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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의 신념으로, 극단의 감정으로, 승리의 운명으로.

잡템으로 강해지는 남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거믄밤
작품등록일 :
2018.11.29 11:48
최근연재일 :
2019.01.04 18:1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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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01.0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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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처 받은 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끝)

DUMMY

*


하얀 실타래 아가씨가 함께 이동했다는 메시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당황스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어째서 갑자기 지금 이 시점에서 성좌님이 참전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겁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성좌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여태까지 계속 같이 있던 동료들만 보일 뿐이었다.

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왜 그러는 거지?”

“네? 뭐가요?”


내가 시치미를 뗐지만 옆에서 진호가 물었다.


“꼭 여태까지 시비걸던 인터넷 친구를 만나러 가는 모습 같아서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예전에 저한테 시비 걸던 인터넷 친구가 있었거든요.”

“걔 어떻게 됐는 데.”

“음······.”


진호가 괜히 사람 불안하게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좋아, 그 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진지하게 물어보기로 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가면 세계의 주변을 둘러 보았다. 하얀 복도였다. 길은 일직선이었으며 100계단 정도로 이루어진 위로 올라가는 통로 하나 뿐이었다. 그 통로에는 주변에 가면들이 가득했다. 내가 말했다.


“이곳으로 가라는 건가? 지나치게 솔직한 길인데.”

“이곳에 마스커레이드의 보스가 있다. 우리는 보스만 잡고 도망치는 거다.”

“알겠습니다.”


한혁이 그렇게 말하고는 뛰어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한혁을 따라가느라 바빴다. 계단을 무슨 내리막길에 미끄러지듯 올라가는 꼴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이것이 전설의 헌터인가?

하지만 계단 오르는 것부터 차이나는 것은 조금 자존심이 상할 뿐이었다.

어쨌건 우리는 계단 제일 위까지 왔고 그곳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마치 던전의 보스룸 앞에 온 기분이었다.


그 문앞에 선 한혁은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열어요. 줄곧 기다리던 장면이잖아요?”

“조금 그림은 달라졌지만.”

“하긴 그림은 달라졌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니까.”

“어쩌면 실패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몬스터가 되고 세상은 여전히 던전과 헌터로 넘쳐나겠지.”

“그런 세상, 어차피 오지 않아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당연한 것 아닐까? 나는 피식 웃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그야, 저희가 이기니까.”

“······하하."


한혁이 쓰게 웃으며 나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너는 정말이지 대단한 새끼군.”

“별로 대단하지 않은데요.”


맨날 소설만 보는 사람은 대단하다기보다는 ‘잉여 인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거다. 그 누구도 필요치 않아 하는 인력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려 했지만 신새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뭐?”


내가 어이가 없어서 신새봄에게 물었지만······.


“그야, 처음 던전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현솔씨는 항상 말장난만 하면서도 잘 싸웠거든요. 그런 점이 대단해요.”

“아니, 그건······.”


말장난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몬스터도 그저 내 레벨이 높았을 뿐이고.

하지만 그때 강세연이 말했다.


“하긴, 클랜 들어오라고 꼬셔도 거절만 했었죠. 조건도 엄청 좋았는데.”

“아니 그건 제가 클랜 들어가기 싫으니까.”

“들어오실 거예요?”

“싫습니다.”


이건 뭐 할 말이 없고. 어쨌건 빨리 문을 열라고 할 때였다.

진호가 입을 열었다.


“뭐, 저 주먹으로 쳐서 이 다 떨어진 적도 있었죠. 회복 마법으로 재생시켰지만······.”

“그건 진호씨가 잘못했으니까 그렇죠.”

“맞아요.”

“······음.”


진호가 한 말은 다행히 세연과 새봄의 반발을 불러왔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호까지 나한테 부끄럽게 만들면 진짜 울고 싶었을 테니까.

그것을 지켜보던 지석이 음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고.


“현솔을 보니 꼭 누가 떠오르는군.”

“누구 말입니까?”

“있어. 헌터 중에.”


헌터? 그러고보니 지석의 세계에도 헌터가 존재한다고 했으니······. 그가 알고 있는 헌터 중에 나와 비슷한 존재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도플갱어 같은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만나기는 싫었다. 아무래도 미신이기는 하지만 도플갱어를 만나면 둘중 한 명은 죽는댔으니까.

한혁이 초조한 표정으로 있다가 물었다.


“그러면 모두 잡담은 끝난 것 같으니, 열겠다.”


쿵!

문을 밀자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문 내부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주변에는 어떤 파편 같은 것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남자가 히죽 웃으며 형형색색의 무지개 빛을 내는 가면을 쓴 채 손을 활짝 펼쳤다.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인간들.”


그의 환영에 대꾸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마스커레이드의 리더이자, 이 세계의 신이 되고자 하는 자. 예전에는 유일신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유일신은 아니다.”

“말이 기네.”


내가 한소리 했지만 마스커레이드의 리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할 뿐이다.

“나는, 신이 되려는 자이다.”


신이 되려는 자.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 인물의 말이 끝나자마자······.

팟!

한혁이 신이 되려는 자에게 덤벼 들었다.

그 큰 검을 손에 쥐고.

쿵!

하지만 한혁은 한순간에 나가 떨어졌다. 나는 당황했다.

전설의 헌터라고도 불리는 명성의 사내가 한 방에 나가 떨어지다니······. 게다가 신이 되려는 자가 어떻게 공격에 대응하고 역공을 먹인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시작과 결과만 나열되어 있고 중간 단계가 없는 것 같았다.

곧이어 지석이 주먹을 쥐었다.


“이것이 중력의 반지.”


쿠구구-.

지석의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것이 중력의 반지의 힘인 것 같았다. 그 상태로 돌진했고 진호가 따라서 뛰었다.

하지만······.

쿵! 쿵!

지석과 진호 또한 벽에 날아가 박혔다. 그 상태로 끄응 소리를 낼 뿐이었다. 지석은 아예 기절한 듯 몸에 힘이 없었다.

새봄과 세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쿵-! 쿠우웅-!

신이 되려는 자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제외한 일행 전부를 무찔렀다.


“뭐야, 이게.”


나는 한 순간에 혼자가 된 상황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모두를 가면 세계에서 빠져 나오게 하기 위해 가면을 손에 들고 조작하려 했지만······.


[이용 불가!]

[거절합니다!]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나는 가면을 땅에 집어 던지고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하고자 했다.

도망칠 방법이든 싸울 방법이든 뭐든간에 방법이 필요했다.

신이 되려는 자가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 물었다.


“겁에 질렸나? 인간?”

“안 질리면 그게 인간이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괜찮은 거 맞지?

하지만 어쩌면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


죽기 전에 회상이라도 해볼까 싶다.

예전에 언젠가 생각했던 사실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잡템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니 헌터 각성이니 하면서 행복에 겨운 삶을 살아왔지만, 과거의 나는 불행 그 자체의 삶을 살아 왔었다.

20년 전인가.

백화점에 간다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에게 선물이 뭐 필요하냐 했었다. 나는 그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어머니가 해주지 않았기에 성질을 부리면서 아무것도 필요 없다 했다.

제길.

뭐라도 말해둘걸.

적어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이라도 배웅해서 보낼걸.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나의 부모님은 백화점에서 돌연 일어난 사고에 의해 사망했으니까.

슬펐다.

다행히도 나를 거두어줄 친척이 있었기에 혼자 쓸쓸하지는 않았지만 늘 후회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에서는 나와는 달리 멋진 주인공이 멋진 활약을 한다.

악인을 무찌르고 선을 추구하며 늘 승리를 쟁취한다.

나처럼 부모님에게 대드는 찌질한 엑스트라는 등장하지 않는다.

설령 등장한다 해도 주인공이 착하게 바꾸어준다.

그런 이야기를 동경했었다.

나와는 다른 그런 이야기를.

그렇기에 헌터로 각성했을 때도 나는 직접 던전 활동을 하지 않았다. 던전에 가봤자 나 같은 엑스트라는 죽을 것이 뻔했기에.

하얀 실타래 아가씨가 나에게 능력을 주고 억지로 던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던전과 나는 연이 없었겠지.


*


회상은 끝났다.

나의 동료들은 모두 쓰러져 있다.

나에게 있는 것은 오직 잡템을 흡수하는 능력과 장난감보다도 못한 검 뿐.

미친 사냥개 마검이라니, 그게 무슨 장난인가 싶었다.

신이 되려는 자.

저런 괴물 앞에서는 장난감에 불과한데.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서야 했다.

나설 사람이 이제는 나밖에 없었기에 책임감 또한 가중되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검을 굳게 쥐었다.


“덤비려는 건가? 퀘스터.”

“퀘스터······?”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그에게는 내가 모르는 어떠한 정보가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지금 달리고 있었다. 쓸 수 있는 능력이란 능력은 모두 활용하기로 했다.

그래봤자 패시브 스킬들 뿐이었지만······.

쿵!

신이 되려는 자가 주먹을 뻗은 듯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모르나 보군. 너와 나의 격의 차이는 크다. 네가 아무리 퀘스터라 해도, 재앙인 나를 이길 수 없어.”

“퀘스터, 재앙, 그게 무슨 소리인데, 이 새끼야.”


내 입에서 욕이 나왔다. 평상시에 그러려니 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욕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몰렸다는 뜻일까.

하지만 욕을 하고 싶었기에 했을 뿐이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이유가 있다면 죽는 것이 무서웠기에 아드레날린 분비 탓이겠지.


“모든 세계에는 한 번 이상, 그러니까 무수히 많이, 불특정한 기간을 두고, 재앙이 찾아온다. 그 재앙은 세계를 망가트릴 정도의 것이지. 네가 사는 세상, 가면의 세계 또한 재앙이 찾아온 거다. 바로, 나. ‘신이 되려는 자’라는 재앙이.”

“······본인 입으로 본인이 재앙이라고 하는 거, 중2병 같아.”


내 농담을 무시하고 재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신이 되려는 자’가 말했다.


“나는 내가 있던 본래의 세계에서 재앙이었으나 막히고 말았지. 그 세계의 퀘스터에게. 퀘스터는 재앙을 50퍼센트의 확률로 막을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그 세계에서는 뭐라 불렸는데? 운명의 데스티니, 뭐 그렇게 불렸냐?”

“그것도 멋있군! 그걸로 명칭을 바꿀까?”

“아니 바꾸지마. 병신 같으니까.”

“······닥쳐라.”


중2병은 맞는 듯했다. 힘이 있는 중2병이라 진짜 무서운 것이지만. 세상의 어느 중2병이 전설의 헌터와 다른 난다 긴다 하는 헌터들을 죄다 기절시키겠는가.

중2병, 아니 신이 되려는 자가 말했다.


“퀘스터는 세상의 재앙을 반할의 확률로 막는다. 지금 이 세계, 가면의 세계에서도 퀘스터가 있다면, 바로 너겠지. 하지만 너는 너무 늦게 탄생했어. 아니, 너무 늦게 퀘스터로서 성장을 시작했어. 재앙인 내가 20여년의 세월 동안 성장할 때, 너는 퀘스터임에도 그 어떠한 성장도 하지 않았다. 너의 게으름 탓이다.”

“하하.”


이거.

내가 너무 오랫동안 헌터 생활을 안 한 대가인 듯했다. 그렇기에 세계가 멸망한다니······. 나같은 백수 세 명 정도 더 있었으면 아주 우주 전체가 망가졌겠다.

의식이 흐려졌다. 몸 구석구석이 방금 얻어맞은 충격에 말을 듣지 않는다. 오로지 듣는 것은 나의 잡템을 흡수하는 능력. 솔직히 이제는 잡템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흡수할 수 있었지만······.

잠깐.

이거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눈으로 스캔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있었다.

잡템으로 인식될 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것이라도 내가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세계의 파편이다.

주변에 너부러져 있는 형형색색 빛을 내고, 때로는 어떤 우주의 풍경을 보여주는 유리 조각들.

나는 그것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몸에 받아 들이기 위해 흡수하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흡수--!”


그리고 갑자기 의식이 끊겼다.


*


눈을 뜨니 내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길어도 5초 정도 의식을 잃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또 다른 것은 내 등 뒤에 날개가 돋아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날개라고는 해도 내 몸에 완전히 부착된 것은 아니고, 세계의 파편과 흡사한 계통의 물질이 내 몸을 떠오를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맙소사······.

내가 정말 세계의 파편을 흡수했다는 말인가.

애당초 세계의 파편은 내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이름을 붙여 본 것이지만······.

뭐, 어차피 이번에 흡수하고 다시는 흡수 못해볼 건데. 내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동료들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그리고 세계의 파편의 힘을 어느정도 구현했다.


[기적을 실행하고자 요청합니다.]


어라?

바로는 되지 않는 모양이다.


[세계의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립니다.]

[승인 완료.]

[현재 세계의 파편 양에 따라 동료들을 회생시킬 수 있는 힘을 쓸 수 있습니다.]

[힘내라고요.]


“뭐야, 이건.”


마치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는 적당히 능력을 배분하는 듯한······. 마치 신 같은 존재가 힘을 빌려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게 뭐지?

마치 신이 된 느낌이다.

아니, 신의 대리인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메시지가 다시 보였다.


[참고로 저는 성좌도 신도 아닙니다. 세계를 관리하는 관리자입니다. 당신 말에 의하면, 현장 관리하는 사무직이라고 해야 할까요.]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관리자가 나에게 준 힘을 활용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사용한다고 해도 어떻게 사용해야······.

그러나 내가 생각을 함과 동시에 적재적소의 방향으로 한혁, 고진호, 이지석, 강세연, 신새봄에게 새하얀 빛이 내 손으로부터 뻗어와 모두에게 흡수되었다.

마법을 썼다는 감각은 전혀 없었다. 하물며 잡템 마스터의 능력을 쓸 때와도 달랐다.

그냥 쓰자, 하니까 누가 대신 옆에서 써준 느낌이다.

어쩌면 한혁이 말했던 기적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관리자가 나를 지켜보면서 적당히 시스템을 조작하는 그런 거 말이다.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게임에서 밸런스를 위해 마스터가 개입하는 그런 느낌이다.

기분은 그리 좋지 않지만 지금은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었다.


“으, 으윽······.”


동료들이 하나 둘 깨어났다. 나는 서둘러 세계의 파편을 닥치는 대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멍하니 나를 보고 있던 신이 되려는 자가 소리쳤다.


“뭘 하는 거냐?! 젠장, 어째서 퀘스터에게 관리자가 개입을 할 수 있는 거지?”

“아까부터 알 수 없는 고유명사들을 읊고 있는데 말이에요. 중2병씨.”


내가 씨익 웃으며 메시지 창을 힐끔 보았다.


[세계의 파편을 흡수한 영향으로 기적 하나 추가로 사용 가능해.]

[뭐가 좋을까······.]

[이거다.]

[대충, 파괴포.]


너무 대충이잖아.

게다가 말투가 왠지 익숙했다. 꼭 오래 전부터 나를 지켜보던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보았다였나. 하얀 실타래였나 뭐였나.]


아아.

누군지 알겠다.

나를 아주 오래 전부터 보았던 사람이다.

내가 헌터 각성을 했을 때부터. 나는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나를 지켜보면서 간접적으로 말해왔다.


[어서 일을 하라고 하얀 실타래 아가씨가 발언합니다.]

[하얀 실타래 아가씨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 보입니다.]

[하얀 실타래 아가씨는 쓸쓸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내, 미소를 짓습니다.]


그렇구나.

그녀는 어째서인지 다른 성좌와는 달랐던 모양이다.

나를 갱생시키기 위한 관리자의 개입이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제대로 퀘스터인지 뭔지 하는 역할을 수행하게끔 재활을 해주는 그런 역할 말이다.

그리고 그 재활은 지금 여기서 끝났다.

나는 손을 뻗으며 신이 되려는 자에게 ‘파괴포’라는 정말 대충 지은 이름의 기술을 사용했다.

손을 뻗은 쪽으로 붉은 에너지의 구체가 떠올랐다. 조금 쫄았지만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듯했다. 하지만 쉽사리 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걸 맞추지 못하면 다시는 쓸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은 아마 세계의 파편을 사용하는 모양이니까. 기적이라 해도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쓸 수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신이 되려는 자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쏘아야 한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눈을 질끔 감았다.

그때였다.

나의 등쪽에서, 나의 손을 포개어 잡은 그 느낌이 느껴졌다.

따스한 느낌은 마치 어머니를 보는 듯한······ 하지만 어머니와는 달랐다.

하얀 실을 둘러싼 손목이 보였다. 그리고 팔이 보였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부터 고개를 들이밀어 나를 상냥하게 보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가······.

아니다.

더 이상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누구인지 어째서 나에게 온 것인지. 나를 왜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돕고자 하는 지. 마치 나에게 미련이나 후회가 있는 듯한 그런 식으로 나를 대하는 것인지······.

그런 것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단지 그녀가 앞으로 나에게 할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좋아. 침착하게 마지막 한 발을 노리는 거야.


그런 말과 함께.

나는 모든 마음이 누그러진 채 마지막 일격을 신이 되려는 자에게 꽂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신이 되려는 자와 나의 싸움은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


무너져 내려가는 가면 세계. 가면‘의’ 세계인 내가 원래 사는 지구는 안전하다고 하얀 실타래 아가씨가 말했다. 나는 하얀 실타래 아가씨와 단둘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솔직히 새하얀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는데. 놀랍게도 내 방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어째서냐고 묻자 답변은 간단했다.


“그야, 이곳은 방문자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그 방문자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간으로 모습을 바꾸거든.”

“그렇다해도 새하얀 텍스쳐 안 씌운 폴리곤 덩어리 같아서 좀······.”

“뭐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그래서.”


하얀 실타래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묻는다.


“어땠어? 너의 재활은.”

“재활······ 왜 그런 단어를.”

“네가 생각했었잖아. 내가 너에게 재활을 해주었다고."

"그건······.“


젠장, 성좌라 그런지 나의 생각을 모조리 읽는 모양이다. 조금 관음 당하는 기분이라 기분 나쁘다.


“뭐, 모르는 척하지만. 매일 점심 때마다······.”

“그건 조용히.”

“그래, 프라이버시니까.”


푸훗. 하면서 하얀 실타래 아가씨가 가슴을 펴며 잘난 체 했다. 정말 이 여자, 내 성좌만 아니었으면 무시했을 여자였다. 얼굴만 예쁘장한 게 성격은 아주 장난만 쳐대는 것이 나랑은 정반대의 타입이다.


“네가 더 장난 많이 칠 텐데.”

“그렇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만?”

“그래서, 언제 돌려보내줄 거예요. 저 집에 가고 싶다고요.”

“하긴, 너는 소설만 보고 던전은 안갔으니까.”

“그 위험한 곳, 다시는 안 가요. 방금 전에도 죽을 뻔했고.”

“이제 가고 싶다고 해도 못 갈 텐데?”


아.

그러고보니 내가 던전을 만드는 원흉을 죽였지.

그러면 이제 던전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드니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어째서 섭섭한 기분이 드는 거지.

분명 던전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것을 앗아간 위험한 곳인데.


“그야,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생각해.”

“음······.”

“하지만 그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거, 되게 재밌지 않아?”

“뭐가요.”


하얀 실타래 아가씨는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아주 큰 단점을 지닌 사람과도 오래 지내다보면 조그마한 장점을 찾고 그 장점을 사랑하게 되는 거잖아.”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네.”

“너는, 내가 싫니?”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너에게 싫어할 만한 짓을 많이 했어. 멋대로 떠나고 멋대로 찾아오고. 지금도 멋대로 떠나려고 해.”

“······?”


잠깐.

하얀 실타래 아가씨가 서서히 다리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 물어볼 것이 생겼는데.

언제 멋대로 떠난 것이고, 멋대로 찾아온 것인가. 마치 이건 어렸을 때 잃었던 그들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간신히 숨을 토해내 말했다.


“잠깐, 당신 정체가······.”

“앞으로도 지켜보고 있을게.”

“······뭐야. 뭐냐고. 너, 아니, 당신, 아니······.”

“사랑했단다.”


그리고는 내 의식과 함께 하얀 실타래 아가씨는 사라졌다.

눈을 뜨고 나니 나는 동네 놀이터에 누워 있었다. 그네 밑에 깔려서 아이가 흔들고 있는 그네를 올려다보고 있는 상태였다.

동료들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눈을 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성좌님. 성좌님?”


대답이 없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인가 싶었다.

드디어 만났나 했다만. 많은 후회를 품고 있는 나의 부모님 중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었나 싶었지만······.

결국 나 같은 엑스트라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보상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하얀 실타래의 아가씨가 미소를 짓습니다.]


바보같이도.

나도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본편 끝)





후기.


*


게을러진다는 것은 정말 좋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늘어져서 놀 수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요.

저 또한 노는 게 좋습니다. 일하는 것은 무언가 보상을 위해 고생을 하는 인내의 과정이니까요.

그렇기에 저 같이 게으른 사람이 소설이 되고자 하는 글자를 한 자 한 자 두드리는 것은 어쩌면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마음의 치유였습니다. 아픈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일련의 치유 과정이었죠.

그렇기에 대중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멋대로 휘갈긴 말그대로 글자혼합물들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연재 사이트 한 켠에는 저의 글자 혼합물들이 잔뜩 실려 있겠지요. 심지어 어떤 것은 출판까지 되었을 정도니······. 지금 다시 보면 창피한 글들 뿐이었습니다.


*


본편은 끝이 났습니다. 일단 1월 4일, 오늘 완결편이 올라온 이후 3일 뒤인 1월 7일에 완결 마크를 달아놓을 생각입니다.

이 소설 또한, [헌터, 모든 신을 받다]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S.Y.S. 라고 불리는 세상의 세계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헌터, 모든 신을 받다의 세계 속에 포함된 이지석이 이 세계에 돌연 출연했던 것이고요.


*


[거믄밤의 이야기]란에서 종종 SS가 올라올 예정입니다. 많은 인물들의 과거나 중간 이야기, 아니면 후일담 등등이 종종 올라올 예정입니다. Side Story를 줄여서 SS라고 부르는 것인데, 나름대로 취미 삼아 써보고 있습니다.


*


이번 글은 일부러 1인칭으로 써보았습니다. 이유는 전작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인데, 진입장벽이 혹여나 생길 것을 염려해, 일단 연습삼아 1인칭을 고집했습니다. 그래야만 제 욕심 탓에 이지석에게 심리 묘사를 할당해버려서,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계시던 독자분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실험이 가미된 작품이었기에 무료 완결을 감행한 것입니다.


*


일단 본편은 끝이났습니다.

현재도 쓰고 연재하고 있는 소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쓸 소설이 있죠. S.Y.S. 세계에 포함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가 앞으로 쓸 소설들 또한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었으면 합니다.

독자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짓이었지만 제 실험작을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거믄밤의 이야기] 연재란에서, SS를 통해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종종 올리겠습니다. SS를 위해 아껴둔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그러면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처 받은 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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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처 받은 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끝) +11 19.01.04 1,736 36 24쪽
36 여기서 갑자기 하얀 실타래 아가씨가? +5 19.01.03 1,500 35 9쪽
35 다른 세계 사람과 함께 하는 즐거운 던전 나들이! +4 19.01.02 1,589 33 8쪽
34 욕하면서 먹게 되는, 맛 좋은 이종족 고기 +4 19.01.01 1,777 44 7쪽
33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2 18.12.31 1,881 41 7쪽
32 오늘도 조커는 전설을 만났습니다! +3 18.12.30 2,109 50 8쪽
31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8 18.12.29 2,257 48 7쪽
30 썩은 물고기로 레벨 업하는 남자입니다만. +3 18.12.28 2,391 52 7쪽
29 힘들 것 같지는 않지만. 물론 충분히 가능합니다. +3 18.12.27 2,553 52 7쪽
28 마지막 던전일지도? +2 18.12.26 2,691 52 8쪽
27 나는야 비선실세! +5 18.12.25 2,851 58 8쪽
26 흡수합시다 +5 18.12.24 3,075 66 9쪽
25 까짓거 해봅시다! +6 18.12.23 3,321 69 12쪽
24 던전 개방합시다 +4 18.12.22 3,553 68 10쪽
23 이지석은 관심없고요 +4 18.12.21 3,879 84 12쪽
22 다시금 거절합니다 +7 18.12.20 4,060 88 9쪽
21 그런데 랍스타 반숙이 뭐에요? +6 18.12.19 4,281 97 9쪽
20 던전의 씨앗 +4 18.12.18 4,517 107 10쪽
19 거절! +9 18.12.17 4,619 113 10쪽
18 초콜릿과 밥의 조화는 의외로 좋다 +4 18.12.16 4,933 111 9쪽
17 아름다운 것과 징그러운 것 +4 18.12.15 5,499 111 9쪽
16 이야기를 듣다 +6 18.12.14 5,943 111 9쪽
15 내 손은 절대 미끄러지지 않아 +4 18.12.13 6,099 133 9쪽
14 쉴 새 없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10 18.12.12 6,619 139 9쪽
13 땅사냥개 고블린 +6 18.12.11 6,625 136 8쪽
12 옛날부터 짐승 잡을 때는 +14 18.12.10 7,441 132 10쪽
11 도움을 요구할 때는 고운 말을 쓰세요 +5 18.12.09 7,983 147 8쪽
10 어이 망나니, 위아래를 정합시다 +3 18.12.08 8,336 162 8쪽
9 던전을 골라주세요~ 돌려 돌려~ +7 18.12.07 8,718 169 9쪽
8 금수저와 만나다 +7 18.12.06 9,025 179 10쪽
7 스킬을 퍼줌 +3 18.12.05 9,843 181 11쪽
6 스킬을 얻었습니다 +4 18.12.04 10,254 196 10쪽
5 챔피언 고블린 잡고 보상 받기 +9 18.12.03 11,011 212 12쪽
4 보스 잡기 전에 +11 18.12.02 11,665 224 9쪽
3 고블린을 잡자! +5 18.12.01 12,356 222 8쪽
2 던전으로 갔는 데 내가 너무 셈 +10 18.11.30 14,163 227 12쪽
1 날로 먹는 남자 +16 18.11.29 18,700 25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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