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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불귀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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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3.12.03 18:35
최근연재일 :
2024.05.3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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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68,908

작성
24.02.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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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5화 역천수

DUMMY

55화 역천수


“영산이라. 어지간히도 험한 곳에 숨었군.”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린 천지방 방주 노개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곳 근방에는 분명 여러 곳으로 갈 수 있는 큰 강이, 물길들이 모이는 곳이 있었지. 어쩐지, 거지들 눈에 잘도 띄이지 않고 여기저기 나타난다 싶었어.”

“감탄은 나중에 해라. 당장은 그곳으로 가서 이 망할 후일담을 끝내는 게 우선이다.”

“망할 후일담이라. 정말 그렇군.”


진천자가 굳은 얼굴로 이르는 말에 대답한 것은 같이 자리한 여러 명숙 가운데 하나, 인의검 왕이범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이만큼 씁쓸하고 머리 어지러운 후일담이 없어.”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위로하듯 건넨 말이었으나 왕이범은 그 말에 위안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이것이 과연 끝일까 하는 의문에 잠겼다.


‘천귀가 너무 쉬이 말하여 준 것도 그렇고, 일이 돌아가는 형세가 영 이상해. 그리고 설령 이 일이, 시마교의 일이 여기서 끝난다고 한들 내게 복아의 일은 앞으로도 한창 남은 일이지.’

“지금은 한 가지만 생각해라.”


그런 왕이범의 속내를 읽었다고 하듯이 한마디 한 진천자는 모인 이들을 보았다.


십검가 가주 백무작을 비롯한 여러 명숙에 더해서 그 정점이라고 할 십대 고수가 넷.


여기에 당장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숫자는 적다고 하여도 검가제일이라는 소리를 듣는 십검가의 정예와 죽림사와 팔괘문에서 추리고 추려 보낸 무인 십수 명 그리고 천지방 방도들을 동원할 수 있으니 적은 전력은 아니었다.


“내일 새벽에 영산으로 출발하지. 반대하는 사람 있나?”


진천자가 이러한 전력을 내심 생각하며 물으니 다른 이들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는 없는 거 같군. 그럼 결정되었으니 다들 준비하시오.”



***



날이 밝자마자 출발하자고 한 것에 맞추어서 십검가를 나와 달린 무인들은 일주야를 지나지 않아 영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더불어서 시마교 본거지 찾는 일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정작 그 본거지에 도착한 순간 사람들은 대부분 말을 잊었다.


기껏 도착한 시마교 본거지에서는 그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검대, 수색을 시작해라.”

“거지들아! 뭐 찾는 거에서 뒤쳐지면 밥 벌어 먹고살겠냐!”


그러한 가운데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십검가 가주 백무작이었다.


그가 내린 명령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천지방 방주 노개가 명하니 사람들이 사방으로 저마다 짝을 지어서 흩어졌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진천자는 고개를 돌려서 사방을 살폈다.


“기이하군. 우리가 올 것을 알았던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기이하다.”

“그렇군. 녀석들이 이렇게 하다니, 답지 않아.”


진천자의 말에 왕이범 역시 옛 기억을 되새기며 동의하나 영문을 모르겠다 싶었던 백무작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강약약강은 사도를 걷는 이들에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거늘, 어찌 그리들 이상하게 여기십니까?”

“전에 시마교가 골치 아픈 이유, 그리고 녀석들을 토벌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녀석들은 피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 번은.”


한번은 피하지 않는다는 말에 백무작은 당황하여 그의 아비, 검왕 백연을 찾았다.


그러자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백무작은 곤란한 얼굴로 진천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답하여 준 것은 진천자가 아니라 왕이범이었다.


“백 가주, 이들은 그대가 말한 것처럼 사도였고 강약약강하기를 개의치 않았소. 또한 아랫사람 부리며 쓰기를 아까워하지 않았으니, 반드시 거점이 드러나면 한번은 맞아 싸워 온갖 기괴한 수를 부려 이쪽을 괴롭게 한 후에야 물러났다오.”

“몇 번 그 꼴을 겪은 이후 시마교 거점은 반드시 만반의 준비를 한 후에 들어가는 게 암묵적 규칙이 되었었지.”


왕이범에 이어서 태양희 화유아가 말을 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 후에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투덜거림을 덧붙였다.


“뭐, 투쟁을 좋아하는 어느 분께서는 그런 거 개의치 않게 굴어서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했지만 말이야.”

“이야, 그리운 이야기로군. 그때는 참 좋았다니까.”


화유아가 하는 말에 추억에 잠긴 마창 조경이 중얼거리니 그를 대신하듯 제자 오상이 민망한 얼굴로 사방에 고개를 숙였다.


절로 실소가 나오나 상황과 자리를 생각하여 참은 백무작은 잠시 들은 것들을 곱씹었다.


이윽고 백무작은 상황을 이해하긴 했지만 이것이 아직까지 그렇게 이해하지 못할 일인가 싶어서 입을 열었다.


“그, 과거에 그러했음은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삼십 년간 피해 다닌 이들이며, 이번에 진천자 대협께서 직접 캐고 들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이들입니다. 전과 다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백무작의 말에 진천자가 호응했다.


이에 정작 말을 꺼냈던 장본인인 백무작이 더 당황한 얼굴이 되어서 그를 보았는데, 진천자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어갔다.


“방금 들은 말, 아주 헛말은 아니다. 분명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녀석드에게는 아직 시마가 없지.”


단언하여 말한 진천자는 혹여 그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노개?”

“그놈은 아직도 멀쩡하게 잘살고 있다. 짜증 나도록 말이지.”


전에 잡아 천지방에서 모처에 두고 관리하는 시마교 방사 작철심이 여전함을 알려주니 진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놈들은 여전히 열세다. 그리고 시마의 방침에서도 다소 여유롭겠지. 또한 이미 삼십 년을 기다린 놈들이다. 이미 주력이라고 할 장로들 여럿에 무인이며 방사들을 적지 않게 소모한 놈들이다. 아마도 달리 움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방심하지 말라고 한 진천자는 코끝을 찡그러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저 놈들이 있던 곳이라서 그런가 했는데 조금 더 있으니 확실히 알겠다. 여기에 남겨진 사기, 이 특유의 향은 그저 잔재가 아니야. 무언가 확실히 있다.”


삐익-!


진천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각 소리가 크게 울리니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첨탑? 제법 독특한 모습이군.”


노개가 하는 말에 잠시 첨탑을 본 진천자는 문득 옛 기억들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하나는 그가 무림에 몸을 두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이어서 시마와 대면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니 어느 쪽도 지금 떠올리기에는 영 좋지 않았다.


“······쯧, 일단 가서 확인한다!”


진천자는 말만 하고 뒷짐 지지 않겠다고 하듯 앞서서 달렸는데, 덕분에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호각을 분 사람들과 그들이 호각을 분 원인을 볼 수 있었다.


카앙!


“이 짐승, 가죽이 강철 이상이다!”

“물러나! 무리하지 말고 물러나! 곧 지원이 올 거다!”


크르릉


십검가 무인 둘이 전자라면 낮게 으르렁거리며 사족보행하는 존재가 그 후자였으니 진천자는 그것을 보곤 살짝 당황했다.


“호랑이?”

“평범한 호랑이가 아니야. 진짜 호랑이는 저런 눈빛이 아니라고.”


다음으로 도착한 조경이 이르는 말에 진천자는 그에게 시선을 향했는데, 이에 그는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소싯적에 가장 강한 건 호랑이와 같은 맹수들이 아닐까 싶었거든. 그래서 저것들 가운데 하나를 이기면 내가 최강이겠다고 생각해서 산속을 헤맨 적이 있었지.”

“······그래서, 잡았나?”

“물론이지. 하지만 잡고 나니 생각보다 쉽더라고.”


쉽다고 말한 조경은 아쉬움을 한껏 드러낸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달려들면 피하고 목 바로 아래를 창으로 찌른다. 아니면 눈도 좋아. 그곳 가죽은 상대적으로 연하거든.”


말은 쉽게 하나 조경과 같이 기예에 자신이 있는 이가 아니라면 좀처럼 시도 하기 어려운 방법이라는 걸 쉬이 안 진천자는 미간을 좁혔다.


“뭐, 저건 진짜랑 달라서 안 통할 수도 있을 거야. 그냥 두들겨 팬다고 생각해야지.”

“그런 식으로 잡은 적도 있나?”

“그건 적발금강, 그 친구가 해봤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기회가 되면 해보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호랑이는 물론이고 표범조차 귀하더라고.”


적발금강 번무가 했다는 말에 진천자는 잠시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으나 이내에 무시하고 십검가 무인들과 대치 중인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그렇군. 확실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질감이 있다.’


그 이질감의 정체까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있는 것은 확실하니 진천자는 십검가 무인들에게 무리하지 않게 하는 게 좋겠다고 여기며 백무작을 바라보았다.


“백 가주. 상처 없이 잡아서 살피려면 저들을 물리는 게 좋겠네.”

“알겠습니다.”


십검가 무인들에 대한 존중을 담아 이른 말에 백무작은 군말 없이 대답하고는 곧장 명령을 내렸다.


“십검가 무인들은 물러나라!”

“예!”

“예, 가주님!”


백무작의 호령에 호랑이와 대치하던 두 사람은 경계를 유지하면서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그런 두 사람에게 호랑이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 눈으로 양쪽을 노려보기만 하였으니, 그 모습을 본 이들은 진천자처럼 이질감을 하나씩 느끼기 시작했다.


“영물인가?”

“호랑이 영물이라면 저기 백산 백호가 유명하긴 하지.”

“사람 말도 알아듣고 명예를 안다고 하던데?”

“직접 본 건 아니라서 나도 확실히는 모르고.”


노개와 왕이범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가 귓가에 들려오는 걸 느끼며 진천자는 가만히 호랑이를 살폈다.


그러다가 호랑이가 살짝 움직인 순간, 진천자는 크게 당황헀다.


“읏!?”

“진천자?”


불쾌한 얼굴로 코를 부여잡으니 그가 순간 무언가를 당했다고 여긴 화유아는 그를 걱정하여 살폈다.


“아니, 괜찮다. 너무나도 불쾌했을 뿐이다.”

“불쾌하다고?”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도로 잡은 진천자는 다시금 호랑이를 살피더니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게 영물이면 백산에 사는 백호는 정말 억울하겠구나.”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노개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진천자는 호랑이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놈은 나름대로 영성을 쌓아서 도통하였을 것이 아니냐. 그런데 저런 놈하고 같이 취급당하면 그 노고며 세월이 얼마나 아깝고 억울하겠느냐.”

“무슨 말이야? 조금 알기 쉽게 설명해 봐라.”

“간단한 이치다. 기혈을 폭발하는 단약을 먹은 놈이 너나 나와 내공이 비슷해졌다고 같은 경지라고 주장하면 얼마나 같잖아 보이겠냐. 남이 말하면 승질도 좀 날 거고 말이다.”

“······그저 길 잃은 맹수가 아니라는 건 아주 잘 알겠다.”


어느 정도 진천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노개는 긴장하며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다른 이들 역시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니, 진천자는 이들이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입을 열어 말했다.


“영물은 무슨. 죽은 맹수를 사기로 이리저리 기워서 새로이 만든 것이니, 저것은 흉물이다. 정히 이름을 붙이자면-.”

“역천수, 혹은 역천영물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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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만독괴협 24.04.10 104 1 12쪽
85 85화 과거의 강적 +1 24.04.08 92 4 12쪽
84 84화 본질과 한계 24.04.05 105 2 12쪽
83 83화 남 탓 고수 24.04.03 118 2 12쪽
82 82화 이성은 쉬이 사로잡힌다 24.04.01 110 2 11쪽
81 81화 무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24.03.29 109 1 12쪽
80 80화 끔찍한 짓 24.03.27 116 2 11쪽
79 79화 차륜 24.03.25 109 3 12쪽
78 78화 하늘과 땅 24.03.22 125 3 12쪽
77 77화 사각에서의 습격 24.03.20 121 2 11쪽
76 76화 어려운 도움 24.03.18 123 3 12쪽
75 75화 선대의 연 24.03.15 12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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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꾀어내기 위한 먹이 24.02.21 155 3 12쪽
64 64화 부정한 유산 24.02.19 153 3 12쪽
63 63화 악몽 24.02.16 152 3 12쪽
62 62화 돌이킬 수 없는 일 +1 24.02.14 166 3 12쪽
61 61화 천인구 24.02.12 170 3 12쪽
60 60화 쌍염창 24.02.09 197 4 13쪽
59 59화 같지만 다른 일 24.02.07 199 3 12쪽
58 58화 비상한 일과 비상한 대책 24.02.05 197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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