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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히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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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히토리
작품등록일 :
2019.10.09 20:48
최근연재일 :
2019.10.21 21:41
연재수 :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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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120

작성
19.10.0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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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화

DUMMY

그저 기계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일어나서 씻고, 옷을 입고, 뜨는 듯 마는 듯 아침을 억지로 뱃속으로 밀어 넣고. 적성에도 맞지 않고 힘들기만 한 일을 그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해 나가는 그런 나날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시간은 지나가 있었다. 그저 이룬것도 없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내 시간은 약간의 통장 잔고를 남기고 불에 탄 연기마냥 허무하게 사라져간 시간들.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었다.

그 조짐은 어느 날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찾아왔다. 문득 음식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게 되고, 감각은 둔해지는 것이 느껴지며 세상이 회색으로 칠해지듯 모든게 허무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그동안 애써 생각하기를 미뤄온 내 인생의 종착역이 그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어느샌가 삶의 의욕을 점점 깎아 먹다 보면 생각은 어느새 한곳을 맴돌게 된다.

자살, 혹은 죽음이라는 곳으로.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을 참고 견디느냐,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느냐의 자기 고민의 반복일 뿐.

오랜 시간 스스로 고민하던 끝에 육체마저도 서서히 경고를 보내오기 시작한 4월의 봄.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밤 까닭도 모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게 된 그 날.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래, 나중에 또 연락 주렴. 사랑한다. 내 아들]


어머니의 짧은 문자 뒤에 붙은 문구가, 어쩐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시간은 훌쩍 지나 이미 여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그저 자고 일어나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겨우 밖에 나가볼 생각이 든 것은 어느덧 공기가 후덥지근해 지던 초여름의 문턱에서였다. 고민 끝에 다니기 시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선생님은 일단 작은 모험부터 시작해 보는 것을 조언해 주었다. 평생을 집돌이로 살아온 나에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너무 큰 모험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가까운 곳에 관광지 방문하기.

멀지 않은 곳의 공원에 케이블카가 있었다. 섬과 공원을 오가는 케이블카는 한번 두 번 정도는 타보기에 괜찮다. 공원은 높은 곳에 있으며 바람이 시원한 편이라 가벼운 운동이 필요한 내가 목표로 하기에는 제격인 곳이었다. 너무 더워지기 전에 하루 한 번 왕복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힘이 들었다.

그리고 공원을 오가는 나에게 최근 찾아온 작은 즐거움이란..


“오늘도. 먹을래? 이거?”

“...”


바로 먹이를 주는 일.

케이블카 공원을 매일 왕복하던 중 그 아이가 자꾸 눈에 밟히는 일이 많아졌다.

공원의 매표소 옆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유리벽 너머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한 소년이 있었다.

매번 같은 옷, 같은 차림에 같은 장소에서 그러고 있던 아이가 신경 쓰였지만, 요즘 세상이 세상인지라 섣부른 참견은 금물이라 생각해 상관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었다.

접점이 생긴 계기는 몇 주 전의 수요일.

아침을 먹지 않고 산책을 나온 그날따라 팔고 있는 햄버거가 몹시 맛있게 보였다. 모짜렐라 치즈버거를 사서 들고 한입 크게 베어 물려는 순간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혹시 배가 고픈 걸까.

그러고 보니 이렇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봤었지만 햄버거를 사먹고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었다.

눈마저 마주친 마당에 혼자서 먹기가 영 불편해진 나는 똑같은 것을 구입해 나가서 그 아이에게 건넸다.


“먹어볼래? 이거?”

“....?”

“아까 막 산거야. 맛있는데, 이거.”


햄버거를 내민 손이 무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짧은 침묵이 반복됐다. 가만히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난생처음 보는 성인 남자가(그것도 인상이 썩 좋지도 못한) 무언가 먹을 거라면서 건네준다고 해도 선뜻 받기가 애매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붙임성이 썩 좋지 못했던 나는 아이의 손에 햄버거를 쥐어주고 한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말했다.


“너 주는 거야 그거. 먹기 꺼림직하면 버려도 상관없어.”

“... 내가.. 보여?”

“그렇게 이마를 유리벽에 딱 붙이고 들여다 보면 누구에게나 보이겠지”


살짝 당황한 것일까, 아니면 망설이는 것일까.

잠시 일시정지 상태가 된 아이를 두고 그제서야 주변 사람들이 이쪽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눈에 밟혔다. 괜한 오해를 받기 전에 좀 더 거리를 벌렸다.


“먹고 맛있으면 말해. 난 매일 여기에 오니까. 껍데기는 쓰레기통에 확실히 버려야 된다. 그럼 바이 바이~”



그 후로 이틀에 한 번꼴로 공원을 찾아오는 아이와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아이는 말이 없다. 그리고 여전히 이름도, 사는 곳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내가 주는 것을 누군가 먹어준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포만감을 준다고나 할까.

몇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은 확실히 있다. 예를 들면 늘 같은 복장이라든지, 학교에 있을 시간에 돌아다니고 있다든지. 겉에 드러난 부분에 상처나 다른 흔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학대나 방치의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을 했다. 옷은 같은 옷이지만 때가 탔다거나 그런 흔적이 보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편부모 가정이나 조부모와 살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지 몰라서 괜한 참견은 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사정을 모르는 한 무턱대고 참견하면 곤란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단지 그 아이는 이곳에 오고 나는 산책을 하는 동안 햄버거를 같이 먹는다. 영양학적으로 좋을지는 별개의 문제로 그게 하나의 일상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라고 할까나.

오늘은 그 시간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

햄버거의 종류는 매번 바꿔서 사고 있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햄버거를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음? 오늘거는 별로야?”

“...”


고개를 조그맣게 흔든 그 아이는 여느때처럼 포장지를 벗기고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필연적으로 입이 큰 내가 더 빨리 먹어치우기에 막간에 잠깐 동안은 내가 기다리는 시간이 생긴다.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이는 나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저씨. 나한테 먹을 것을 주는 이유가 뭐야?”

“아저씨 아니야. 아직 결혼안했어”

“아저씨 군대 갔다 왔지?”

“응”

“그럼 아저씨 맞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잠시 슬픈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냥. 혼자 먹으면 맛이 없어서”

“아저씨, 외롭구나?”

“... 거 참..”


간단히 정곡을 찔린 나는 방황하는 시선을 다잡으며 다음 대화를 생각했다. 마땅히 할 말이 없는 나를 대신해서 아이는 계속 말했다.


“근데 있잖아. 나 내일부터 여기에 못 와.”

“음..? 그런거야? 아쉽다. 그래도 몇 일간은 덜 외로웠는데.”


마주친 아이의 두 눈에 나의 모습이 작게 보인다. 투명하고 맑은 두 눈은 마치 내 진의를 읽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문득, 그 순수함이 살짝 부담스러워 진 나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럼 언제 다시 올 계획은 있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조그맣게 저었다. 무언가 묻고 싶은 말들이, 평범한 안녕의 인사말 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냥 속으로만 삼키고 말았다. 아무생각없이 묻는 말들이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애써 평범하게 건네려던 인사말이 부담을 주지 않을지 걱정이 먼저 되었다.

그저 수일간의 만남이었다. 이름도, 사는 곳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정이 들어서일까. 인간관계가 서투른 탓에 평범한 작별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 아이는 내 눈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이파이브? 너무 야단스럽겠지. 역시 악수가 무난한 선택이리라.

가볍게 쥔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손은 무척이나 작게 느껴졌다. 이윽고 두 사람의 손이 떨어질 때, 손바닥에서는 무언가 거친 느낌의 이물감이 느껴졌다. 손을 펴고 보니, 알 수 없는 언어로 새겨져 있는 티켓같은 것이 3장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뭐야 이건???”

“...선물. 어차피 나한테는 필요 없는 거니까. 아저씨 줄게.”

“??? 쿠폰 같은 거야 이거?”

“--------- #&*(#@?. ----”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언어로 새겨진 코드와 무늬가 신기해서, 무심코 들여다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아이가 남긴 마지막 말이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중요한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쓰는지는 알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선물로 받은 것이니만큼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치에서 일어서는 그의 지갑에는 곱게 접힌 티켓이 들어있었다.




[태풍 17호 벤담의 영향으로...]


저녁을 먹고 소파에 기대 보는 9시 뉴스의 내용은 온통 태풍 이야기뿐이었다. 다행히 그가 거주하는 호실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앞집에 살고있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번 태풍 때 빗물이 들이치는게 장난이 아니었다는 모양이다. 슬며시 걱정이 되기 시작한 그는 비상식량이나 전등을 사놓을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걸어서 7분즘 되는 편의점에 가서 야식으로 먹을 것을 사 컴퓨터 앞에 앉은 그는, 문득 낮에 받았던 티켓의 용도가 궁금해졌다. 접어둔 티켓을 펼쳐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써져 있는 문자열이 무슨 뜻인지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어느 나라 말에 해당하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러시아어도 아니고, 라틴어는 더더욱 아닌데... [입력하신 문자열은 올바른 형식이 아닙니다]... 어? 내가 어떻게 알아먹고 있는거지?”


그것은 어느 순간에 일어났다. 평생 약간의 영어와 일본어 단에 몇 개 밖에 모르던 그가 나열해 놓은 여러 외국어를 보고 그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본인의 착각이나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사전을 찾아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해석이 틀림없이 일치하는 까닭에 그는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혼란스러워졌다.

문득 이제는 티켓의 문자도 이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티켓을 들여다보니 3장 중 중간의 한 장에 새겨진 문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얼룩이나 그런 것이 지워진 것이 아닌 완전히 깨끗하게 백지의 상태로. 나머지 두 장의 티켓은 아직도 그 뜻이 애매하게 느껴졌으나 대략적인 의미는 이해할 수 있었다.


“G..마켓... 회원권.... 여행..자...룬..... 이게 다 무슨 뜻일까? 지 마켓이면 내가 아는 한은 그거 하나 밖에는 없는데 그쪽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고. 룬은 도대체 뭐야?? 이게 다 무슨 일이람?”


어째선지 티켓의 내용을 읽자 현기증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컴퓨터를 오래 한 탓일까. 오른쪽 하단의 시간을 보니 0시에 가까워 지는 것을 보고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비틀비틀 걸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으나. 잠이 든것도 깬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가 이어졌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며칠 전 상담사 선생님과 했던 담화가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간다.


[우선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려 조급해 하면 안돼요. 천천히 작은 행복을 느끼도록 해 보세요. 휴식을 취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씩 생각이 날 겁니다. 종원씨는 요즘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었이던가요?]


- 그냥.. 조금 멍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그냥 쉬고만 싶어요. 이미 쉬고 있는데도 무언가 풀리거나 회복되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 것 같아요.


[음.. 그래도 무엇인가 하고 싶은게 있을거에요. 다시 떠올려보세요. 저번에 설명드린 내용은 기억하시죠? 무기력증이 이어지면 이윽고 우울증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이미 다소는 진행된 상태로 보이기 때문에 더욱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자, 다시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제일 하고 싶나요??]


- 글쎄요.. 그저 이 모든 걸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정말 잘못된 상태인 건지. 그것조차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냥 처음부터 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조금씩, 조금씩 부정적인 것에서 멀어지려는 노력해 봅시다. 종원씨 같은 경우엔.. 글쎄요. 자그마한 모험을 해보는게 어떨까요?]


- 모험.. 이요?


대화의 내용이 종점으로 향할수록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속삭임과 담화의 내용이 겹치고 섞여서 어느 쪽을 듣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간다. 어딘가 두통으로 인해 머리가 아득히 먼 곳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는 정신을 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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