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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헤라

고양이가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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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베르헤라
작품등록일 :
2022.09.02 07:50
최근연재일 :
2022.09.30 21:51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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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6
추천수 :
679
글자수 :
97,558

작성
22.09.12 22:20
조회
1,424
추천
52
글자
12쪽

#003

DUMMY

#003


***[주인공]***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머지 한 개의 눈도 뜰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인간이었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깜박이지는 못한다.

억지로 눈꺼풀을 밀어 올리는 느낌이기 때문에 눈을 크게 뜨려면 상당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부릅떠도 내 눈은 여전히 찢어진 단춧구멍 같은 모습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뭐, 자신의 몸이니까 대강 알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양쪽 눈을 다 뜬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달까, 크고 있다.

느낌으로는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은데 팔다리의 힘이 약간 세지고 몸도 커진 느낌이다.

귀도 조금이지만 들린다.

아직은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듣는 느낌이라 약간 답답하긴 해도 처음 태어났을 때에 비하면 큰 발전이다.

그리고 배불리 먹으면 기절하듯 자고 다시 일어나면 먹는다는 상황에서도 조금 벗어났다.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제야 겨우.

나는 앞발로 땅을 누르며 한껏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래봤자 1센티 정도 올라갔으려나.

아직 새끼라서 그런지 몸을 조금 올리는 것도 힘들다.

굳이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머리에 이고 고개를 올리는 것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진짜로 개힘들어.

어쨌든 지금은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내가 어떤 곳에 있는지, 여기는 과연 안전할지, 적어도 그 정도는 알아둬야겠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좀 알고 싶지만 거울이 있는 것도 아니니 거기까지는 힘들 거다.


'정말... 대체 나는 뭐야? 뭐로 태어난 거지?'


나 자신의 정체에 생각이 미치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작은 입으로 숨을 토한 뒤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건....'


내가 있는 곳은 제법 속이 깊은 굴이었다.

나는 제일 안쪽의 둥그스름한 공간에 있었는데, 멀리 보이는 입구에서 빛이 조금 들어오고 있었다.

뭔가 비릿한 냄새가 나 두리번거리자 구석에 커다란 짐승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어미의 몸보다 훨씬 크다.

잘은 보이지 않지만 노루나 사슴 같은데, 어미가 먹은 걸까, 몸의 절반 정도는 없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역시... 나 야생동물이었나.'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저런 동물을 사냥해서 먹는다면 역시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동물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은 어미의 젖을 먹지만 더 자라면 나 역시 저런 짐승을 사냥해서 먹는 거야?

아니, 처음부터 저렇게 큰 걸 사냥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으니 어느 정도 실력이 좋아질 때까지는 쥐 같은 걸 잡아먹고 살아야 할 거다.


"....."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싫어, 절대로 안 돼.

못한다.

인간이었던 기억이 없으면 모를까.

나는 도저히 저런 짐승을 사냥해서 생으로 뜯어먹으며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우으으으으.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아.

눈물은 이미 찔끔 나왔다.

피이, 피이, 나도 모르게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피이?

울음소리가 왜 그래.

울면서도 한숨이 샌다.

가만히 지켜보던 어미가 큐, 하고 울더니 앞발로 나를 끌어당겼다.

곧바로 어미의 부드러운 배에 닿는다.

아마 젖을 먹으라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우는 게 배고픈 걸로 보였던 걸까.

그냥 내 신세가 한심해서 울었던 거거든요. 배고픈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배가 천둥처럼 크게 꾸르륵 울었다.

그거 조금 움직였다고 배가 줄어든 모양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엄청나게 배고프다.

나는 울면서 어미젖을 물었다.

앞발로 꾹꾹 젖을 누르며 먹는다.

문득 오래전 점박이가 가끔 하던 행동이 생각났다.

꾹꾹이라고, 이불이나 사람의 몸에 다리를 대고 번갈아가며 누르는 거다.

아무래도 이게 그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걸 보면 본능인 모양이다.

나, 정말로 동물이구나.

야생동물.

젖 먹으면서 다시 울었다.

한참 먹고 나니 슬슬 배가 부르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나면 항상 어미와 함께인 것 같은데 저 노루인지 사슴인지는 언제 사냥해온 걸까.

내가 잘 때 살짝 다녀오는 걸까.

그러면 잠들어 있을 때 엄청 위험한 거 아니야?

어미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나는 아직 갓 태어난 새끼고 나 자신을 보호할 만한 능력이 손톱의 때만큼도 없다.

지금은 작은 쥐가 덤벼도 잡아먹힐 자신이 있고, 혼자 있을 때 뭔가가 나타나면 그대로 죽는다.


'위험해.'


역시 이 굴이 안전한지, 어디에 있는지, 일단 눈으로 한 번 확인해두는 것이 낫겠다.

지금은 어미도 함께고, 위험해지면 어쨌든 도와주겠지.

나는 졸음이 덮쳐오는 걸 억지로 물리치며 벌벌 기기 시작했다.

어미에게서 떠나 입구를 향해 일심불란 기었다.

걷는 게 아니라 거의 기는 거다.

아직 다리의 힘이 완전하지 않아서인지 걷기가 힘들었다.

다리로 몸을 지지할 수가 없어.

어미가 나무라는 것처럼 큐, 울었지만 그걸 무시하고 계속 긴다.

미안, 엄마. 하지만 지금은 내 안전을 위해서라도 주변을 확인해야겠어요.

어미는 한숨 쉬는 것처럼 다시 한번 큐, 울었지만 나를 쫓아오지는 않았다.

이 근처는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죽어도 상관없어서인지.


"...."


아니, 새끼도 나 한 마리밖에 없으니 절대로 전자겠지.

전자였으면 좋겠다.

제발 모성 충만한 짐승이기를.


'그런데... 가도 가도 끝이 없네.'


열심히 기고 있는데 아직도 입구는 멀고, 배는 바닥에 쓸린 탓으로 조금씩 아파졌다.

졸리고 힘들고 아프고 미치겠다.


'힘들어... 진짜 힘들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작은 몸으로는 이 작은 굴도 서울대공원만큼 넓게 느껴졌다.

입구가 너무 멀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열심히 기고 기고 또 기었다.

누군가가 내 모습을 봤다면 아마 배꼽 잡고 웃었을 거다.

파닥파닥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배로 기어가고 있으니.

나도 내가 우습고 한심해.

하아.

어쨌든 힘내, 나!

중간중간 기절하는 것처럼 엎어진 채 쉬면서 나는 겨우 굴 입구에 도착했다.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쫴 눈이 조금 아프다.

나는 잠시 기다려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머리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


어, 이거 진짜 정글인데?

오른쪽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정면을 쳐다봐도 내 눈에는 나무와 나무와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곳은 절벽에 가까운 것 같다.

입구에 공터처럼 약간의 공간이 있을 뿐 그 너머에는 땅이 없었다.

칼로 뚝 잘라놓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나가도 어미가 가만 놔둔 모양이다.

이런 절벽 같은 곳에는 적이 오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굴러떨어지면 어쩌려고.'


떨어지면 그대로 죽을 것 같다.

내가 몸을 부르르 떨었을 때였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커다란 그림자가 내 몸을 덮고 주위 공터로 퍼진다.

뭐, 뭐야.

깜짝 놀라는데 뭔가가 내 목덜미를 물었다.

으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자, 입에서 피이 피이 작은 소리가 나온다.


엄마! 어미! 짐승! 나 좀 구해주세요! 적이 나타났다! 날 잡아먹으려고 해!


나는 피이피이 울면서 어떻게든 어미에게 이 상황을 알리려고 했지만 굴 안은 잠잠하다.

몸을 흔들어 벗어나려고 해도, 목덜미를 물린 탓인지 몸이 축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시선을 내렸다.

나를 문 짐승은 굉장히 몸이 큰 모양이다.

내 몸은 지면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큰 걸 보면 곰인지도 모른다.

헉, 설마 진짜로 곰이냐!

어떻게 하면 좋아, 죽는다!

피이 피이 피이 피이, 계속 우는데, 나를 문 거대한 짐승이 굴 안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연히 나는 목덜미를 물린 채다.


엄마! 어미! 이봐, 짐승! 적이 들어가고 있어! 피해라! 이러다 모자 둘이 한꺼번에 죽겠어!


피이피이피이 정신없이 우는데 겁에 질린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짐승이 굴 안으로 들어갔다.

굴 안에 있던 어미가 짐승을 보고 큐, 운다.


"...."


어라, 도망가지 않네.

싸우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고 보니 나도 멀쩡하다.

목덜미를 물리긴 했지만 아프거나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적이 아니었나.'


거대한 짐승은 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나를 어미 옆에 놓았다.

무서워하며 살짝 머리를 들어 쳐다보니 어미와 비슷하게 생긴 짐승이 서 있었다.

어미와 다른 점은 이 짐승이 두 배 정도 크고, 털이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색이라는 것이다.

어미가 어리광 부리듯 검은 짐승을 향해 얼굴을 내밀자, 검은 짐승도 거기에 얼굴을 갖다 댄다.

둘은 코를 몇 번 부딪치더니 서로의 얼굴을 핥아주기 시작했다.

검은 짐승은 수컷이었던 것 같다.

아마 내 아빠.


'엄청 크다.'


이 종은 암수에 따른 체격 차가 굉장히 큰 모양이다.

나도 자라면 이렇게 커지는 걸까.

아니, 그전에 나는 남자야 여자야?

문득 궁금해졌지만 지금은 알 방법이 없다.

아직은 몸을 구부려도 배가 보이지 않고, 만일 고양이와 비슷하다면 내 성기는 항문과 거의 붙어 있을 거다.


"...."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라면 남자였으면 좋겠다.

반드시 남자였으면.

이제 와서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여자가 되면... 안 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어졌다.

검은 짐승은 가만히 나를 내려보다 얼굴을 내렸다.

기다란 혀가 내 몸 전체를 핥기 시작했다.

아직 작은 내 몸은 혀가 닿자 벌러덩 뒤집히더니 계속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흔들렸다.


그만해! 어지럽다구. 멀미 난다. 토할 것 같아. 토해버린다!


피이, 피이, 울었지만, 같은 종인데도 말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검은 짐승은 내 몸이 축축해질 때까지 핥는 걸 멈추지 않았다.

겨우 멈췄을 때는 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검은 짐승의 냄새가 붙은 모양이다.

몸에서 뭔가 기묘한 냄새가 풍겼다.

그러고 보니 어미가 나를 핥을 때도 그 냄새가 내 몸에 묻었다.

어쩌면 일부러 자신들의 냄새를 나한테 묻히는 건지도 모른다.

고양이도 냄새가 달라지면 상대를 알아보지 못한다던데, 비슷한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다른 짐승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새끼 특유의 냄새를 지우려는 거던가.

하지만 축축한데 냄새까지 몸에 붙어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머리를 숙여 발을 핥기 시작했다.

에잇! 깨끗해져라.


"...."


어라, 나 지금 뭐 하는 거야.

혀로 핥아서 냄새를 지우려고 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이 나오는 건가.'


문득 발을 보자 새까만 털이 눈에 들어왔다.

흰색은 하나도 섞이지 않았다.

나는 아빠를 닮은 것 같다.

검은 짐승은 내가 털 핥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 몸을 돌려 입구로 향했다.

나와 어미가 굴 안에 있는 동안 계속 밖에서 적이 오는지 경계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누군가가 침입해서 해칠 걱정은 없겠지.

후아.

안심하자 몸이 축 늘어진다.

내가 바닥에 납작 엎드리자 이번에는 어미가 나를 핥기 시작했다.

그만해! 기껏 냄새를 조금 지워놨는데 다시 붙어버리잖아! 그만하라구!

피이, 피이, 반항하며 울었지만 소용없다.

어미가 다시 축축할 때까지 나를 핥는 바람에 냄새가 지독할 만큼 또 붙어 버렸다.

하아....

움직였더니 이제 반항할 기운도 없다.

나는 어미가 하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잠 속에 빠져들었다.

00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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