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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안규영
작품등록일 :
2017.01.08 22:25
최근연재일 :
2017.02.03 12:00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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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1
추천수 :
607
글자수 :
207,653

작성
17.01.2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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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
추천
14
글자
10쪽

2장 - 3

DUMMY

** 2장 - 3


성철은 찬우를 집까지 태워주고 차를 세워두고 담밸 피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있었던 일을 곱씹었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오던 진수와 마주쳤던 그 때, 진수의 굳어버린 표정이나, 자신을 마주치자마자 가방을 꽉 쥐던 그 몸짓까지. 모든 것이 선명했다. 몇 달이 지난 일이었으나 그 때의 일은 아직도 수사의 원동력으로 능히 작용하고 있다.

해넘이다. 아스팔트의 오돌토돌한 표면에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강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는 차 그림자에 튀어나온 자신의 팔과 연하게 울렁이는 담배연기의 그림자를 쳐다봤다. 어느새 담배 하나를 다 피고, 한 개빌 더 꺼내 입에 물었다. 얼른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마신다.

'뭐가요?'

그때 그랬던 사실이 있든 없던 간에 그의 기억 속 진수는 미소 짓고 있었다. 허연 이를 내보이며 그에게 자신 있게 가방을 내밀었다. 그는 그런 기억들에 집어 먹히려다 후- 연기를 뿜어 잡념을 날렸다.

처음엔 선배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선에서 그의 수사열이 불탔었다. 남자 고등학생이 여고생을 살해한 그 사건. 사실 살해인지도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진수와 지예만이 아는 어떤 공간에서 그녀가 살아 숨 쉴지도 모르는 일이다.

경찰 측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고. 금방 끝날 것만 같았던 수사가 점점 길어졌고, 경찰은 명확한 용의자도 발견되지 않는 이 사건에서 점점 관심을 끄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갑한 마음에 성철은 더 열성을 다했다가, 너무나도 잘 지내는 진수의 모습과 태도, 평온한 일상에 분노를 느껴 더 광적으로 수사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뭐가요?'

그의 이가 으득, 갈린다. 그는 필터까지 태워먹은 꽁초를 던지고 시동을 걸었다. 눈을 찌푸리며 햇빛 가리개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가리개에 끼워진 건, 진수네 집 근처의 약도였다.


약도는 수사 첫 날 인계받은 것이다. 아파트 주변에 작게 동그라미 쳐진 곳은 아파트에 딸린 보일러실이나 경비 숙소, 놀이터의 음지였다. 성철과 종찬, 그리고 동행했던 동료들이 무수히 들렀던 공간이었다.

어느 사업가처럼 비밀 공간이라도 만들었던 것 아닐까 싶어 벽까지 짚어가며 돌아다니던 곳이다. 그는 약도를 빼내 조수석에 던져두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성철은 서로 향했다. 그는 창문을 열어 팔을 올리고 손가락을 문에 딱딱대며 노랠 흥얼거렸다. 무슨 노래인지 본인도 모른다. 제목도 가수도 모르는 성인가요였다.

그는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과, 깜빡이를 켜지 않는 차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주택단지를 지나, 큰 도로, 대학로로 들어가 서행하며 평화를 음미했다.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서. 그리고 무슨 우연인지 본인도 모르게, 그는 카페에서 막 나오는 진수와 현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성철은 그들을 지나쳐 골목에 차를 대고 숨을 가다듬었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반복됐다. 손에는 땀이 흥건했고, 그의 머릿속엔 진수를 죽이는 장면이 무수하게 지나갔다.

망치로 내려찍는다. 목을 긋는다. 신발 끈으로 목을 조른다. 그 뒤통수를 갈겨 기절시키고 지하실로 끌고 가 무참히 고문한다. 심호흡을 해도 그런 망상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는 시동을 끄고 핸들에 머리를 처박았다.

입김이 올라갔다. 뒷좌석에 뭔가 둔기로 쓸 만한 게 없을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이 충동이 끝나기까지 차 안을 두리번거리기로 마음먹었다.

성철은 해일처럼 커져가는 망상들 따위는 실현이 안 된다는 것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충동을 막아줄 방파제는 진수가 골목 끝을 지나가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고작 몇 미터 되는 넓이의 시야였지만 성철의 눈에는 그의 미세한 미소까지 보였다.

그 웃는 얼굴을 무참히 부숴주고 싶었다. 성철은 무심코 차문을 열고 말았다. 그는 무작정 나가려다가, 조수석에 던져둔 약도를 꺼내 차 문을 잠그지도 않고 얼른 그들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미행을 감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성철은 섬뜩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살폈다. 골목, 또 골목으로 접어들었고, 진수네 집으로 가는 것이라기엔 너무 돌아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는 휴대폰 배터리를 빼버리고, 그들의 비밀 장소에 다가가는 희열을 맛보았다.

아직 경찰,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그들만의 비밀장소, 그곳에 지예가 있을지 혹시 모른다. 진수와 현태의 뒤를 밟을수록 그의 심장은 두근거렸고, 골목이 좁아질수록 그는 진수 일행에 더 가깝게 붙었다.

진수와 현태는 망한 슈퍼마켓 앞에 서서 멍하니 있었다. 간판이 떨어지고, 담배 마크가 겨우 달려있는 허름한 장소였다. 둘은 슈퍼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 쉬기도 했고, 문고리를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러더니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성철의 귀에는 통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성철은 서둘러 그들이 보는 방향의 반대로 자리를 옮겼고, 이내 점점 다가가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들린다. 성철은 자세를 낮춰 통화를 엿들었다.

"지금?"

성철은 더 다가갔다. 진수의 목소리가 완전히 들릴 만큼. 이젠 진수 쪽이 조금만 움직여도 들킬 거리였다. 진수와 현태가 다시 평상에 앉자, 성철은 자신의 모습이 반사될만한 것이 있나 확인하고 자리를 잡았다.

"알았어." 진수는 '쩝,' 입을 다시며 전화를 끊었다. 그는 슈퍼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성철은 그들이 완전히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로등을 쳐다봤다. CCTV는 없었다.

성철은 손에 끼는 땀을 바지에 닦아내며 슈퍼의 내부를 들여다봤다. 의외로 내부는 조용하고, 정돈된 곳이었다. 진수나 현태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다시 주변을 살피고 아까 숨었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주차된 봉고차와 담벼락 사이였다. 그 둘이 나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저 슈퍼를 탐색할 작정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켤까 잠시 고민했다. 이제 곧 있으면 자신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사람들이 걱정할 때가 될 테다. 해가 거의 다 졌고, 바람은 한없이 강했다. 그는 옷을 여며 매고 쪼그려 앉아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전화가 왔을 것이다. 그는 충분히 다음 기회에 여길 다시 와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있는 집에 가서 푹 잘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본능은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이곳에, 하다못해 살인 계획을 꾸민 흔적이나 기록이라도.

이 슈퍼 어딘가에서 아직 지예가 살아있다면? 영화 <추격자>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무섭게도 그 공간이 지금 자신이 앉아있는 곳과 아주 흡사하다는 걸 눈치 챘다. 쓸데없는 걱정이라 자신을 달래보지만 성철은 이런 상황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상대는 학생이라지만 그래도 남자 둘이다.

그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형님께 보고할까, 마지막으로 고민하려는 순간, 슈퍼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찬우였다. 어째서인지 찬우가 슈퍼에서 나왔다.


그는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는 기회를 보고 차 밑으로 들어가 숨었다. 구석에 있다가는 눈이 마주칠 것만 같았고, 슬슬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엔 이제 찬우의 스니커즈와 데님 청바지만이 보였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찬우는 계속 슈퍼 앞을 서성거리다 다시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가를 반복했다. 십여 분간 배회하더니 성철의 반대편에 세워진 차 옆으로 숨어 쪼그려 앉았다. 찬우가 그대로 고개만 낮추면 성철과 눈이 마주치는 공간이었다.

어째서? 찬우가 왜? 그는 의문을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차를 타고 출발한 자신보다 더 빨리, 게다가 옷까지 갈아입고 저 슈퍼 안에서 나타날 수 있는 원리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는 아까 본 인물이 진짜 찬우인지도 미심쩍기 시작했다.

모든 걸 기록해야한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꺼냈다가, 전원 켜는 소리에 위치가 탄로 날까 그럴 수 없었다.

"성철 아저씨?"

성철은 깜짝 놀라 고갤 들었다. 멀리서 들리는 음성임은 확실했는데, 누가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걸까, 성철은 애매한 자세로 둘러봤지만 저 뒤에 숨어있는 찬우를 포함해서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는 않다는 걸 확인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철의 뒤에서 등장했다. 스니커즈를 신고 있는 찬우였다. 그는 성철을 다시 부르며 슈퍼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성철이 숨어있는 차를 지나칠 때 올려다봤지만, 분명 아까까지 자신과 이야길 하던 그 찬우였다.

찬우는 슈퍼 앞에 멈춰서 주변을 두리번대다 다시 성철을 불렀다. 허나, 성철은 나서지 않았다. 본인은 그를 부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건너편 차에 숨어있던 찬우가 움직였다. 그의 품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장도리였다. 손에 꼭 쥔 망치를 여러 번 쥐었다 폈다 한 그는 천천히, 은닉하여 구석에서 빠져나와 성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야?"

"씨발!"

골목 전체에 커다란 발소리 두 개가 울려 퍼졌다.

"읍."

찬우는 도망치다 머리에 망칠 맞고 쓰러졌다. 성철과 눈이 마주친 그는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망치에 후두부를 맞고 초점을 잃었다.

"그냥 쳐 맞지 귀찮게 하고 있어."

"끝났냐?" 진수의 목소리였다.

"끌고 가서 처리해." 그리고 현태였다.

"걔네도 올 때 되지 않았나?"

"그러네."

"왔네."

"뭐 하다가 이제 왔냐?"

"어? 아. 미행 좀 하느라."

진수의 목소리였다. 진수의 질문에 진수가 대답한 것 같아 그는 목소리의 진원지인 뒤를 천천히 쳐다봤다.

"아저씨 뭐해요?"

또, 진수의 목소리였다.


작가의말

앙대 성철 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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