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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떼로 님의 서재입니다.

리볼버로 기연독식 무림평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주짓떼로.
작품등록일 :
2024.03.15 18:08
최근연재일 :
2024.03.29 17:32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388
추천수 :
47
글자수 :
98,196

작성
24.03.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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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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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화경에 도달하리라 단언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느냐.

DUMMY

“화원이 퍽 멋지지 않소.”


멋들어진 중저음이 들렸다.

나는 꽃들을 바라보며 멍때리고 있다가 입가를 스윽 훔쳤다.


‘화원이 멋지긴, 긴장해있느라 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저 멀리서 한 중년인이 호위무사를 데리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늘씬한 몸에 눈빛은 차분했다.

간소한 옷을 입었음에도 본래 가지고 태어났을 귀티가 전혀 가려지지 않는다.

미풍이 주위에서 머무는 듯한 분위기의 남자였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럭저럭 봐줄 만하군.”


중년인의 눈이 살짝 커졌고, 호위무사들도 놀란 듯 얼굴이 새파래졌다.

······나는 지금 환골탈태한 고수를 연기하는 중이라고.

내 처지에서 남궁현은 새파랗게 어린 후배이니, 존칭을 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남궁현은 잠깐 당황했지만, 그뿐.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는 나에게 포권했다.


“은인을 뵙는구려. 남궁세가 가주 남궁현이오.”

“유건.”


호위무사들의 얼굴이 울그불그락 해졌다. 

어금니를 꽉 깨무는 이도 있었다.

그들이 눈총을 쏘는 것을 가까스로 외면했다.


“연이를 구출해주신 것에 감사를 표하오. 덕분에 가문의 큰 근심거리들이 사라졌소.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군. 앞으로 은인께 남궁세가 최대의 대우를 약속드리겠소.”


나는 남궁현의 말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화원을 계속 걸었다.

지금까지는 남궁현과 대화할 생각에 쫄아서 시야가 계속 뿌옜는데.

본인과 대면하고 시간이 지나니 잘 정돈된 화원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상태.


이제야 각오가 섰다.

나는 눈을 내리깔며 본론을 꺼냈다.


“그런 건 필요 없다. 검천대주 자리를 얻는 방법에 관해서나 설명해다오.”


화원의 모두가 경악했다.


•••



남궁연을 구해주고 남궁세가에 진천검을 되찾아준 남자.

유건은 남궁현의 생각보다 훨씬 어린 외모였다.

날카로운 턱선과 눈매. 맹금을 연상시키는 눈동자는 세가의 중심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남궁현진을 응시했다. 그런 차가운 인상과는 별개로 표정 어딘가에서는 염세적인 태도가 느껴졌다. 

남궁세가 가주는 당황을 금할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하군······. 이렇게 가까이서 살피는데도 삼류의 무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렇게 대놓고 ‘나 고수요’ 하고 행동하는데도 내공 수위만큼은 삼류로 느껴진다는 점이 놀라웠다. 

옆으로 봐도 삼류였고 뒤로 봐도 삼류였다.


‘이것이 천외천(天外天)이라는 건가?’


만약 진짜 삼류 무사였다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평가를 피할 길이 없겠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반로환동의 고수. 

삼류 수준으로 기도를 제한하고 있는 건 적을 방심시키기 위함이겠지.

은인의 입장에서 남궁세가를 방문했음에도 저렇게 치밀한 모습이라니. 


‘과연 고수는 방심하는 법이 없구나.’


그렇다면 반말을 들어도 할 수 없다.

강호라는 곳이 본래 신력으로 지위의 고하가 정해지는 곳이기도 하고.

반로환동의 고수라면 분명 남궁현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테니 말이다.


계속 꽃을 구경하던 유건이 잠시 멈춰 섰다.

남궁세가 최고의 대우를 약속했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던 상황.

화원의 모두가 유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검천대주 자리를 얻는 방법에 관해서나 설명해다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검천대?

남궁세가 최강의 무력집단, 검천대를 말하는 건가?

모두가 경직되어 있는 와중, 남궁현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남궁세가 이외의 인물을 검천대주에 앉힐 순 없소.”

“영약을 구해주고, 진천검을 돌려주고, 남궁연을 구해냈는데도 말인가? 검천대에서도 나같은 활약을 한 자는 드물텐데.”


저 인간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는 듯, 화원이 소란스러워졌다.

검천대.

남궁세가 가장 날카로운 검이며, 가훈의 수호자들.

외부인이 검천대 소속이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신원이 불확실한 자는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무공 수위 이상으로 협동력이나 자긍심이 중요한 단체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검천대주 자리라니?

검천대에서도 몇십년 동안 공훈을 쌓아야 오를 수 있는 직위를, 대뜸 외부인에게 넘길 리 없지 않나.


“······그래도 마찬가지요. 검천대주 자리에는 오랜 시간 검전대에서 활약한 인물만이 올라갈 수 있소. 거긴 무력만큼이나 통솔력이나 신용이 중요한 자리니까.”


남궁현이 불쾌한 기색을 들어내며 거절했지만, 유건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검천대주 말고 검천대에 자리는 있나? 지위의 고하는 상관하지 않겠어.”


무림 최강의 무력집단에 입단을 요청하는 주제에, 말투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

다만 그 뻔뻔한 태도에도 좌중은 첫 번째 요청과 비교하면 덜 당황했다.

이는 유건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원하는 조건을 말하라’라는 고루한 협상의 법칙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남궁현은 유건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았다.


“검천대 역시 외부인의 입단은 허용되지 않고 있소.”

“그 어떤 일이든 최초는 있는 법. 또한, 무슨 일이든 예외는 있는 법이지.”

“애초에 반로환동하셨다면 화경에 이른 고수이실 텐데, 어찌하여 검천대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오?”

“나는 반로환동하기 전의 경지를 잃었다.”


화원의 무인들이 ‘너희들의 경지가 삼류가 되었다’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깜짝 놀랐다. 

당사자인 유건이 담담한 태도라서 더욱 호들갑이 더욱 심해 보였다.


‘반로환동하면 그동안 쌓아왔던 내공이나 경지를 잃는다더니, 그게 사실이었나?’

‘쯔즛, 화경에 이르기 위해 평생 수행했을 텐데. 어려져도 아무런 소용이 없구먼!’


남궁현은 소란을 떠는 무인들은 한번 흘겨보고는 유건에게 질문했다.


“반로환동하기 전의 경지를 잃으셨다니, 그렇다면 지금의 무공 수위는 어느정도인거요?”

“글쎄, 그런 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래도 굳이 말로 표현해주신다면.”

“초절정과는 건곤일척을 다투게 되겠지.”


남궁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경지를 잃었음에도 초절정에게 승기를 잡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절정 후기 정도라고 어림잡으면 되겠군.’


사실 유건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속으로 양심이 찔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에겐 총이 있으니, 초절정의 무인까지는 웬만해서는 권총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말씀하신 대로 은인께서는 남궁세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소. 대사부의 직전제자를 구출하고, 진천검을 반환하고, 수많은 영약을 선물해주시고. 솔직히 이 정도면 검천대에 은인분을 넣는 건 큰 문제가 안 되겠지.”

“그런데?”

“하지만 검전대는 무공 수위만큼이나 가문에 대한 충성도와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오. 왜 검천대에 들어오려고 하시는 것이오?”


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세 이 자리는 검천대 면접장이 되어있었다.

서류면접이 끝났으니 심층 면접을 봐야 한다는 소리이려나.

사실 이 대답은 어느정도 준비를 해 뒀다.


“질기더군. 강호의 은원이라는 게. 도저히 끊어지지를 않아. 내가 반로환동 한 걸 알면 내 적들이 나를 찾아오겠지. 본 경지를 회복할 때까지 세가의 이름 아래에서 경지를 쌓을 생각이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차륜전이 시작됐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장로들이 차례로 유건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그, 그 말은 지금 세가에 분란을 몰고 오겠다는 것이오?”

“내 몸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세가의 깃발 아래에 머물겠다는 소리다.”

“도대체 누구에게 원한을 샀길래 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오? 만약 은원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면 절대로 당신을 검천대에 넣을 수 없소! 왜 세가가 당신을 위해 손해를 감수해야한다는 말이오?!”

“너희도 내 정체를 추측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의 적들이라고 다를까. 걱정하지 마라. 경지를 회복하기 전까지 내 정체는 철저히 숨길 생각이니.”


유건은 두 장로의 맹공을 흘려버렸다.

그의 경지가 사실 삼류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술보다는 혓바닥 놀리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말싸움에서 밀린 두 장로가 씩씩거리는 모습을 보며 유건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번에는 웬 젊은 무인이 비꼬는 태도로 나섰다.


“그렇다면 왜 산에 틀어박혀서 수련하고 나오시지 않는 겁니까? 다시 화경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강호출두를 미루시는 게 안전해 보이는군요.”

“반대로 묻겠다. 왜 너희는 그러지 않지?”

 “네?”

“너희는 왜 산에 틀어박혀서 평생 수련하지 않는 거지?”

“남궁세가는 책임져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렇겠지. 마교도 막아야하고, 무림맹의 발전도 도와야 하고, 죄 없는 민초들이 사파에게 고통받는 것도 지켜볼 수만은 없겠지.”

“······.”


강호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얼마나 무시무시하냐면, 강호에 몸 담고 있는 것 자체가 항상 사선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밥에 독이 타있거나 흑의인이 찾아오거나 하는 일은 부지기수.

그렇기에 높은 경지를 이룩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아무도 없는 산에 틀어박혀 매일 검을 휘두르는 것뿐이다.

느린 대신에, 제일 확실하게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에게 짊어진 책임에 눈 돌릴 수 있었다면 나도 경지를 되찾을 때까지 면벽 수행을 이어갔을 거다.”


유건은 드디어 준비해온 말을 꺼낼 때가 왔음을 느꼈다.

그가 처음으로 웃었다.

이빨을 드러내는 사나운 웃음.

절대자의 풍모가 느껴지는, 광오한 웃음이었다.


“설령 쌓아왔던 내공과 경지를 일부 잃었다고 해도, 이 머릿속에 높은 경지로 가는 방법과 깨달음은 그대로 남아있다. 세가에서 화경에 도달하리라 단언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느냐?”

“······.”

“5년, 단 5년! 그 동안 나를 보호해주면 내가 얻는 영광은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그 웃음은 지금까지의 침착한 태도와 대비되어 더욱 강렬했다.


5년만에 화경에 이르겠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비록 게임 속에서긴 하지만, 천마와 무림맹주를 총합 100번 죽인 유건이다.

게다가 리볼버가 있으니 온갖 기연들을 순식간에 독점할 수 있고.

금궤짝 안에 들어있는 불꽃을 본 뒤로 태양지체, 혹은 만월지체로 생각되는 천재성까지 손에 넣었다.


5년 만에 화경에 오를 수 있다.

아니, 반드시 오른다!

유건은 게임 속에서 키웠던 그 어떤 주인공보다 강해질 자신이 있었다.


설마 이런 이야기가 오갈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화원의 사람들은 모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유건의 말대로, 지금 남궁세가의 그 누구도 자신이 화경에 이를 것이라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유건의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위험만 감수한다면, 검천대에 들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 때 한 무인이 발끈하며 좌중의 앞으로 나섰다.

검천대 소속의 무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가주님, 더 이상 저 자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젠장, 애초에 반로환동이니 뭐니 헛소리를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

 

짜악!

누군가 호위무사의 따귀를 날렸다.

 

“감히 가문의 대소사를 논하는 자리에 너 따위가 언성을 높이느냐. 썩 물러가거라.”

 

유건은  단숨에 누군지 알아봤다.

남궁현만큼이나 네임드인 NPC였기 때문이다.

턱까지 닿을 듯한 다크서클에 하얗게 센 머리카락.

현 강호에서 제일 아는게 많다고 여겨지는 남자.

가주의 동생, 장로 남궁현진이었다.

 

호위무사는 얼굴이 시뻘게져 어찌할 줄 모르다가,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는데.

그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아하.’

 

유건은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러니까 이 새끼가 지금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렷다.’

 

이건 게임 내에서도 남궁현진이 몇번 써먹는 방식이었다.

 

‘나도 몇 번 당했었지.’

 

자기 부하를 패서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매번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남궁현진이 동의를 구한다는 듯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만 은인분의 말씀에서 몇 가지 믿기지 않는 부분이 있군요. 제가 이 시대의 기인이사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중 화경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분은 없었습니다. 은인분. 당신은 진짜로 반로환동에 오르신 겁니까?‘

“남궁현진, 내가 반로환동 했다는 게 믿기지 않나?”

“무례를 용서하시지요. 쓸데없이 아는 것이 많은 제 탓입니다.”

“확인. 그렇다면 증명해 보이지.”

 

유건은 남궁현진에 성큼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전신의 힘을 얼굴 근육에 넣어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싱글벙글한 상황이었다.

 

“뭐, 뭡니까?”

“진맥해라.”

“네?”

“반로환동임을 증명하지, 진맥해라.”

 

물론 유건은 반로환동이 아니지만.

자신이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불꽃을 본 뒤로, 유건의 몸은 변했으니까.

 

‘자, 남궁현진. 어디 진맥을 해봐라.’

 

태양지체인지, 만월지체인지 유건도 궁금하던 차였다.

물론 유건을 진맥하면 남궁현진은 내상을 입을 테지만, 남궁현진 정도의 실력자에게 그리 큰 부담을 아닐 것이다.

 

‘싸가지 없는 태도를 고쳐줄 필요성도 있어 보이고.’

 

남궁현진이 유건의 팔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표정이 덫 위에 보란 듯이 놓인 고기를 바라보는 여우 같았다.

 

•••

 

 

유건은 남중현진에게 손목을 내밀었다.

어디 거짓을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라는 듯.

남궁현진은 그 당당한 모습에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내민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감히 세가를 농락하려고 들어? 사기꾼 자식. 네 거짓을 밝히고 가주에게 무례를 범한 죄값을 치르게 해 주마!’

 

남궁현진는 눈을 감고 유건의 몸 안에 내공의 실타래를 드리웠다.

유건은 몸을 꿈틀거렸다.

타인의 내력이 몸에 침투하는 감각은 아주 기묘했다.

 

‘으윽, 롤로코스터가 급강하 할때 느끼는 그거다.’

 

그 과정을 따라가고 있던 유건은 뜻밖의 재미를 보았다.

남궁현진이 내력을 운용하는 모습이 유건의 영감을 자극.

백의공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심득이 찾아왔다!’

 

유건은 설마 깨달음이 도망치기라도 할까봐, 즉시 백의공의 다음 구결을 따라 호흡을 시작했다.

그 변화는 유건의 내부를 관찰하고 있던 남궁현진도 느꼈다.

 

‘뭐지? 갑자기 내공의 운용이 훨씬 효율적으로 변했다.’

 

남궁현진는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유건의 혈도에 내력을 불어넣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입꼬리를 씨익 웃었다.

진맥을 길게 살피지는 않았지만, 벌써부터 알겠다.

 

‘이 자의 내공수위는 역시 삼류 수준이야.’

 

역시 반로환동했다는 말은 허언이었나보다.

내공을 담는 그릇 자체가 터무늬 없이 작다. 


어디 조금 더 살펴볼까.

마침내 내력의 실타래가 단전에 닿은 순간.

남궁현진이 본 것은.

 

‘어······? 어······?’

 

남궁현진이 본 것은, 태양이었다.

피부가 녹아버릴 듯 강력한 열기를 내뿜는 하늘의 지배자.

남궁현진는 감히 물러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태양을 바라만 보았다.

자신의 눈동자가 타오르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으아아악!”

 

남궁현진이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일어난 남궁현진이 두 눈을 붙잡고 쓰러지려는 것을 주위의 무사들이 부축했다.

 

“자, 장로님!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도대체 무엇을 보셨길래······?”

 

남궁현진는 눈이 말려올라가는 것을 의지력만으로 버텨내며 뇌까렸다.

 

“태양지체······.”

“네?”

“······전설로만 내려오던 태양지체! 커흡.”

 

태양지체.

단전에 태양이 들어서. 천지영기에서 내공을 흡수할 필요 없이, 스스로가 극열의 내공을 단전에 쌓으며. 모든 무공에 태양지기(太陽至氣)를 더할 수 있는 신체. 

역사상 몇 등장한 사례가 없기에, 양의 내공을 다루는 남궁세가에서조차 태양지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전설의 재능이었다.

 

남궁현진는 게거품을 물며 기절해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유건을 향한다.

남궁현진는 기절했는데 적장 유건 본인은 허리를 꼳꼳히 세운 자세 그대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동자가 참으로 이상했다.

 

연기를 씐 것 처럼 빨간 눈동자에, 그 동공은 현묘한 금빛을 품었고 있었다.

 

 

 

 




 

무언가 깨어났다.

 

남궁현진이 드리운 내력의 실타래가 막혀있던 뭔가를 뚫어서 일까?

혹은 백의공의 호흡이 개선되며 각성의 촉발점이 된 것인가?


 

유심히 유건의 기도를 살피고 있던 남궁현은.

깜짝 놀라 한발자국 물러섰다. 

온 몸에 소름이 올라오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남궁세가 가주.

불굴의 무인인 남궁현이 살면서 몇번 느껴보지 못한 감정.

그 감정의 이름은 공포였다.

 

‘이, 이건 도대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무신의 편린을 느낄 수 있는건 그 뿐이었다.

 

‘서, 설마 경지를 잃었다는 말조차도 상대방을 방심시키기 위한 함정이었던 것인가!’

 

 

 




 


유건은 감각에 집중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움직임이 예측이 간다.

안력을 집중하여 꿰뚫어 보면 사람의 신체 내부가 투시되어 보였다.

폭발적인 시력은 다른 사람의 눈동자에 반사된 내 얼굴과 눈을 맞출 수 있을 지경.

 

태양지체라고?

 

‘미친 소리.’

 

강호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남궁현진조차 지식이 얕아, 그딴 진단을 내렸을 뿐.

유건는 태양지체 따위가 아니다.

그건 유건이 각성한 힘 중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금궤짝 안에 들어가있던 불꽃,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극양 무공의 궁극에 이르렀을 때 발현되는 무신(武神)의 증표.

[천하를 오시하다]의 엔딩을 100번 본 유건조차도, 우연과 기연이 겹쳐 단 한 회차에만 도달해봤던 경지.

그는 지금 화안금정(火眼金睛)이다.

 

‘도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거냔 말이다!’


작가의말

다음화는 목요일 16시 05분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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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경에 도달하리라 단언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느냐. 24.03.20 79 3 18쪽
6 화경에 도달하리라 단언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느냐. +1 24.03.19 92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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