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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매니지먼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겨울곰.
작품등록일 :
2021.07.26 10:09
최근연재일 :
2021.08.24 14:36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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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82
추천수 :
509
글자수 :
180,475

작성
21.08.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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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021_

DUMMY

“팀장님은요? 그냥 보고만 있으시진 않았을 거 같은데.”


“안 그래도 물어보고 내려왔는데, 너 원하는 대로 하래. 만나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안 만나고 싶으면 그러라고. 대신 만날 거면 3층 회의실에서 다 같이 보자는데. 저번처럼 따로 둘만 가지 말고 이번에는 불안하잖아.”


말 그대로다. 정소율은 이미주를 믿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던 여자다.


정소율은 잠시 고민했다.


안 만난다? 왜?


만난다? 굳이?


여러 생각이 정소율의 마음 안에서 교차했다.


얼굴을 보고 욕이라도 한번 속 시원하게 할까?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왜 그랬냐고 윽박이라도 질러 볼까.

아니다.


정소율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최민철을 향해 대답했다.


“가요. 만나러.”


최민철은 계속 난처한 표정이었다.


“굳이? 그냥 잠깐 직원들이랑 이야기하고 내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니가 굳이 만날 필요는 없잖아.”


“아뇨. 필요해요. 꼭 얼굴 보고 싶어요. 지금.”


“으어어. 그래. 알았어. 올라가 있으면 내가 데리고 갈게.”


“네.”


최민철은 끌려가는 소마냥 처량한 모습이 되어 연습실 문을 닫고 나갔다.


정소율은 이미주를 만나기 위한 간단한 준비를 했다.


립을 꺼내서 살짝 바리고 괜히 머리도 풀었다가 다시 한번 묶어본다.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까지 체크 완료.


정소율은 3층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어. 왔어.”


회의실에는 아직 이미주는 없었다. 여민혁 팀장이 평소와 같은 자리에 앉아서 정소율을 반겼다.


“네. 이미주는요?”


“민철씨가 데리러 갔어. 앉아.”


여민혁이 자기 오른쪽을 향해 손짓했다.


“팀장님도 여기 있으시려고요?”


“그럼. 나도 있어야지. 저번처럼은 안돼. 이미주가 온다는데.”


“네. 생각도 안 했어요. 근데······ 너무 여러 명이 한 명 상대로 있으면 좀 그림이 이상하지 않아요?”


여민혁이 턱을 긁었다.


“흠 그런가. 그러면 민철 씨는 들어오지 말라고 할까?”


“네 아무래도 그러는 게 낫겠어요.”


‘들어와도 별로 도움도 안 될 거 같고.’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여행을 같이 가보라고 했던가? 누군가의 진짜 모습은 급박한 순간이 와서야 살짝 속살을 내비치는 법이었다.


최근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정소율은 최민철의 능력을 정확하게 목도했다.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정소율이 본건 그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채이현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스링크부터 촬영장에서까지.


여러모로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대처였다.


정소율의 생각이 멀리 가지를 뻗는 사이 최민철이 이미주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미주의 몰골은 어제오늘 그녀가 겪었을 상황을 대강이나마 짐작케 했다.


전혀 외부에 나올 때 입을 거 같지 않은 완전히 늘어난 목티와 그 위에 대충 껴입은 회색 후드 저지.


당연히 안 감았을 테니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와 그런 모자 사이로 삐쳐 있는 머리카락.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이 가는 것은 이미주의 두 눈이었다.


퀭하게 움푹 들어가 영혼이라도 빨려버린 것 같은 눈.


이미주는 인사를 하려고 몸을 앞으로 숙이다 하마터면 균형감각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앉아요. 민철씨는 잠시 나가 있고.”


“네? 네네.”


최민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여민혁이 이미주에게 정소율 맞은편의 자리를 권했다.


이미주는 자리에 앉다가 정소율과 눈이 마주쳤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푹하고 떨어지는 고개.


정소율은 얼마 전 촬영장에서 이미주와 눈이 마주쳤던 것을 회상했다.


그때 이미주는 무슨 벌레라도 보는 것처럼 휙 하고 시선을 돌렸었다.


죄책감이었을까? 아니면 너 따위는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자신감 이었을까?


“할밀 있다면서요.”


정소율의 존댓말에 이미주는 목 뒤가 서늘해졌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예전처럼. 절대로.


“···네”


이미주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있으면 얼른 해요. 저 연습하다 왔어요.”


“···죄송합니다.”


“뭐가요?”


“그냥··· 그냥 전부 다요. 크흡.”


이미주는 코를 훌쩍였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물기가 묻어 나왔다.


“죄송··· 죄송해요.”


“사과는 괜찮아요. 어차피 받아주지도 않을거고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니까.”


이미주의 마음은 정소율의 대답에 쿵 하고 떨어졌다.


이미주는 아무런 생각 없이 정소율을 찾아왔다. 이유도 없었고, 왜 만나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정소율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소율의 대답에 이미주는 드디어 정소율을 왜 만나고 싶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구원받고 싶었던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소문이 날대로 다 났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지인들도 하나같이 왜 그런 짓을 벌였냐고 이미주를 채근했다.


아직은 모르지만, 부모님도 알게 되실거다. 포털사이트에 메인 기사로 계속 올라오고 있으니까.


그 정도의 큰일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미주는 그녀가 받았던 마지막 호의를 기억하고 정소율을 찾아온 것이다.


‘괜찮아요. 미주 언니. 그럴 수도 있죠.’라고 웃으며 상황을 중재해주는 정소율을 기대하고서.


이미주가 최다희에게 혼나던 시절 그녀를 향해 보여주었던 환한 미소를 기대하고서.


그런 헛된 희망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생각임이 드러나자, 이미주는 발밑이 꺼져오는 것 같아 발끝을 모아 움츠렸다.


“왜 그랬는지 이유나 한번 들어보죠. 제가 이미주 씨한테 뭘 잘못했나요?”


정소율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감정이 없었다. 그게 오히려 이미주에게는 끔찍하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이해가 잘 안 돼서 그래요. 도대체 어떤 나쁜 마음을 먹어야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궁금해서. 제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미주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을 이었다. 눈을 마주치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그냥 둘러대려던 게······ 사람들 시선이 무서워서, 다희 선배가 따지고 묻는 게, 소품이 커피로 못 쓰게 된 게 무서워서 그랬어요······”


“하-“


이미주는 보지도 않은 정소율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일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미주씨 저 좀 봐봐요.”


정소율의 목소리에 이미주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정소율과 시선을 나란히 했다. 무심한 눈빛에 이미주는 온몸이 발가벗겨진 듯 했다.


“사과하지 마세요. 저는 뭐 더 더할 것도 빼줄 것도 없어요.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받으면 돼요.”


“···”


정소율은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제가 주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가 그럴만한 짓을 해서 받는 거지. 그러니까 가끔이라도 화가 나면 저를 원망하지 마시고 거울을 보세요. 이 일을 누가 시작했는지 돌이켜 보면서. 이미주씨 제가 왜 보자고 한 거에 오케이한 줄 아세요?”


이미주는 굳어버린 목을 겨우 돌려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뇨······”


“그냥 마침표는 찍어야겠다 싶어서요. 얼굴을 보고 마무리를 해야 저도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정소율 사건이 있고 난 뒤로 시간이 제법 흘렀다.


나는 그사이 방학을 했다.


위기를 기회 삼아 약간의 모험을 감수하겠다는 정소율의 계획은 대성공으로 끝났다.


정소율의 이미지를 거의 바닥까지 떨어트린 떨림은 그제서야 영상을 공개했다.


상황은 전 뒤집히듯이 반전됐고, 정소율은 포털사이트를 1~2주간 점령하다시피 한 이슈를 낼름 집어먹을 수 있었다.


정소율이 스케이트 선수 이다율역으로 주연한 웹드라마 ‘네 마음을 가로지르고 있어’도 큰 성공을 거뒀다.


엊그제 기사에서 봤다. 평균 조회 수 580만이라던가.


정소율은 이제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배우가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조금 곤란해졌지만.


“야 근데 솔직히 말해봐. 그때 정소율이 너 왜 찾아온 건데?”


나는 종강을 기념해 동기들과 카페에 있었다.


“몇 번째냐. 일 때문에 만날 일이 있었다니까.”


“지랄. 너 그날 봤냐. 나 마침 현관에 있다가 직관했잖아. 정소율이 기다리고 있는데 재현이 이 새끼 이유주랑 걸어오다가 딱 걸린 거.”


“니 옆에 나도 있었잖아. 븅신아. 당연히 봤지 쟤 얼굴 파랗게 질리는 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둘 다 그런 사이 아니래도······”


“어 안 통하고.”


그날 이후 나는 동기들의 주된 놀림 겸 갈굼의 대상이 되었다. 말로만 하는 걸 고맙게 여기라나?


여자 얘기, 지난 학기 수업과 학점 얘기, 취업 얘기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러고 있으면 떨림에서 있었던 일들은 마치 없었던 일이 된 것 같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예지몽도 꾸지 않는다.


정소율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몰라도 여민혁과 최민철은 한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영상이 공개된 이후 짤막한 통화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나를 흡족하게 했다. 최대한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아서.


동기들과의 이야기가 클라이 맥스로 향해 갈 무렵 동기 놈 하나가 뒤를 향해 눈짓을 슬쩍 보냈다.


“야. 이유주 왔다.”


“어 아까 카페로 온다고 했어.”


시선을 따라가니 이유주가 카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메뉴를 주문한 그녀는 우리 테이블을 향해 걸어왔다.


평소에는 살짝 무덤덤해진 면이 있지만 카페 조명 아래에서의 이유주의 이목구비에선 빛이 났다. 오늘따라 좀 빡세게 꾸민 것 같은데.


가볍게 컬을 줘 어깨까지 떨어지는 갈색 머리. 하얀색 원피스는 이유주의 하얀 피부와 자연스럽게 매치된다.

거기에 평소완 다르게 전문가의 손길이 묻어나는 것 같은 화장까지.


무슨 일이지?


이유주는 밝게 인사했다.


“어 왔어?”


“어. 안녕. 다른 사람들도 오랜만이네?”


“그러게, 비평 종강하고 처음일걸 아마?”


동기 놈 하나가 물었다.


“오늘 왜 이렇게 꾸미고 나왔어? 남자친구랑 데이트?”


이유주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니. 오늘 재현이 미튜브 편집하는 거 같이 도와주기로 했는데.”


동기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하는 걸 보고 나는 빠르게 자리를 뜨기로 했다.


“나 일 있어서 먼저 간다. 개강하면 보자.”


“어가다가 뒤져 제발.”


나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카페를 나섰다. 이유주가 테이크아웃한 아메리카노를 들고선 내 옆에서 길을 따라 걸었다.


이유주의 발걸음은 평소와 다르게 통통 튀었다.


“무슨 일 있어?”


“티 많이나?”


“엉. 오늘 옷 입은 거부터 발걸음까지 전부 다. 무슨 좋은 일 있는 거 같은데?”


“짜잔!”


이유주는 손에서 웬 종이 뭉치를 꺼내 내 쪽으로 내밀었다. 맨 앞장에는 ‘오늘의 너’라는 글자가

음산한 글씨체로 커다랗게 적혀있었다.


“너? 설마?”


“어 됐어!”


한 달쯤 전인가 이유주가 지나가듯이 오디션을 봤다고 말했다.


종편 YVN에서 방영할 하반기 작품이랬나.


휙 하고 이야기하고는 그 뒤로 이랬다저랬다 말이 없길래 떨어진 줄 알았더니.


이유주가 손을 내밀었다. 나도 오른손을 내밀어 짝하고 부딪혔다.


“오늘 최종미팅하고 계약서 쓰기로 했어.”


“잘했다. 진짜. 역할은 그때 얘기했던 거 그대로?”


“어. 그대로. 다른 배우 하나랑 끝까지 놓고 경쟁한 모양인데 내가 이겼어! 저 그래서 말인데······”


이유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하다 그녀답지 않게 말꼬리를 흐렸다.


“뭔데 말해봐.”


“들어준다고 말해. 그러면 말할래.”


“그럼. 너한테 도움이 되는 거면 들어주지.”


“저··· 그러면······ 방학 동안에 내 매니저 해줘!”


이유주는 당당하게 말하고는 살짝 어깨를 움츠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네 매니저를 내가 어떻게 해.”


“그럼 어떻게 해. 소속사 아무 데나 들어갈 수도 없고······”


이유주의 아버지는 대형 엔터테인먼트인 VV의 팀장이다.


그녀의 목표는 아버지가 있는 VV에서 배우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유주의 아버지는 아무래도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며 반대했다. 그는 조건을 내걸었다.


공중파 미니시리즈 주조연.


그 목표를 위해서 이유주는 길거리 캐스팅도, 학과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연결해주겠다는 교수님의 제안도 모두 거절해 왔다.


“이번이야 그렇다 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 시작하면 지금처럼은 쉽지 않을 텐데.”


이유주는 칭얼거렸다.


“아 왜. 들어준다며. 시간도 많이 안 잡아 먹을 거야. 촬영이 5회차에 리딩이니 뭐니 해서 다 합쳐서 최대 10일? 방학이니까 그 정도는 낼 수 있잖아. 응?”


이어지는 이유주의 간절한 표정에 나는 웃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5 dm******..
    작성일
    21.08.13 11:27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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