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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Light 서재입니다.

신인 GODMA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BrainLight
작품등록일 :
2019.09.20 09:55
최근연재일 :
2019.12.25 08: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34,319
추천수 :
2,420
글자수 :
408,390

작성
19.09.25 08:00
조회
829
추천
42
글자
11쪽

바라나시 갠지스 강

DUMMY

한정은 예나와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며 자신이 원하는 게 정말 무엇인지 정리해 보려고 애썼다.


내가 예나에게 더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

동현에 대한 의리 때문인가 아니면

동현을 잊지 못하는 예나에 대한 배려 때문인 걸까?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한정을 두렵게 하는 것은 더이상 예나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어떤 관계로든 예나만 볼 수 있으면 돼.

그걸 무엇이라 하든 중요하지 않아.

예나를 보고 지켜주고 싶을 뿐이야.


그때 예나가 프론트에서 안내를 받아 미소를 지으며 한정이 있는 자리로 왔다.


"선배, 하루 동안 잘 지내셨어요?"


한정은 예나를 보자 금방 얼굴이 환해졌다.


"야, 탐모라 물과 공기가 좋기는 좋은가 보다. 하루 사이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달라지냐? 좋아 보이는데?"

"어제 선배의 지극한 국빈 접대를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예나도 웃으며 말했다.


"내일 일정은 어찌 되지?"

"선배도 잘 아시죠? 강우용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기로 했어요. 독립 전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들을 취재하느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단순히 보도 뉴스였고, 이번에는 다큐라 좀 다른 이야기들을 요청해 들어보려구요."

"강 실장이 어디까지 이야기해 줄 지 궁금하군. 잘 구슬려 봐야 할 거야. 아마 보도용이 아니라고 하면 더 깊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더 깊은 이야기라면... 예를 들어 어떤 거요?"


전골 냄비 육수가 펄펄 끓어오르자 예나는 앞에 놓인 수삼, 청경채, 각종 버섯과 해산물을 차례로 넣으며 한정에게 물었다.


"고태건 대통령이 탐모라 독립을 추진하게 된 뒷이야기이지."

"탐모라를 독립시키게 된 뒷이야기는 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정치적인 배경이 컸죠. 고태건 대통령의 꿈이 원래 대통령이 되는 거였잖아요.


그의 대권 야망이야 이미 국회의원 시절부터 오래된 이야기구요. 그 발판을 닦기 위해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왔는데 생각만큼 도정道政도 그렇고 주변 상황들이 만만치 않았던 거죠.


그래서 이미 오래전부터 대권을 위해 서울에서 다진 여러 지지세력들을 설득해 도움을 받고 결국 제주도를 탐모라로 독립시켜 대통령의 꿈을 이루게 된 거구요."

"그래 예나가 말한 내용이 알려진 대부분의 이야기들이지."


한정은 익은 야채와 해산물을 건져 예나 접시에 올려주고,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진 샤브샤브용 흑돼지를 하나씩 집어 뭉치지 않게 전골 냄비 여기 저기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저도 고민이 커요.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를 또 다큐로 뭘 만들라고 하니. 기존 내용을 총정리 한다 생각하면 되기는 하는데 저는 재미가 좀 없죠.


지금까지의 기획으로는 그동안의 과정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대통령 인터뷰를 추가해서 넣는 정도로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아요."


한정은 샤브샤브를 먹다가 예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럼 해야 할 일은 다 된 거니까 남은 시간은 나랑 놀자!"

"하여간 선배는..."


예나는 눈을 흘기며 한정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의 정성을 보아서 블록체인 행정시스템 내용도 좀 다룰 게요."

"역시 몸소 접대한 보람이 있네. 그럼 감사의 마음으로 가볍게 한 잔 할까?"


예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정은 오메기술을 시켰다.

투명한 갈색 빛의 오메기술은 향긋하면서도 쌉살했다.


"탐모라에서만 나오는 술이야. 탐모라가 논이 없어 쌀이 귀하잖아. 그래서 차조로 만든 특산물이 많아. 오메기술은 오메기떡을 누룩과 함께 발효시켜서 만든 증류주인데 도수도 높지 않고 소화에도 도움을 주지."


예나는 한정이 방금 비운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저 오늘 그날 카페에서 본 그 신인을 만났어요."


한정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래? 어디서? 어떻게?"

"호텔 정원에서요."


기묘한 인연이군.


"근데 선배가 잘 아는 사람인가요?"

"아니야. 내가 지도를 받는 분과 같이 있는 걸 몇 번 보았을 뿐이야."

"무얼 지도 받으시는데요?"

"글쎄... 정신의 재생과 변형을 위한 과정이라고나 할까?"

"에~이, 선배 또 농담하시는구나."


한정의 농담에 익숙한 예나가 감을 잡았다는 듯이 쏘아 부쳤다.

한정은 그저 웃기만 했다.


내가 정신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게 바로 예나 너 때문이야.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했지?"


한정은 영능력자와 예나가 주고받은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이제 그만 자유로이 놓아주라고요."


예나는 자신이 자책하고 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구나..."


한정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정은 결국 예나가 해야 하는 거니까.


"선배, 어제 탐모라가 영지라고 한 이야기 좀 더 해주세요. 그래서 종교인들이 왜 이곳을 많이 찾는 건지 구체적으로요."

"너 내일부터 일한다더니, 뭐냐? 좋은 저녁식사 분위기를 깨는 건?"

"선배 왜 그러세요. 제가 녹음도 하지 않고 카메라도 없는데 무슨 일을 하겠어요. 그냥 궁금하니까 그러죠. 단지 호! 기! 심! 요~."


예나는 특유의 미소로 한정에게 떼를 쓰듯이 말했다.


"여기, 육수에 국수를 넣어 주세요! 그렇게 원한다면야..."


한정은 예나의 독촉에 못이기는 척 이야기를 시작했다.


"탐모라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선계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아."

"선계라면 신선들이 사는 세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지. 처음에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나 민속학자들도 그런 지명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전설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해 왔지. 그런데..."

"그런데요?"

"그런 지명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생긴 거야."


"누구죠?"

"예나가 오늘 호텔 정원에서 만난 바로 그런 사람들이지. 신인들."

"신인? 그들이 그런 곳에서 수련을 하는 이유는요?"

"엄청난 에너지 고양이지."

"에너지 고양? 그게 뭐 어떻다는 거죠? 에너지 고양으로 무엇이 달라지는데요?"

"사람들이 가진 의식의 범위와 경험해 온 환경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매우 다양한 영적인 체험들을 한다고 해."


예나는 잘 익은 국수 몇 가락을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선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몇 년 전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 취재를 갔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그래, 예나가 만든 그 영상 나도 기억이 나.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로 붉게 물든 강물에 사람들이 배를 타고 기도를 하며 꽃모양 초들을 띄웠지. 갈매기 소리와 함께 색색의 꽃초들이 반짝이는 물살을 타고 천천히 흘러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어."


"그때 광경이 저도 선명해요. 새벽 녘 해가 떠오르기 전 갠지스 강변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하루 일을 시작하죠.


배를 타고 갠지스 강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는데 강 가까이 곳곳에서 화장을 하는 불꽃들이 타오르고 있었어요. 그 바로 옆에서는 빨래를 하는 이들과 목욕을 하는 이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곧 태워질 시체를 씻기고 있었죠.


그리고 그보다 더 아래쪽 강가에서는 어떤 이가 가져온 물병으로 흘러내리는 강물을 성수라고 떠서 머리에 여러 번 붓고는 물병을 한가득 채워 자리를 뜨더라고요.


정말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는 광경이었어요."


예나는 막 후식으로 나온 순다리를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함께 배를 탔던 이들이었어요. 그런 장면들을 모두 영화를 보듯이 그저 생각없이 보고 즐기며 사진만 찍고 있더라고요. 미개하고 위생적이지 못한 모습만 불쌍하다고 하면서 말이예요."

"누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니까."

"마치 자신들은 그런 죽음에서 영원히 제외된 것 마냥 생각하는 거 같았어요."


역시 또 죽음에 관한 이야기군.


한정은 예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예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쳐다보았다.


"화장을 할 때 잘 타는 비싸고 좋은 땔감을 구하지 못하면 시체가 완전히 타지 못하는 일이 흔하구요. 그런 시체는 주로 강가 가까이 낮은 곳에서 태워져요.


그래서 불길이 사그라들면 타다 남은 시체덩어리들을 먹으려고 불길을 지켜보던 개들이 화장된 잿더미로 몰려 들더라구요.


죽은 자는 자기 시체가 나뒹굴지 않도록 처리해주는 동물에게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때 그런 생각들을 했었죠. 그 전날 저녁에는 배를 타고 힌두교 의식을 보러 갔었어요."


"응, 그 장면도 본 기억이 나."

"그날 배 위에서 제가 정말 특이한 느낌을 받았어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선배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기억이 나네요."

"어떤 느낌이었지?"


이렇게 해서 예나의 무의식을 보게 되는구나.


한정은 예나의 깊은 내면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베일에 싸인 그녀의 세계가 자신에게 열리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고 가깝게 느껴졌다.


"어두운 밤 의식이 거행되는 무대는 수십 개의 횃불로 밝았죠. 힌두교 제례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에 맞추어 힌두교 대학생들이 신에게 바치는 춤을 추고 있었어요.


그때 불현듯 어찌된 영문인지 그 무대와 그것을 지켜보는 갠지스 강 공간 위로 수 천 년 동안 사람들이 기도해 온 발원이 쌓이고 쌓여서 그곳에 두텁고 거대한 에너지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무엇을 위해 올린 기도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글쎄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상한 자각이 들었어요. 아주 오래전에 갠지스 강 그 자리에서 간절한 바램으로 제가 기도를 올렸었다는 막연한 기억이 떠오른 거예요."

"일종의 기시감旣視感 같은 거?"

"그런 거 같아요. 오래전 그 기도 덕분에 제가 다시 태어나 그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정말 특이한 체험이구나."


한정은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그런 경험은 저도 처음이어서 인도인 가이드에게 그날 체험을 이야기했죠. 인도가 그토록 오랜 동안 세계에서 중요한 영적 순례지가 된 이유는 그런 에너지장 때문인 것 같다고요. 그것은 언어도 필요 없고, 어떤 종교와 문화를 가졌든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가이드가 뭐라고 했어?"

"자기가 가이드한 지 5년이 넘었는데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소름이 돋는다고 하더라구요."


한정과 예나가 동시에 웃었다.


"그런 영적인 곳이 세계 곳곳에 있는 것은 분명한 거 같아.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생존을 위해 이동하는 유목민과 상인들이 아니어도 '순례'라는 문화가 수 천 년 간 계속되고 있으니까."

"하지만요 선배, 그런 아주 강렬한 체험을 하고서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로 잊고 지낸다는 거예요. 선배 덕분에 그날 이후 저도 이제서야 꺼내 보는 기억이니까요."


소울 메이트!

내가 너의 소울 메이트라면...


한정은 예나를 바라보며 기도하듯이 속으로 말했다.




- 신인 G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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