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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신스 님의 서재입니다.

대지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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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신스
작품등록일 :
2016.04.13 08:12
최근연재일 :
2016.04.20 00:56
연재수 :
4 회
조회수 :
317
추천수 :
0
글자수 :
20,603

작성
16.04.19 00:05
조회
51
추천
0
글자
12쪽

대지의 아내 <1> 운명 2

DUMMY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운명. 운명에 순응하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움직여진 입은 알아서 의지를 무시했다.그 말을 내뱉은 순간 빠르게 움직이던 무언가가 잘 정돈된 느낌으로 멈춰 섰다.



-이것이 당신의 운명입니다.

“우, 운명?”

-머릿속으로 그 운명이란 단어를 찾아보세요. 그럼 자연적으로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럼 저는 할 일을 다 했으니 돌아가 보겠습니다. 궁금한 건 뭐든지 떠올려보세요. 자연스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굉장히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레이트노도 날 버리고 가버렸는데, 저 사람도 그냥 두고 간다니 어이가 없었다. 처음 와보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말을 그에게 하고 싶었지만 이미 눈앞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처음에 봤을 때와는 달리 조용히 사라진 모습에 허탈하기만 했다.



“우,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착각이었을까? 무의식중에 떠올린 여기가 어디지란 생각이 끝나자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처럼 떠올랐다.


-주신과 연결되는 기도실.


주신과 연결되는 기도실 그게 뭐지. 라는 생각도 잠시, 또다시 낯선 반응을 느껴야 했다.


-주신에게 자신의 아내가 왔음을 전하는 곳


주신에게 자신의 반려자를 소개하는 곳이라면, 이곳을 데리고 온 사람은 레이트노고 그

가 날 여기다 밀어 넣었으니까. 고로 나는 그의 아내가 된다는 그런 말인 건가? 말도 안돼.


-그것은 운명. 레이나 엘리아 보르트네, 인간으로서의 모든 직위를 박탈하고 ’레이나‘라는 이름 안에서 대지의 아내가 되는 것이 운명. 그 운명은 거역할 수 없으며 거역할 시 그 자리에서 소멸 된다.


허탈감이 밀려왔다. 죽음도 아니라 소멸이라는 건 도대체 뭐지. 인간은 죽는 건데 어째서 소멸된다는 말이 머릿속을 꽉 채우는 걸까?


“인간이 아니니까”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흠칫하며 돌아보니 그곳엔 언제부터 서 있었던 건지, 딴에는 근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레이트노가 서있었다.

솔직히 아까는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꿈같아서 그의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었다. 지금도 물론 정신이 없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져서 일까? 그제야 레이트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비롯한 몸 전체가 어둠으로 도배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얼핏 봐선 모든 것이 흙빛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의 푸른빛이 보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그가 대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미청년? 아름다운 남자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도무지 지금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형용사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인간의 형용사로 그를 치부하기에는 외모가 빛을 바라고 있었다. 레이 역시 제국에서 알아주는 미남이었는데, 그런 그의 모습에 신성함과 편안함. 그리고 넘치는 카리스마가 고로 갖춰진 얼굴이었다.


“인간이 아니라니요? 제가 왜 인간이 아니에요?”

“대리인 이 자식, 또 지식을 넘기기만 하고 도망갔군. 와보길 잘했지. 일단 따라와, 여기서 계속 서서 얘기할 수는 없잖아”


그 말 때문이었을까?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체력적으로 약한 마법사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지치지는 않음에도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힘이 들었다.


“흐음, 상태가 영 아니네. 인간 여자애가 받기엔 힘들었던 건가. 궁금해도 오늘은 참아라. 일단 네 몸부터 챙겨야 할 테니. 방에 가서 휴식을 취해 그럼”

“잠깐만요. 쉴 방은 가르쳐··· 뭐야, 여기 사람들은 왜 죄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거냐고”


억울했다. 처음 온 곳이라 낯설어 죽겠는데 사람들은 - 실제는 신이겠지만 -왜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건지.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전했다.

늘 옆에 있던 레이의 빈자리가 느껴져서 일까? 옆을 봐도 웃고 있을 레이의 모습은 없었다.


“레이··· 그는 어디 있는 거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낯선 공간에서 아는 사람도 한명도 없다는 사실도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황궁에 들어간 이후로 혼자였던 적이 없어서 더 이런 거겠지. 난 이미 어릴때부터 혼자였는데. 황성에서의 생활 때문에 혼자라는 사실이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지려는 순간 뭐든 궁금하면 생각하라던 아까 그 대리인의 말이 얼핏 지나쳐갔다.


“그래, 레이. 레이는 어디 있지?”


생각만 하면 되겠지만, 그래도 확실해 지고 싶은 마음에 입으로도 소리를 냈다. 물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


-레이메프 이네 폰트리오. 폰트리오 백작가의 장남. 21세. 제인트 제국의 황실 마법사 자크의 제자. 다음 대의 황실 마법사가 될 것이라고 알려진 그. 하지만 그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레이트노가 만들어 낸 환상의 인물. 그는 처음부터 중간계에 있던 자가 아닌 레이트노의 모습을 잠시 바꿔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오기 위해 설정한 인물. 그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집무실에 있다


꽤 긴 정보가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이게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한 의심마저 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 이해시켰다. 레이가 없다? 그리고 레이는 지금 집무실에 있다?


‘레이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정신을 집중하고 그가 있는 곳을 생각하라, 그럼 저절로 그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지체할 틈이 없었다. 머릿속에 레이의 얼굴을 그렸지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아까와의 반응이 있을 것 같아 내심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자 허탈해지기 시작했다. 왜 아무 반응도 없는지에 생각하던 도중. 레이가 없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결국, 레이트노를 생각하라는 건가?”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에 레이트노의 얼굴을 그리자, 몸 주변으로 하얀빛이 일어났다. 신성한 느낌이 드는 텔레포트. 아무런 시동어 없이 마법이 시전 됐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지금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빛이 일어나 길래 뭔가 했더니 넌가?”

“저기, 당신이 레이메프 이네 폰트리오 인가요?”

“쉬라고 했잖아. 지금 네 몸이 떨리는 게 안 보이는 거냐? 하, 레이나 이리와”


레이트노의 눈빛에서 늘 내가 봐오던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그것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그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레이”

“성격이 바뀌었다고 해서 내가 아는 레이가 사라지진 않았어. 레이나. 난 언제나 레이였고, 지금도 그래. 이곳에 오기 전부터 닦달하는 녀석이 있어서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라 지금은 너에게 따뜻하게 대할 수 없어. 보는 눈이 너무 많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쉬어. 알았지?”

“흐윽···레이”



갑자기 달라진 태도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내가 알던 레이가 맞는다는 생각에 설움을 참지 못했다.


******************


"꽤 흥미롭군요."


다음날 아침 아직도 레이나가 잠든 모습을 보고 작게 미소 짓던 중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레이트노의 얼굴은 절로 찡그러졌다.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


“배트로. 무슨 일이지?”

“후훗, 대지의 신 레이트노님, 돌아오신걸, 환영합니다.

“환영은 무슨. 돌아온 이후로 정령들을 보내서 계속 쫑알거린 주제에”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전 엄연히 그동안 쌓인 업무를 전달했을 뿐입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배트로의 모습에 레이트노는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두 손을 들어보였다.

배트로, 대지의 신과 함께 센트로알의 대지를 다스리는 정령왕이다. 차원 ‘센트로알’은 신의 주도로 중간계를 가꿔나가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정령왕들의 힘을 빌린다. 그 역시도 혼자 힘으로는 대지를 가꿀 수 없어서 정령왕의 힘을 빌려서, 현재 센트로알의 모든 대륙의 땅을 가꾸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 주신의 명령으로 아내를 찾으러가는 동안 모든 일들을 배트로 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중간계로 넘어갔다. 그 일로 배트로는 레이트노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런 식으로 째려보진 말라고”

“제가 왜 이러는지는 알. 고. 하. 시. 는. 말. 인. 가. 요?”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주워 말하는 배트로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나왔다.


“알지 혼자 가버렸다고 삐진 거지?”

“······”


한참을 망설이던 배트로는 우물쭈물한 모습을 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당연한 거잖아요. 함께 가기로 그렇게 약속하셨으면서 어떻게 레이트노님 혼자서 그렇게 다녀오시는 겁니까. 그것도 십년이나요”

“내 아내 될 사람 데리러 가는데 널 왜 데리고 가냐”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 하시질 마셔야죠! 명색에 신이면서 약속 한 것도 잊었습니까?”

“배트로”

“네?”

“쓸모없는 참견이다. 너는 나와 동급이 아니다. 한마디만 더 하면 그대로 소멸시킬 줄 알아”



그의 모습에 입을 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배트로는 작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였다.



“대지의 신이시여. 제가 잠시 이성을 잃었었나봅니다.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가봐 정령계로 한번 갈 테니”

“예”



신과 정령왕의 관계가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신이 월등했지만, 지금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주신에게 인정받고는 있다. 하지만 몇 천 년을 신이 정령왕의 우위에 섰던지라 그들도 쉽사리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 정령왕들 역시, 그들에게 불만을 품지 않았기 때문에 해를 거듭해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맴돌 뿐이었다.

십년동안 중간계에서 놀다 오는 레이트노와 달리 배트로는 죽어라 일만 해야 했다. 신에게 주어진 특권은, 신력만 억제하면 중간계에 언제든지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령왕은 반드시 계약자가 있어야 하는 반면에 그들은 신력억제 목걸이를 하고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100년에 한 번씩 신들에게는 장기간 유희가 허락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들의 배후자를 찾을 수 있도록 주신이 배려해준 또 다른 특권이었다. 그에 비해 정령왕은 무성이고, 가족의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무한한 삶 이외에는 특권은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저 녀석은 해를 거듭할수록 거칠어진단 말이지”



사과를 하고 나간 배트로의 모습에 웃고 있던 것도 잠시. 신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에게 화는 내지 못하고, 애꿎은 정령들에게 화풀이 하고 있는 모습에 적지 않은 짜증이 묻어났다.

정령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가 나면 직접 말하면 될 것인데, 왜 저렇게 하급 정령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개를 으쓱해보였다.



“하아, 널 얼마나 볼 수 있는 걸까? 아내로 맞이하면 뭐해··· 볼 기회가 적을 텐데”



레이나의 잠든 얼굴을 보며, 레이트노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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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지의 아내 <1> 운명 3 16.04.20 32 0 16쪽
» 대지의 아내 <1> 운명 2 16.04.19 52 0 12쪽
2 대지의 아내 <1> 운명 16.04.13 65 0 12쪽
1 대지의 아내 <들어가기전> +2 16.04.13 169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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