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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신스 님의 서재입니다.

대지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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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신스
작품등록일 :
2016.04.13 08:12
최근연재일 :
2016.04.20 00:56
연재수 :
4 회
조회수 :
318
추천수 :
0
글자수 :
20,603

작성
16.04.13 08:49
조회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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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2쪽

대지의 아내 <1> 운명

DUMMY

(1) 운명


“레이?”

“일어났느냐”


묘하게 레이와는 다른 느낌을 풍기는 모습에 흠칫했다. 검은 피부, 허리까지 물 흐르듯 흘려져 있는 다갈색의 머리카락. 동글 한 이목구비 속으로 매섭게 올라간 눈과 코, 굳게 다물어진 붉은 입술. 어디 하나 다를 것 없이 레이와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기운은 그가 아니었다. 십년을 함께 해온 자의 기운을 몰라볼 정도로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죠?”

“네가 알고 있는 레이겠지”

“아니요.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레이가 아닙니다. 분명히 그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당신에게서 흘러나오는 그 기운, 레이 것이 아니에요. 당신은 누구죠?”


적이라고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자에게 살기를 뿜을 수 없었다. 정확한 이유는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차하면 마법을 사용해서 공격해도 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스승이라고 칭하던 작자가 내가 잠든 사이 어떠한 방법으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마나를 봉인해버렸다. 자신을 뛰어넘을 거란 불안감이거나 아니면 잘나신 황태자가 부탁했을 거란 생각에 몸을 떨어야했다. 지금 나는 그를 공격할 수 없고 만약 나를 공격해온다면 이대로 죽을 운명이었다.

내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미소때문이였다. 따뜻하게 날 바라봐주던 레이의 미소와 같은 그것. 그라면 아무런 해도 주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가?”

“누구죠?”

“주신께서 독특한 여성을 택했단 말이지”

“······”

“째려봐서 어쩌려는 거냐. 넌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일 뿐인데”



어떻게 그걸 알았냐는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마나가 봉인되긴 했어도 마나의 흐름은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마법사들도 쉽게 눈치 챌 수 없었다. 나 역시도 처음엔 마나가 봉인되었다는 사실 조차 알 수 없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만 빼면 내 몸속은 매한가지였다.



“나는 네가 알고 있는 레이가 맞다. 너와 함께 십 년을 제인트 제국에서 마법을 수련했지. 내 기운을 숨길 필요가 없어 표출했으니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게 무슨 소리죠?”



상대가 반말을 하고 있으면, 나도 반말을 해도 괜찮겠지만, 어찌 된 건지 나는 그를 향해 쏘아대면서도 반말을 할 수 없었다. 마치 황태자에게 눈을 뜨고 덤비던 내 모습을 상상할 정도로. 이는 분명히 낮은 신분의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대지의 신 레이트노다. 너의 반려자가 될 자지”

“무···무슨 헛소리인가요. 신이라니 당치도 않는 소리로 날 현혹하려고 들지마요.”

“믿지 못한다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운명을 거부한다는 소리는 일체하지 마라. 널 데리고 오기 위해서 십년이란 세월동안 중간계에 있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어”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황당한 시선으로 레이트노는-일단 그의 이름인 것 같으니-는 작게 미소 지었다.



“일어서라”

“뭐예요! 당신은 도대체”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의 반려자. 더 이상 인간계에서 지체할 시간은 없다. 내 손을 잡아라”



순간이었다. 레이트노의 손이 내 손을 부여잡은 순간 눈앞이 하얀빛으로 번쩍였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신성한 느낌과 따뜻한 온기가 지금의 상황도 잊어버릴 정도로 강하게 전달됐다. 마법으로는 만들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고 신성한 텔레포트였다. 느낌이 너무 편해서 그 속에서도 잠이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빛이 사라지고, 한참을 눈을 비비고 나서야 공간이 달라졌음을 인식했다. 당연히 텔레포트를 시전 했으니 달라진 거는 당연한 거였지만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꼭, 내가 서있는 이곳이 내가 살고 있던 인간계가 아니라는 착각이 들 정로 이곳은 신성했다. 만약 이 곳에 신관이 있었다면 미친 듯이 날뛰며 “오오, 이런 곳이 있었다니. 이곳은 신계나 다름없소.”라고 외칠 것 같았다.



“신계가 맞아”

“에? 신계가 맞다니. 아니지 그게 먼저가 아니라 난 밖으로 얘기한 적이 없는데”

“이곳은 의지로 연결된 곳. 너의 의지가 나에게 닿아있으니 들릴 수밖에. 인간의 너는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말이지”



그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솔직히 레이와 같은 얼굴로 날 무시하는 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표정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자신을 향해서는 환한 미소를 지어주던 레이였는데, 이 사람은 그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성격은 괴팍한 사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깨달았다. 왜 이제야 그걸 느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가장 기초적인 것에서 의문을 갖지 않았다. 분명 저 남자는 주문을 외우기는커녕 시동어 조차 외치지 않았다는 거다. 그게 과연 가능한 것인가? 마법의 종족이라고 불리는 드래곤도 시동어를 외친다고 했었다.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역사서의 기록된 것으로 봐서는 완전한 거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이곳으로 나를 옮겨왔다.



“나는 신이다. 드래곤이 못하는 것은 그들보다 우리가 우위에 있기 때문이지”



생각하는 도중에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언제 감았었나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레이트노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웬 낯선 남자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다···당신은 또 누구에요?”

“레이트노다. 이게 나의 본 모습이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까와 같은걸 봐서는 동일인물이 맞나보다. 그러면 좀 전에 그 모습은 나를 이리로 데리고 오기 위한 수작이었던 건가? 하아, 그럼 결국 레이는 죽어버렸다는 건가?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알고 있는 레이는 죽었다. 아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인물이니 죽었다는 표현보다는 없어졌다가 맞으려나?”

“그게 무슨 소리죠?”

“일단 따라와라, 아무리 네가 내 반려가 되는 자라고 하지만 그 것에 대한 건 다른 이에게 들어야 하니”



문득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몸을 움츠렸다. 강한 기운이다. 이제까지 느껴본 기운 중에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왜 좀 전까지는 이 정도의 느낌을 받지 못한 걸까? 레이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였겠지.

문득 그의 뒷모습을 보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마법 연습이 끝나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곧잘 앞장서서 걷던 그의 모습과 겹쳐보여서. 금방이라도 뒤를 돌아 옅은 미소를 지으며, ‘힘들었지? 자크님은 왜 그렇게도 널 닦달하시는지 모르겠다니까’ 라고 말해줄 것만 같았다.



“문 열어라”

“아, 드디어 오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리인께서는 아직 준비가 된 상태가 아닙니다.”

“느긋한 놈이라니까. 알았다”



허리까지 오는 금발머리의 여성은 신관이나 입을 법한 하얀 의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어도 도무지 내 앞에 서있는 자가 신이라는 건 믿겨지지 않았다. 저 여성의 모습으로 봐서는 높은 사람인 것 같으니 아무리 봐도 사제인데, 나한테 신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럴 거겠지. 내가 무슨 신의 아내가 되겠어.

깊이 생각하는 걸 방해라도 하고 싶은 건지 이번에도 레이트노는 내게 말을 걸었다.



“들어와”



그 말에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에 손조차 까딱하기 힘들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들어오라고 재촉하는 레이트노를 째려보자 그제야 내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핫, 맞다 너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지. 대리인 그만 너의 신력을 거둬라, 이 아이는 아직 인간이다. 너의 힘을 이겨낼 정도로 강하진 않다”

-아, 죄송하군요. 너무 오랜만에 온 신의 아내라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귓속으로 들리는 -정확히는 머리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끝나자 몸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을 하기도 전에 하늘에서 금색이 빛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레이트노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묘한 느낌의 사람이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목소리는 분명 남자였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금빛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 이 아이는 너한테 맡기고 가겠네. 알아서 잘 전하라고”

-함께 하지 않으시려는 건가요?

“내가 이 녀석을 데리고 오느라고 신계를 비워 둔지 벌써 10년이다. 일이 밀려있다고 아까부터 재촉하는 녀석이 있어서 말이지”

-아, 그분께서 오셨군요. 그 역시도 땅을 관리하는 자. 당신이 없는 동안 홀로 했으니 힘

들겠죠. 알겠습니다. 레이트노님. 당신의 역할까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레이트노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을 때처럼 성스러운 느낌의 빛으로 사라졌다. 성스럽게 자리하던 빛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레이트노는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져있었다.



-어서오세요. 대지의 아내가 될 분이여.

“잠깐만요,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대지의 아내라는 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 입니다. 당신은 주신께서 선택한 대지의 신의 아내가 되어 센트로알의 대지를 관리하게 될 선택된 여성입니다.

“그···그럼 아까 그 사람이···그러니까 그 분이 정말 대지의 신이란 겁니까?”

-예, 레이트노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분명 그가 자신의 입으로 신이라고는 했지만 믿지 못했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껄끄러웠다.

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느낌은 묘한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까의 그 중압감 때문인지 쉽게 입이 열리지는 않았다.



-잠시 저의 곁에 와주시겠습니까? 제가 곁으로 가야하지만 저는 이곳에서는 단 한발자

국도 걸어 나갈 수 없어서 말이죠.

“아, 예. 근데 왜 움직일 수 없는 거죠?”

-저는 실체가 없는 몸. 주신의 힘을 빌려 잠시 형체를 만들어낸 대리인뿐입니다.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유령이라 신계에서는 움직일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아 그것보다 제가 할일을 해야겠군요. 이 곳에 있을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에게 가까이 가자 그는 한손에 하얀빛을 모우기 시작했다. 꼭, 작은 파이어볼을 색깔만 바꿔놓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 볼은 어느 것보다 성스러워 보였고, 그렇게 느껴졌다.



-주신의 힘을 빌려,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는 힘을 그녀에게 부여하도다.랜드 온



손이 이마에 닿자 작은 볼이 몸으로 흡수됐다.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압력을 받았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조금 전 보다 더 강한 마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고루 퍼지고 있었다. 그것과 동시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을 떠도는 여러 가지 말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든 그게 뭔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그 것들은 일정한 자리를 잡기 전에는 안 되는 것인지, 실제 주인을 거부하고 빠르게 움직이기만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운명. 운명에 순응하라”


작가의말




신의 아내가 필요한 이유는 후에 외전으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라지요 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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