다.



"크으으윽...!!"



자신이 대비했어야 했다, 자신이 생각했어야 했다.

상급개체씩이나 되는 녀석이 그렇게 둔중하고 명백한 약점이 있었는데, 그를 커버할만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야 했을 것을. 소 커튼의 재생력은 미친 수준이었던 것이다.


들이받히기 직전 현미는 몸에 주술을 두르고 있었으나 파워타입의 상급개체에게 들이받힌 이상은...



분노하며 채찍을 뽑아든 이향은 소 커튼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녀석은 수송차량쪽을 바라보며 벌벌 떨면서도 그쪽으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쿵. 쿵. 발소리를 내며 점점 멀어지는 소 커튼.



마음같아선 당장 멈춰세우고 죽여버리고 싶었으나 체력은 한계를 넘어 생명까지 끌어다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상 몸을 희생해서라도 주술을 사용해봤자 놈을 이길거란 보장이 전혀 없다.




'차라리 공주님을 어서 의료진에게...그런데 이가온이라고...?'




기주가 했던 말을 의심스럽게 여기며 그를 돌아보려던 그 순간.




푸욱.



이향은 등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커튼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공격한 건 다름아닌 기주였다.



"이..이히. 이히히히."

"네...네놈 무슨 짓을?!"



현미가 당하고 기주가 검으로 이향의 등을 찌르고 있는 광경에 이름 모를 소녀는 공포를 느끼고 주저앉고 말았다. 말리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개 같은 년. 누굴 우수학생에서 끌어내려? 나같이 우수한 녀석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던 쓰레기 주제에!! 주제도 모르는 년이!!"



역시 이가온은 없었다. 기주의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아까 기주가 소 커튼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던 게 이향의 뇌리에 떠올랐다.



'그랬군...이 녀석, 소 커튼이 죽지 않은걸 알고 기회를 엿봐서 우릴 죽이려했던 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이향이 평생 겪었던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했다.



"이...쓰레기 같은 애새끼가!!"



채찍을 휘감아 목을 칭칭 조여오자 기주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고 켁켁 기침을 했다.



"사, 살려줘. 그만해!! 살려줘!!"

"죽어라......!!"



그러나 기주도 우수학생은 우수학생. 떨리는 몸으로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이향의 몸을 찔렀다. 한 방으로는 힘이 빠지지 않자 난도질을 하기 시작했고 종국엔 그녀의 몸에서 힘이 빠져버렸다.




"이...개같은 년!!"




힘이 빠져 주저앉은 이향의 머리를 걷어찬 기주가 그 얼굴을 무참하게 짓밟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




콰직 콱. 콰직.




커튼용 장비에 주술의 힘이 걸린 발길질에 여성의 얼굴이 무참히 짓이겨졌다. 경련하는 그녀를 보고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던 그가 이번엔 이름 모를 소녀를 바라보았다.



"목격자는 없어야겠지이~?"



으흐흐 웃음을 흘리며 다가오는 기주에게 주저앉은 채로 어떻게든 뒷걸음치려 애쓰는 소녀는 점차 가까워지는 기주를 보고 공포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쿵.



"엇?"



수송차량쪽으로 가던 소커튼이 갑자기 돌아봐 이쪽을 쳐다봤다.

그도 당연하다. 이향을 처리하기 힘들 것 같아 무시하고 가던건데 그런 그녀가 사라졌으니 남은 건 약해뻐진 먹잇감들 뿐.




"뭐, 뭐야. 가던 길 가라고!!"

[므어어어.]



쿵.쿵. 소 커튼이 다시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어?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야!! 너 빨리가서 미끼라도 해봐!! 일어서!!"



이름모를 소녀를 억지로 일으키고 등을 떠밀자 그녀는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이...쓸모없는 년이!!"



그녀에게 발길질을 하려던 기주는 돌진해오는 소커튼을 감지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육중한 힘이 기주와 이름 모를 소녀를 유린하려던 찰나.



후우웅 쾅!!



대포같은 것에 얻어맞은 소커튼이 우스꽝스럽게 날아가버렸다.

3층 건물에 머리가 닿을만한 거대한 생물체가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은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 같았다.



콰아아앙!



"뭐, 뭐야?"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기주와 이름 모를 소녀의 등 뒤에 주먹을 휘두른 자세를 취한, 머리를 세운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손을 탁탁 털더니 기주를 바라보았다.



"...생존자는 이것뿐이니? 현미 아가씨는?"



정부공인 순위권자 3위. 김류열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서열 3위, 김류열을 보고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던 기주는 머릿속을 열심히 굴렸다.



어디까지 보다가 나타난 걸까? 저 걱정하는 태도로 봤을때 자신이 한 짓거리를 보진 못한 게 틀림이 없다. 아니 혹시나 나중에 뒤통수를 치려고 일부러 연기하는 건 아닐까?


식은땀을 흘리는 그에게 뚜벅뚜벅 걸어오던 김류열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기주가 겁먹은 이유가 이 지옥같은 곳에 오래 있었기 떄문이라고 생각한 김류열은 그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었다.



그제야 안심한 기주는 안도하고 괴상망측한 표정을 지었다가 문득 이름 모를 소녀의 존재에 대해 깨달았다.



그녀 또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기에 기주는 입모양으로 확실히 말했다.



다.물.어.



공포에 질린 그녀가 귀여운 비명을 내자 김류열이 레이디도 있었네 하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름 모를 소녀는 머뭇거리다가 그 호의를 받아 손을 마주 잡았다가 어느새 일어선 소 커튼이 거대한 몸뚱아리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조, 조심!!"



그 정도까지밖에 말할 겨를이 없다. 이 말을 듣고 반응해도 아마 늦을 것이다.



"응? 아~고마워."

"아?"



가벼운 말과 이름 모를 소녀의 뭔지 모르겠다는 신음. 그와 함께 몸이 뒤집힌 채 날아가는 육중한 소 커튼.



[므어어어어어!!]



거대한 몸이 팽이처럼 돌아가며 날아가는 현실성 없는 모습에 입을 딱 벌리는 두 사람.

거대한 소리와 함께 땅을 구르는 소 커튼을 보고 손을 우드득 풀던 김류열이 씨익 웃었다.



"걱정 마, 걱정 마, 저런 건 쓰레기야 쓰레기."



손을 휘휘 내젓는 그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듯이 던져진 소커튼은 꿈틀거리며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상급개체를 두 방 만에 저렇게 만들다니.

정부공인 3위의 실력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그러고 보니. 현미 아가씨는 어떻게 됐니?"

"아. 그게."



현미의 이름에 이름 모를 소녀는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다가 저 멀리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는 소녀를 보았다.



"...이럴수가."



기주는 소 커튼을 주시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입을 딱 벌린 김류열의 뒤로 다시 태세를 정비한 미친듯이 돌진해오고 있는 것을 보던 기주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 미친새끼! 충격은 나중에 받고 저 소새끼를 먼저 처리하란 말이야!'



속으로 그를 욕했으나 다음 순간 그 말은 쏙 들어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이동한 김류열이 어느새 소 커튼의 바로 옆에 등장하여 또 다시 날려버린 것이다.



"이 소 새끼가. 네놈이 한 짓거리냐?!"



분노로 사나워진 김류열은 다시 두리번 거리다가 이번엔 이향을 바라보았다.

기주의 옆에 쓰러진 처참한 몰골의 그녀.



"......?"



김류열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졌다가 다시 소커튼을 쏘아보았다

몇 번이고 날아가 분노가 임계치에 달했는지 발을 쿵쿵 울리며 울부짖는 소 커튼을 보던 김류열은 놈에게 날아갔다.



"열 받냐?"

[므어?!]



어마어마한 속도에 경악한 소 커튼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므으!!]

"므으 므으. 시끄러 소새꺄."



쾅! 쿵! 쾅!


대포같은 소리가 연속으로 울렸다.



'대...대체 무슨 무기를 사용하길래 저런 소리가 나는 거야?'



자세히 보니 그냥 주먹으로 난타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양 주먹에 낀 두 너클이 그의 무기였다.


얼굴을 맞는 것을 빼면 터프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소커튼이 김류열의 난타에 일어설 생각도 못하고 그저 두들겨 맞기만 하고 움직이질 못했다.



[므.므어!!]



엄청난 재생력을 지닌 것 답게 조금씩 재생하고 있었으나 곧바로 그 재생보다 몇 십 배는 커다란 피해가 났다. 검은 피부의 금속같은 몸이 산산이 깨부셔지며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신나게 날뛰었나 본데. 어디 계속 해봐. 응? 해보라니까? 이봐? 응?응?응?"



야차같은 표정으로 미친듯이 내려치는 그 여파에 소커튼만이 아닌 땅바닥까지 주저앉기 시작했다.



"그...그 녀석의 약점은 머리입니다!"



보다못한 기주가 소리질렀으나 류열은 잠깐 손 하나를 들어 화답하다니 그대로 몸통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저 새끼. 약점을 알려줬는데도 일부러 몸통만 치고 있잖아?'



사실 류열은 처음부터 소 커튼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하지 않았다.


분노에 취해 일부러 고통을 느끼게 비효울적인 방식을 취하는 그에게 공포를 느끼며 기주는 자신이 한 짓거리를 절대 들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윽고 파르르 몸을 떠는 정도밖에 반응을 하지 못하던 소 커튼의 몸이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었고 그것을 느낀 김류열은 그대로 목 부분을 가격해 머리를 뽑은 뒤 주먹으로 깨부셔버렸다.



"쓰레기 같은 커튼 새끼가."



퉤 침을 뱉은 그가 다시 기주와 이름 모를 소녀에게 다가왔다.



"괜찮니?"

"네! 네!!"



두 눈에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흘리는 이름 모를 소녀는 소매로 어떻게든 눈물을 닦으려 애를 썼다.



"내가 왔으니 안심해라. 그런데...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뭘요?"



기주가 반문하자 그가 이향을 바라보았다.



"이향씨의 상처...커튼에게 당한 것 같진 않은데."

"!!"



속으로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여기서 들키면? 난 어떻게 되지? 우수학생에서 짤리나?

아니 짤리는 것보다도 이 자리에서 이 남자에게 살해당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하지?


식은땀을 흘리는 기주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김류열을 보고 변명을 생각하던 기주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가온이 했습니다."



이름 모를 소녀가 깜짝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이가온? 그 아이가? 퇴마 이씨 가문의 장남인 그 이가온?"



김류열이 어쩐지 이가온을 친숙하게 불렀지만 가문이 좋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긴 기주가 얼른 대답했다.



"네! 그 놈이...."

"아! 아니에..."



저도 모르게 나서려던 이름 모를 소녀는 기주가 가만히 쳐다보자 말을 멈추었다.



"그래 이가온이 한 건 아니지...그 녀석이 지휘개체 커튼인 상어이빨인가 뭐시긴가를 잡기 위해 무리하게 나섰고 그걸 구하려던 이향씨가 당했어요."

"지휘개체?"



그 이름을 들은 김류열이 움직임을 우뚝 멈추었다.


서열 8위 심하령과 친한 동생같았던 부하 구한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지휘개체가 가까이에?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으스러져라 깨문 그를 보고 이건 심상치 않은 반응이라 생각한 기주가 신나서 말했다.



"그놈은 엄청나게 영리했어요. 이가온이 형편없이 휘두르는 검을 뺴앗아서 이향씨에게 던져버리고..."

"이상하잖아? 그럼 가온이랑 그 놈은 어디 간 거지?"



말문이 막힐 뻔 했던 기주는 커튼들이 수송차량 쪽에 몰려왔던 것과 소 커튼이 수송차량쪽으로 가려던 것을 떠올리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더니 갑자기 놈이 수송차량쪽으로 가고...이가온도 그걸 따라갔어요..."

"...알았다. 일단 너희를 데려다주마. 이봐! 다 들었지?"



김류열이 소리를 지르자 어느새 나타난건지 검은 코트를 입은 두 커튼 사냥꾼이 할말을 잃은채 서 있었다. 하지만 프로는 프로. 동료와 친분 있던 귀여운 소녀의 참혹한 광경에도 평정을 지키고 대답했다.



"네!"

"저희가 데려가겠습니다."

"그래, 둘다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 익환 형님은 걱정 말고 내게 맡겨."




이름 모를 소녀는 그들이 아까 만났던 친구들을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준 그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반가움을 표하려 했다. 그때 기주가 사나운 얼굴로 이름 모를 소녀를 쳐다보고 다시 입을 움직였다.



쓸데없는 말 하면 죽여버린다.



오들오들 떨던 이름 모를 소녀는 황급히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커튼 사냥꾼들에게 달려갔고 김류열은 수상쩍다는 눈으로 기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김류열은 땅을 박차 고속으로 이동했다.

구한과 하령, 그리고 현미는 물론 가온에게까지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길...커튼들이 또 늘어났잖아? 방벽은 파괴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체 어디서 기어들어오는거야?'




그런데 이상했다.

커튼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수송차량 쪽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는데...커튼의 것이 아닌가?'



수송차량이 있는 곳에 도착한 류열은 뻥 뚫린 대지와 여기저기 뚫린 구멍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특수능력인가. 아마 지휘개체가 한 짓이겠군.'



주위를 경계하던 류열은 수송차량이 어떻게 되었나 확인하기 위해 커다란 구멍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때.


쿠오오오오오.



바로 아래에서 엄청난 기운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고 펄쩍 뛰어 물러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뭐야? 불?"



엄청난 열기의 불기둥이 하늘을 뚫을듯 솟구쳤다. 뿐만 아니라 불기둥 안에는 커튼들까지 있었다.



"뭐야?"



'혹시 불을 조종하는 커튼이 있어서 그걸 방패로 삼아 커튼놈들이 등장한 건가?'



경계하며 자세를 잡던 류열은 불기둥이 끝나자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까맣게 타버린 커튼들의 시체가 비처럼 떨어져내리더니 재로 변해 하늘로 훌훌 올라갔다.



그리고, 구멍속에서 또 불기둥이 일었다. 이번엔 불기둥의 꼭대기에 커튼 하나가 있었다. 그 커튼의 모습을 본 류열은 잠시 넋을 잃었다.




혐오감을 주는 통상의 커튼과 달리 갑옷같은 몸뚱아리에 마스크를 쓴 것 같은 얼굴. 마치 전대물에 나오는 히어로를 연상시키는 외형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색깔은, 지금껏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나온적이 없었던 색깔이었다.



"붉은...커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81 te******
    작성일
    19.10.04 10:37
    No. 1

    독자에게 고구마를 상자째 먹이네요. 대부분 사망할 듯.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2 ITE
    작성일
    19.10.05 00:31
    No. 2

    이때의 전 고구마니 사이다니 하는 건 하나도 몰랐고 주인공에겐 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ㅠㅠ 앞으로도 전개가 꽤 답답하실 겁니다. 미리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k5263
    작성일
    20.06.27 07:09
    No. 3

    뭔가 좀 비빌만한 책략이나 음모여야 위기라고 느껴질텐데. 커튼에게 당한 상처도 아니라는걸 알아챘고. 기주라는 녀석이 이가온 이름을 내뱉은거부터 일단 같은 인간의 소행이라는 의심이 들어야하고. 이가온이 범인이라면 기주같은 목격자부터 처리했을텐데 남아있는것도 좀 그렇고. 뭐 그래서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2 ITE
    작성일
    20.06.30 00:39
    No. 4

    제 부족입니다 ㅠ 댓글 감사합니당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붉은 커튼.(여기까지 수정) +4 17.07.31 1,062 10 23쪽
22 증오스러운 몸(여기까지 수정) +4 17.07.30 1,087 10 12쪽
21 운명의 맹세. +2 17.07.30 1,159 12 19쪽
20 분노와 절규. +4 17.07.24 1,152 12 29쪽
19 친구의 마음2 +4 17.07.23 1,188 9 18쪽
18 친구의 마음 +7 17.07.21 1,168 11 24쪽
17 절망의 상어4 +2 17.07.20 1,204 12 24쪽
16 절망의 상어3 17.07.20 1,226 12 21쪽
15 절망의 상어2 +4 17.07.18 1,288 12 19쪽
14 절망의 상어1 +2 17.07.17 1,271 10 22쪽
13 수송차량. +2 17.07.16 1,359 12 21쪽
12 부담 17.07.15 1,368 11 17쪽
11 오만한 결의 +2 17.07.14 1,375 14 20쪽
10 다시 만난 괴물5 +6 17.07.14 1,436 14 18쪽
9 다시 만난 괴물4 17.07.12 1,482 13 18쪽
8 다시 만난 괴물3 17.07.12 1,597 13 16쪽
7 다시 만난 괴물2 +2 17.07.10 1,683 15 17쪽
6 다시 만난 괴물 +6 17.07.09 1,912 17 14쪽
5 복수를 맹세한 소년4 +2 17.07.08 1,940 13 15쪽
4 복수를 맹세한 소년3 +4 17.07.07 2,110 20 14쪽
3 복수를 맹세한 소년2 +2 17.07.06 2,589 18 13쪽
2 복수를 맹세한 소년 +8 17.07.05 3,755 30 17쪽
1 프롤로그 +10 17.07.04 5,450 34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