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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 님의 서재입니다.

원굉전 袁閎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대체역사

pioren
작품등록일 :
2015.07.27 15:54
최근연재일 :
2016.07.31 10:10
연재수 :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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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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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
글자수 :
16,930

작성
15.07.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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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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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글자
10쪽

서장 - 원술의 죽음

DUMMY

“그래, 공로(公路)가 그렇게 갔단 말이지...”


높게 쌓아올린 단 위, 태사의에 몸을 파묻고 있던 사내가 중얼거렸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문사가 대답했다.


“대장군께 투항하기 위해 오던 도중, 서주(徐州) 인근에서 조조(曹操)군의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원술(袁術) 공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도망쳤지만 결국 목마름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객사했다고...”


보고를 올리던 문사는 결국 고개를 푹 숙였지만, 사내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신경 쓸 것 없다, 곽도(郭圖). 사촌동생이라고는 하나 황제를 참칭한 역적, 자비는커녕 동정조차도 아깝다. 만약 살아서 황하를 건넜다면 기주(冀州)에 도착해 형님을 만나기 전에 내가 직접 그를 처단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셨던 겁니까?”


곽도라 불린 문사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팔걸이를 톡톡 건드리며 사내가 살짝 웃었다.


“위로는 한의 황실을 보위하고 아래로는 그 하늘에 의지해 살아가는 백성을 보듬어 살핀다. 그것이 한의 국록을 먹는 이의 의무지. 그를 어기는 자는 누구라도 예외 없이 처단한다. 그게 원(袁)이라는 성을 달고 살아가는 이의 사명이다. 그걸 잊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것도 모자라 역모를 꾸몄다면 죽어 마땅하지.”


약간은 자조 섞인 웃음이었다. 그것을 보며 곽도는 자신의 어깨가 짓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과연 자신이라면 저렇게 서슴없이 자신의 친족을 역적으로 죽일 거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망설여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 하지만 단상 위의, 그가 모시는 주군은 그럴 것이라 못을 박고 있었다.


‘저런 게 명문이란 것일까...“


허나 그도 잠시, 사내의 표정은 다시 싸늘해졌다.


“그래. 공로를 잡은 조조의 장수는 누구였는가?”

“유비(劉備)였다고 합니다.”

“유비?”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유비가 누군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곽도가 부연설명을 했다.


“아무래도 대장군 쪽을 경계하다 보니 주력을 움직이기가 애매했던 모양입니다. 마침 유비가 그에게 의탁하고 있고, 휘하에 꽤나 뛰어난 아우들이 있으니 믿을 만하다 여겼겠죠.”

“멍청하군.”

“네?”


곽도가 놀란 눈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팔걸이를 건드리는 손이 빨라졌다.

잠시 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서주로 사람을 보내라.”

“출병하는 겁니까?”

“머리를 좀 써라, 곽도. 그래서야 나의 제1모사라는 직함이 부끄럽지 않느냐. 괜히 네가 전풍(田豊)이나 저수(沮授), 심지어 심배(審配)한테조차 밀린다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한심하다는 듯 사내가 입을 열었다. 곽도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상황을 즐기는 듯 사내는 빙글거리며 그런 부하의 모습을 바라봤다. 몸을 부들부들 떨던 곽도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단 말이지. 넌 항상 배울 자세가 되어 있어.”


씩 웃은 사내가 말을 이어갔다.


“너는 유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름만 황족인 천한 돗자리 장수...일까요?”


서슴없이 대답하던 곽도의 시야에 사내가 잔뜩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 들어왔다. 식은땀을 흘리며 말끝을 흐린 곽도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야심이 있고 뛰어난 의형제를 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살아남았죠.”

“마지막 평가가 그나마 들을 만하군. 어쨌건 유비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네 말대로 이 난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물이지. 동탁(董卓), 공손찬(公孫瓚), 여포(呂布), 손견(孫堅)...지닌 세력과 개인의 무용이 비할 바 없이 뛰어난 이들이 사라져 간 와중에도 굳건히 목을 붙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사내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런 사내가 조조의 명령이었다고는 하나 수만의 병력을 얻어, 그의 원래 근거지였던 서주 부근으로 출병을 했다. 곽도, 너라면 돌아가겠느냐? ‘임무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승상’ 이라고 하면서.”

“유비는 그대로 서주에 눌러 앉겠군요.”

“그런 거지.”


상황을 깨달은 곽도의 얼굴에 경탄이 어렸다. 사내가 기지개를 켰다.


“겨우 배후에서 도사리고 있던 여포를 제거했는데 이번에는 더 커다란 혹이 박혔다. 조조도 골치가 아프겠군.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째고 싶겠지만...그걸 그대로 내버려 둘 수야 없지.”

“신비(辛毗)를 보내겠습니다.”

“그라면 믿을 만하지. 그리고 장합(張郃)에게 명을 내려라. 황하를 향해 주력을 이동시킨 다음 하내(河內)와 낙양(洛陽) 쪽을 노리고 도하할 듯한 움직임을 보이라고. 그렇게만 하면 조조는 주력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별동대 정도라면 유비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타개할 수 있겠지.”

“대장군께서 허락하실까요?”


곽도의 물음에 사내가 피식 웃었다.


“병주(幷州) 내의 병력 이동이다. 어디까지나 내 권한 안. 게다가 백마(白馬) 쪽을 바라보는 형님의 입장에서는 양동의 기회까지 되는 일. 아무리 내가 마음에 안 들어도 굳이 가로막기까지 할 이유는 없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곽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사내가 다시 태사의에 몸을 파묻었다.


상황은 점점 그에게 유리해지고 있었다. 자신을 괴롭히던 오랜 숙적, 장연(張燕)의 세력을 막 멸망시킨 참이었다. 최대한 희생을 줄인 덕에 병력과 물자를 엄청나게 비축할 수 있었고, 휘하 영지의 생산량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중이었다.


새로 합병한 영토를 안정시키고, 그 너머의 이민족을 품에 안으면서 혹시나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동쪽의 원소(袁紹)와 남쪽의 조조를 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유일하게 걸리는 점이었는데, 유비가 조조의 품을 벗어나면서 그조차 해결되어 버렸다. 길어야 일 년. 그 정도만 유비가 버텨 준다면 모든 불안 요소를 사라지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어쨌건 원소는 자신의 친족. 다른 적이 정리되기 전까지 자신을 칠 리는 없었다. 가문과 체면을 중시하는 그라면.


‘...!’


갑자기 찾아온 통증에 사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가슴을 칼로 헤집는 듯한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반년에 한 번 정도였는데, 최근 들어와 점점 통증이 잦아지고 있었다.


‘좀 저와 다른 장수들에게 맡기고 쉬십시오. 바쁘게 달리는 것도 좋지만, 이젠 몸을 생각하셔야 할 때입니다. 주군께서 쓰러지시기라도 한다면 겨우 자리를 잡기 시작한 저희 세력은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유일하게 자신의 이런 상태를 아는 충성스러운 부하, 견초(牽招)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내는 아픈 와중에도 입가에 웃음을 떠올렸다. 능력은 조금 모자라지만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절체절명의 위기가 오면 망설이지 않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부하.

장합이나 곽원(郭援)에 비해서는 용맹이 뒤지고, 곽도나 새로 받아들인 전예(田豫)에 비해서는 단순하고 앞일에 대해 예측하는 능력도 부족한 그였지만, 그를 보면 항상 마음이 편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혹은 뜻한 바를 다 이룬 후, 단 한 명의 부하를 데리고 먼 길을 떠나야 한다면 견초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사내는 생각했다.


‘물론 이런 걸 권호(權虎)에게 말했다가는 난리가 나겠지만.’


평생 그를 따라 다닌 가장 오랜 부하, 권호가 이런 말을 들으면 펄펄 뛸 게 분명했다. 아니,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칠 주야가 흐르도록 입을 다물고 있겠지. 그 역시 견초와 마찬가지로 사내가 목을 내놓으라면 내놓을 사람이었지만, 둘의 차이는 함께 한 세월이었다. 단순히 부하와 주군으로 선을 긋기에는 더 깊고 끈끈한 그런 무언가가 둘 사이에는 있었다. 물론 그게 불편할 때도 많았지만.


생각에 잠겨 있던 사내가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명을 내렸던 곽도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사내의 눈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벌써 명을 다 수행했는가?”

“그게...유비로부터 사람이 왔습니다.”


의외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사내의 입가에 이내 웃음이 배었다.


“빠르군.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냐. 당장은 우리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게지. 남쪽의 손책(孫策)이나 북쪽의 형님, 모두 조조 이상으로 유비에게는 위험한 대상이니까. 반면 우리는 그와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으면서 조조를 견제하는 건 가능하고.”

“들입니까?”

“물론.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안 그래도 사람을 보내려던 참이었는데, 오히려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셈 아닌가.”


사내의 말에 곽도가 뒤의 병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밖으로 나간 병사가 한 명의 문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침착한 표정으로 들어온 문사가 단상 위의 사내와 눈을 마주친 후, 고개를 숙였다.


“유예주(劉豫州) 님의 명을 받들어 왔습니다. 손건(孫乾)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많이 들었소.”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가 단상을 내려왔다. 손건이라 자신을 소개한 문사 앞에 도달한 사내는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손건이 이내 감격한 기색을 보이며 손을 맞잡았다. 사내는 더없이 존귀한 신분의 소유자이자 지혜와 용맹으로 천하에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는 이였다. 자신 같이 이름 없는 문사에게 이렇게 격의 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꽉 맞잡은 손을 힘차게 흔들며 사내가 입을 열었다.


“원굉(袁閎)이라고 하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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