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은 절대 미끄러지지 않아
*
집이란 곳은 본래 휴식을 위한 장소이다. 보통 가택 근무를 하는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집에서 일을 하는 경우는 없다. 물론 공부 정도는 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 또한 그렇다. 아니 그랬었다.
과거의 나는 집에서 게임,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의 온갖 즐길거리를 탐식하며 살았다. 그 과정에서 몸은 자연히 약해지고 게을러졌다.
하지만 기연을 얻어 ‘잡템 마스터’ 능력을 얻게 된 지금은 달랐다.
아니 정확히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고진호, 이 놈은 정말이지······.”
과거의 고진호는 정말 쓰레기였다. 사람들을 자신의 빽만 믿고 괴롭히고 두들겨 패고 또한 계집질도 일삼았다고 했다. 불법 업소 같은 곳에서 하는 그런 짓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고진호는 내 아우가 된 뒤로 그런 짓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맹세했다. 물론 진짜로 그리 될 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문제는 이 녀석이 너무 착해졌다는 거다.
나에게 예약하기 힘든 던전까지 예약해 줄 정도로.
우웅-.
내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는 데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누구야, 또.”
오늘만 세 번째였다. 조금 쉬었다가 구상해둔 새로운 능력을 개발하려고 했는 데······ 계속해서 헌터 협회니 클랜이니 길드니 하는 곳에서 연락이 와대는 것이다.
주로 나를 스카웃하거나 다음 던전은 정했냐는 연락이었고 대체로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데에 성공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연락이겠거니 생각하며 휴대폰을 켰는 데······.
- 형님. 다음 주 화요일에 던전으로 가시면 됩니다. 자세한 정보는 월요일에 전달 드릴 거고, 지금 탐색 팀에서 열심히 지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거만 깨면 C랭크에요!
고진호에게서 온 연락이다. 부지런도 하다. 나 같으면 귀찮아서 내일 모래 즘에 연락할 텐데······ 던전 클리어 직후 다음 던전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열정적이라니······.
변하긴 한 모양이다. 한순간에.
-그래, 알았다.
알았다는 연락을 보내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우, 시작해볼까.”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마검을 강화해보자.”
잡템 강화와는 조금 달랐다. 아니 좀더 좋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인벤토리에서 마검을 꺼내 들고 마검의 상태를 창으로 띄워 살펴보기로 했다.
숙련도는 물론 100퍼센트였고······.
띠링!
[마검의 숙련도가 100이 되어 있습니다.]
[진화 루트가 하나 개방 되었습니다.]
[강화하시겠습니까?]
“지금은 아니야.”
그리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혼자 뿐인 방안에서 중얼거렸다.
“진화 루트를 늘린 후에 강화를 시도하겠어.”
그렇다. 나는 진화 루트가 단 하나 뿐인 것이 아쉬웠기에 진화 루트를 늘려보고자 했다.
내가 여태껏 얻은 능력들로는 당연히 가능할 거라 여긴 탓이다.
*
진화 루트를 늘리기 위해 나는 내가 여태껏 먹어치운 잡템들 중 일부를 실체화시키기로 했다.
[여태껏 흡수한 잡템 중 일부를 뱉어낼 수 있습니다.]
[잡템으로 얻은 능력치는 회수되지 않습니다.]
다행이었다.
잡템으로 얻은 능력치는 잡템을 실체화해도 뺏기지 않는 거다. 그렇다면 마음 놓고 잡템을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잡템을 한 번 빼내면 그것과 같은 잡템을 흡수한 적이 있지 않는 이상 흡수한 것보다 더 많이 빼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마검에 쓸 만큼만 빼내기로 했다.
우선······.
“땅사냥개 고블린의 머리를 빼낼게.”
[땅사냥개 고블린의 머리를 실체화합니다.]
펑!
내 눈앞에 땅사냥개 고블린의 머리가 보였다. 총 세 개였다. 오늘 던전에서 만난 보스 몬스터였고 그 던전 보스를 내가 흡수한 전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땅사냥개 고블린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머리카락이 잡혀서 휭휭 돌고 있는 녀석의 머리가 제법 징그러웠다.
그러면 이걸 마검에 흡수시키자.
“잡템 제작, 마검에 땅사냥개 고블린의 머리 합성.”
[현솔의 마검에 땅사냥개 고블린의 머리를 합성합니다.]
[마검이 좀더 강력해졌습니다.]
[상태를 표시합니다.]
[현솔의 마검]
[레벨 : 105]
[숙련도 : 100%]
“레벨이 조금 올랐네.”
무기의 레벨이 조금 올랐다. 5정도 오른 모양이다. 그러면 진화루트가 더 생겨났으려나.
내 가설이 맞다면 아마 한 개에서 두 개 정도는 더 진화 루트가 열려야 한다.
잡템 강화창을 열어 보았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진화 루트를 표시합니다.]
[강한 마검]
[땅의 마검]
“진화 루트가 하나 더 생겼네.”
본래 강한 마검 하나 뿐이었지만 땅의 마검이 더 생겨났다. 아직 효과는 보지 못했지만 나름의 성과였다.
물론 땅의 마검은 이름이 폼이나지 않는다. 왠지 그리 좋지 않은 진화 루트인 것 같다는 냄새가 풀풀 풍겼다.
그러면······ 좀더 합성을 해볼까?
“그 다음으로······ 고블린 머리 적당히 몇 개. 소환.”
고블린의 머리가 후두둑소리를 내며 땅을 굴렀다. 고블린이라고 해도 사람과 유사한 시체의 머리였기에 구역질이 밀려 나올 뻔했다. 동시에 내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오히려 평정이 유지되기도 했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고 마음에 진정되자 고블린 머리를 전부 마검에 때려 박았다.
[고블린 머리가 합성되어 레벨이 오릅니다.]
[고블린 머리가 합성되어 레벨이 또 다시 오릅니다.]
[고블린 머리······.]
[······.]
[합성이 끝이 났습니다.]
“좋아, 그러면 어디 상태창을 다시 볼까.”
[현솔의 마검]
[레벨 : 110]
[숙련도 : 100%]
[진화 루트를 표시합니다.]
[강한 마검]
[땅의 마검]
“흠······ 뭔가 아쉬운데.”
머리를 긁적이며 더 쏟아 부을 것은 없나 고민했다. 레벨은 올랐지만 진화 루트가 하나가 더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뭐가 좋을까?
내가 흡수한 것들 중에서 특별한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
던전은 이제 두 번째 클리어해보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독특한 경험도 많이 해보았으니까.
첫 번째 던전에서만 해도······.
“아.”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잡템을 실체화하기로 했다.
내가 흡수한 것들 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으면서 나에게 ‘고블린 감수성’이라는 스킬을 준 도구였다.
챔피언 고블린이 죽은 직후 머리에 쓰고 부활한 가면이 그것이다.
“가면 조각을 실체화 해줘.”
[가면 조각을 실체화 시도합니다.]
[가면 조각 실체화 승인.]
[실체화했습니다.]
펑!
가면 조각이 보였다. 새하얀 도자기 같으면서 눈과 입부분이 뚫려 있는 가면의 조각이었다. 부셔져서 예전의 기괴한 형체는 사라졌지만······.
“이걸 마검과 합성.”
나는 거리낌 없이 마검과 가면을 합성을 시도했다.
[마검과 가면 조각을 합성합니다.]
[반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파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인생은 실전이야. 하자. 빨리.”
왠지 휴대폰 게임의 가챠를 돌리는 것 같아서 심장이 쿵쿵 뛰고 긴장되고 기분이 고양되는 것이 느껴졌다.
가면 조각과 마검이 빛이 나며 강화가 시도 되었고······ 결과는 당연했다.
*
강화라는 것은 언제나 실패의 위험을 품고는 한다. 적어도 내가 하는 게임들에서는 대체로 그랬었다. 몇 번 게임 내의 아이템을 날려 먹어서 화가나서 책상을 내려친 적도 많았으니까.
현실에 존재하는 내 능력 ‘잡템 마스터’에도 강화라는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의례 초반이 그렇듯이 초반에는 강화 실패라는 패널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강화 실패 패널티가 있는 강화를 시도했다.
마검에 가면 조각을 합성한 거다. 나는 실패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시도해보았다.
마검이 부셔지면 다시 만들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진화 루트가 추가로 열렸습니다.]
[‘사냥개 마검’으로 진화가 가능합니다.]
“사냥개 마검이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마검을 들어 올렸다.
총 세 개의 진화 루트가 열렸다. 물론 굉장히 좋은 성과이며 이 진화 중 하나를 선택하면 C랭크는 물론 B랭크 던전도 쉽게 해결이 가능할 거다.
하지만······.
“더 질러봐야지.”
나는 여기서 만족하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눈을 감고 내 속에 흡수된 잡템들을 하나하나 떠올렸고 여기서 마검에 쓸만한 것은 없나 탐색했다.
“있다.”
그 과정에서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챔피언 고블린의 머리를 꺼내줘.”
잡템 마스터로서의 능력이 그 요구에 바로 응답해주었다.
툭.
챔피언 고블린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 작가의말
*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12일날 예약해둔 글입니다. 컨디션이 그닥 좋지는 않지만 다행히도 비축분 생성에 성공했네요!
* 선호작, 추천, 댓글은 미천한 글쟁이인 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 오늘 병원 가서 위장약을 타왔습니다. 항생제와 같이 먹어야 한다네요. 최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스트레스 탓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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