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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템빨로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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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작품등록일 :
2021.10.03 03:43
최근연재일 :
2021.10.05 14:3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304
추천수 :
18
글자수 :
38,805

작성
21.10.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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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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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001_ 서장 (1)

DUMMY

# 1.




양자 컴퓨터, 인공 지능, 로봇 공학.


놀라울 정도의 과학의 은혜는 인류를 도태시켰다. 로봇이 노동하고 인류는 그것을 누릴 뿐인 썩어빠진 시대였다.


내가 평생 걸어온 길이 하루아침에 무의미가 되어버린 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기본소득제를 통하여 그 어떤 누구도 먹고살 걱정 없는 이상세계가 도래했지만, 그것은 살아서 죽은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앞으로 어떤 것도 열중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죽고만 싶었다. 그러던 내가 최초의 완성형 전뇌오락 프로젝트 알파(Project Alpha). 통칭 피 알파(P. Alpha)를 만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또 하나의 세계'라는 광고문구는 당시 무력감에 빠져있던 나를 너무도 쉽게 자극했다.


천 가지가 넘는 직업 중 '콜렉터'라는 직업을 고른 것도 당첨이었다. 그저 아이템을 수집하는 데 열중 할 수 있었으니까.


저급, 일반, 고급, 희귀, 고대, 전설, 유일, 신화


총 여덟 등급으로 나누어진 아이템 중 희귀 등급만 되어도 천 종류가 채 되지 않는다.


고대 등급은 약 오백.


전설 등급은 약 백.


유일 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총 열 한 가지. 열 가지의 유일 등급 아이템과 단 한 가지의 신화 등급 아이템이다.


난 유일 등급 아이템과 신화 등급 아이템을 전부 소유하고 있었고, 그 밑의 쓰레기 잡템까지 전부 수집했다.


밝혀진 아이템, 밝혀지지 않은 아이템 전부를 모았지만, 아직도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은 하나의 아이템이 남아있다.


반년 넘게 추적했지만,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정체불명의 아이템. 그 탓에 피 알파 서비스 종료를 오 분 앞두고도 숨겨진 던전의 최심부에 있다.


도시에서는 지금쯤 추억 만들기가 한창이겠지만, 그것은 나의 알 바가 아니다. 남은 시간이 있다면 미답의 맵을 하나라도 더 격퇴해야 했다.


그렇게 세계의 끝에서 마지막 아이템의 실마리를 찾아 절망감을 허우적댈 무렵. 익숙하지 않은 인터페이스가 시야 끄트머리에 떠올랐다.


「식별할 수 없는 대상이 케니스 님을 소환하려 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소환 마법을 시전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창이었다.


평소에는 온갖 마법 저항 아이템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이런 경고창은 익숙하지가 않았다.


이 숨겨진 맵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마법 저항력 수치가 음수로 떨어져야 했기에 일부러 아이템을 통해 저항력 수치를 대폭 낮춘 상태였다.


순간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 중요한 순간 나를 찾는 이가 대체 누구인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면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소환 마법에 휘말려 들었다.


곧 주변 세계가 일그러졌다.


그리고 도착한 장소는 어딘가의 지하인 듯 매우 어둡고 습했다.


나는 제단의 위에 소환되었기에 소환 마법을 사용한 사람이라 짐작되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내려다보게 되었다.


"당신이 나를 소환했나?"

"#@%^@#$#%^&&*$%$%^!@#%$#@@$%*#."


그녀는 나의 물음에 황급히 답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피 알파는 그 방대함에 맞게 사용자의 언어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는 공용어를 익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공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중일 것이다.


조바심이 난 나는 서둘러 콜렉팅 박스에서 통역 기능이 있는 아이템을 꺼내려 했다.


늘 하던 것처럼 허공에 손을 대면 내가 원하는 아이템은 자동으로 나의 손에 잡혔다.


"@#$@%@#@@#$$@#$%@#@@#$%^&***!"


그녀가 또 무슨 말을 하지만 아쉽게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

·이름 - 영광의 별 무리

·종류 - 귀걸이

·등급 - 전설

·사용 소재 - 비은(秘銀), 요정석(妖精石), 운석(隕石), 금(金)

·가치 - 23089

·주요 부여 마법 - 영광의 별 무리 (모든 언어 능숙도 최대)

·보조 부여 마법 - 최상급 마력 강화


‘머나먼 과거 별에서 온 존재들이 우호의 증표로 요정의 왕에게 주었던 신비한 장신구. 착용자는 만물의 소리를 듣고, 만물의 소리를 보고, 만물의 소리를 말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


"······공간 마법이라니 말도 안 돼."


영광의 별 무리를 귀에 걸자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더는 내 시간을 낭비하게끔 둘 수 없었다.


"네가 나를 소환했나?"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다시금 묻자, 그녀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 실례합니다. 저는 쥬리알 가문의 가주로서 벨리안 영지의 수호를 맡은 샤를리안 드 쥬리알이라고 합니다."

"······."

"실은 저의 부덕의 소치로 저의 가문과 영지는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구세주님에 대한 전설이 진실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당황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샤를리안 드 쥬리알이라고 자신을 밝힌 그녀는 이후로도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결론은 자신의 가문 부흥과 영지의 수호를 구세주이신 나에게 맡긴다는 소리였다.


거기서 지끈거렸던 골이 맑아짐을 느꼈다. 서비스 종료 직전인데 정상적인 유저가 이런 컨셉 질을 걸 리가 없다.


NPC다.


이런 식으로 접촉해오는 NPC는 듣도 보도 못했지만, 그녀의 정체가 NPC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만남이 마지막 아이템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렇기에 나는 남은 시간을 확인할 필요를 느꼈고, 시야 한쪽에 서비스 종료까지의 시간이 표기된 작은 인터페이스를 띄웠다.


"뭐지?"


서비스 종료까지 남은 시간이 3분 17초에 멈춰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깔끔하게 비워뒀던 임무 메뉴에는 알림 표시가 떠 있다.


의아함 속의 고양감을 억누르며 나는 임무 창을 불러왔다.


§¿¡ ¸ÂÃç▼ ³ª°¥¼öÀÖÀ½ ¹ÙÅÁȸé¿

Ô ÁÁ´Ù.º§¿¡ ¸ÂÃç ³ª°▲¸ÂÃç▼ÅÁÁ´Ù.


깨진 글자가 한가득한 기괴한 임무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무 제목도 임무 내용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나는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반년 동안 미친 듯이 뒤쫓아온 실마리다.


실마리임이 확실한 것도 아니지만, 그 비슷함이라도 구원처럼 느껴졌다.


"저, 저기······."


샤를리안이 어물거리며 나를 불렀다.


반년의 노력 어디에서 임무의 트리거를 작동시켰는지 모르겠다. 알아볼 수 없는 글자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좋아. 도와주지."


일단 그렇게 정했다. 그러자 샤를리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돕기로 정했으니 이제는 서비스 종료의 시각이 왜 멈추었는지 알아볼 시간이다.


나는 오랜만에 피 알파 공식 사이트로 접속하기 위해 피 알파에 내장된 인터넷을 열었다.


분명 공식 사이트에 정확한 공지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리고 그제야 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네트워크에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뉴런 네트워크 칩이 도입된 이후, 인류는 인터넷과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사람은 머릿속에 있는 나노 컴퓨터에 늘 연결되어 있어, 원한다면 지구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 할 수 있다.


네트워크가 불통인 상황은 만에 하나라도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대부분의 로봇은 활동을 멈출 것이고 그럼 인류는 끝장이다. 그것은 지금 내가 접속해 있는 피 알파조차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네트워크가 연결되지 않다니······. 그렇다면 난 무엇을 통해 이 전뇌 공간에 접속해 있는 것이지?


순간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들었다.


추론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저 조잡한 망상.


초보자 시절 잠깐 사냥을 같이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옛 동료가 말했던 허무맹랑한 소리가 떠올랐다.


"안내해라······."


샤를리안 드 쥬리알은 나의 요구에 녹색이 감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밖으로 안내해라."


다시금 나의 요구를 보충했다.


"네, 넵.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의식 때문에 불을 꺼버려서······."


샤를리안은 잔뜩 긴장해 그렇게 말하고는 바닥을 뒹굴고 있던 등을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비어있는 손을 등 쪽에 가져다 대고······.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화롯불의 샘. 그 생명의 그릇에서 한 주걱의 나눔을 원하노니. 번(Burn)."


그 모습을 보자 세차게 뛰던 나의 심장은 무섭도록 차갑게 식었다.


처음에는 그저 잘 만든 NPC라고 생각했다. 다른 NPC에서는 보기 힘든 변화무쌍한 감정의 변화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점점 확신이 든다.


우선 피 알파에는 영창이라는 기능이 없다. 그저 마법을 지니고 있다면 그 마법을 사용한다는 생각만으로 필요한 마력이 소모되고 그 마법이 시전된다.


시전 시간이 존재하는 위계가 높은 마법은 저절로 마법진이 그려지고 그만큼 시전 시간이 소요될 뿐이다.


즉 영창은 피 알파 시스템에 불필요하다.


가끔 그런 것에 심취해 있는 이들이 불필요한 영창을 외우고 마법을 사용하는 일은 있지만, 피 알파가 공식적으로 심어둔 NPC가 마법 사용을 위해 영창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샤를리안은 NPC가 아니다.

그렇다고 유저도 아니다.


그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가 피 알파가 아닐 뿐이다.


샤를리안의 뒤를 따라 동굴을 빠져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곳에는 나를 비웃는 듯 단 하나의 초승달이 시로도록 아름답게 걸려 있었다.


피 알파의 달은 세 개라는 사실만이 나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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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02_ 쥬리알 가문 (1) 21.10.03 54 3 13쪽
» 001_ 서장 (1) 21.10.03 8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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