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i**** 님의 서재입니다.

원굉전 袁閎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대체역사

pioren
작품등록일 :
2015.07.27 15:54
최근연재일 :
2016.07.31 10:10
연재수 :
3 회
조회수 :
31,983
추천수 :
742
글자수 :
16,930

작성
16.07.31 10:10
조회
4,714
추천
166
글자
13쪽

하동 입성

DUMMY

즉사한 왕식의 몸을 밟고 서서 원굉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또 누구 없는가. 아무나 덤벼라.”

“...크윽.”


이번에는 공수(孔秀)가 도끼를 휘두르며 원굉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기세가 오른 원굉을 막기에는 그의 솜씨 역시 손색이 있었다. 채 다섯 합도 지나기 전에 오른쪽 어깨를 강타당해 도끼를 떨어트리고는,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등을 돌려 도망쳤다. 연이어 두 명의 장수가 패퇴하는 것을 본 왕읍군의 기세는 완전히 꺾였다.

원굉의 뒤를 이어 상륙한 1진이 그런 왕읍군을 덮쳤고, 견초의 2진과 마연의 3진도 속속 합류했다. 분수 남쪽에 발을 내딛은 원굉군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 영역은 당장이라도 왕읍군을 집어삼킬 듯했다.


그쯤 되자 왕읍도 이미 글렀음을 깨달았다. 후퇴 명령을 내린 후 앞장 서 달아나니, 그의 장졸들도 결국 저항의 의지를 잃고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강을 건넌 성렴군이 빠르게 말을 달려 퇴각하는 적의 옆을 들이치니 왕읍군은 감히 맞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최후까지 저항하던 가규조차 직속 병력을 모두 잃고 겨우 자신의 몸만 빼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원굉군의 대승이었다.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병사들을 치하하며 원굉은 천천히 강기슭으로 걸어갔다. 견초가 그의 말과 함께 대기중이었고, 그 옆에는 곽가가 말 위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견초에게서 고삐를 건네받고 말에 오르며 원굉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한 명의 병사도 아쉬운 판국에 피씨현에서 기를 쓰고 저항을 하고 있잖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분수를 저지선으로 삼을 속셈이란 게 뻔하지. 그래서 적의 배치가 끝나고 경계를 강화하기 전에 장의를 미리 우회시킨 것뿐이야. 도하중인 우리 쪽으로 신경을 집중하면 측면은 무방비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가규를 놓아 보낸 건 어떤 의미입니까?”


옆에서 견초가 물었다. 곽가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야 우리에게 다른 수단이 없다 여길 테니까. 물론 눈치를 챘다 한들 큰 변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쪽이 훨씬 효과는 좋지. 겸사겸사 기슭에 설치한 목책까지 철거해 준다면 금상첨화라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걸려들어 주더군.”

“적이 우리의 항복 권유도 믿지 않고, 목책도 철거하지 않은 채 버티면?”

“장의에게 미리 지시를 내려 놨다. 만약에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달려 돌아가는 길을 끊고 하동을 향해 달리라고. 적이 버티고 있었다면 지금쯤은 장의가 우회했다는 소식이 왕읍에게 들어갔을 테고, 그러면 왕읍은 군을 물릴 수밖에 없었을 걸. 하동을 잃으면 분수에서 아군을 막아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


막힘없는 답에 견초가 감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군사님의 계책이 실로 신묘합니다.”

“뭐, 주공도 만만치 않지. 한 마디 귀띔도 안 했는데 대충은 눈치를 채고 있었으니.”

“정말입니까?”


견초가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원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점에 일부 병력을 빼돌리는 건 결국 별동대니까. 병력을 우회시켜 뭘 할까가 궁금했는데, 무작정 강을 건너라기에 그 병력으로 뭔가 대비책을 마련했을 거라 짐작했다.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래도 흑산적에 있을 때는 나름 머리를 쓰는 축에 속했는데, 두 분은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군요.”


거듭 감탄하며 견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굉이 철봉을 등에 비끄러매고 지시를 내렸다.


“병력을 수습해라. 성렴이 복귀하면 바로 하동을 향해 진격한다.”

“평양부터 먼저 손에 넣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왕읍은 몰라도 가규는 바보가 아니다. 지금 시점에 거리가 가까운 평양으로 퇴각했다가는 바로 우리에게 따라잡힐 뿐이지. 그나마 맞서 보려면 근거지인 하동까지 빠르게 후퇴해 태세를 추스르고 병령을 재정비하는 길뿐이다. 그런다 해서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과연 원굉의 예측대로 평양을 지키고 있는 건 겨우 백여 명의 경비병뿐이었다. 일부 병력으로 손쉽게 성을 손에 넣은 원굉은 장의를 남겨 평양을 지키게 한 후, 하동을 향해 나아갔다. 일련의 과정에서 원굉군이 입은 피해는 수백에 불과했다.

한편 왕읍군이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겨우 하동까지 후퇴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반수 이상을 잃은 탓에 왕읍의 수중에 남은 병력은 채 2천에도 미치지 못했다. 가규를 불러들인 왕읍이 침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어찌 해야 되겠는가?”


가규의 얼굴도 어두웠다.


“원래도 병력 규모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분수가 뚫리고 병력까지 절반 넘게 잃은 지금으로서는 저항할 방도가 없습니다. 항복하는 게 좋겠습니다.”

“항복하겠다 말해 놓고서는 뒤통수를 치려했다. 과연 항복을 한다 해서 저들이 순순히 받아 주겠는가?”


왕읍의 물음에 가규가 무거운 어조로 답했다.


“태수께 계책을 낸 것은 접니다. 모든 책임을 제게 돌리고, 절 결박해 바친다면 원굉은 태수님에게까지 죄를 묻지는 않을 겁니다.”

“...나도 체면이 있지, 부하에게 그런 식으로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네. 계책을 낸 것은 가규 자네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결정을 내린 건 나야.”


가규의 청을 거절한 왕읍은 하동의 북문을 열어젖히고 성벽 위에 백기를 내건 후, 스스로를 결박하고 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앞에는 비단에 싸인 하동 태수의 인수가 놓여 있었다.

북문 앞에 도착한 원굉이 그 광경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왕태수께선 어찌하여 그러고 계신 겁니까.”

“책임은 모두 제게 있습니다. 가규나 다른 부하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왕읍이 땅에 머리를 조아렸다. 말에서 뛰어 내린 원굉이 그의 결박을 풀어 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태수께서는 나라로부터 맡은 땅을 지키시려고 한 것뿐입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셔야 할 일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가식.’


뒤에서 바라보던 곽가와 견초, 성렴 등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왕읍과 그의 부하들은 감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것이, 전세가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울어진 후에 한 항복이었다. 항복하는 척 뒤통수를 치려고까지 했으니 극형에 처하거나 목을 벤다 한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길 이도, 덕이 없다 비난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정중히 대접함은 물론 오히려 왕읍의 대처를 칭송하고 있으니 죽었다 여겼던 하동의 관리들 입장에서는 감격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태수께서 그대로 하동을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관청에 들어오자마자 꺼낸 원굉의 첫 마디에 왕읍은 다시 한 번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동이 그리 부유한 고장은 아니지만, 군사적으로는 꽤나 중요한 위치입니다. 이 곳을 점하면 황하를 타고 장안 쪽으로 진출할 수도 있고, 또는 거슬러 낙양의 뒤를 공략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지킬 때는 황하를 이용해 많지 않은 수로도 능히 적의 북상을 막을 수 있으니 꽤나 요충지라고 할 만합니다. 제가 맡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왕읍의 사양에 원굉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 때문에 태수께서 맡아 주셔야 합니다. 제 부하들은 이 고장에 익숙하지 않으며 연고도 없습니다. 하동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태수께서 맡아 주셔야 저로서도 안심할 수 있고, 군사적 위치에서 나오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양하지 말고 맡아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원굉이 하동 태수의 인수를 다시 왕읍에게로 밀었다. 왕읍이 극구 손사래를 쳤다.


“전 이런 난세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이 주변 지역은 요 몇 년간 계속해서 전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운 좋게 전란을 피했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굳이 이 고장에 대해 잘 아는 이가 필요하시다면 딱 적절한 이가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제 부하 중에 가규라는 이가 있습니다. 나이는 젊지만 지용을 겸비했고,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강직한 이라 믿고 쓸 만한 인재입니다. 그를 태수로 임명해 이 지역을 맡기신다면 앞으로 하동에 대해 걱정하실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규를 추천하는 왕읍의 말에 원굉의 얼굴이 밝아졌다.


“저도 그를 뛰어난 인물이라고는 생각했습니다. 태수께서 그를 직접 추천하신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죠.”


원굉은 바로 가규를 불러들여 태수의 인수를 건넸다. 가규가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 아직 그런 중책을 맡을 그릇이 못 됩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나이도 많지 않습니다. 원굉님의 직속 부하를 임명하시거나, 아니면 왕읍님께 그대로 맡기시는 게 나을 겁니다.”

“바로 그 왕읍이 추천한 걸세. 사양한다면 그의 체면까지 상하게 하는 꼴이니 그냥 받게.”


원굉이 거듭 권하자 가규도 결국 사양하지 못했다. 이어 원굉이 물었다.


“자네는 이 고장 사람이니 하동의 가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겠지?”

“비록 부유하지는 않으나 낙양으로도, 혹은 장안으로도 진출할 수 있는 안정적인 거점입니다. 홍농도 비슷한 조건이지만 황하를 끼고 있는 하동 쪽이 방어에 있어서는 훨씬 용이하죠. 특히 변방에 위치한 원굉님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중요한 곳이 되겠죠. 같은 일가인 원소님과 세력 다툼을 할 수는 없으니, 하북 이외의 지역으로 뻗어 나가야 할 테니까요.”


가규가 원굉의 생각을 정확히 짚어냈다. 원굉이 감탄하며 물었다.


“그러면 하동을 손에 넣은 지금은 어찌 움직여야 하겠는가?”

“당장은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동탁이 불태운 낙양이나 이각 일당의 전횡에 시달린 장안. 모두 지금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손에 넣는다 한들 아무런 실익이 없습니다.”

“일단은 하동을 지키면서 정세를 주시해야겠군. 그 이후는?”

“예. 천하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가, 땅의 힘이 회복되고 손에 넣을 가치가 생겼을 때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장안을 중심으로 하는...관중이여야 합니다.”


가규의 말에 원굉이 속으로 웃었다. 그 역시 자신의 생각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한의 수도는 낙양이고, 황제 폐하께서도 낙양으로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낙양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세력을 확대하기는 용이하지 않습니다. 황제를 보위하고 그 권위를 빌어 천하를 호령하는 것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 조금만 지혜가 있는 제후라면 그 가치를 알 것이고, 조금만 식견이 있는 모사라면 주군에게 황제를 모실 것을 진언하겠죠. 누군가가 손에 넣으면 다른 누군가가 뺏으려 들 겁니다. 생각하건대 원굉님께서는 그런 쟁투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만...”


가규가 말끝을 흐렸다. 조심스레 자신의 눈빛을 살피는 그를 보며 원굉은 온몸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대로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성향을 이미 파악하고 거기에 맞춘 조언을 내고 있다. 게다가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 절대 따를 수 없다고 뻗대던 자였어. 이건...’

“제 말에 무슨 문제라도...?”


가규가 눈을 깜박거렸다. 원굉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재미있군, 이자.’

“너무 내 생각과 비슷한지라 잠깐 놀랐을 뿐이네. 대단한 식견이로군.”


마음을 감추며 원굉은 가규를 칭찬했다. 솔직히 감탄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가규가 고개를 숙였다. 원굉이 말을 이어갔다.


“자네에게 하동과 인근 지역의 전권을 맡기겠네. 외부를 공격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량껏 행해도 좋아.”

“하지만 저 혼자의 힘으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재대로 지원을 해 달라는 뜻이로군.’


원굉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평양에 장의와 3천의 병력을 남겨 두겠네. 그 정도면 되겠나?”

“그렇게까지 해 주신다면...한 번 해 보겠습니다.”


그제서야 가규가 흔쾌히 답했다. 뭔가 대화를 더 이어가려던 그때, 밖에서 견초가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주공, 큰일났습니다.”

“왜. 병주에 흑산적이라도 다시 쳐들어 왔다더냐?”


원굉의 물음에 견초가 고개를 저었다.


“병주는 아니지만...적이 쳐들어왔습니다.”

“병주가 아니면 어디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원굉의 눈이 커졌다.


“설마...여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원굉전 袁閎傳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원굉전 연재 관련 공지 +30 16.07.31 10,114 0 -
» 하동 입성 +9 16.07.31 4,715 166 13쪽
2 분수 도하 +5 16.07.31 5,247 158 14쪽
1 서장 - 원술의 죽음 +12 15.07.27 21,985 418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