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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히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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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히토리
작품등록일 :
2019.10.09 20:48
최근연재일 :
2019.10.21 21:41
연재수 :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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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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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120

작성
19.10.2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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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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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3화

DUMMY

산기슭에 도달한 이반은 혀를 차며 잠시 멈추어 섰다. 얼핏 보면 동물들이 오가는, 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초라한 비탈의 흔적이 산길의 시작임에 틀림이 없었다. 교역소장이 말해 준 경로를 제대로 찾아온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하.. 흐윽.. 대체 어떻게 살면 이렇게 몸 상태가 글러 먹을 수 있는 거지”


양손을 무릎에 걸치고 쉬고 있던 이반은 가까운 나무 밑동에 허리를 기대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아직 등산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허벅지와 무릎과 허리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본인의 예전 신체도 운동 부족 수준으로 그다지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상태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잠시 쉬면서 생각해보니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것보다 작고 짧아진, 그리고 깡마른 신체를 인지하고는 지금의 현실에 납득 했다. 아마 단시간에 해결되는 것은 무리겠지.

억지로 일어나 허리를 몇 번 뒤로 제끼며 주먹으로 두드리며 지켜본 산길이 너무 아득히 멀다.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은 지 한참 전이니 이 짧은 신체로는 돌아오기는커녕 산에 오르는 도중에 해가 저물 것을 안다. 산속의 밤은 훨씬 더 빨리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는 전이 전 수년간 복무를 하며 질리도록 체감했으니까.

그의 신체와 이성은 무리인 것은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계속 그를 채근했다. 본능도, 의식도 그 사실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작디작은 목소리가 포기하면 안된다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을 느꼈다.


‘어이 이봐 포기해. 육체노동은 우리(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몇 날 며칠이고 험난한 산등성이를 타면서 사냥감을 쫓아다닐 근성도 체력도 없잖아’


‘애당초 도착한다고 나를 써준다는 확신도 없어’


수십 개의 부정의 메시지가 나름의 근거를 들고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며 머릿속을 연기처럼 머물러 자리하는 동안 극소수의 긍정적인 생각들은 불빛이 반짝이듯 금세 사라져 갔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사고의 갈림길에 서서 망설이는 동안 그 저항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서 이반의 의식을 채워갔다.


‘또. 또 포기할 거야? 여태까지 살면서 뭐가 되었던간에 단 한 번이라도 전부 불태워서 해 본적 있어?’


‘실패하더라도 이 정도 했으면 어쩔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불타본 적은 있는 거야?’


“젠장, 이 경우는 그런 거랑은 다르잖아.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하는 거라고. 누가 알아? 이번 기회를 보내고도 다가올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면 상관없어. [수많은 가능성] 좋은 이야기지. 하지만 양심을 걸고 말해봐. 그저 자기합리화일 뿐이잖아’


“...”


‘포기할 때는 하더라도,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보고 나서.’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보고 나서”


‘할 수 있어. 한번 해 보자고. 하다가 안되면 말지. 하지만 일단은 해 보자고’


“그래.. 젠장 빌어먹을 해 보자고”


이반도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에 슬슬 스스로 미쳐간다고 중얼거렸다. 후들거리며 지친 다리를 때려가며 수십 발자국을 가다 다시 멈추어 서기를 반복 또 반복. 그 후에는 반쯤은 기어서, 끈질기게 산비탈을 올랐다.




“... 이반이 보이질 않는군요. 이고르, 혹시 이반을 보지 못했나요?”


“우”


이고르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비뚤어진 입술은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전부 비슷해 보였지만 그를 오랜 세월 봐온 안드레이는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것을 떠나서, 이고르의 생김새는 낯선 사람이 바라보았을 때 가까워지기 힘든 외모를 지니고 있다. 선천적으로 우측으로 뒤틀린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탓에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져 빈민가를 전전하다 시작한 광산일. 사람들의 기피 때문에 다른 기회가 없었던 그는 오랜 시간 좁고 낮은 곳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계속한 탓에 등이 굽어서 더욱 기괴한 외모를 갖게 되고 말았다.

광산 사고를 계기로 또다시 남부지역을 떠돌다 이 마을에 정착한 것도 벌써 수년째. 매일 새벽에 일어나 정확한 시간에 예배당의 종을 울리고 마을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를 사람들은 점차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외모와는 다르게 온순한 성격 탓에 종종 손해를 보는 일도 있지만 정작 본인은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있다.

안드레이의 말을 들은 이고르는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이반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보았지만 여전히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가는 것을 본 이고르는 걱정이 되는 심정에 안드레이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우, 우. 우.”


“음? 아직도 들어오지 않은 건가요? 이거 곤란하군요. 어디서 길을 잃은 건 아닌지..”


이고르는 사고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제나 ‘우’라는 단 한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대부분에 사람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안드레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날은 분기마다 한 번씩 해야 하는 야간의식이 있는 날이라 그는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곧 돌아오겠거니 하고 기다리기에는 이반의 멍해 보이는 표정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 또래의 평범한 아이도 걱정이 될만한 시간인데,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이반의 모습에 그는 더더욱 걱정이 되었다.

잠시 더 고민하던 그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저는 의식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어요. 만약에 해가 지고 나서도 이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레위 노인에게 이 서찰을..”


그는 맞은편에 있던 봉납함 위쪽의 서랍에서 기도문을 적을 때 쓰는 종이를 꺼내 간단히 사정을 설명하는 내용과 도움을 청하는 내용을 적어 건넸다. 이고르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며 예배당을 나섰다.




사아아아아


바람이 나뭇잎과 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산등성이를 훑고 지나가며 아련하게 들린다.

해가 점점 기울어가며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낡은 옷을 뚫고 피부에 닿는 바람은 더더욱 서늘하게 느껴진다.

이미 땀에 흠뻑 젖어서 축축해진 이반은 맨 처음의 목적도 깜박 잊은 채 그저 ‘산에 올라야 한다’만을 되뇌며 이제는 거의 기듯 가고 멈추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뒤 목덜미를 핥는 듯 스쳐 지나가는 감각에 소름이 돋는 것처럼 부르르 떨며 잠시 멈춰선다.

낮에 산을 보았던 기억에도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던 산등성이도 이제 벌써 7,8부는 지난 것 같은데도 어째서인지 사냥꾼의 오두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단 어느 정도 가까이 가면 불빛 같은 거라도 보이겠거니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혹시나 하는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만월의 달빛이 생각보다 밝아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렴풋한 시야의 한 가운데 풀이 자라나지 않은 흔적을 따라 느릿느릿 올라가며 어쩌면 산 반대편에 오두막이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찬 생각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일단 정상에 올라가 보면 알 수 있겠거니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함께.

땅만 보고 멍하니 오르막을 오르기를 한창, 어느샌가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갑자기 넓어졌다. 흩어지는 달빛 아래로 주변 풍경이 보일 듯 말 듯. 마침내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아”


도착과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은 이반은 그대로 바닥에 누워 밤하늘을 보았다. 순간 감탄사도 일순 잊게 만드는 무수한 별들의 무리와 은하수가 눈 속에 새겨지듯 들어왔다.

그것은 전에 본 적 없던 장엄한 신비였다. 드넓은 자연 속에 스스로 실존함을 느끼는 깨닫게 함과 동시에 수없이 오랜 시간을 품은 별빛이 그를 뚫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눈에 보이듯이, 만져지듯이 자신을 휘감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저 본래 존재하던 것이, 그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자리한 것처럼 그 존재감을 확장했다. 그 존재감은 이반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치도록 채워 입에서 신음과 같은 감탄사로 변해 입 밖으로 그대로 흘러나왔다.


“아아”


그 순간 이반은 몇 일간 심각하게 하던 고민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거대한 신비와 시간의 흐름에 비하면 자신의 작은 고민은 이 얼마나 하찮은지. 자신이 찾아 헤매던 수많은 질문의 답들과 무수한 진리의 조각들이 세계와 자신의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 가르쳐 주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난생처음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감정의 물결 속에 그저 하염없이 별들에 빠져 시간의 흐름을 잊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우”


레위 노인이 이고르가 가져온 서찰을 받은 것은 그가 저녁 식사를 막 끝낸 후였다. 내일 새벽에 전서구를 통해 보낼 정보들을 정리하려고 지하실의 작업대로 막 이동하려던 참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레위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밖에 찾아온 뜻밖의 손님은 방문 목적이나 인사말도 없이 그에게 서찰을 건네준 다음 뜯어보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런, 이런 쯧쯧”


훑듯이 내용을 읽어 넘긴 그는 혀를 차며 서찰을 다시 이고르에게 건네주었다. 평소 예배당에 얼씬도 하지 않는 탓에 데면데면한 사이인 자신에게 부탁을 한 걸 보면 꽤나 걱정이 되는 모양이라고 내심 생각했다.

레위 노인은 수년 전 도적 길드를 은퇴한 정보상인이다. 은퇴한 후에도 지인들과의 연락망은 끊기지 않아 값어치가 그리 비싸지 않은 소식들을 사고팔며 근황을 전해 듣고 있어 주변 소식에 밝았다. 평소에 마을에 곤란한 일이 생겨 도움을 요청하면 상황에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서 마을의 만물박사 겸 조정역으로 주민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컸다.

그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을 들어 턱을 긁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발걸음으로 이동 가능한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짐작 가능했다. 내일 아침 즈음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 수색하면 금방 찾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안전한 상태로 발견될 것인가에는 확신이 없었다. 슬슬 바람이 차가워져 가는 계절에 감기는 고사하고서라도 실족, 맹수나 몬스터 조우, 탈진 등등 실현 가능한 수많은 사건·사고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지 않던가. 일반 상식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당했다면 그라고 해서 구해줄 특별한 재주가 없었다.

그렇다. 뭔가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목격자나 방향이나 아무 정보도 없이 이 밤중에 아이 하나를 찾아달라니. 그것도 머리가 모자란 이방인 아이를. 장정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힘든 일에. 하물며 그가 전성기인 시절이라면 조금 무리더라도 주변을 거의 ‘날아다니듯’ 훑으면 어떤 흔적이 되었건 어렵지 않게 찾았겠지만, 세월이 흘러 섬광과 같던 왼팔은 잘리고 기력은 쇠하여 이제는 미래보다는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많은 은퇴 도적에게 발로 뛰어서 흔적을 찾는 필드워크는 어떻게든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냥 대충 찾는 척만 하고 말어?’


그와 가깝게 지내는 마을 사람을 몇 명 정도 모아서 두 시간 정도 찾는 시늉을 하면 모양새도 살고 나름 노력은 했다는 명분도 챙긴 채 넘길 수 있을 일이라는 계산도 슬그머니 섰다.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이고르를 찾아는 보겠다는 답변으로 돌려보낸 뒤, 수색 인원으로 도움을 청할 마을 청년 몇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옷걸이에 걸어둔 외투를 걸치려던 때, 그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네단...”


언뜻 보면 조잡해 보이는 낡은 목걸이. 나뭇조각을 깎고 독수리 발톱을 박아 넣고 깃털로 감싼 작은 토템 모양의 호부가 그날따라 그의 눈에 밟혔다.

옷걸이 옆 선반에 고이 모셔둔 그 호부는 젊었을 적 아이와 부인을 두고 외출하는 일이 잦았던 그의 아들 네단이 만들어준 최초이자 최후의 선물이었다. 서툰 솜씨로 몇 달 동안 정성 들여 만들어 자신의 목에 걸어주던 그의 아들 네단.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아내와 아들. 다녀오세요 하며 손 흔들던 그 마지막 모습.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진 레위 노인은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민했다. 아무리 버림받고 모자란 아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사랑받는 아이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그는 한숨을 쉬며 외투를 벗고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 밑에서 꺼낸 궤짝에는 낡은 망토와 부츠, 그리고 의수가 들어있었다. 이미 마지막으로 사용한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마치 몸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럽게 감기는 착용감이 있었다. 아마 며칠 동안은 후유증으로 근육통 때문에 거동조차 불편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최근에 쉬어 본적이 드문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불평을 읊조리듯 내뱉었다.


“이 바보놈. 찾아내고 나면 소나 말처럼 부려먹어주마”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지쳐서 얕은 잠이든 이반은 자리에 누운 뒤 처음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빛에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심지어 감고 있던 눈꺼풀을 넘어서 그 변화는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흐린 시야 너머로 갑자기 무언가 밝은 물체가 하늘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것을 깨달은 이반은 황급히 눈을 비비며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갑자기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빛을 본 탓일까. 그는 쉽사리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것이 가까워져 언뜻 사람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고까지 판단한 시점에서 그것은 이반에게 말을 건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름 모를 존재여. 저는 이쪽 세계를 맡고 있는 마켓관리자인 아이다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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