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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WE의 서재입니다.

개발자의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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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WE
작품등록일 :
2022.10.26 21:49
최근연재일 :
2022.11.30 08: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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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6
추천수 :
169
글자수 :
146,224

작성
22.1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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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pisode 03. 지구 멸망 시나리오 (1)

DUMMY

1.


지구 멸망 시나리오?

승무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지구 멸망. 즉, ‘아포칼립스 세계관’이라면 그가 평소에도 상당히 흥미있어하는 주제였다.

특히, 승무는 그 중에서도 좀비를 좋아했다.

그의 평소 지론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좀비를 좋아하는 사람과, 좀비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척 하는 사람들.’


수업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도 그런 말을 서슴치 않았을 정도로 그의 좀비 사랑은 각별한 편이었다.

게임,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좀비가 나온다면 일단 눈길이 갔다.

하물며 그가 회사를 창업하며 개발하려던 게임 ‘게이트’의 소재 또한 좀비였지 않았던가.


“아포칼립스? 좋지. 어떻게 멸망하는 건데?”


내심 ‘좀비’라는 단어가 나와주길 바라는 승무였지만, 그는 차분하게 입을 닫고 잼민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상대가 누구든 대화의 기술이란 그 첫 번째가 ‘경청(傾聽)’이다.

하물며 낮은 정신 연령을 가진 신이자 클라이언트가 상대였으니······,

경청. 그리고 경청하는 자세는 승무가 더더욱 신경써야 할 점이었다.

조급함에 입을 함부로 열면 안된다.

본론이 나오지도 않은 시점에 괜히 이것저것 의견이랍시고 말을 끼어들었다간 아이디어가 오염되어 본질을 잃어버릴 공산이 크다.

거기에 더해, 끼어든 말이 잼민이의 심기라도 건드렸다간 또다시 날벼락을 맞게 될 지도 모를 일.

그렇기에 승무는 그저 가만히 잼민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잼민이는 가볍게 말했다.


“이게 시나리오라고 있어. 지구 멸망하는 그런 건데, 알아?”

“······.”


뭘··· 물어보는거지?

승무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줬으면 좋겠는데 난데없는 역질문? 거기다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 시나리오의 뜻을 아냐고 묻는 건가? 아니면, 지구 멸망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려는 건가?

아니면 ‘지구 멸망 시나리오’라는 말의 의미를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가?

···다시 생각해봐도 전혀 모르겠다.

모르겠기에 승무는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간 또 바보니 멍청이니 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도 같다.


‘괜히 입 열었다가 스트레스 받을 필욘 없지.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게 좋겠어.’


나름대로는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잼민이를 상대로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아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저씨, 왜 눈 감아? 내가 방금 물었잖아. 어? 내 말 무시해?”

“뭐? 아냐. 무시한 거 아니······.”

“무시한 거 맞잖아! 변명하지 마! 짜증나!”


꽈르릉!


“거거거거걹······!!”


내리치는 번개와 함께 승무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깨어난 그는 앞으론 뭐가 되었든 대답을 재깍재깍 하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의 입이 반사적으로 열렸다.


“시나리오! 각본! 알지! 지구 멸망? 지구가 멸망하는 거잖아! 무슨 뜻인지 알아! 아아! 지구가 멸망한다는 각본이구나! 그런 이야기인 건가?!”

“뭐야? 역시 멍청이네. 아무것도 모르잖아?”

“······!!”


승무의 이빨이 우득거리며 꽉 쥔 손이 부르르 하고 떨렸다.

생긴 건 더럽게 말 안듣게 생겨서는, 꺼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승무의 혈관을 하나씩 틀어막는 기분이다.

그런데 신(神)이다.

무려 손가락 하나로 번개를 부리는 전능함까지 갖춘.

감히 항거할 수 없는 무력감에 승무는 눈을 질끈 감으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좀 멍청하지?! 하하! 부끄럽게도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러니 미안하지만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우득우득)”

“흐흥, 뭐, 그러던가. 그럼 말 할 테니까 잘 들어?”

“그래! 잘 들을게!”


‘재깍재깍 대답 전략’은 과연 잘 통했다.

잼민이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일단, 이건 그냥 이야기가 아냐. 반드시 일어날 현실이거든?”

“어? 현실······?”


잼민이의 말을 듣는 승무의 눈이 어색하게 떠졌다.



2.


“그게 무슨 말이야? 반드시 일어날 현실이라고? 지구 멸망이?”

“그렇다니까? 왜? 안믿겨? 아저씨 사는 지구는 멸망 안할 거 같아?”

“아니, 잠깐만, 잠깐.”


승무는 손을 저으며 머리를 정리했다.

일단, 저 잼민이가 말하는 ‘지구 멸망’이 뭔지부터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 말하는 지구 멸망이 뭔데? 인류가 멸망한다는 말이야? 아니면 지구가 뭐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화성처럼 된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지구 자체가 파괴된다는 말이야? 셋 중에 뭐야?”

“에? 뭐가 그리 복잡해? 그런 것까지 일일이 따져야 해?”

“따져야지! 따질 수 있는 건 다 따져야지! 그렇게 따질수록 이야기가 더 디테일해지는거야!”

“아! 이야기 아니라니까?! 진짜야! 레알이라고!”


아참참.

승무는 제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맞다. 진짜로 벌어질 일이라고 했지. 오케이, 이해했어. 그러면 이제 내 질문에 답해줬으면 좋겠는데.”

“어? 뭘 물어봤는데?”

“···지구가. 어떻게. 멸망하는. 건데?”


이를 악문 탓인지 승무의 말이 한 음절씩 끊어져서 튀어나왔다.

잼민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받았다.


“아아, 어떻게 멸망하냐고? 그게 좀 많은데.”

“······뭐?”


승무는 잼민이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구가 한 번 멸망하면 그걸로 끝이어야 하지 않은가?

그게··· 어떻게 ‘많을’ 수가 있지?


“지구가 여러 번 망한다는 소리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많다며! 멸망하는 게 많다며!”


악쓰는 듯한 외침에 잼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이 참, 당연히 많지. 우주에 지구가 몇 갠데. 그것들 다 망했어.”

“우주에 지구가 몇··· 아하, 너 지금 멀티 버스? 다중 우주를 말하는 거야?”

“에?”

“······.”


승무의 눈 밑이 파르르 하고 떨렸다.

마그네슘 부족인가.

그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생각했다.

새삼스럽게 정신적인 피곤함이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둘의 대화는 겉돌기만 할 뿐, 좀체 중심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승무는 잼민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잼민이도 승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탓이었다.


“···자. 우주에 지구가 여러 개 있다고 했잖아? 우리가 있는 여기 우주를 1번 우주라고 숫자를 붙인다면, 어딘가에 2번 우주도 있고 3번 우주도 있고··· 그렇다는 말이야?”


승무는 ‘다중 우주’의 의미를 최대한 풀어서 설명했다.

하지만 잼민이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멀티 버스가 아냐?

승무는 다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그게 아니면 패러렐 월드인가? 무한한 선택의 가짓수만큼 복제하여 분화(分化)한, 다른 시공간의 지구가 있는 거야?”


그가 이번에 꺼내든 것은 평행 우주에 대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잼민이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승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인상썼다.


“아아, 몰라! 말 안해! 어쩌라고! 왜 자꾸 이상한 말만 하는건데?! 왜!”


사실, 승무는 잼민이가 사용하는 언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잼민이의 말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을 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잼민이는 승무가 자신의 말을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의 소통이 어려운 이유였다.


“미안. 내가 미안해. 그러지 말고 좀 말해주라. 내가 너무 몰라서 그래. 응?”


하지만 승무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은 끈질기고도 집요했다.

승무는 대화를 포기하려는 잼민이를 어르고 달래며 기어이 필요한 만큼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승무는 손뼉을 짝! 치며 입을 열었다.


“오케이. 이제 좀 알 것 같다. 정리해볼테니까 한 번 들어보고 틀린 게 있으면 말해줘.”


승무는 긴 소통 끝에 자신이 해석하고 받아들인 내용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1. 어떤 이론적 배경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둔 것이 아닌, 잼민이가 그저 그의 눈으로 보기에 우주에는 이미 지구가 여럿 존재하고 있었고.

2. 그 여러 지구가 각자가 다양한 이유로 멸망해 왔었으며.

3. 잼민이는 멸망하는 지구의 모습과 과정을 내려다보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4. 그랬기에 잼민이는 자신이 직접 봤었던. 그리고 실제로 진행되었던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직접 알려줄 테니, 그걸 소재로 게임을 만들어 보라는 말.


“여기까지. 틀린 거 있어?”

“대충 맞긴 한데.”


승무는 잼민이의 대화에서 소름이 살짝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어린 외형에 가려진 ‘신’이라는 존재의 잔인함이 ‘3번’ 대목에서 느껴진 것.

그는 침을 삼키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재미있다고? 멸망하는··· 지구의 모습이?”

“완전 쌉이지. 아저씨도 봐바. 개꿀임, 레알.”

“······.”


신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승무는 자신이 익히 알고 있던 신이라는 것과 눈앞에 있는 잼민이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적어도 잼민이에겐 그가 알던 신의 모습이, 그들이 말하고 추구했다는 무조건적인 사랑, 자비, 관용 등의 종교적 모랄(Morale)은 없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잠깐.

재미의 신이라고 했었지?


“···아하.”


승무는 얼핏 잼민이에 대해서 알 것도 같았다.

잼민이가 원하고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재미’라는 감정 뿐이었으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케이. 재미만 있으면 뭐든 좋다 이거지?”

“뭐래? 뭐가 오케인데? 뭘 혼자 중얼거려? 이상해.”

“오히려 좋다는 거지. ‘재미’라면 누가 뭐라든 내 전문 분야니까.”


게임 기획자로써 십수년을 살아왔다.

그간 ‘재미 전문가’로써 제작하는 게임에 재미란 것을 넣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게임 기획자라는 직업은 그 어떤 것들보다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시장이 요구하는 ‘재미’와 승무가 생각하는 ‘재미’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승무는 누가 하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바랬고.

시장은 돈을 쓰면 쓸수록 점점 재미있어지는 게임을 바랬다.


그렇게 승무는 조금씩 무릎꿇어갔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이 틀렸던 걸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시간이 길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고리타분하고 낡은 재미에 자신의 뇌가 매몰된 것은 아닐지 언제나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랬었는데, 지금 그가 만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재미의 신’이었다.

그 재미의 신이 승무에게 말했다.

아저씨가 제일 잘한다고.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거라고 말했다.

재미의 신이 그를 보증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당신의 재미는 틀리지 않았다고.


“오올~ 전문 분야 막 이래. 이힉히힉! 그럼 지구 멸망 시나리오로 게임 만드는 거다?”

“그래! 그러니까 한번 들어나 보자. 그 놈의 지구 멸망 시나리오.”


자신감을 충전한 승무는 크게 심호흡한 뒤,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뭐였는데? 그 중에 제일 재미있는 멸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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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pisode 04. 이 망할 곳에서 당장 나가겠어 (3) 22.11.12 75 3 11쪽
11 Episode 04. 이 망할 곳에서 당장 나가겠어 (2) 22.11.11 76 3 11쪽
10 Episode 04. 이 망할 곳에서 당장 나가겠어 (1) +2 22.11.10 89 4 11쪽
9 Episode 03. 지구 멸망 시나리오 (2) +1 22.11.09 93 4 14쪽
» Episode 03. 지구 멸망 시나리오 (1) 22.11.08 99 5 11쪽
7 Episode 02. 재미의 신 (2) +1 22.11.07 106 5 13쪽
6 Episode 02. 재미의 신 (1) 22.11.05 124 6 12쪽
5 Episode 01. 게임 기획자 강승무 (4) 22.11.04 122 6 13쪽
4 Episode 01. 게임 기획자 강승무 (3) 22.11.03 124 5 13쪽
3 Episode 01. 게임 기획자 강승무 (2) +1 22.11.02 135 9 12쪽
2 Episode 01. 게임 기획자 강승무 (1) +2 22.11.01 175 13 12쪽
1 Episode 00. Tutorial +21 22.11.01 362 4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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