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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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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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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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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폭격(Bombardment) (5-4)

DUMMY

* * * *


발바토스의 9국 HQ 습격부터 8일 후, 「히페리온Hyperion」 작전 당일인 1988년 4월 21일 목요일 00시 45분.

부산직할시 남구 O부두, 25,000DWT급 벌크선 아카기마루(赤城丸) 인근.


말이야 「다 때려 부숴도 된다」라고 했지만, 실제 작전 진행은 그렇지 않았다. 9국 특유의 신중성은 여전히 유효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공안발(發) 정보의 진위였다. 따라서 이 배가 「검은색 나무」의 보급선이라는 증거를 확보해야 했다. 핸디 사이즈의 형강(型鋼), 고철 벌크선이야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상황에서, 물리적 증거 - 검은색 나무와 관련된 화물 - 가 반드시 필요했다.


“구조는 단순하네.”


쌍안경 안에 맺힌 상(象)을 바라보며 정은정 과장이 중얼거렸다. 항구의 조명을 받은 화물선의 윤곽선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조금 먼 곳, 그러면서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형상이었다. 배의 선수부부터 갑판실과 선교의 모습이 쌍안경을 꽉 채우고 있었다. 구조는 그녀의 말처럼 간단했다. 배 후부에 위치한 갑판실 앞으로 거대한 화물창이 5개 있고, 그 사이사이로 하역용 크레인이 4개 위치했다. 말 그대로 책에서나 보던 화물선의 모습이었다.


“......”


표막에 힘을 주자 쌍안경의 흔들림이 일순 멈췄다. 그녀는 갑판실 상부의 선교(Bridge) 근처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얼핏설핏 움직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3~4개의 사람 그림자였다. 그들은 난간을 거닐면서 경계 중이었다. 거리가 멀었기에 볼리셔니스트의 특징을 찾기는 어려웠다. 쌍안경을 돌려 전면부 갑판을 향했다. 거대한 선창 해치 좌우로 역시 3~4개명의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선박을 경계하며 천천히 돌고 있었다. 역시 볼리셔니스트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조금 애가 단 정은정 과장이 쌍안경을 내렸다. 참았던 숨이 쏟아졌다.


“후.”


아카기마루와 대략 300m 떨어진, 거대한 안벽 크레인(Gantry Crane) 위쪽이었다. U를 뒤집어놓은 것처럼 생긴 철골 구조물이 항구를 횡으로 가로지르듯 펼쳐져 있었다. 수 십 미터 높이의 구조물이 바람에 기괴한 소리를 냈다. 크레인의 붐(Boom)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었다. 정은정 과장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헤드셋에 손올 올렸다.


“여기는 당나귀 하나. 당나귀 둘.”

[여기는 당나귀 둘.]

“관측 결과는?”

[갑판실 후방에 3명입니다. 볼리셔니스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세에서 확인한 건가?”

[그렇습니다.]


윤민서 대리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위치는 반대편이었는데, 정은정 과장보다는 아카기마루에 좀 더 근접해 있었다.


‘최소 8명이라는 얘기군.’


아마도 전부 볼리셔니스트임이 분명했다. 거기에 밖에 나와 있는 숫자가 이 정도이니, 안쪽에 있는 인원까지 합치면 최소 10명은 넘을 터. 정은정 과장이 다시 헤드셋의 마이크에 입을 붙였다.


“무장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빈손으로 보입... 어, 한 명이 칼자루를 들었네요.]

“...!!”


칼자루 얘기에 정은정 과장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이내 쓴맛이 목 뒷부분부터 올라왔다.


‘약을 쓴 게 아니라는 말인가.’


아카기마루는 어제 오후 접안했다. 하역은 오늘 아침이 될 예정이었기에 물자와 인원의 이동은 전혀 없던 상태였다. 즉, 저들은 새로이 이곳에 등장한 볼리셔니스트라는 뜻이 되었다. 정은정 과장이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 들었다. 아카기마루가 제출한 통관 관련 서류의 복사본이었다.


“승무원 수 26명... 다 거짓이겠군.”


위협수준이 한 단계 올라갔다. 그러나 어떤 예지망도 새로운 볼리셔니스트의 절해 상륙을 예지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저 정도 숫자라면 분명히 민혜림 대리든 전(前) 절해의 예지가인 「김대근」 - 지금도 부산 모처에서 은신하며 예지 중인 - 의 예지망에 걸렸어야 했다.


‘예지가 끊겼다라...’


4월 초가 지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였다. 전(前) 절해의 예지가였던 「김대근」은 여전히 부산-경남지역 안에 있었다. 그는 3월 초 해연수산 인수 이후, 부산의 모처에 몸을 숨긴 채 예지정보를 보내왔다. 강(江)을 통해 전달된 예지정보는 3월 중순 검은색 나무의 의지선 공격과 토성 작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민혜림 대리의 예지와 교차 검증된 자료는 적 규모나 이동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4월에 접어들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절해가 장악했던 영남지역과 김대근과의 「관계성」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역의 의지흐름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성의 감소」는 궁극적으로 지역예지의 불가능을 의미했다.


‘장악했다는 얘기인데...’


바로 절해가 아닌 검은색 나무가 이곳 영지(靈地)의 지배력을 확보했다는 뜻이었다. 이는 민혜림 대리의 예지 정밀도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장막(약을 쓴 볼리셔니스트를 예지할 때의 이미지)의 크기나, 볼리셔니스트의 상륙에도 엇나감이 늘어났다. 한강진 국장이 그녀의 예지를 악마에게 집중시킨 것에는 이러한 연유도 있었다. 사기를 고려하여 굳이 언급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데 이렇게 빨리?’


문제는 그 장악속도였다. 커뮤니티가 교체된 이후 예지망까지 완전히 바뀌는 데에는 최소 몇 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는 영지(靈地)의 의지흐름이 기존 세력과의 단절을 통해 새롭게 바뀌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검은색 나무는 채 한 달 반도 지나지 않아 의미 있는 지배력을 확보했다. 결국 여기에도 뭔가의 기술적 우위가 있음이 분명했다.


“뭐, 기술이 안 되면 전통적으로 접근해야지. 선우 대리?”

“네. 과장님.”


옆에 웅크리고 있던 선우현 대리가 몸을 일으켰다. 군복을 입고 배낭을 멘 그가 정은정 과장이 건넨 쌍안경을 받아 들었다. 역시 선교 쪽을 노려보던 그가 말했다.


“볼리셔니스트... 군요.”

“그렇지. 폭약 수량은 충분해?”

“네. 날려버릴 정도는 됩니다.”

“좋아.”


시계를 한 번 본 정은정 과장이 말했다.


“당나귀 하나. 침투를 개시한다.”


작전 개요는 간단했다. 먼저 정은정, 선우현이 선박 정면부터 1, 2, 3번 선창(船倉, Cargo)을, 윤민서, 김휘승 대리가 4, 5번을 수색하고 반입품을 찾는다. 서창민 대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휘통제를 맡기로 했다. 여기에 커뮤니티에서 배속 받은 볼리셔니스트 두 명도 함께였다. 그들은 예비전력으로 필요시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검은색 나무」의 물건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찾으면, 일부 증거를 습득하고 폭발물을 이용하여 배와 함께 날려버리는 것이 목표였다. 내일 뉴스에는 「밀반입 시도하던 위험물, 항구에서 배와 함께 폭발」 정도의 문구를 띄우기로 했다.


“가자!”


짧게 소리친 그녀가 크레인 위에서 뛰어 내렸다. 선우현 대리도 뒤이어 땅을 향했다. 소리도 없이 착지한 두 사람은 부두를 가로질러 아카기마루를 향했다. 곧 법칙이 가동되자 모습도 소리도 거의 사라졌다. 스산한 바람 같은 것이 크레인의 레일 위를 지나쳤다. 순식간에 배 지척까지 다다른 정은정 과장이 크게 점프했다. 목적지는 선수 첨단부였다. 방금 전까지 확인한 대로라면, 그곳에는 아무 그림자도 없었다. 구상선수(선수 흘수면 아래의 돌출부)를 밟고 뛴 그녀가 그대로 갑판 난간(불워크)을 잡고 한 바퀴를 훌쩍 돌았다. 두 다리는 소리도 없이 갑판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자세를 낮춘 채 돌출된 구조물 사이에 몸을 숨겼다. 이내 옆으로 선우현 대리가 따라 붙었다.


“구조는 외웠지?”

“네.”


선우현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은정 과장이 헤드셋에 대고 소곤거리듯 말했다.


“당나귀 하나. 화물칸 조사를 시작한다.”

[당나기 둘. 여기도 시작합니다.]


선박 좌현과 우현에는 경계 중인 볼리셔니스트가 서넛 있었다. 정은정 과장은 그들이 최대로 멀어졌을 때를 노리고 선창 출입구를 향해 달렸다. 소리가 나기 쉬운 철제 갑판 위였음에도, 발소리는커녕 바람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개량해온 ANC(Active Noise Canceling) 법칙과 윤곽 교란 법칙의 성과였다. 거의 일직선으로 선창 출입구 - 짐 이난 사람이 드나들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통로 - 에 도착한 정은정 과장이 사주 경계에 들어갔다.


“......”


멀리 4번 선창 근처에서 일렁이는 신기루 같은 것이 보였다. 신경 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두 개의 안개 조각이었다. 순간 시선을 마주친 안개 조각이 갑판 아래로 사라졌다. 인천항에 같은 급의 배가 있었던 건 우연이자 다행이었다. 덕분에 힘들게 도면을 외울 필요도 없이, 실제 배를 대상으로 침입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내려가자.”


선우현 대리가 능숙하게 해치의 잠금쇠를 제거했다. 5초도 지나지 않아 뚜껑이 열리고 칠흑 속에 잠긴 하강 통로가 사다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정은정 과장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선우현 중사가 먼저 통로 안으로 내려갔다. 주위를 살피던 정은정 과장은 해치를 닫으면서 역시 아래로 내려갔다. 사다리를 달리듯 미끄러지며 둘은 첫 번째 선창 바닥에 도착했다. 헤드 랜턴을 키자 거대한 어둠의 일부가 사라졌다. 스멀거리는 그림자가 파묻히듯 다가왔다. 정은정 과장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화물 위로 훌쩍 올라섰다. 형강(주로 H빔이었다)과 주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박스도 쌓여 있는, 혼적 화물이었다.


“역시...”


해드랜턴을 돌려가며 주변을 살핀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면이 2m 정도 되는 나무상자 - 하코다테에서의 환적 사진에 찍혀 있던 - 가 차곡차곡 쌓인 모습을 바랐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곳에만 해도 똑같이 생긴 나무 상자가 수 십 개는 되어 보였다. 선우현 대리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그가 상자 개수를 세어보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많네요. 어디 있을까요?”

“음...”


정은정 과장은 꽤 고민했다. 다시 한번 환적 사진을 떠올렸다. 그때 문득, 뭔가의 생각이 스쳤다.


“제일 바닥 아니면 제일 아래야.”

“네?”

“사진 기억하지? 환적은 검은색 나무의 짐이 대상이었어. 즉... 다른 화물은 그 전 혹은 그 후에 실었다는 얘기지.”

“그렇겠군요.”

“내가 아래쪽을 맡을게.”

“그럼 제가 위를 맡겠습니다.”


정은정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헤드셋을 들었다.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예상한 대로 밀폐된 철제 박스 안에서의 통신은 거의 불가능했다. 거친 잡음만이 들릴 뿐이었다. 이내 통신을 포기한 그녀가 칼자루를 들었다. 튀어나온 칼날이 박스 일부를 예리하게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구멍으로 안쪽을 살펴보는 작업은 꽤 시간이 걸렸다. 위아래만 대상임에도 전수조사는 불가능했다. 몇 개를 샘플링 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 속에서 나온 결과는 꽝이었다. 이곳에 의심되는 물건은 없었다. 시계를 보았다. 10분이 넘게 흘러 있었다. 최소 세 개를 뒤져야 한다는 생각에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정은정 과장이 말했다.


“이동한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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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10화 : 폭격(Bombardment) (5-3) 22.03.26 42 0 12쪽
215 10화 : 폭격(Bombardment) (5-2) 22.03.20 44 0 12쪽
214 10화 : 폭격(Bombardment) (5-1) 22.03.19 41 0 11쪽
213 10화 : 폭격(Bombardment) (4-4) 22.03.14 36 0 12쪽
212 10화 : 폭격(Bombardment) (4-3) 22.03.12 37 0 11쪽
211 10화 : 폭격(Bombardment) (4-2) 22.03.06 34 0 11쪽
210 10화 : 폭격(Bombardment) (4-1) 22.03.05 34 0 11쪽
209 10화 : 폭격(Bombardment) (3-4) 22.02.27 38 0 15쪽
208 10화 : 폭격(Bombardment) (3-3) 22.02.26 37 0 12쪽
207 10화 : 폭격(Bombardment) (3-2) 22.02.20 35 0 12쪽
206 10화 : 폭격(Bombardment) (3-1) 22.02.19 31 0 13쪽
205 10화 : 폭격(Bombardment) (2-4) 22.02.12 40 0 13쪽
204 10화 : 폭격(Bombardment) (2-3) 22.02.06 24 0 11쪽
203 10화 : 폭격(Bombardment) (2-2) 22.02.05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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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10화 : 폭격(Bombardment) (1-3) 22.01.22 21 0 13쪽
199 10화 : 폭격(Bombardment) (1-2) 22.01.16 24 0 11쪽
198 10화 : 폭격(Bombardment) (1-1) 22.01.15 2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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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9화 : 대치(Confrontation) (5-5) 21.12.13 24 0 12쪽
195 9화 : 대치(Confrontation) (5-4) 21.12.05 23 0 12쪽
194 9화 : 대치(Confrontation) (5-3) 21.11.27 27 0 11쪽
193 9화 : 대치(Confrontation) (5-1~2) 21.11.14 29 0 23쪽
192 9화 : 대치(Confrontation) (4-4) 21.10.31 28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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