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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성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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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성
작품등록일 :
2021.08.15 10:58
최근연재일 :
2021.09.05 14:57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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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771

작성
21.09.0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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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 What about now(3)

DUMMY

"태진 형님!"


수풀 속에서 뛰쳐 나온 것은 현우였다.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방금 느꼈죠? 세번째 파동!"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마구 말을 쏟아냈다.


"괜찮아. 숨 좀 쉬고 말해라."


태진은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듯 했다.

긴장이 풀리자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듯 했다.

가장 불편한 곳은 입속이였다.

무언가 달그락 거리는 듯 해 입 속에 손을 넣어보니 얇은 하얀 조각이 들어있었다.


"어?"


태진이 하얀 조각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무엇인지 한참을 살펴보았다.


"이빨 아니에요?"


현우가 말하자 태진은 다시 입속에 손을 넣어 자신의 이를 만지작 댔다.

어금니 쪽에 거친 질감이 느껴졌다.

어금니가 깨진 것이겠지.

진철과의 전투 중에 얻어맞거나 어딘가에 부딪힌 적은 없었다.


"서드 웨이브 때문인거 같아요."


현우도 자신의 턱을 만지작 거렸다.


"오징어를 한 1시간은 씹은 듯이 턱 근육이 아파요. 세번째 파동은 감각 교란인거 같아요."


그것을 보던 가영과 승은도 자신의 입속을 살피기 시작했다.


"감각이 교란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몸 여기저기 과도하게 힘을 준거 같아요. 이빨도 그래서 깨진거 같구요."


낭패였다.

의사가 없는 지금 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전투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다.


"입 한번 벌려보실래요?"


현우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후레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태진의 입속을 한참을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오른쪽이야. 제일 안쪽."


"네. 그러네요."


현우가 후레쉬를 끄고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잘은 모르지만 다행히 왕창 깨진건 아닌거 같아요. 이빨 제일 바깥 층이 깨졌나봐요. 크게 불편하진 않겠지만 아마 물 마실 때 좀 시릴 거 같아요."


승은은 자신의 입속을 다 살펴보고는 호범의 입속도 살펴보고 있었다.


"얼른 다시 창고로 가자. 챙길 거 챙기고 얼른 돌아가자. 집에 지우랑 유진이만 있잖아."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잊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지우와 유진이가 걱정됐지만 아무래도 하루 밤을 더 보내야 할 듯 싶었다.


"밤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니까 오늘은 창고에서 자고 가야겠네요."


"왜 창고에서 자? 군 부대에 침대 같은 거 없어?"


가영이 맨 바닥은 질색이라는 듯 진저리 쳤다.


"침대 있긴 한데 문을 잠그거나 할 수가 없는 곳이라서요."


현우는 무언가 생각난 듯이 잠시 고민했다.


"물은 아마 안나오겠죠? 부대에 이불 같은 거는 많이 있을 테니까 가져다가 창고에서 깔고 자죠. 그럼 좀 낫지 싶은데."


그들은 다시 부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현우의 의견대로 건물들을 뒤지며 이불과 베개를 챙겼다.

부대 안은 깔끔했다.

보통이라면 즐비해 있어야 할 시체가 단 한 구도 없었다.

그 날, 출동을 나갔던 것이 아닐까?


현우는 태진과 함께 건물 안을 다니며 쓸만한 것들이 있는지 찾아다녔다.

다른 층도 먼지가 많을 뿐 깔끔했다.

누군가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기엔 먼지가 너무 많다.

아마 퍼스트 웨이브 때 모두 출동을 나가있던 것이 아닐까?


"어, 무전기다."


현우가 무전기를 발견했다.

배터리는 모두 방전 돼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출동을 나갈 듯이 무전기들이 한데 모여 정돈돼 있었다.


그랬구나.

출동을 나갔던게 아니야.

출동을 나가기 전이던지, 개인정비 시간이였겠지.

부대 사람들은 모두 죽었거나 떠났구나.


그래.

누군가, 혹은 어떤 이들이 동료들의 시체를 정리해주고 떠났구나.


현우는 누군가 남아서 동료들의 시체를 정리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함께 밥 먹고 생활하던 동료들의 수많은 시체를 정리한다는 것은.

단 한 구의 시체도 남김 없이 모두.


확실한 사실은 아니였지만 정황상 가장 신빙성 있는 추측이였다.

현우 또한 '남겨진 사람'으로서, 주변의 사람들을 떠나 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현우와 태진은 무전기들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현우야."


태진은 무전기 밑에서 쪽지를 발견하고 현우에게 보여주었다.


'누군가 살아있다면, 운이 좋아 무전기의 배터리가 남아있다면, 16채널로 무전 바랍니다.'


현우는 쪽지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저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떠납니다. 모쪼록 행운을 빌며, 살아나가 주세요.'

'저'라고 했다.

혼자 였었나 보다.

이 많은 시체를 정리한 것은 단 한명이였다.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고마운 쪽지였다.


'살아나가 주세요.'


살아남아 주세요가 아닌, 살아나가 주세요.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내며 가까스로 써 내려간 말 같았다.

기간병이였다면 확률 상 현우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였을 것이다.

간부였다면 훨씬 많을 수도 있겠지만.


현우와 태진은 무전기 6개 정도를 챙기고 3개는 남기고 왔다.

그리고 쪽지를 남겼다.


'3개 남겨두었습니다. 반드시 살아나가 주세요. 연락 바랍니다.'


무전기를 발견한 사람이 '큰 어르신의 추종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우는 무전기를 남겨둔 것을 조금 후회는 했지만 사람의 선의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악의는 선의보다 강했다.

그럼에도 선의를 믿어보기로 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희망'이였다.


수 많은 절망이 쏟아진 판도라의 상자에서도 희망이 들어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창고에 들어가자 가영과 승은이 이불을 겹겹이 쌓아 펼쳐놓고 누워있었다.

호범이는 창고문 맞은편에서 자리를 잡고 엎드려 있었다.


"내일 해 뜨자마자 출발하죠. 일찍 가서 편하게 쉬게."


현우와 태진도 자리를 잡고 누웠다.


"아, 잠자리 바뀌면 일찍 못자는데."


가영은 혼잣말로 투덜거리더니 5분 만에 잠들었다.

고단한 하루였을 것이다.


다음 날, 어슴푸레 해가 뜨기 직전.

현우 일행은 모두 일어나 짐을 챙기고 있었다.

탄약 박스에서 탄알들을 꺼내 최대한 가볍게 했다.

각자 권총을 두개씩 챙기고 태진은 저격총도 따로 더 챙겼다.

탄알집과 연막탄 등 쓸만한 물건을 잔뜩 챙기자 가방은 엄청나게 무거워졌다.


승은은 호범이가 짐을 좀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호범이는 엄청나게 싫어했지만 승은이 달래자 이내 얌전해졌다.

태진이 간단하게 그들에게 권총을 다루는 법과 사격법을 가르쳐주었다.


"근데 형님은 원래 뭐 하던 분이였어요? 군인이였어요?"


"나? 군인은 아니고 용병이였는데?"


현우가 헉 하며 놀랐다.


"근데 왜 얘기 안했었어요?"


태진은 오히려 자기가 더 의문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니가 안물어봤잖아?"


하긴, 세상이 이렇게 된 후로 그 전에 무엇을 하며 살았던지 관심 없었으니까.

현우는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였다.

간단한 사격연습을 하고 나니 어느 새 건물 사이에서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천천히 집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승은씨"


계속해서 불쾌해 하는 호범이를 달래며 걷는 승은에게 현우가 말을 꺼냈다.


"아, 그리고 다른 분들도."


말 없이 걷던 현우가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듯 하자 태진과 가영도 그를 주목했다.


"애초에 우리가 여기 온게 늑대들과 싸우려고 했던 거잖아요."


'큰 어르신의 추종자'와 한바탕 싸움을 하고나니 잊고 있었던 원래의 목적이 생각이 났다.


"늑대랑 싸움은 피하고 다른 데로 옮기는 게 어떨까 싶어요."


그들은 현우가 왜 그런 의견을 꺼냈는지 알 수 있었다.

늑대를 모조리 죽인다 하더라도, '큰 어르신의 추종자'가 있었다.

그들의 규모가 어떤 지, 얼마나 많은 전투를 거쳐왔는지 알 수 없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대천으로 가는 게 어때요?"


"해수욕장?"


가영이 왜 하필 대천이냐는 듯 물었다.


"해수욕장이 있기도 한데. 대천에는 발전소가 있거든요. 혹시 전기가 안 끊겼을 수도 있고."


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닷가는 먹을 것도 많을거 같아서요. 언제까지 편의점만 털고 살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들은 모두 현우의 의견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승은씨. 바다에 같이 갈래요?"


승은은 빙긋 웃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난 여기서 찾을 게 있어서요. 나중에 갈게요."


현우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목숨을 빚진 것이나 다름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갚고 싶었었다.


"그럼 일단 신림까지는 같이 가요. 무전기 충전에서 줄게요."


"전기가 돼요?"


승은이 놀라며 물었다.


"조금요. 옆 건물에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 돼 있거든요. 사람이 살만한 곳은 아니라서 가끔 전기만 쓰고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전기를 쓸 생각에 기분이 좋은 듯 발걸음이 가벼워 진 듯 했다.

현우 일행은 순조롭게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한번 왔던 길인 탓일 까, 돌아가는 길은 짧게 느껴졌다.


어느 새 용산에 도착했고, 현우는 철물점에 들리자고 했다.

권총 한 자루를 선물로 주자면서.

철물점의 셔터는 왠일인지 올라가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철물점 안으로 들어서자 피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미간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시체가 있었다.

봤던 적이 있던 얼굴이였다.


"사장님."


저항 할 수 조차 없었던 듯,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누구의 짓인지 알 것 같았다.

후레쉬로 벽을 비추어 보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개자식들.'


현우는 이를 깨물었다.

벽에는 피로 휘갈긴 글씨가 써 있었다.


'큰 어르신의 명이다!'


현우 일행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참아야했다.

분하지만, 힘이 모자라고 지켜야 할 어린 아이들도 있으니까.


그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는 놈들이라면 자신들의 집도 알아채지 않았을까?


이윽고 늑대와 마지막 추격전을 벌였던 다리에 도착했다.

현우는 잠시 멈춰서 다리를 살폈다.

자동차들이 꽉 들어차 다리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다리를 건너는 것 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떠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다리를 건너자 기척이 느껴졌다.

멀리서 늑대 몇 마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조심스레 현우 일행을 살피며 명령을 기다리는 듯 했다.

로보는 보이지 않았다.

늑대 중 어떤 녀석이 보고를 하러 가는 중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우 일행은 늑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일정한 속도로 걸어갔다.


늑대들은 더 이상 거리를 좁히거나 떨어지지 않으며 그들을 따라갔다

호범이 때문이 아닐까?

신림에 도착해 집까지 들어갈 때까지 늑대들의 감시는 계속 되었다.

현우는 방안에 들어가 창문으로 늑대들을 살펴보았다.


10여분 정도 지나자 늑대들은 하나 둘 발걸음을 돌려 돌아갔다.

바다로 향하는 날, 또 마주치게 될 것이다.

늑대들은 얼마를 마주치든 상관이 없었다.


로보만 마주치지 않으면 돼.


늑대들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한숨 돌린 현우는 복도로 나갔다.

가져온 무기들을 정리하고 자세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현우야!"


가영이 급하게 현우를 찾았다.


"네?"


"없어. 애들이 없어. 지우랑 유진이가 없다고."


태진도 급하게 복도로 나왔다.


"우리 방들 다 찾아봐도 없어. 이놈의 기지배들 어디간거야."


현우의 머릿속에 '큰 어르신의 추종자'들이 스쳐지나갔다.


"밖에 나간거 아니야?"


가영의 한 마디에 현우가 제일 먼저 총을 챙겨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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